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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7)화 (8/401)

제7화

카미유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온 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카미유는 그 수려하고 차가워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무뚝뚝하고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좀처럼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그런 카미유의 입에서 사자후가, 그것도 쌍욕이 터져 나왔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떴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나 기대했던 내가 병신이었다.’

카미유는 오토를 믿었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 천하의 개망나니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린 줄 알았건만….

‘애초에 계획 같은 건 없었던 거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뿐. 소룬 영지로부터 돈을 빌리겠다고 말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냥… 내 손으로 보내줬어야 했다.’

카미유는 진작 오토를 베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소룬 영지에 진 빚은 갚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이오타 영지가 쑥대밭이 될 텐데, 그깟 빚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다들 지금부터… 영주님, 아니.”

카미유의 입에 냉소가 떠올랐다.

“그 벌레는 잊어라. 어차피 있어 봐야 도움도 되지 않는다.”

카미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개 같은 새끼!”

“잘 먹고 잘살아라! 이 씨발놈아!”

모두가 오토를 욕했다.

절대 선을 넘지 않던 카미유마저 쌍욕과 함께 <벌레>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아버지.’

카미유는 선대 영주를 떠올렸다.

‘녀석이 도망쳤습니다. 집안 대대로 다스려오던 영지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만은 끝까지 남아 아버지를 대신해 이곳 이오타를 지킬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던 백성들을 위해 죽겠습니다.’

카미유는 그런 각오로, 다가올 언데드 군대와의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오토가 도망쳤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 개새끼! 그럴 줄 알았어!”

“지 혼자 살겠다고 영지를 버려? 이 씨발놈!”

기사들과 병사들은 오토에게 쌍욕을 퍼부어대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새끼한테 애초에 뭘 바래? 신경 끄자. 잘 처먹고 잘 살라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먼.”

기사들과 병사들은 이내 곧 오토에 대한 신경을 꺼버렸다.

그 천하의 개망나니가 도망치지 않은 게 더욱 이상한 일이라서, 다들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 * *

같은 시각.

“으. 가려워. 으으으.”

오토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귀가 어찌나 가려운지, 당장 귀이개로 귀를 마구 긁어대고만 싶었다.

문제는 투구를 쓴 상태라 귀를 후비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

“어지간히도 내 욕을 하고 있나 보네. 적당히들 욕해라. 나 도망간 거 아니라고.”

오토는 카미유를 포함한 이오타 영지 사람들이 자기에게 쌍욕을 퍼부어대고 있을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오토는 정말로 도망친 게 아니었다.

오토에게는 계획이 있었고, 지금 그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중이었다.

‘길이… 이쪽이었던가?’

오토는 말을 몰아서 북쪽 산길로 향했다.

언데드 군대가 진격해오고 있다는 바로 그 방향으로 말이다.

‘으. 엉덩이 아파. 도대체 이걸 어떻게 타고 다니는 거야?’

승마가 처음이라 영 어설프긴 했지만, 그래도 말이 길이 잘 들어 있는 녀석이라 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약 3시간쯤 이동했을 무렵.

“히이이이잉!!!”

말이 크게 투레질을 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철푸덕!

오토는 날뛰는 말을 제어하지 못해 낙마하고 말았다.

만약 갑옷을 입지 않았다면 다쳐도 아주 크게 다쳤을 게 분명했다.

“히이이이이이이이잉!!!”

말은 오토를 낙마시키고는, 왔던 길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인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저, 저! 주인을 버려? 야 이 의리 없는 자식아!”

오토가 도망치는 말의 뒤에다 대고 빽! 소리를 질렀다.

“으… 내 허리야… 진짜 죽겠네.”

바로 그때.

오싹!

오토는 엄습하는 냉기에 흠칫 놀랐다.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안 그래도 야심한 밤 산길을 걷고 있던 중이라 으슬으슬하긴 했지만, 이렇듯 갑자기 추워진다는 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이윽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뻘건 불빛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뻘건 불빛들은 횃불 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눈>이었다.

해골 병사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 말이다.

그리고….

달그락, 달그락!

백골로 이루어진 유령마[幽靈魔] 한 마리가 나타났다.

“네놈은 누구인가.”

유령마에 올라탄 존재가 오토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 왔다.

그의 이름은 나즈락.

게임 <영지전쟁>에 등장하는 100명의 군주 캐릭터 중 하나였다.

* * *

나즈락은 강력한 언데드인 죽음의 기사이자 강령술사였다.

살아생전 뛰어난 마검사였던 그는, 말년에 흑마법에 손을 대면서 타락했다.

결국, 스스로 언데드가 된 나즈락은, 언데드로 이루어진 국가인 <불사왕국>을 건설하려다가 주변국들에게 토벌을 당했다.

그 후 봉인을 당했지만, 5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깨어나 <불사왕국> 건설을 위한 정복 활동에 나섰다.

…라는 게 <영지전쟁> 속 나즈락에 대한 공식 설정이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 <영지전쟁>을 플레이하다 보면 딱 2주째 되는 날 나즈락과 그의 언데드 군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99.99999%의 플레이어들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클리어에 실패한다.

캐릭터의 형편없는 능력과 이오타 영지의 군사력으로는 나즈락과 그가 이끄는 언데드 군대를 막아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도진은 달랐다.

‘무력으로 싸우려고 들면 절대 못 이기지.’

김도진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위기를 극복할 공략법을 발견해내었다.

어디 그뿐인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김도진은 나즈락을 직접 플레이해보면서, 캐릭터에 대한 배경설정이나 장·단점을 깊게 연구하기도 했다.

