<2레벨로 회귀한 무신 514화>
“……회귀를, 네가 시켜 줬다고?”
무성 성지한.
이드가 거론한 그 칭호는, 분명 저번 생에서 성지한이 불렸던 것이었다.
그는 저번 생에서, 죽기 직전을 떠올렸다.
-신기합니다.
-NO.4212. 인류는 가치 없는 종이었을 텐데.
-삭제에 저항하다니.
이제는 끝났다 싶은 순간.
그의 눈앞에 배경색이 각기 다른 메시지창이 마구 떠오르더니.
-그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합시다.
-동의합니다.
-반대합니다. 힘의 낭비입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찬성 3, 반대 1로 ‘재도전’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렇게 회귀하고 난 이후.
이 재도전 기회를 부여한 상대가 누군지에 대해선, 가슴 한켠에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무신의 무한회귀를 알고 난 이후에는, 날 회귀시킨 게 그인가 싶었지만…… 아니었지.’
처음에야, 성지한을 컨트롤 가능한 변수로 보고 무혼을 얻을 때도 넘어가던 무신은.
나중엔 상대가 통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곤, 어떻게든 죽이려 들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무신은 회귀에 대해선 딱히 거론하지 않았으니.
그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메시지창의 색이 여러 가지인 걸 보고, 혹시 관리자들이 개입한 건가 싶었는데…….
“그래. 널 무신의 무한회귀 속 변수로 채택한 건 나다.”
“찬성 3, 반대 1이라며. 혼자 쇼했던 거냐?”
“아니. 널 회귀시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백색의 관리자의 권능이 꼭 필요했지. 그리고 이를 위해선, 우리 내부에서도 합의가 필요했다.”
“합의라. 그게 그 투표였나.”
“그래. 나는 네가 그릇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그릇? 설마 대기만성을 말하는 건가?”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여기서 갑자기 그릇이 나오는 거지?
그의 반문에.
씨익.
이드는 입꼬리륻 더욱 올렸다.
“그렇다. 네 조카는, 무한한 굴레에서 매번 일찍 죽었지. 경쟁자에 의해서.”
“…….”
“하나 그녀를 죽인 경쟁자는 자질이 뛰어나지 않았다. 관리자의 그릇으로 발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지.”
성지한은 그 말에 중국의 진유화를 떠올렸다.
윤세아를 죽이라고 사주해서, 대기만성 기프트를 완성한 그녀는.
저번 생에서, 세계 랭킹 2위까지 오르긴 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지.
전투뿐만 아니라, 대기 역할도 하지 못할 만큼 능력 부족이었나.
“그래서…… 날 회귀시켰다고?”
“그래. 그녀의 호위로 쓰기 위해, 내가 널 과거로 돌려보냈다.”
“……호위라면, 매형을 보내도 되었을 텐데.”
“그는 삭제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런 이는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지.”
배틀넷의 ‘삭제’.
이에 대항한 순간부터, 자신은 이드의 낙점을 받은 건가.
성지한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완성된 대기…….’
흑색의 관리자가 바로 아레나의 주인 모자를 준 것도 그렇고.
이것의 가치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것 같았다.
그런데.
“적색의 대기로는, 길가메시가 있지 않았나. 왜 굳이…….”
“그는 1번째 예비 서버였다. 그리고…… 예비는 1개론 부족하지.”
“예비 서버…….”
“그렇다. 예비가 필요하다는 건, 네가 증명하지 않았나.”
이드가 손을 펼치자.
지이이잉…….
그의 손 위로, 지구의 형상이 떠올랐다.
“지구의 인류. 원래는 이들이 적색의 관리자가 만들…… ‘헤븐넷’의 메인 서버가 될 운명이었다. 하나 네가 청을 부여하며,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
그리고 이드가 손바닥을 쥐었다 다시 피자.
지구의 형상이 사라지고, 이번엔 길가메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래서 예비 1번 서버로 대신 명계를 가동하려 했건만. 네가 완전히 소멸시켰다고 적색이 알려왔군.”
파아앗!
길가메시의 형상도 손바닥 위에서 사라지고.
그다음으로 뜬 건, 윤세아였다.
“거기에 2번째 예비는 이미 흑색의 산하에 들어갔다. 그와는 아직 부딪칠 수 없으니 이 예비 서버에도 손을 대긴 힘들어졌지.”
