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539화 (539/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539화>

적색의 관리자.

세력도 잃고, 관리자 자리도 박탈당해서.

한때는 녹색의 관리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추락한 상대.

하나 이그드라실이 그를 향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조심했던 건.

무한한 에너지원인 ‘명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걸 완성하면, 자신보다 상시 관리자에 먼저 들어설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아까만 해도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아서, 명계는 사실 완성되지 않은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적색의 관리자가 막판에 힘을 다 쏟아 냈을 때도 최후의 발악을 한다고 여겼다.

그의 공격은 물론 강력해서, 천지가 화마에 완전히 잠식되고.

원로들이 이끄는 엘프 군단은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지만.

‘저 공격은 문제가 아니었어. 더 투입하면 되니까.’

불지옥이 된 행성.

여기에 군단이 진입하면, 들어가자마자 모두 몸이 타올라 잿가루가 되어 사라지겠지만.

이그드라실은 엘프의 희생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상대가 힘이 빠질 때까지.

세계수 연합의 군단을 모조리 소환해서 밀어 넣으면 되니까.

그럼 결국, 승리하는 건 이쪽이 될 거다.

방금 전까지만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한데.

화르르륵……!

적색의 관리자가 세계수에 검을 꽂자.

그는, 조금 전 쏟아부었던 힘.

아니 그 이상을 순식간에 회복해 버렸다.

[당신, 명계를…… 완성한 겁니까?]

그 물음에, 상대는 대답을 하는 대신 검을 움직였다.

그러자 일제히 불타오르는 녹색 포탈.

거기서 넘어오는 엘프 군단은 나오자마자 불타 사라졌고.

치이이익!

결국에는, 소환해 둔 포탈 대부분이 불에 연소되어 소멸되었다.

단 하나.

하늘의 중앙, 거대한 녹색 포탈을 제외하곤.

지이이잉…….

거대한 녹색 포탈에서, 떠오르는 우주수 문양.

[……이 검. 당신답지 않군요.]

하늘 위, 수없이 소환된 포탈을 통째로 소멸시킬 만큼 검을 쓰다니.

적색에게는 이런 무력이 없었을 텐데.

이그드라실이 그런 의문을 품을 무렵.

[청색의 관리자여. 정신 차려라.]

저 불구덩이의 안쪽에서는.

적색의 관리자가 성지한에게 경고를 주고 있었다.

스탯 적을 다 쓰면 어드바이스를 못 한다고 했던 그였지만.

성지한이 세계수를 흡수한 후엔, 여전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탯 적이 900 오릅니다.]

S급 세계수는 다른 것들보다 월등한 상승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성지한이 내심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적 700이 훌쩍 넘어간 수치.

그렇게 능력이 과성장하자.

성지한은 그 부작용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이게 힘에 취하는 느낌인가…… 예전에 적색의 관리자가 말했던 감각이 이거였군.’

그는 헤븐넷을 봉인하러 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스탯 적이 올라갈 때마다, 헤븐넷과 동화된다. 서버와의 일체화되는 감각은, 그 어떤 쾌락보다도 강렬하지. 한데…… 넌 멀쩡해 보이는군.

헤븐넷에서 적을 150 올렸을 때, 이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때만 해도 성지한은 청을 통해 이를 잘 컨트롤했다.

하지만 이번엔, 한 번에 능력이 900 뛰어오르다 보니.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고양감이 느껴졌다.

‘그냥, 봉인 풀어 버릴까.’

지금 청홍을 살짝 열어도 900이 올랐는데.

완전 개방하면 얼마나 오르겠는가.

세계수를 계속 장작으로 넣어서, 이 힘을 계속 쌓아 나가면.

배틀넷에서 두려울 존재가 없을 거 같은데.

성지한이 그렇게 이 감각에 취해 있자.

적색의 관리자는 예전보다도 더 뚜렷하게 의지를 전달했다.

[힘에 취하지 말고, 빨리, 적을 소모해라. ‘성지한’에 벗어나, 나와 일체화될 생각이냐?]

‘이해가 안 가는군…… 넌 그러면 좋은 것 아니냐?’

[아직은, 너무 빠르다.]

아직은, 이라.

적색의 관리자에게도, 이번 일이 기회면 기회일 텐데.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더 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나와 목표가 일치하는군.’

그래.

명계의 힘에 홀려서, 적색 놈이랑 합체할 순 없지.

성지한은 정신을 차리곤, 하늘을 살폈다.

스스스…….

모든 포탈이 사라진 가운데, 고고하게 홀로 떠 있는 이그드라실의 문양.

색깔만 제외하곤, 지구의 달 위에 떠올랐던 세계수 문양과 모습이 흡사했다.

‘이그드라실이 직접 강림하려다, 주저한 건가.’

아무래도 청홍으로 힘을 회복한 걸 보고는, 경계를 하나 보군.

