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9화>
‘이그드라실의 축복이라.’
성지한은 김지훈의 몸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축복을 받았음에도, 신체적으로는 큰 변화가 감지되질 않았지만.
‘그래도 전 세계 사람들을 강제로 깨우고 성좌 후원을 받게 했으니, 뭔가 있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고는,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이종친화 기프트…… 이거 등급이 올랐군.’
B급이었던 기프트 이종친화가, SS급으로 등급이 훌쩍 뛰어 있었다.
그리고 상태창의 맨 아래에, 이그드라실의 축복 칸이 새로 생겨서 눌러 보니.
[관리자의 축복. 엘프와 인류의 일체화를 촉진합니다.]
그러한 부연 설명이 떠올랐다.
‘일체화라. 이종친화 기프트의 등급 업그레이드와 연관이 있나 보군.’
적성검사를 통해, 하프 엘프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판가름 나는 현시대.
이종친화는 하프 엘프가 될 확률을 높여 주는, 필수적인 기프트였다.
B급이었던 김지훈의 이종친화가 SS급으로 올라 있는 걸 보면.
이종친화가 없던 일반인이나, 있어도 등급이 낮은 이들에게도 꽤 변화가 있을 거 같은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면서, 스마트폰을 열어 보니 과연 난리도 아니었다.
-와 축복받고 이종친화 생김 등급 B로 ㄷㄷ
-헐 난 A인데 ㅋㅋㅋ
-이러면 다음 적성검사 때 하프 엘프 도전 가능한가요?
-근데 이미 적성검사 본 사람은 어떻게 됨? 꽝 아닌가.
-└└ 이제 매달 초에 레벨이나 시험 본 거 상관없이 진행한다는데?
-와, 하프 엘프 될 기회가 갑자기 확 늘어났네.
-인류에서 엘프로 종족 상승시켜 주시네 이그드라실님이…….
기프트가 없던 이들도, 최소 B등급 이상의 이종친화가 생겼으며.
튜토리얼 대신 진행되던 적성검사가, 이젠 인간에게 매달 초 검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건 명백하게, 인류에게 하프 엘프가 되라고 촉진하는 정책이었으니.
그동안 하프 엘프가 되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었다.
‘청검을 양산하기 위해, 이렇게 축복을 내리는 건가. 정책 자체는 나한테 나쁘지 않군.’
청검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들이 모으는 스탯 청도 많아질 테니.
이그드라실의 축복은, 성지한으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그를 닮은 남자 하프 엘프들이 더 많이 생겨나는 부작용은 생기겠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근데 너무 조건이 좋은데……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인 버프가 가능한가?’
인류 인구가 한두 명도 아니고.
70억에게 기프트 등급 업을 뿌리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한때 관리자 권한을 다뤄봤던 성지한이었기에, 이게 얼마나 스케일이 큰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성지한은 임시 관리자고.
녹색의 관리자는 꽤 오랜 세월 군림한 정식 관리자니 사용할 수 있는 권한엔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저쪽도 이렇게까지 버프를 주는 건 꽤 부담되는 일일 텐데…….’
성지한이 그리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적색의 관리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축복에 정밀 스캔을 해 보아라.]
‘정밀 스캔을?’
[그래. 아무리 녹색의 관리자라고 해도 인류 전원에게 기프트를 부여, 업그레이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항목이 있을 수 있다.]
성지한은 적색의 관리자의 말대로, 김지훈의 상태창을 정밀 스캔했다.
지이이잉…….
그가 띄운 설명창에, 붉은빛이 닿자.
스스스스…….
[관리자의 축복. 엘프와 인류의 일체화를 촉진합니다.]
이 설명 메시지 아래 칸에.
[1년 뒤, 관리자에게 축복이 생명의 기운으로 변환되어 회수됩니다.]
숨겨져 있던 글자가 드러났다.
‘1년 뒤 회수라…… 그것도 생명의 기운으로 변환되어서라니.’
[이러면 인류 대부분이 죽겠군.]
‘……역시 그런가?’
[그래. 이 정도의 축복은, 인류 하나하나의 생명력보다 훨씬 값지니. 이그드라실 입장에선, 그렇게 회수해도 큰 손해일 것이다. 몇몇 뛰어난 이들은, 생명의 기운을 빼앗기고도 살겠지만…… 그 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군.]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이런 축복, 그냥 줄 리가 없다 싶더니.
