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45화>
며칠 후.
“지훈 님.”
“응?”
침대에 뒹굴면서 핸드폰 게임을 하던 김지훈은, 미아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저 오늘 돌아가요. 호위는 새로운 엘프가 와서 보게 될 거예요.”
“어…… 왜? 미아가 편한데.”
엘프들이 비록 비서이자 호위라고 파견되어 오긴 했지만.
하프 엘프 입장에선, 솔직히 상사가 24시간 옆에서 밀착으로 마크하는 거나 비슷했다.
그나마 김지훈 입장에선, 요 며칠간 익숙해진 미아가 편했다.
“총독부에서 방침이 내려와서요. 지훈 님 외에도 모든 남자 하프 엘프에게 호위가 붙을 거예요. 본부에서 파견된 엘프로요.”
“아…… 그럼 나 말고도 다른 남자 하프 엘프들 다 하는 거구나.”
“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좀 융통성이 없을 수 있어요. 미리 양해 부탁드릴게요.”
“그래…… 어쨌든 아쉽네.”
융통성이 없다니.
대체 어떤 엘프기에 그런 거야.
“그럼 제가 복귀하고 몇 시간 정도는 시간이 빌 텐데, 그동안 몸조심하세요.”
“뭐, 나야…… 집 아니면 길드인데 위험할 일 있나.”
“그건 그래요.”
다른 남자 하프 엘프들과는 달리, 집귀신 그 자체였던 김지훈.
특히 유일하게 출근하는 대기 길드도 소드 팰리스 건물 안에 있어서 그런지.
그는 요 며칠간 건물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럼, 지훈 님. 다음에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어…… 그래, 수고했어.”
미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포탈을 열고 사라졌다.
‘이러면 총독의 밀착 마크는 끝난 건가.’
3일은 채웠네 그래도.
‘뭐 감시 마법 같은 건 작동해 놓고 간 거 같지만…… 저 정도는 쉽게 왜곡이 가능하지.’
엘프 미아도 총독이라서 건들지 않았던 거뿐이지.
그녀가 건 마법 정도는, 손쉽게 왜곡이 가능했다.
탁.
성지한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환염이 감시 마법을 왜곡합니다.]
[스탯 적이 1 소모됩니다.]
감시 마법을 통해 볼 수 있는 광경이, 환염에 의해 다시 그려졌다.
이러면 안에서 뭘 하든.
평소엔 김지훈이 백수 한량 짓 하는 걸 그대로 보여 주겠지.
외출 상태일 땐, 알아서 보정이 될 테고.
‘상대의 감시 마법을 왜곡하는 거라 그런지, 소모량이 적네.’
성지한은 그렇게 식민지 총독과의 동거를 끝낸 후.
김지훈의 몸뚱어리를 놔두고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집 거실에는.
윤세아가 소파에 앉아 시스템 창을 터치하고 있었다.
“오, 삼촌! 엘프 갔나 봐?”
“어, 귀찮았다.”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놀러 가려고 했는데 엘프 있어서.”
윤세아는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근데 걔, 평범해 보이진 않던데. 겉으론 엘프인 척했지만, 힘을 좀 숨긴 느낌이었어.”
“식민지 총독이야.”
“초, 총독? 아니 총독이 할 일도 없나. 왜 삼촌한테 붙어 있었어?”
“김지훈이 각성한 거랑 적색의 관리자가 등장한 게 시기가 맞물린다고, 자기 촉이 발동했다나.”
“아니, 뭔…….”
그런 이유로 총독이 직접 붙었단 말이야?
윤세아가 황당해할 때, 성지한이 이어서 말했다.
“또 감시 올 거야. 이번엔 남자 하프 엘프 전체를 대상으로.”
“집착 한번 대단하네…… 이럼 삼촌 집엔 못 놀러 가겠다.”
“내가 와야지 뭐.”
“그래도 삼촌, 총독이 붙어 있는 중에도 엄청 부쉈더라? 25개?”
“30개쯤 부쉈어.”
미아랑 있는 동안, 부숴 버렸던 D급 세계수는 30개.
하루에 거의 10개씩, 꾸준히 박살을 내 버렸었지.
적은 이미 700에 가까워서, 대신 흡수했던 영원 스탯이 어느덧 50이 될 정도로.
성지한은 적색의 관리자로 활동하면서, 세계수 연합을 가장 약한 쪽부터 박살 내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D급 쳐도 얻는 게 영 적단 말이지.’
