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2)화 (13/401)

제12화

“……!”

오토의 말에 카미유를 포함한 이오타 영지의 기사들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제 귀를 의심하는 카미유.

그러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쯤에서 영주직을 넘기고 떠나는 게 어때? 순순히 항복해. 그게 서로 편해.”

오토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항복이라….”

마이클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더러 항복을 하란 말인가? 너와 같이 군주의 자격도 없는 자에게?”

그 순간.

벌떡!

카미유를 포함한 이오타 영지의 기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갑옷을 입고 참석하라고 하시더니 이런 의미였나?’

카미유는 그제야 명령의 이유를 깨달았다.

“어떻게 알았나.”

그러나 마이클, 아니 콘도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토에게 물었다.

“우리 오르트와 너희 이오타는 왕래가 거의 없었을 텐데? 내 얼굴을 아는 자가 있었나?”

“왜 이래? 우리 자주 만났잖아? 수백 번은 만난 거 같은데?”

“무슨 소리지?”

“그런 게 있어.”

오토가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만났지. 많이 만났고말고.’

콘도르는 피제로와 나즈락에 이어 초반 플레이 시 가장 골치 아픈 빌런 중 하나.

각성 전 본격적인 무력을 갖추기 전까지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널 만난 기억이 없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예, 예, 그러시겠죠.”

“건방진 놈.”

콘도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와 나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오토가 카미유를 돌아보았다.

“카미유! 너로 정했다!”

“……?”

“너로 정했다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 쟤랑 싸우라고!”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지만, 일단은 콘도르를 향해 다가섰다.

“카미유. 이오타 영지에 있긴 아까운 자라고 들었다. 저런 머저리 밑에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내 신하가 되는 게 어떤가?”

“개소리 마라.”

카미유가 콘도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딜.”

그러자 콘도르가 테이블 밑에 숨겨놓았던 검을 뽑아 들고 카미유에 맞섰다.

그와 동시에 연회장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연회에 참석했던 오르트 영지의 관료들과 시종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오토 일행을 공격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 * *

갑작스레 벌어진 전투.

오토는 당황하지 않고,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와아아아아아아!”

“영주님께서 위험하시다! 연회장을 점령하라!”

“모조리 베어라!”

대기하고 있던 이오타 영지의 기사들.

그리고 고르고 고른 이오타 영지의 정예병들이 연회장으로 난입해 콘도르 일당 제압에 나섰다.

‘내가 한두 번 당하냐.’

콘도르는 오만가지 방법으로 플레이어를 속이고 함정에 빠뜨리기 일쑤.

이렇듯 연회장에서 플레이어를 습격하는 것도 익숙한 패턴 중 하나였다.

오토가 처음부터 갑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한 것.

미리 기사들과 정예병들을 대기시켜 놓은 것.

그게 다 콘도르의 함정에 빠져서 개죽음을 당한 경험이 많았기에 미리 대비를 해둔 거였다.

“듣던 것 이상이군.”

“시끄럽다.”

“확실히 이오타에 있기는 아까운 실력이다.”

“오직 이오타만이 나를 품을 수 있다.”

한편, 카미유와 콘도르는 설전을 주고받으며 치열을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콘도르의 무력이 확실히 우위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콘도르가 카미유를 압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카미유 경!”

“조심하십시오!”

결국, 보다 못한 이오타의 기사들까지 나서 콘도르를 공격해야만 했다.

‘무력으로는 절대 못 잡지. 절대로.’

오토는 싸움을 지켜보며 시간을 쟀다.

‘5분 후에 도망치겠지. 지금이 4분 30초. 앞으로 30초만 더 지나면….’

그로부터 정확히 30초 후.

“아쉽지만…!”

콘도르가 크게 검을 휘둘러 카미유와 기사들을 떨쳐내었다.

“나중을 기약하겠다.”

뒤이어 콘도르가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쨍그랑!

창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콘도르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게 둬.”

오토가 콘도르를 뒤쫓으려던 카미유를 불러 세웠다.

“하지만….”

“쫓아가면 위험해져.”

오토가 아쉬워하는 카미유를 달랬다.

“저것도 함정일걸?”

“알겠습니다.”

“고생했어.”

오토가 카미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해주었다.

“몸 상태 안 좋았잖아. 자존심 상해하지 마.”

“압니다.”

카미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대가 저보다 훨씬 더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그래.”

“이자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카미유가 제압당한 오르트 영지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굳이 죽일 건 없고. 그냥 감옥에 가둬 놔.”

“영주님을 죽이려 했던 자들입니다.”

“나도 알아.”

“마땅히 처형하셔야 합니다.”

“알아.”

“그런데도 자비를 베푸십니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보여?”

흠칫!

카미유는 오토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놀랐다.

“죽여 봐야 반감만 커질 뿐이야. 콘도르는 내가 이들을 죽이길 바랄걸.”

“그런… 겁니까.”

“죽이면 콘도르를 도와주는 꼴밖엔 안 돼. 그리고….”

오토가 덧붙였다.

“굳이 뒤쫓아 가서 죽일 필요도 없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말했잖아. 사람이 무리수를 두다 보면 추해지기 마련이라고.”

“콘도르가 무리수를 두게끔 만드시려는 겁니까?”