‘공략은 쉽다. 쫄지만 않으면 돼.’

오토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즈락의 앞에 엎드려 절했다.

“예, 죽음의 지배자이시여. 저는 이오타 영지의 영주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고 합니다.”

“죽음의 지배자라… 그렇게 불렸던 적이 있었지. 그래, 나를 아는가?”

알다마다.

‘너보다 내가 너를 더 잘 알걸?’

나즈락으로 <영지전쟁>을 클리어해본 경험도 있는데, 모를 리가.

“예, 죽음의 지배자시여. 귀하께서는 500년 전 대업을 이루시려다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한 분이신 것으로 압니다.”

“500년은 긴 시간이다. 어떻게 나를 기억하는가?”

“예, 죽음의 지배자시여. 저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예언?”

“죽음의 지배자께서 깨어나실 것이니, 마땅히 영접해야 한다는 예언입니다.”

“너희 가문에 내 부활을 예언한 자가 있었는가?”

“예, 죽음의 지배자시여.”

“으음.”

“만약 저를 받아주신다면, 죽음의 지배자께서 대업을 이루실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보좌해드리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날 보좌한다는 것인가? 너의 능력은 보잘것없고, 잠재력도 형편없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보좌할 수 있다는 것인가?”

“예, 죽음의 지배자시여.”

“그럼 나를 어떻게 보좌할 생각인가?”

“전략과 외교입니다.”

오토의 입에서 나즈락의 마음을 사로잡을 키워드가 흘러나왔다.

* * *

게임 <영지전쟁> 속에서 나즈락은 매우 강력한 군주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즈락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전략과 외교였다.

나즈락은 판을 크게 보는 능력이 부족했던 데다가, 기본적으로 모든 세력들과 적대적인 관계였다.

나즈락은 고위급 언데드인 죽음의 기사이자 강령술사고, 부하들조차 모조리 언데드 몬스터인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나즈락을 적대시하는 적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나즈락이 본격적인 정복 활동에 나설 때면 여러 개의 세력이 동맹을 맺고 대항하기 일쑤였다.

사방이 적.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늘 사냥당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즈락에게는 주변국들에게 포위당하지 않는 것과 최대한 동맹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했다.

“전략과 외교라….”

나즈락이 오토의 말을 곱씹었다.

“이 내가 500년 전에도 불사왕국의 건설에 실패했던 이유였지… 그래, 그랬어.”

“죽음의 지배자시여.”

오토가 은근한 어조로 나즈락을 꼬드겼다.

“저는 오랜 시간 전략과 외교를 공부하며, 죽음의 지배자께서 부활하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부디 제 보잘것없는 능력이 죽음의 지배자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받아주십시오.”

“내가 너를 받아주면,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좋다.”

나즈락이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가 너를 고위급 언데드로 만들어주도록 하마.”

“아직은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왜 안 된다는 것인가?”

나즈락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였다.

“너는 나의 신하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런데 언데드가 되지 않겠다는 건가?”

“죽음의 지배자시여. 왜 저라고 불로불사의 존재인 언데드가 되는 영광을 누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외교관으로 활동할 제가 언데드가 되면, 인간 군주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음!”

“그러니 저를 언데드로 만들어주시는 건 잠시 미뤄두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의 말도 일리가 있다.”

과거 처참한 외교력 때문에 외교에 어려움을 겪었던 나즈락에게 오토의 말이 솔깃하게 들리는 건 당연했다.

“좋다. 내 너를 나의 신하들 중 유일하게 언데드가 아닌 존재로서 활동하는 걸 허락하겠다. 훗날 대업을 이루면, 너를 최고위급 언데드로 만들어주겠노라고 약속하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오토가 나즈락의 앞에 넙죽 엎드려 절했다.

[알림: 나즈락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알림: 나즈락이 당신을 좋아합니다!]

[알림: 당신에 대한 나즈락의 호감도 상태가 <기대>가 되었습니다!]

[알림: 나즈락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오토는 언데드 군주인 나즈락의 마음을 얻어, 그의 부하가 되는 데 성공했다.

‘됐어.’

고개를 푹 숙인 오토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 * *

같은 시각.

“카미유 경!”

기사 하나가 카미유에게로 다가와 보고했다.

“북쪽 산길에 매복해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레인저 하나가 급한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급한 전갈?”

“도망친 영주님… 아니, 오토 그 개 같은 자식이… 언데드 군대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정찰 활동을 벌이던 레인저가 그 빌어먹을 자식이 언데드 군대의 선봉에 서 있는 걸 똑똑히 보았다고 합니다.”

“…이런 후레자식이.”

카미유는 보고를 듣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개새끼!”

“하!”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영지를 버리고 도망친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젠 사악한 언데드 군대의 앞잡이가 되다니!”

모두가 분노했다.

그래, 도망친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언데드 군대의 앞잡이 노릇까지 할 줄이야?

도대체가 이 인간의 밑바닥이란 어디까지인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그렇지.”

“오토 그 새끼라면 그러고도 남지.”

다들 <오토니까>라며 오토가 나즈락의 앞잡이가 된 것을 수긍해버렸다.

평소 행실과 이미지가 워낙에 쓰레기인 탓에, 오토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그리 놀랍지도 않단 반응이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기사가 추가적인 보고를 올렸다.

“언데드 군대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소룬 영지로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순간.

- 그 계획이 뭐냐면… 내가 소룬 영지를 망하게 만들 거야. 딱 2주 뒤에.

오토가 했던 말이 카미유의 뇌리를 스쳤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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