이래서야 전 인류를 모두 1년짜리 시한부 인생으로 만든 셈 아닌가.
[그래도, 대단하군. 1년 후의 회수라고는 하나 이 정도의 투자를 결심하다니…… 아무래도 네가 그녀에게 입힌 피해가 그만큼 큰 것 같다.]
‘1년이 지나기 전에, 일을 끝내야겠군.’
[이번 기프트 부여로, 청검이 대량으로 양산된다면. 청의 흡수도 그만큼 빨라지겠지. 1년이 지나기 전에, 상황은 종료될 거다.]
성지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서도 1년이란 제한 시간을 둔 건.
인류의 청이 그때쯤엔 모두 흡수될 거라고 생각해서겠지.
[그나저나, 이제 연합의 행성에 침공할 때 더 불편해지겠군.]
‘그러게. 청검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질 테니. 이를 운용하는 적의 부대도 늘어나겠어.’
[아래 등급의 행성은, 적성검사가 시행되기 전에 도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래야겠네.’
이종친화 기프트가 전 인류에게 뿌려지고.
등급도 최소 B부터 시작했으니, 청검이 될 남자 하프 엘프가 양산될 건 불 보듯 뻔한 노릇.
그러면 이 검을 든 청기사들도 늘어날 테니, 적색의 관리자의 침공도 다음 달부터는 힘들어질 수 있었다.
그 전에, 털 수 있는 곳은 털어 버려야겠네.
성지한은 마음먹은 김에, 오늘 B급을 싹 다 털어 버리려 했지만.
“김지훈 님.”
그간 조용하던 엘프 호위가 입을 열었다.
“호위 대상으로 지정된 남자 하프 엘프는 모두 수면을 취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지금요?”
“예, 침대에 누워 주십시오.”
총독부에서 긴급 명령이 내려왔는지, 엘프 호위는 수면 마법을 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흠, 환염을 당한 상태라 무시하고 나가도 되긴 하겠지만…….’
슬립 마법을 피해도 잠을 자는 거라고 인식할 엘프 호위.
하나 성지한은 이번엔 그냥 얌전히 엘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오늘 이그드라실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을 벌였으니, 잠들면 가는 검의 전당에서도 뭔가 변화가 생겼을 터.
이 변화를 아리엘에게 대신 맡겨서 간접 체험하느니,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게 맞겠지.
‘좋아. 그렇게 하자.’
성지한은 얌전히 김지훈의 몸을 움직여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슬립.”
바로 수면 마법이 가해지고, 김지훈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은, 검으로 변한 채 검의 전당에 소환되었다.
* * *
검의 전당.
총독부가 위치한 남산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장소엔.
연합의 총독이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로, 엘프 한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그드라실이시여. 이들이 저희가 특별 관리하는 검들입니다.”
총독이 상대하는 엘프는, 머리카락이 완전히 녹색으로 물든 이그드라실.
전 인류를 향해 축복을 내린 그녀는 직접 지구에 행차하여, 검의 전당을 살펴보았다.
‘이그드라실이 직접 지구로 오다니…….’
적색의 관리자에 의해 큰 타격을 입고는, 그에게 대항할 청검을 직접 챙길 심산인가.
성지한은 청검 안에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본체가 아니라 아바타인지, 생명의 기운은 그리 많이 느껴지지 않는 상대.
저 정도론, 김지훈의 청검에서 성지한을 발견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들키지 않게 몸조심해야겠네.’
성지한은 청검 안에 섞인 공허로 기척을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 숫자가 많진 않네. 그런데 성장한다는 검은 어디 있지?”
“여기 있습니다.”
뚜벅. 뚜벅.
김지훈의 청검을 향해, 걸어오는 이그드라실.
그녀는 검을 뽑아보더니.
스으윽.
검을 손으로 몇 차례 쓰다듬었다.
“흐응…… 성능은 괜찮네.”
“예. 적합도가 높은데도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총독부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검입니다. 제가 직접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총독이 직접?”
“예. 이 검만 성장하는 것이 의아해서 관찰해 보았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다만…….”
“그래? 어디 봐 볼까.”
탁.
이그드라실이 손가락으로 청검을 두드리자.