“그거 잘됐네.”
“하지만 명계를 열 방법은 아직 여러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쉬운 건…….”
스으윽.
이드가 그러며 성지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지.”
“……설득이라니. 설마 서버가 되라고 말하란 거냐?”
“그렇게 대놓고 말할 필요야 없지. 잘 말해서 모자만 벗겨라. 그러면, 바로 그녀를 헤븐넷의 서버로 전환할 수 있다.”
성지한은 눈을 깜빡였다.
아니.
그러니까 이놈 말은 윤세아 뒤통수 치라는 거 아니야?
“……그걸 설마 내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나?”
“명계, 아니 이를 바탕으로 구축될 헤븐넷의 지배권을 나눠 주지. 그럼 보상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터.”
“꺼져.”
성지한의 반응에, 이드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내 말이 너무 어려웠나? 더 쉽게 설명해 주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너는 새로운 플랫폼의 상시 관리자가 되는 거다. 헤븐넷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넌 진정한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겠지.”
“하…….”
“모자만 벗기면 되는 쉬운 일이다. 자. 빛의 계약을 진행하도록 하지.”
헤븐넷의 상시 관리자가 될 수 있는 거래다.
성지한이 이를 거절할 리가 없다고 확신한 이드는.
치이이익……!
허공에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글씨를 써 내려갔다.
“자, 여기에 이름을…….”
그러며 이드는 마지막에 서명을 작성할 밑줄을 그었지만.
스스스스…….
성지한의 손에서 흑검이 튀어나오자.
허공에 새겨진 빛의 글귀가 대번에 갈라졌다.
그와 함께, 공허에 파묻히는 빛의 계약서.
“……뭐 하는 짓이냐?”
“뭐 하긴. 계약서 찢는 거지.”
“……왜지?”
이드는 그런 성지한의 행동을 보며, 잠시 의아해하다가.
“여기서 더 줄 수는 없다. 청색의 관리자. 더 이상은 욕심내지 마라.”
곧, 난색을 표했다.
성지한의 거절이, 대가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철석같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 제안은, 헤븐넷 전체를 준다고 해도 사양이다.”
그러면서, 성지한의 검이 또 한 번 계약서를 찢자.
“아, 설마 윤세아가 문제였나? 가족. 그것도 조카 따위에 얽매여서, 상시 관리자를 포기한다니…….”
이드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껏, 너무 좋게만 설득했던 것 같군…….”
그의 목소리가, 점차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 스탭으로 진행하지.”
짝!
그러며 이드가 박수를 한 차례 치자.
[알겠습니다. 후원자시여.]
허공에서 적색의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스으으…….
이드의 모습이 옅어져 갔다.
“언제든지, 마음이 바뀐다면 내게 말하도록 해라.”
“그럴 일 없다.”
“네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구경거리를 보여 주지.”
지이이잉…….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 생겨난 화면에서는.
‘이건…….’
기념비 ‘배틀넷의 초대장’을 비추고 있었다.
* * *
한편, 미국 워싱턴.
기념비 ‘배틀넷의 초대장’이 위치한 장소에선.
뚝. 뚝.
비석의 글귀에서, 붉은빛의 액체가 떨어졌다.
“대체 저 현상은 뭡니까?”
“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케이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어서.”
아니 당연히 없겠지.
누가 초대장 글귀에 저 핏물처럼 불길한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질 줄 알았겠어.
미국의 정부 요원들은, 배틀넷 협회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그렇게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걸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저런 이상 현상을 보고, 그저 모른다고 하면 끝인 건가?
그때.
[내가 알려 주겠다.]
비석 안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어, 엇…….”
“뭐, 뭡니까. 이건?”
연구진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일 때.
[나는 너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초대장 안에서는, 더없이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배틀넷 접속 해제.]
그리고 그것이 접속 해제를 선언하자.
스으으으…….
파견 나왔던 사람 대부분이, 얼굴이 푸석하게 변해 나갔다.
어떤 이는 주름이 강해지고.
어떤 이는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빠져나갔다.
배틀넷 접속 해제.
그 한마디에 담긴,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뭐, 뭐야…….”
“오 마이 갓……! 내, 내 머리가!”