“정답.”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콘도르를 죽이는 게 아냐. 콘도르가 민심을 잃을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거지.”

“아…!”

카미유는 정말 순수하게 감탄했다.

오토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무리수를 두게 돼 있어. 우린 그때까지 기다리면 돼.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

“알겠습니다.”

그러자 오토의 눈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카미유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알림: 당신에 대한 카미유의 호감도 상태가 <동정>에서 <기대>'로 바뀌었습니다!]

오토가 능력을 보여주는 만큼 카미유의 호감도 역시 점차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던 것이다.

* * *

한편,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한 콘도르는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본대와 합류했다.

그곳에는 오르트 영지의 기사들과 500명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암살은 실패했다.”

콘도르가 기사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군.”

“그랬습니까?”

콘도르가 가장 신뢰하는 기사 앨런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그가 어땠기에 영주님께서 작전에 실패하셨단 말입니까?”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더군.”

“오토… 그 천하의 개망나니가 그랬습니까?”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모양이다. 천하의 개망나니라기보다는 노련한 사기꾼에 가까운 놈이었다.”

콘도르는 그렇게 말하며 독한 술과 붕대를 가져오게 해 상처를 치료했다.

제아무리 콘도르라도 연회장에서 벌어진 혈투에서 가벼운 찰과상 정도는 입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손쉬운 암살은 물 건너갔으니… 다음 작전으로 넘어간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콘도르는 자신의 영지를 되찾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워두었다.

즉, 오토와 콘도르의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카미유.”

“예.”

“밤에 콘도르 일당이 침투해올 것 같으니까, 여기 이 비밀통로를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가 어떻게 비밀통로의 위치를 알아냈는지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영업비밀>이라며 가르쳐주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조용히 움직인다. 빠르게 침투해서 오토 드 스쿠데리아를 제거하고, 영지민들로 하여금 폭동을 일으키게 한다. 알겠나?”

“예! 영주님!”

콘도르는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비밀통로를 통해 오르트 영지로 잠입하려 했다.

그런데.

“적이다! 적!”

“저기 콘도르가 있다! 잡아라!”

비밀통로를 통과하자마자 이오타 영지의 군대가 콘도르 일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 밤 콘도르 일당이 쳐들어오기를 알았다는 듯이….

“후회! 후퇴하라! 신속히 후퇴한다!”

결국, 콘도르는 오르트 영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황급히 도망쳐야만 했다.

“잘 도망가네.”

성벽 위에 선 오토가 도망치는 콘도르 일당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콘도르의 무력이 워낙에 뛰어나 적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상관없어. 피해를 주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오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밤바람이 차다. 들어가자. 한 며칠 조용할 테니까.”

“예.”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나고.

“상단 행렬이 이곳에 잠시 머무르길 청한답니다. 이 길목을 정기적으로 지나는 상단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보고했다.

“아, 그거? 그거 콘도르 일당이야.”

“예?”

“상인들도 다 오르트 영지의 기사들이고, 수레 안에도 병사들이 타고 있을 거야. 몽땅 잡아다가 감옥에 가둬.”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속는 셈 치고 오토의 명령에 따랐다.

그 결과.

“놔라! 이 더러운 이오타 놈들!”

“으으으윽!”

오토의 예상은 옳았다.

약 50여 명의 상단 행렬 모두가 오르트 영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란 게 밝혀진 것이다.

“뭐라!”

콘도르는 이번에도 작전이 실패했단 보고를 받고 크게 분노했다.

“이런 빌어먹을! 당장 영지민들로 하여금 폭동을 일으키게 하라!”

하지만 그 작전마저도 실패했다.

“여, 영주님… 영지민들을 부추겨야 할 이들이… 모두 이오타 군에 강제로 입대를 당해서 북쪽 산맥의 몬스터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뭐라…?”

콘도르는 솔직히 그 보고를 믿을 수 없었다.

영지민들을 부추겨야 할 사람들의 정체는 오직 콘도르와 충성스러운 기사 앨런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그들만 쏙 이오타 군에 입대를 당했다?

뭔가 이상했다.

콘도르는 오토가 자신의 생각을 훤히 읽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내린 결론은… 다름 아닌 <의심>이었다.

“앨런! 앨런은 어디 있나!”

콘도르는 즉시 앨런을 불러들였다.

“예, 영주님. 부르셨습니까.”

“내가 네놈을 믿었거늘.”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는 나를 제외하면 작전의 세부 내용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 아닙니다! 영주님! 저는 결코 영주님을 배신한 적이….”

“이 더러운 배신자!”

“크악!”

콘도르의 검이 앨런의 목을 뎅겅! 베어버렸다.

의심으로 인해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또한 가장 충성스럽던 기사를 스스로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모두… 모두 들어라….”

분노한 콘도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앨런의 머리통을 들고 부하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정작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애꿎은 앨런을 베어버린 줄도 모르고.

“조국을 배신한 자는… 누구든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다들 알겠는가!”

“예! 영주님!”

부하들은 콘도르의 그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 사기꾼 같은 놈… 지금쯤 기고만장해 있을 테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내가 내부의 배신자를 처단한 이상… 네놈은 내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콘도르는 오토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정작 자신이 오토가 파놓은 개미지옥에서 놀아나면서, 점점 타락해가고 있을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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