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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3)화 (14/401)

제13화

충신인 앨런을 처형한 콘도르는, 온갖 공작과 게릴라전을 펼치며 오르트 영지 탈환에 매달렸다.

그러나 오르트 영지의 방어는 굳건했다.

콘도르가 어떠한 공작을 펼친다 한들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다.

때문에, 콘도르는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다.

그리고 의심의 불씨는 더욱 커져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다.

어떠한 공작을 펼친다 한들 사전에 정보가 유출되기라도 한 것처럼 간파당하다 보니, 의심병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이 더러운 배신자 같으니!”

콘도르는 매일같이 부하들을 처형했다.

“네놈마저 날 배신해?”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 아닙니다! 영주님! 저는 결백… 크악!”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콘도르의 의심병이 깊어진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도대체 배신자가 얼마나 많은 것인가? 얼마나 많은 첩자를 심어두었기에?’

콘도르는 오토가 자신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뛰어난 지략을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주변 인물들을 의심할 수밖에.

정작 오토는 지략이 뛰어난 게 아니라 단지 오랜 경험을 통해 콘도르의 행동 패턴을 모두 꿰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콘도르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콘도르는 매일 같이 부하들을 의심하고, 처형하고, 윽박지르는 등 군주로서 금기시되는 행동들을 반복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기사들과 병사들의 충성심은 낮아졌다.

“빌어먹을! 지랄도 하루 이틀이지!”

“작전에 실패한 걸 왜 우릴 의심하지?”

“오늘은 또 누구 목을 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군.”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설마 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개 같은. 미친놈이 날 의심하면 어떡하지?’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설마 저 자식이 이오타 영지의 첩자가 아닐까?’

‘아까부터 수상하군. 왜 초조해하는 거지?’

불신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도저히 안 되겠군.’

콘도르는 자신의 의심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나는 줄도 모른 채 다음 작전을 준비했다.

“적들의 병력이 우리 영지에 집중돼 있으니, 우리는 우회해서 이오타 영지를 친다. 그러면 우리 영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 영주님!”

콘도르는 자신만만했다.

‘네 본진이 초토화되는데도 내 영토에서 버틸 것이냐? 오토 드 스쿠데리아? 네놈의 백성들을 모조리 도륙 내주마.’

그렇게 콘도르는 군사들을 이끌고 이오타 영지로 향했다.

그런데.

“저, 적이다!”

“기습이다! 모두 방어태세를 갖춰라!”

이오타 영지의 군대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콘도르 일당을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이오타 영지의 병력이 많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유리한 위치에 매복해 있다가 기습을 가한 덕분에, 콘도르의 군대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이…! 후, 후퇴하라! 모두 후퇴하라!”

그렇게 빈집털이 작전은 철저한 패배로 끝을 맺었고, 콘도르는 패잔병들을 이끌고 임시주둔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도대체 누구지? 어디서 정보가 새는 것이지? 첩자를 얼마나 많이 심어놓은 것이냐?’

그런 콘도르의 머릿속에는 오직 의심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콘도르의 의심을 한 번에 날려버릴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화르르르르르르르!

임시주둔지가 불타고 있었다.

콘도르가 이끄는 군대의 식량, 전쟁물자, 군자금이 보관되어 있던 장소가 불길에 휩싸인 채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 안 돼…!”

불타는 임시주둔지를 본 콘도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조금 전 벌어진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도 모자라 근거지인 임시주둔지까지 잃다니….

“부, 불을 꺼라! 어서! 불을 끄란 말이다!”

콘도르가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물을 뿌려라!”

“빨리 화재를 진압하라!”

부하들이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불길이 너무 커진 상태라, 아무리 물을 뿌려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임시주둔지는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어버렸고.

“오토… 오토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콘도르의 입에서 피맺힌 절규가 터져 나왔다.

* * *

같은 시각.

“이야~ 자알~ 탄다~ 활활~.”

오토는 오르트 영지의 첨탑 위에 올라 저 멀리 불길을 감상하고 있었다.

오토의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디저트와 와인이 가득했다.

오밤중에 불타는 임시주둔지를 바라보며 군것질에 와인을 한잔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하는 콘도르는 피를 토하는 심정일 텐데….

‘저건 악마다. 악마에 씐 게 분명하다.’

카미유는 그런 오토의 모습에 몸서리쳤다.

오토가 지난 한 달 동안 콘도를 어떻게 괴롭혔는지를 떠올려 보면,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런데 이제는 콘도르가 우회작전을 나간 사이 매복으로 공격하고, 그 틈에 임시주둔지를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일부러 가지고 노는 느낌이라서, 아주 악마가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영주님.”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으응? 쩝쩝.”

오토가 입 안 가득 음식물을 넣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쩝쩝. 살살 물어. 쩝쩝. 안 아프게. 쩝쩝.”

“…아.”

카미유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쭈? 표정?”

오토가 눈을 부라렸다.

“표정 안 풀어?”

“…….”

“영주가 농담을 던졌는데 안 웃네?”

“이거 가혹행위 아닙니까?”

“가혹행위는 무슨! 내가 얼마나 착한 영주인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카미유가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근데 궁금한 게 뭔데?”

“왜 콘도르를 안 죽이십니까? 얼마든지 콘도르를 죽일 수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게 궁금했어?”

“예.”

