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47화>
‘청검을 들고 오다니…… 적색의 관리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하려는 건가.’
성지한은 일백의 엘프가 들고 있는 청검을 바라보았다.
적합도가 10퍼센트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저등급의 청검.
어차피 성능도 좋지 않은 거, 없어져도 된다는 생각으로 들고 왔나 보네.
‘저걸 여기서 부수면…… 저 검에 해당하는 남자 하프 엘프는, 다신 청검을 뽑아내지 못할 거다.’
김지훈으로 직접 청검이 되어 봤던 성지한은.
검의 전당으로 갔던 검이 소멸하면, 본체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추측할 수 있었다.
남자 하프 엘프의 신체에서, 엑기스만 뽑아낸 청검.
그게 여기서 소멸하면, 본체의 청이 소멸하는 건 물론.
하프 엘프의 신체에도 상당한 타격이 갈 터였다.
죽지는 않겠지만 병상에 좀 누워 있어야겠지.
‘흠…… 100개의 검 자체는,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그러면 인류의 청을 흡수하는 작업이 늦어지겠지.
저 100개도 비록 성능은 안 좋다지만.
검의 전당에서 청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일단은 일부러 피하는 척을 해야겠네.’
청검의 완성을 방해해서야 안 되지.
그렇게 성지한은 적색의 관리자 행세를 할 때는, 일단 검을 피하기로 했다.
‘그럼.’
스으윽.
그가 손을 한 번 움직이자, 또다시 생겨나는 불의 파도.
“아까처럼 막아라!”
“조, 좋아. 검이 효과가 있어!”
청검을 든 부대가 불길을 막으며 환호하는 사이.
툭.
성지한은 가볍게 한 발자국을 떼었다.
그러자.
“……어? 어디 갔지?”
“뒤, 뒤에!”
“적색의 관리자가 세계수에 접근했다……!”
어느덧 세계수 옆에 서게 된 적색의 관리자.
그는 등 뒤에 둥둥 떠 있는 검을 잡아, 세계수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그러자 세계수가 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영원이 1 오릅니다.]
영원 스탯이 올랐다.
‘D급 세계수가 아니라 그런지 그래도 1은 오르네.’
연구실이 있어서 그런지, 나름 등급이 높던 세계수.
그는 그렇게 청검을 일부러 피하며, 소멸을 끝냈다.
스스스…….
그리고 그가 곧바로, 포탈을 열어 사라지려 하자.
“이놈……! 멈춰라!”
청검을 든 고엘프 하나가 분노한 얼굴로, 그에게 돌진했다.
‘검 들어서 그런가? 혼자서 덤비네.’
원래는 아무리 고엘프라 한들, 손가락 한 번 튕기면 소각될 터였지만.
‘청검 때문에 봐줬다.’
청 채취 도구를 부숴선 안 되니, 성지한은 그냥 무시하고 포탈에 들어서려 했다.
그때.
번쩍……!
고엘프의 청검에서 강렬한 빛이 나타나더니.
성지한에게로 강렬한 검기가 쇄도했다.
엘프 원로가 전력을 다해 사용한, 회심의 일격.
푸른빛의 검기는 적색의 관리자의 불길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약해지다 사라졌지만.
스스스스…….
적색의 관리자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강렬한 불꽃도, 잠시나마 옅어졌다.
그러자.
“엇……!”
그동안은 불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적색의 관리자의 얼굴이 살짝 드러났다.
“봐, 봤어?”
“봤다. 턱과 입 일부만 보이긴 했지만…….”
“저거, 청색의 관리자…… 아닙니까?”
“적색의 관리자에게 몸을 빼앗긴 건가.”
청검에 의해 드러난 얼굴은, 비록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엘프 군단은 그것만 보고도 상대를 추측하고 있었다.
애초에 적색의 관리자의 형상은 적안이 수백 개 달린 거인 형상.