성지한은 이렇게 된 거, 저길 향해 남은 적을 쓰고 나오기로 했다.

다만.

‘아까처럼 적을 쏟아 내선 타격을 입힐 수 없겠군.’

스탯 적을 500 소모하며 온 세상을 불태울 때도.

세계수를 흡수한 후, 기분에 취해 가했던 검격 횡소천군에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던 이그드라실의 포탈.

저기에 피해를 입히기 위해선, 보다 정교한 공격이 필요했다.

슈우우우…….

성지한의 머리 위로, 봉황기가 떠오르고.

무극멸신武極滅神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무한赤雷無限

행성 전역에 퍼졌던 불길이, 창 안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무작정 힘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갈무리하는 봉황기.

창은 천지의 불꽃을 품고도.

지지직…….

붉은 전류만 몇 번 번뜩일 뿐,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하늘과 땅 모두에 번지던 불길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모습.

하나.

[그 막대한 힘을 한 점으로 모으다니…… 청색의 무까지 흡수한 겁니까. 당신은.]

이그드라실은, 저게 더 위협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적색의 관리자라면 저걸 절대 못 한다는 것까지도.

아까의 검을 보고 들었던 의심은.

이제 확신이 되었다.

그리고.

슈욱!

적뢰를 머금은 봉황기가 이그드라실의 문양이 그려진 포탈에 꽂히자.

파지지지직……!

녹색의 포탈이, 순식간에 붉은 뇌전에 가득 찼다.

그러자,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었던 포탈은.

대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골치가 아프군요.]

찬란하던 무지개 빛깔이 옅어지고, 조각조각 나뉘어 붕괴하는 이그드라실의 문양.

그 안에선, 그녀의 음성이 갈라지며 울려 퍼졌다.

[당신이, 전투마저 잘하면 안 되는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파지지직……!

적뢰에 휘감겨 사라지는 포탈.

성지한이 그쪽을 향해 손을 뻗자.

봉황기가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스탯 적이 300 소모됩니다.]

적뢰무한을 사용하여 소모된 능력이 이 정도인가.

‘더 소모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적의 수치가 확 높아지니 소모량이 줄었군.’

적의 수치가 팍 튀었을 땐, 더 주의해서 힘을 쏟아부어야겠네.

성지한은 600으로 맞춰진 스탯 적을 보면서, 감각이 다시 제어됨을 느꼈다.

[힘은, 이렇게 쓰는 건가…….]

봉황기가 이그드라실의 포탈을 붕괴시킨 게 인상 깊었는지.

그리 중얼거리는 적색의 관리자.

‘이놈, 알고 보면 무공 어떻게 쓰나 보려고 남아 있는 거 아냐?’

아까 전, 몸 차지할 절호의 기회도 뿌리쳤지 않았던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다 그에게 질문했다.

“근데 너, 전투도 못 하는데 배틀넷 관리자 자리엔 어떻게 올라온 거냐?”

[허. 나한테서 전투를 못 한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관리자급에서의 이야기다. 그 아래 성좌들이야 손쉽지.]

“동방삭한테는 발렸잖아.”

[……그건 그놈이 관리자급의 무위를 지녀서 그런 거다.]

하긴.

동방삭은 예외로 둬야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곤 주변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던 별은.

완전히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버린 상태였다.

이것도 성지한이 봉황기로 불을 갈무리해서 이 정도로 끝났지.

계속 놔뒀으면, 종국에는 행성 전체를 불이 뒤덮지 않았을까.

‘이거 원, 별 차원의 방화범이 되어 버렸군.’

성지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백색의 관리자한테 미끼 한 번 흔들려고 왔다가, 이그드라실이랑도 조우하고.

난리도 아니었군 그래.

[당분간은 A급까지만 흡수하는 게 좋겠다.]

“그래. 청홍을 더 정교히 조절할 때까진, 조심해야겠군.”

[그러면 난 돌아가도록 하지…….]

적색의 관리자가 그렇게 명계에 잠식하자.

성지한도 곧 귀환했다.

* * *

다음 날.

배틀넷 커뮤니티의 정식회원 게시판에선.

한 가지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세계수 연합 측의 요청으로 인해, ‘세계수 연합 영역 업데이트’ 글을 내립니다.]

정식회원 커뮤니티가 생겨난 이래로.

매번 공지사항 한편에 올라와 있었던 세계수 연합 영역 공지사항.

다른 플레이어들이 겁도 없이 사지로 들어가는 걸 막아 주었던 이 유익한 글이 내려가자.

플레이어들은 의문을 품었다.

-??

-저걸 왜 갑자기 내려?

-연합에서도 그냥 용인하던 거 아니었나?

-ㅇㅇ 어중이떠중이들 괜히 들어오면 피곤하니까 괜히 깝치지 말라고 올려 둔 거라던데.

-그럼 내렸으니 이제 깝쳐도 됨?