D급 세계수 하나 흡수할 때마다, 1씩 오르던 영원은.
50이 되자, 이제 더디게 성장하고 있었다.
두세 개를 없애야, 1이 오르는 수준.
그렇다고 적으로 전환하자니, 이건 700이 넘어서는 안 되는 스탯이기에.
이제 D급 세계수는 부순다고 해도 스탯으론 크게 이득이 없었다.
‘물론 세계수 연합에 피해를 입히기 위해선 계속 침공을 해야겠지만…… 이걸 어떻게 잘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성지한이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삐삐빅.
윤세아의 시스템 창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어…… 삼촌. 총독부에서 총독이 나보고 얼굴 한번 보자고 연락 왔어.”
“너를 갑자기 왜?”
“그러게? 아…… 이거 때문인가?”
스으윽.
윤세아는 자신이 보던 시스템 화면을 성지한에게 돌려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세계수 연합 군단을 모조리 불태우고 있는 적색의 관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불에 가려져 실루엣이 완전히 나타나진 않았지만.
안에 있는 존재는, 딱 봐도 인간 크기.
-최근 모습을 드러낸 적색의 관리자와 관련되어, 그가 숙주로 삼고 있는 육체가 ‘청색의 관리자’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아레나의 주인께 고견을 듣고 싶으니 꼭 한번 총독부로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총독부에 오기가 꺼려지신다면, 다른 장소에서 뵈어도 괜찮으니 시간을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와 함께 그 아래엔, 이를 청색의 관리자와 연관 짓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총독부 메시지 치곤 상당히 예의 바르네.”
“삼촌, 나 공허 고위 서열이잖아. 저쪽은 식민지 총독에 불과하고.”
“하긴.”
애초에 공허가 세계수 연합보다 강대한 세력이고.
둘의 위치도 크게 차이가 나니까.
총독부에서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네.
“음…… 삼촌 실루엣이 나왔는데 얼굴, 보긴 봐야겠지? 내가 흥미를 전혀 안 보이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건 그렇지. 한번 어떤 이야기 하는지 들어 봐. 대신 총독부 안으로 가진 말고.”
“그래야지. 공허 소속인 것만 믿고 적의 소굴로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아래 레스토랑에서 룸 하나 빌려야겠다.”
“그렇게 해.”
그렇게 윤세아가 총독과 약속을 잡는 사이.
성지한은 생각했다.
‘다음 엘프가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비었으니, 그동안 저쪽 연구실이나 소각시켜야겠군.’
김지훈이 소환되었던 연구소.
그곳 좌표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료와 대조해 보니, B급 세계수가 있는 행성과 일치했다.
총독이 옆에서 감시할 때에는, 짧게 치고 빠져야 해서 거길 쳐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젠 사정이 다르지.
“야, 나 일하러 간다.”
“응. 총독이랑 내일 저녁에 레스토랑 전체 빌려서 보기로 했으니까, 여유 되면 보러 와 삼촌. 그 상태로 기척 숨기면 안 들키잖아?”
“그래, 알았어.”
뭔 소리 하나 내일 직접 들어 봐야겠군.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연구소는, 한번 둘러보고 태워야겠네.’
그 자리에서 포탈을 열어 이동했다.
* * *
연구소 안.
“부장님! 한 놈만 배양하면 안 될까요?”
“안 돼. 며칠 안 남았는데 기다려 좀.”
“아, 지금 영감이 번뜩이고 있는데! 오늘 정말 작품이 나올 거 같단 말이에요!”
“어차피 네가 하는 실험 그냥 신체 떼다 조립하는 거잖아.”
“아니에요.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는데……!”
연구소 부장과 하프 엘프 담당 연구원이 배양되는 김지훈을 보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위잉. 위잉……!
연구소 건물 안에서 일제히 경보음이 울렸다.
“무, 무슨 일이야 대체?”
“부장님! 저, 적색의 관리자가 침공했다고 합니다……!”
“뭐??”
연구소 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적색의 관리자, 분명히 요즘엔 하위 개척 행성만 침공한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여길 쳐들어온다고?
“이, 이곳은 어떻게 알고…….”
“부장님, 예전에 날파리들 오지 말라고 배틀넷 게시판에 좌표 입력하셨잖아요…….”
“아, 아니 그걸 나만 그랬어? 다들 그랬잖아……!”
세계수 연합의 영역이니까, 감히 침범할 생각 하지 말라는 좌표 모음집.