한데 인간 크기로 다니는 그를 보고, 청색의 관리자 몸을 빼앗은 거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이번에 청검의 검기에 의해 드러난 얼굴은 이러한 추측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비록 세계수는 또 빼앗겼지만…… 오늘 적색의 관리자에 대해 얻은 정보가 적지 않군.”
“청검이 효과가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 적색의 관리자도, 검과 굳이 부딪치려고 들지 않았구요.”
“그래. 이번 일은 즉시 상부에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오늘 일…… 적색의 관리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어.”
지켜야 할 세계수가 사라졌음에도.
엘프 군단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적색의 관리자에 대해.
대응할 단서를 오늘 손에 얻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정비가 끝나는 대로 귀환하라.”
그렇게 엘프 군단은.
적색의 관리자와 조우했음에도 상당히 많은 생존자를 남기며 돌아갔다.
* * *
한편.
‘이 정도의 검기로 적색의 불이 사라질 줄이야…… 청이 적에게 확실히 강하군.’
집에 돌아온 성지한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청검의 검기가 너무 약해서 당연히 오다 사라지겠거니 했는데.
비록 일부분이지만 불길을 잠재울 줄이야.
‘정체 숨길 생각이야 크게 없었으니까. 뭐 일부 드러난 건 상관없지만…….’
애초에 성지한의 육체 들키는 걸 걱정했으면.
이렇게 몸에 불만 지피지 않고, 거인 몸뚱어리로 변해서 다녔겠지.
‘어쨌든 이럼 이제 연합에선 날 성지한의 육체를 차지한, 적색의 관리자라고 확신하겠군.’
그럼 이에 발맞추어 저쪽에서 대책을 짜려나.
성지한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뭘 하든 결국 본체가 성지한이니 헛발질이겠지만.
어쩔 때는 쟤들 들고 오는 거 보고, 맞아 주는 척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지훈의 몸에 들어갔다.
“으…….”
본체에 비하면, 영 부족한 점이 많은 김지훈의 몸뚱어리.
거기에 이 몸은 침대에 걸터앉아 TV만 보게 해서 그런지, 전신이 찌뿌둥했다.
그가 가볍게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풀고 있을 때.
지이이잉…….
허공에, 녹색의 포탈이 열리더니, 엘프 하나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훈 님.”
총독 미아가 자기 후임이 올 거라더니, 지금 온 건가.
생김새야 미아와 차이점 없이, 다 똑같이 생긴 엘프 형태였지만.
‘하이 엘프는 아니네. 힘이 약해.’
미아와는 확실히 느껴지는 힘의 차이가 확연했다.
거기에, 뭔가 표정 변화가 생기있던 총독과는 달리.
이번 상대는 로봇 같은 느낌이었다.
“저, 미아의 후임…… 이십니까?”
“예. 이번에 파견된 호위입니다.”
“그, 성함은…….”
“이름은 없습니다. 그냥 호위로 불러 주십시오.”
“아, 네…….”
“그럼 이제부터, 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김지훈의 뒤로 와서 가만히 서 있는 엘프.
전임과는 달리, 그녀는 입 한 번 열지 않은 채.
그냥 뒤에 계속 서서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뭐 저번이나 지금이나 대놓고 감시하는 건 똑같구만.’
미아는 말 편히 하라는 등, 붙임성이라도 좋았지.
이번 엘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계속 감시의 눈길만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총독이 아니라 일반 엘프니, 부담 없이 적색 권능을 써도 되겠어.’
미아 때와는 달리, 얘는 정보 조작을 가해도 뒤탈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잠시 장단 좀 맞춰 주다가, 조작을 가해야겠군.
“밥 좀 시키겠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괜찮습니다. 전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성지한은 배달을 시키곤, 스마트폰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엘프, 하프 엘프를 호위하다]
[적합도 1위에게 붙은 엘프는 총 10명]
[호위 제도의 시작점은 김지훈? 대기 길드에서 목격된 엘프 비서]
총독이 김지훈 혼자만 감시하러 왔을 때와는 달리.