“거, 건강 증진 이후 분명히 몸 상태가 좋아졌었는데…….”
초대장으로 파견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뒤바뀐 외양을 보면서 당황했지만.
그들의 고민은, 사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사치였다.
-어…… 어, 어머니가 다시 쓰러지셨어요……!
-뭐, 뭐야. 왜 갑자기…… 사람들이…….
-응, 읍급실 전화를 안 받습니다…….
한때 의식이 불명하거나.
움직임이 힘들었으나, 종의 진화로 이를 이겨 냈던 사람들은.
배틀넷 접속이 해제되며, 다시 ‘응급 환자’가 되고 있었다.
거기에.
“어…… 뭐, 뭐야?”
“몸이 왜 이래?”
“힘이, 플레이어가 되기 전으로 줄었는데…….”
“상태창! 상태창! 아니…… 이거 왜 안 나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던 플레이어들마저도.
‘배틀넷 접속 해제’가 발동한 순간, 지닌 힘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렸다.
-지금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거죠…….
-내 친구 200kg로 스쿼트 하다가 갑자기 허리 나감…… 119 불렀는데 지금 사방에서 비상이라는데…….
-뉴스 속보만 엄청 쏟아지는 중이네.
-배틀넷 접속 해제란 말. 나만 들은 거 아니지?
-ㅇㅇ…… 나도 들었음.
-근데 배틀튜브는 되네…….
-그러게;
배틀넷 접속 해제란 메시지가 뜬 이후, 완전히 격변해 버린 세계.
세상은, 배틀넷이 있기 전 시대로 순식간에 되돌아와 있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배틀튜브에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일까.
-여왕님……!
-혹시 이 현상에 대해 아시는 거 없으신가요?
-아, 미쳐. 갑자기 피부 주름 자글자글해졌어요 ㅠㅠ 오늘 소개팅인데.
-소개팅이 문제냐 지금; 우리 엄만 또 못 서 계심……
그림자여왕의 채널에 몰려든 사람들은.
현 상황에 당혹해하면서, 배틀넷 경력이 긴 그녀에게 답을 구했다.
하지만.
“배틀넷 접속 해제? 그런 게 떴어요?”
그림자여왕은 그런 채팅을 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하지만.
“배틀넷 접속 해제? 그런 게 떴어?”
그림자여왕은 그런 채팅을 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난 그런 메시지 못 받았는데…….”
[지금 알아보니까, ‘인류’에게만 그런 거 같아.]
“너는 왜 아직 석상이야 근데?”
[……난 공허의 마녀가 되면서 인류에서 벗어났으니까.]
“아, 그렇구나.”
[나, 세아한테 가 볼게.]
성지아는 그림자여왕에게 그리 대꾸하면서, 자리를 떴다.
“음…… 전 인류에게 단번에 적용된, 배틀넷 접속 해제라니…… 설마 성지한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림자여왕이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는, 그렇게 추측하자.
-성지한님이…….
-아. 그러고 보면, 그동안 배틀넷에선 탈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나가면 안 되지 ㅡㅡ;;;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죠…….
-저 배틀넷 탈출론자였는데, 생각 바뀌었습니다. 배틀넷에서 얻은 종족 진화 효과가 대단한 거였네요…….
-ㄹㅇ 있다가 없으니까 체감 오짐;
-아 진짜 뭐 하는 거야!!
사람들은 배틀넷에서 나가야 한다고 성지한이 주장했던 걸 떠올리곤.
폭발적인 반응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 이거…… 괜히 이야기했나.’
성지한 이름 하나 거론했을 뿐인데, 쏟아지는 대중들의 성토.
이건 마치, 도화선에 불을 지핀 느낌이었다.
그림자여왕은 이걸 보며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당혹해 할 때쯤.
지이이잉…….
그녀의 채널화면 아래에.
붉은 눈이 불쑥 튀어나왔다.
[인류여. 잃어 보니 알겠는가? 그간 누린 것의 소중함을.]
아니.
붉은 눈은 그림자여왕의 채널뿐만 아니라.
현재 방송되는 모든 배틀튜브에서, 모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희가 원한다면.]
배틀넷 접속 해제를 한 장본인은.
[잃은 것…… 내가, 다시 되찾게 해 주겠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현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