김지훈의 청검이 번쩍이더니, 그의 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이그드라실이 스윽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총독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겠다. 생긴 게 청색이랑 더 닮았네. 얘.”
“그것도 그를 직접 살펴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총독이 어련히 잘 살펴봤겠냐마는…… 나도 좀 봐야겠어.”
그녀는 그리 말하더니.
손가락으로 김지훈의 몸을 툭 쳤다.
그러자.
파아아앗……!
김지훈의 몸뚱어리가 일제히 사방으로 떨어져 나가더니.
그의 몸이 파편화되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피부부터 갈라지며, 살점과 장기. 뼈가 모조리 분해되어 떠올라 있는 모습.
그녀가 가한 ‘분해’는 육체뿐만이 아닌지.
김지훈이 지니고 있던 스탯 청도 푸른빛으로 뭉쳐 떠올랐고.
공허도 보랏빛의 반점으로, 작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김지훈 살펴보겠다더니, 아예 파편화해 버린 녹색의 관리자는.
여기서 행동을 멈추지 않고, 파편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공허는…… 아레나의 주인이 부여했다는 게 이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도 공허는 출처가 확실해서인지, 넘어가는 그녀.
‘이거, 공허에 몸을 은닉하지 않았으면, 들켰을지도 모르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김지훈의 파편이 정밀 검사받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몸의 모든 걸, 쭉 살펴보던 이그드라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특이한 점은 없네.”
탁.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다시 원래대로 재조립되는 김지훈.
산산조각이 났다고는 믿기지 않게, 그의 몸은 완전히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곤 다시 검으로 변해, 검의 전당에 꽂히는 김지훈.
이그드라실은 검을 툭툭 만지더니 총독에게 말했다.
“얘, 계속 성장하면 내 검으로 쓸게. 이름은…… 그래. 청색의 이름을 따서 ‘성지한’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지금 개명시킬까요?”
“아니. 아직 1등 아니라며? 1등은 되어야 주지.”
‘왜 내 이름을 지가 주냐 마냐냐.’
듣는 본인이 어처구니없어 할 무렵.
이그드라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검을 수용할 공간이 더 필요하겠네.”
“예. 지금의 문양으로는 새로 생길 청검을 모두 수용할 수 없습니다.”
“좋아. 미리 확장하지.”
툭. 툭.
그녀가 발로 바닥을 몇 번 밟자.
지이이잉……!
바닥에 그려졌던 문양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커다랗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적합도 낮은 청검이 대량으로 양산될 텐데. 그거 모두 수비 부대에게 돌릴 거야.”
“예. 알겠습니다.”
“개척 행성에선 철수했으니, 그럼 나머지는 모두 수비할 수 있겠지…….”
“적색의 관리자는 아레나의 주인을 닮은 청기사들을 피한다고 들었습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청검의 대량 양산을 통해, 윤세아 닮은 청기사들을 모든 행성에 배치하겠다는 건가.
C, D급의 개척 행성을 모두 포기한 데 이어서.
전 인류에 기프트를 뿌린 거 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같았다.
‘청기사들이 배치되기 전에, 털 만큼 털어야겠는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할 즈음.
“그럼, 내가 직접 강림할 때까지, 계속 일 처리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이그드라실은 총독에게 그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직접 지구로 강림할 생각이군…….’
적색의 관리자랑 분쟁이 격화되면서, 중요도가 더 높아진 인류.
이그드라실은 아무래도, 여기에 전력을 쏟을 심산인 것 같았다.
스스스…….
성지한은 이그드라실의 아바타가 사라진 걸 확인하곤, 검의 밖으로 나와보았다.
‘세계수의 문양…… 시내까지 드넓게 뻗어 갔군.’
남산의 아래.
서울 시내까지 쭉 뻗어 나간 세계수의 문양.
기존보다 몇십배는 확장된 이 문양은, 이그드라실이 여기에 얼마나 투자했나를 보여 주는 지표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청검 성지한이라.’
김지훈의 본체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 이름을 직접 붙여 주려는 녹색의 관리자.
성지한은 조금 전을 떠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차라리 잘되었다. 성지한으로 네 목을 베어 주지.’
그리고 그 이름을 받으려면 일단은 적합도 1등이 먼저니.
‘이제 슬슬 적합도를 올려야겠네.’
성지한은 김지훈의 청검을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