옛날에 성좌 한 명이 쳐들어왔다가 격퇴되었을 때, 부장은 이런 귀찮은 일이 다시 없도록 거기에 손수 좌표를 추가했었다.
근데 그때 일이 그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성지한이 여기 김지훈의 몸으로 와 봤으리라곤, 생각도 못 한 이들은.
다 부장이 좌표 등록해서 이 사단이 난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일단! 실험 자료. 빨리 데이터 백업 보내.”
“네. 백업을…… 어, 연결이 끊겼습니다……!”
“뭐, 벌써?”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르르륵……!
순식간에 강렬한 불길이 피어오르는 연구실 내부.
‘이, 이게…… 적색의 힘…….’
부장의 몸에도, 어느덧 불이 번지더니.
전신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저벅. 저벅.
그리고 그렇게 불타오르는 실험실 안쪽으로.
성지한이 걸어왔다.
‘드디어 건질 게 생겼군.’
그가 보고 있는 건, 실험실에 어지러이 떠올라 있는 화면.
혹시 볼 게 있나 해서 연구원들을 태워도 모니터는 내버려 뒀는데.
거기엔, 데이터 백업을 위해 띄워 둔 다른 연구소의 좌표가 주르륵 떠 있었다.
‘이거, 게시판에 등록되지 않았던 위치도 여럿 있네.’
역시 배틀넷 게시판에 올라와 있던 좌표가 다가 아니었군.
성지한은 새롭게 얻은 데이터를 갈무리하곤, 모니터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쟤들의 실험 데이터라 그런지, 뭔 소리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뭐, 결국 배틀넷의 종족들 죄다 믹스해서 키메라 만드는 거겠지.’
그에겐 딱히 참고가 되는 자료가 아니었다.
좌표만 건지면 됐지.
탁!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모조리 불타오르는 모니터.
‘다 태워 버리기 전에, 하프 엘프 실험실까지만 들려야겠군.’
성지한에 대해 비정상적인 집착이 느껴지던 하프 엘프 실험실.
거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 없앨 생각이었지만.
불태우기 전에 대체 뭔 목적으로 그런 걸 만들었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불태우며, 도착한 하프 엘프 실험실.
‘딱히 별건 없는데.’
화르르륵……!
입구부터 쭉 진열된 머리를 모조리 불태우며, 성지한은 계속 나아갔다.
진열된 신체들에선, 딱히 특별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미친 엘프의 집착에 불과한 실험실이었나 여기.
‘뭐. 중앙까지만 가 보자.’
중앙부의 시험관엔.
분명 머리 셋, 팔다리 6개가 달린 성지한 키메라가 있었지.
그거도 별로 힘 못 쓰면.
그냥 미친 엘프가 미친 짓 했다고 보면 될 터다.
그렇게 그가 중앙부에 도착하자.
“지, 지한아. 빠, 빨리 일어나! 나 지켜 줘야지!”
시험관을 제 손으로 부숴 버린 엘프 연구원이.
땅바닥에 축 처진 성지한 키메라를 보고 호소하고 있었다.
지가 부숴 놓곤 뭔 짓거리야 저건.
‘쟤한테 지한아 소리 들으니까 소름이 돋네.’
빨리 없애야지 안 되겠어.
성지한이 손가락으로 연구원을 가리키자.
화르르륵……!
엘프의 몸이 불길에 잠기더니, 바로 가루가 되어 버렸다.
성지한의 조절로 인해, 그녀가 끌어안던 키메라에게는 번지지 않았던 불길.
그는 자신을 닮은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아오, 진짜 징그러운 거 만들어 놨네.’
엘프 연구소는 이제 무조건 다 태워 버린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키메라를 살폈다.
딱히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는 키메라.
청색의 관리자를 재현하겠다는 연구원의 포부랑은 달리, 이 키메라는 시험관 안이 아니면 제대로 살지도 못했다.
얘는 가만히 놔둬도, 숨을 거두겠지.
그래도.
‘흔적도 남기기 싫네. 태워 버리자.’
성지한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키메라를 가리켰다.
그러자, 발끝부터 타오르는 키메라.
빠르게 전소하려던 이 괴생명체는.
불이 얼굴에 닿자, 바로 타오르지 않고 꽤 버티기 시작했다.
‘호오.’
뭐야.
얘 쓸모없는 줄 알았더니, 적색의 불을 이렇게 버틸 수가 있었나?
성지한이 이를 흥미롭게 바라볼 때.
그를 닮은 세 머리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나는…….”
“와…….”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