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1)화 (12/401)

제11화

오토의 명령을 받은 카미유는, 즉시 군대를 소집했다.

“모두 들어라! 영주님께서는 사악한 언데드 군주와 그 군대로 인해 피폐해진 이 지역을 일대를 안정시키고자 하신다!”

카미유는 이오타 영지의 장병들에게 오토의 의도를 잘 미화(?)시키고 포장(?)해 전달했다.

오토의 말마따나 ‘이제부터 우린 다른 영지들을 날로 꿀꺽! 집어삼키러 간다!’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초토화된 소룬 영지, 라세느 영지, 그리고 오르트 영지로 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할 것이다! 알겠나!”

“예!”

이오타 영지의 장병들은 카미유의 일장 연설에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이오타 영지의 장병들은 최근 몇 년 들어 가장 사기가 드높아진 상태였다.

며칠 전 나즈락의 성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니, 그간 바닥을 쳤던 사기가 올라갈 만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출정에도 영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다! 그러니 이오타 영지의 군대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장병들은 오토가 또다시 출정에 참여한단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영주님께서? 또?”

“조난당하셨다가 구조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으신 걸로 아는데….”

“다들 잊었나? 저번 전투에서 영주님이 언데드 몬스터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주시지 않았던가. 영주님께서도 큰 활약을 하셨지. 암, 그렇고말고.”

“목숨을 걸고 사악한 언데드 군주의 밑으로 들어가 정보도 수집하셨다지. 심지어 전투에도 참여하셨고.”

어느새 오토에 대한 장병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오토의 달라진 모습이 장병들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완전한 충성심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달라졌다.’

카미유도 이 변화를 눈치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패잔병들 같았는데… 영주님이 달라지신 후로 우리 장병들도 달라졌어. 눈빛부터가 달라.’

그렇게 생각하는 카미유의 입가에는 자기도 모르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카미유는 이곳 이오타 영지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친동생처럼 여기는 오토의 개과천선이 반갑기도 했고.

* * *

이오타 영지의 군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룬 영지를 점령해버렸다.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오타 영지의 병력이 1,000.

그에 비해 소룬 영지의 병력은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언데드 군대와의 전투에서 군대가 완전히 전멸해버리는 바람에, 기본적인 치안 유지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군사력이 약해진 것이다.

덕분에 오토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룬 영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소룬 영지의 영주 퍼시발은 영주직을 박탈당하고 오토의 앞에 서게 되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토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걸 빌미로 이오타 영지를 꿀꺽하려 했던 입장이었건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옥좌에 앉은 오토가 퍼시발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

퍼시발은 입을 꽉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평소 X밥이라고 생각했던 오토에게 영지를 통째로 빼앗길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했던 것이다.

“기분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

“…….”

“뭐, 그럴 만도 하겠지.”

오토는 퍼시발의 심정을 이해하고는, 그에게 아주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죽이진 않을 테니까, 가족들과 같이 여길 떠나. 여행에 필요한 경비랑 새로운 곳에 정착할 자금 정도는 지원해줄 테니까.”

“떠나라…?”

퍼시발이 기가 찬다는 듯 대꾸했다.

“내 영지에서… 떠나라는 건가? 영주인 나더러?”

“이젠 아니잖아.”

오토가 딱 잘라 말했다.

“이젠 내 영지지.”

“오토, 네 이놈…!”

“얼씨구.”

“내가 언데드 군대의 침공만 받지 않았어도 네놈 따위에게 영지를 뺏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 주제에 기고만장해서….”

“과연 운이 좋았던 걸까.”

오토가 싸늘한 목소리로 퍼시발의 말을 잘랐다.

“아니면 의도했던 걸까.”

“뭐, 뭣이…?”

“왜 내가 스스로 목줄 잡히는 줄 알면서 너한테 돈을 빌렸다고 생각해?”

“……?”

“처음부터 안 갚아도 되니까 빌린 거 아닐까?”

“서, 설마… 그걸 다 예상했다는 건가? 지금?”

퍼시발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니 자유고. 선택해. 조용히 떠날지, 아니면 죽을지.”

“…….”

“우리 이오타와 너희 소룬은 200년 동안이나 다퉜지. 처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

두 영지 사이 감정의 골을 생각하면, 오토는 퍼시발을 처형해야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민심 때문이었다.

퍼시발을 인정사정없이 처형해버린다면 소룬 영지에 살던 영지민들이 반발을 일으킬 테고, 그럼 민심이 떨어지리라는 건 당연지사.

앞으로 소룬 영지의 영지민들을 통치해야 하는 입장인 오토로서는 퍼시발을 되도록 살려주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어떻게 할래?”

“…떠나겠소.”

퍼시발이 고개를 떨궜다.

“자비를 베풀어줘서… 고맙소.”

“잘 생각했어.”

그렇게 오토는 소룬 영지를 손에 넣게 되었다.

오랜 앙숙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다가와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라세느 영지로 가자.”

“예, 영주님.”

오토는 즉시 소룬 영지를 떠나 라세느 영지로 향했다.

* * *

라세느 영지의 점령은 더 쉬웠다.

영주도 전투 중 전사하고, 군대도 완전히 전멸해버려서 완전히 무정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르트 영지는 달랐다.