이미 엘프가 남자 하프 엘프를 호위한다는 뉴스가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1위가 주목받게 하길 잘했네. 10명이나 붙었구나.’
-와 무슨 하프를 순혈이 호위하냐 ㅋㅋㅋ 세상 말세네.
-근데 김지훈이 진짜 제일 먼저 호위받았음?
-ㅇㅇ 대기 길드에서 목격된 게 최초임.
-이제 남자 하프 엘프 뒤에서 몰래 사진 찍으려 하지 마세요. 카메라 부서집니다.
-ㄹㅇ 엘프 호위가 그냥 가차 없이 부수더라 안 뺏기겠다고 폰 숨기다가 팔까지 부러지는 거 봄;
-근데 호위받는 하프들도 눈치 보던데 ㅋㅋㅋㅋ
-눈치 볼만하지 순혈 엘픈데…….
엘프 호위가 파견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사람들 반응이 주르륵 올라오고 있었다.
다른 쪽 엘프들도 다 저렇게 로봇 같은 느낌인가 보군.
‘근데 얘, 예전에 미아가 하던 거 다 할 수 있나.’
감시가 귀찮긴 했어도, 포탈을 열어 주거나 검의 전당 소환 열외 시켜 줬던 총독 미아.
지금 엘프도, 그런 게 다 가능한가.
성지한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저 질문이 있습니다만.”
“말씀하십시오.”
“저번 호위 엘프님은 슬립 마법 써 줬는데…… 가능하신가요? 그러면서 검의 전당 소환도 빼주셨는데.”“슬립 마법은 가능합니다만, 후자는 불가능합니다.”
“아…… 그럼 포탈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안 되는 게 많네.
확실히 총독이 양산형 엘프보다 성능이 좋긴 하구나.
이젠 잠자면 꼼짝없이 검의 전당으로 끌려가겠군.
‘그러고 보니. 총독이 오늘 세아랑 만난다고 했나.’
분명, 소드 팰리스의 레스토랑 다 빌려서 본다고 했지.
한 번 무슨 이야기 하는지, 들어 봐야겠네.
성지한은 엘프 호위를 바라보았다.
미아와는 달리,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엘프.
얘랑 있을 땐, TV 보게 하면서 잠깐 자리 비워도 문제 없겠어.
“저, TV 좀 보겠습니다…….”
“하나하나 허락 안 받으셔도 됩니다.”
“아. 네.”
그렇게 김지훈은 TV를 보게 한 후.
성지한은 거기서 빠져나와, 아래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통째로 빌렸다더니. 저 룸 말곤 사람이 없네.’
스으윽.
레스토랑 내부에서, 윤세아를 찾아 이동한 곳에선.
“……방금, 긴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심각한 표정의 윤세아와, 총독 미아가.
하나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거기엔.
불길 안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입술과 턱선이.
클로즈업된 채 나타난 상태였다.
‘아까 청검으로 밝혀낸 걸, 벌써 보고한 건가.’
방금 전 일인데.
공유 속도 한 번 빠르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총독이 뭔 말을 하나 들어 보았다.
“이 모습…… 청색의 관리자와 닮지 않았습니까?”
“그러네요. 확실히, 삼촌이랑 비슷해요.”
윤세아는 그러면서 떨리는 눈으로 계속 화면을 매만졌다.
“설마…… 적색의 관리자가, 삼촌의 몸을 장악하고 있는 건가요?”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을 깨무는 윤세아.
저게 누군지, 사정 빤히 아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할, 혼신을 다한 연기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저희는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이걸 저한테 보여 주는 이유는 뭐죠?”
“아레나의 주인이시여. 저희와 협력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총독 미아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청색의 관리자가 완전히 장악당한 건지. 아니면 그를 아직 구할 수 있는지…… 저희와 함께 알아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