-죽고 싶으면 해 보셈 ㅋㅋㅋ

그렇게 연합이 직접 나서서 공지 내린 걸 보고 한참 이야기가 나도는 와중.

-이번에 글 내린 거 테러랑 연관 있다던데?

-누가 연합 행성 관측해서 불탄 흔적 올림; 그것도 테러당한 게 ‘우주수의 뿌리’ 행성 중 하나야.

-엥? 거기 관측 안 되잖아 막아 놔서.

-재밍 시스템이 무너져서 볼 수 있어.

-헐 진짜네 보인다 ㄷㄷ.

게시판에서 세계수 연합의 행성 하나가 무너졌단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세계수 연합의 초창기부터 시작을 같이했던 소속 행성.

통칭 ‘우주수의 뿌리’ 중 하나가 테러를 당했다는 이야기에.

그간 잠잠하던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연합에게 행성 빼앗기고 쫓겨난 용병입니다…… 개 꼬시네요 낄낄낄.

-님 그러다 특정당해요.

-ㄴㄴ 저런 성좌 한둘이 아니라서 괜찮음 ㅋㅋㅋ

-어떤 귀인께서 연합의 폭거에 대항하고 계시는 겁니까? 배틀튜브라도 키면 후원이라도 할 텐데 아쉽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적색의 관리자가 부활한 거라는데? 완전히 타오른 흔적도 불의 권능이고.

-엥? 진짜?

-그놈은 진짜 매번 살아나네 ㅋㅋㅋㅋ

행성이 불타오른 흔적을 가지고.

이번 테러의 용의자로 적색의 관리자가 가장 많이 지목되는 가운데.

게시판의 여론은 세계수 연합이 당하는 게 좋긴 하지만.

결국은 진압당하지 않겠냐는 게 우세적이었다.

아무래도 현 배틀넷의 세력 구도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세계수 연합이었고.

적색의 관리자는 지구에 봉인당했다가, 탈출한 지 얼마 안 된 세력 없는 개인이었으니까.

-근데 이해가 안 되는데…… 뭔 생각으로 세계수 연합이랑 싸워? 쉬운 먹이도 많은데 굳이.

-ㄹㅇ 적색 아닌 거 같은데; 적색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

-연합과 대항할 방법이 생겼을지도 모르지 적색의 관리자라면 고안해 낼 수 있잖아.

-어쨌든 잠잠하던 게시판에 초대형 떡밥 떨어지니 좋네요 ㅎㅎ

그렇게 조용하던 정식회원 게시판이 한참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세계수 연합의 중추.

원로원에서는, 최고위의 긴급회의가 주최되고 있었다.

회의실의 상석에는.

머리가 완전히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엘프.

이그드라실이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파지지직…….

붉은 전류가 피어오르는, 왼손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아직까지, 남아 있네.”

적색의 관리자가 마지막으로 가했던 일격.

그건, 포탈을 부숴 버린 건 물론. 현신하려던 이그드라실의 신체 일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그녀의 몸에 남아서 번쩍이고 있는 적뢰.

물론, 이그드라실이 작정하고 이걸 끄려고 하면, 끌 수 있겠지만.

‘그럼 분석을 할 수 없어.’

상대가 남긴 흔적.

확실히 알아내야 했다.

“청색의 관리자, 성지한의 영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적색의 관리자가 마지막에 보였던 창의 모습이 청색의 창, 봉황기와 일치합니다.”

“포탈을 베었던 검격도, 청색의 관리자나 예전의 무신이 사용했던 기본공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래…….”

적색의 관리자.

성지한을 집어삼키고, 그의 무공까지 얻은 건가.

‘거기에 명계까지 활성화된 거면, 그는 무적이야.’

무한한 에너지원을 지닌 채.

이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적색의 관리자라니.

이러면 아무리 세력으로 밀어붙이려고 해도, 답이 안 나온다.

오히려 세계수를 양분으로 삼은 채, 계속 힘을 키워나가겠지.

그런데.

‘왜 안 그럴까?’

그렇게 모든 조건이 활성화되었으면.

풀려나자마자, 진작에 했을 텐데.

왜 이번에 S급 하나만 폭파시키고 사라진 거지?

이그드라실이 상대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

파지지직…….

그녀의 손을, 붉은 전류가 또다시 갉아먹기 시작했다.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적뢰.

이그드라실은 그걸 보곤 생각했다.

‘이것도 적의 흔적…… 준비해 뒀던 걸 시험해야겠어.’

그녀는 입을 열었다.

“지구의 청검, 얼마나 준비됐니?”

“아직…… 25퍼센트가 최대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갈 길이 멀었네.”

그녀는 그리 대답하며.

자신의 왼손을 들었다.

“적뢰, 청검으로 끌 수 있는지 한 번 실험해 보자.”

“그럼…….”

뚝.

그녀는 자신의 손을 손목에서 분리하면서.

씩 웃음을 지었다.

“이거. 지구에 보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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