오르트 영지에는 아직 500명의 병력과 영주가 건재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오르트 영지의 영주 콘도르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시골 영주치고는 뛰어난 검술 실력의 소유자였으며, 지략도 뛰어나고, 야심도 큰 인물이었다.

‘영 골치 아픈 상대지. 카미유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센 캐릭터이고 하고.’

오토가 콘도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오르트 영지가 성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정찰을 다녀온 카미유가 보고했다.

“아무래도 결사항전의 의지로 버틸….”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스스로 백기를 내걸고 성문을 열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버텨봐야 어차피 뚫릴 거라는 걸 콘도르가 모를까? 병력 수가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

“그렇긴 합니다만….”

“콘도르는 야심이 큰 사람이야. 능력도 있고. 영지민들의 신망도 이 일대에선 제일 두텁잖아.”

“맞습니다.”

“그러니까 영지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방법이 없잖습니까.”

“여러 가지 수를 쓰겠지.”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군대를 이끌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게릴라전을 펼치거나, 영지민들의 협조를 받아서 반란을 일으키거나. 그것도 아니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거나.”

“오르트 영지 점령을 다시 생각을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현명한 의견이긴 해.”

오토가 카미유의 의견에 동의했다.

“근데, 기왕 시작한 거 끝은 봐야지. 콘도르는 뛰어난 영주야. 이 기회에 처치하지 못하면 나중에 우리가 당해.”

콘도르는 비록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결코 방심하면 안 될 상대였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콘도르가 이끄는 오르트 영지에 의해 이오타 영지가 망하는 시나리오도 종종 나올 정도였다.

“일단 들어가 보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오토는 그렇게 말하며 말머리를 오르트 영지로 향했다.

“자~ 드가자~.”

* * *

다음 날 아침.

오토의 예상대로 오르트 영지의 성문에 백기가 내걸렸다.

“영주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간밤에 영주인 콘도르가 군사들을 이끌고 영지를 떠났답니다.”

“그래? 그럼 가자.”

오토는 그것 보라는 듯 카미유에게 으스대고는, 말을 몰아 오르트 영지로 향했다.

오르트 영지를 점령하는 건 매우 쉬웠다.

백기를 내건 만큼 저항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뿐더러, 모두가 이오타 영지의 군대에 매우 협조적이었던 것이다.

‘위험하다.’

그래서 카미유는 오히려 불안함을 느꼈다.

‘모두가 지나치게 협조적이다. 적진 한복판에 들어온 기분이다.’

하지만 저녁 시간까지도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새로 오신 영주님을 위해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저희 신하들이 준비한 것이니, 부디 참석해주시지요.”

“그럴까요?”

오토는 오르트 영지의 관료들로부터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고, 연회에 참석했다.

연회에는 카미유를 포함한 이오타 영지의 근위기사단도 함께 참석했다.

“우리 기사들도 전원 참석하라고 해. 중무장하고 오라고. 갑옷까지 다 입고. 병사들도 대기시키고.”

“갑옷까지 입습니까?”

“아무래도 한바탕할 거 같아서.”

“알겠습니다.”

그날 저녁.

“영주님께서 드십니다.”

오토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연회에 참석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저는 마이클이라고 합니다. 이곳 오르트 영지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마이클이라 소개한 중년 남성이 오토를 접대했다.

“한데… 다 갑옷을 챙겨 입고 오셨군요.”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하.”

오토가 투구의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 이 친구가 기사단장 카미유인데, 워낙에 의심이 많거든요.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입었습니다.”

그 순간.

빠직!

카미유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예!?’

카미유는 오토가 자신을 의심병 환자로 만들자 치를 떨었다.

정작 갑옷까지 입고 오자고 한 사람은 오토가 아니던가?

“기사로서 당연한 의무이겠지요.”

마이클이 미소를 지었다.

“다 영주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지나쳐도 문제죠. 저렇게 의심이 많고 겁이 많아서 어디에다가 씁니까? 하여간에 대범하지가 못해요.”

“하하하….”

“뭐만 하면 참견에 잔소리에 옆에서 꽥꽥대는 게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니까요?”

오토는 카미유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대놓고 헐뜯었다.

아주 들으라고 대놓고 험담을 한 것이다.

부들부들…!!!

카미유는 오토의 만행에 분노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았다.

그렇게 카미유의 험담으로 시작된 연회.

“콘도르 영주가 떠난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분의 결정이니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영지가 초토화된 상황이질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이 땅에 새로운 주인께서 오셨으니, 저희로서는 그저 모실 뿐입니다.”

오토는 마이클이란 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연회를 즐겼다.

그러던 중.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콘도르 영주는 졸렬한 거 같네요.”

오토의 그 한 마디에 연회장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연회에 참석한 오르트 영지의 관료들과 시종, 시녀들의 시선이 오토에게로 확 쏠렸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이클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오토에게 물었다.

“항복하고 영지를 바치기는 싫고. 싸우자니 질 게 뻔하고. 그러니까 영지를 버리고 도망간 척 연기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떠날 거였으면 깔끔하게 항복하고, 영주 자리를 넘겼겠죠.”

오토는 그렇게 말하며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마이클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무리수를 두다 보면 추해지기 마련인데. 깨끗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추해진다… 추해진다라….”

마이클이 오토의 말을 곱씹으며 되뇌었다.

“그만 깔끔하게 포기하지? 콘도르?”

오토가 그런 마이클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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