“억지로 죽이자면 죽일 수야 있지.”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근데 안 죽이는 게 더 이득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말했잖아. 사람은 무리수를 던질수록 추해진다고. 지금쯤 부하들을 의심하고 아주 난리도 아닐걸? 계속된 실패에 스트레스도 엄청 쌓여서 예민해졌을 테고. 부하들에게 더 가혹하게 굴겠지. 이럴 때일수록 충성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텐데.”

“충성심을 잃게 하시려는 겁니까?”

“이미 잃었어.”

오토가 장담했다.

“그리고 콘도르의 부하들도 지금쯤 깨달았겠지. 콘도르가 생각했던 것만큼 유능한 군주가 아니라는 걸. 콘도르가 침몰하는 배라는 걸.”

“그럴 것 같습니다.”

“한 며칠 지나면 충성심이 좀 낮은 기사들이나 병사들이 하나둘 탈영하기 시작할 거야. 그중 몇몇은 나한테 올 테고.”

“거기까지… 예상을….”

“결국 완전히 궁지에 몰려서 더 큰 무리수를 던지겠지? 그땐 부하들의 충성심만이 아니라 영지민들의 민심까지 잃게 될 거야.”

“그럼 파멸… 아닙니까?”

“철저한.”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 오르트 영지의 민심도 나한테 오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능력 있는 영주고, 콘도르는 비겁하고 졸렬한 무능력자로 비쳐야 돼. 그래야 뒤탈이 없어.”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솔직한 심정으로 물었다.

“글쎄.”

오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나 할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있어, 그런 말이.”

“……?”

“아 졸리다. 자야지. 하암.”

오토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는, 첨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높기도 높네. 이걸 어떻게 내려가냐. 으.”

그 순간.

삐끗!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악!”

발을 헛디딘 오토가 계단을 데굴데굴 굴렀다.

갑옷을 입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중심을 잃은 것이다. 

“예… 굴러서 내려가시는군요.”

카미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임시주둔지를 잃은 콘도르와 그의 부하들은 산속에서 온갖 개고생을 해야만 했다.

때는 초가을.

서서히 추워지는 날씨 덕분에 산속의 밤은 매우 추웠다.

집도 절도 없는 콘도르와 부하들은, 매일 밤 산속의 추위에 떨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임시주둔지가 불타버린 바람에 식량이 없었다.

그래서 콘도르와 그 부하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사냥에 나서거나, 혹은 각종 열매나 풀뿌리 채취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약 2주 정도 지나자 콘도르와 그 부하들은 정규군이 아닌 산적들의 몰골이 되고 말았다.

결국, 참다못한 기사 몇몇과 병사들 몇몇이 하나둘 탈영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산속에 숨어 있어봤자 굶어 죽거나, 몬스터의 먹잇감이 되거나, 혹은 이오타 영지의 군대에 토벌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아이고! 군인 나으리들! 아니 됩니다!”

“닥쳐라!”

“으악!”

“영주님께 고작 이 정도 공물도 바치지 못하는가!”

몇몇 병사들이 콘도로의 통제를 벗어나 영지 내 작은 마을들을 돌며 약탈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마을 사람들을 폭행하고, 죽이고, 심지어는 여성을 강제로 겁탈하는 등의 사고까지 치고 말았다.

오토는 병사들을 풀어 주변 마을을 보호하게 하는 한편, 선동꾼들에게 콘도르의 부하들이 저지른 만행을 오르트 영지에 소문냈다.

“우리 병사들이 약탈을?”

“아랫마을 그 안젤라라는 처녀가 그만 몹쓸 짓을 당했다는구먼.”

“콘도르 영주도 결국 똑같은 부류였군.”

그러자 콘도르에 대한 오르트 영지민들의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카미유는 오토를 말렸다.

콘도르가 비록 적이지만, 오토가 하는 짓이 너무 악랄해서 동정심마저 들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하지만 오토는 콘도르를 이 지옥 같은 탈수기에서 꺼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쟤 아직 포기 안 했어. 조만간 용병단이라도 고용해 와서, 또 영지를 뺏으려고 할걸? 영지에 불을 지르고 혼란을 틈타 우릴 공격해오려고 할 거야. 우물에 독도 탈 테고. 우리 병사들이 뒷수습을 하는 사이에 공격해 들어올 테지.”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너무 강화하진 말고.”

오토가 카미유에게 귀띔했다.

“걔네가 저지르는 짓을 영지민들도 봐야지.”

“맙소사.”

“다 왔어. 이번이 거의 마지막 시도일 거야.”

오토는 콘도르에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멘탈이 박살 나기 직전이라는 것을….

* * *

오토의 예상은 적중했다.

콘도르는 영지를 되찾으면 절반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한 용병단과 계약했고, 약 200여 명의 용병들을 고용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콘도르는 이번에야말로 영지를 되찾겠다고 다짐하면서, 작전에 임했다.

침투는 성공적이었다.

콘도르는 남은 부하들, 그리고 200여 명의 용병들을 이끌고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그렇게 생각한―는 비밀통로를 통해 오르트 영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고 난 뒤에 내성으로 모인다. 적들이 화재를 진압할 때 내성으로 침투한다. 알겠나?”

“예, 영주님.”

뒤이어 작전이 시작되고.

“빨리빨리 움직여.”

“기름 더 가져와.”

“쉿. 조심.”

콘도르의 부하들과 용병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불을 지를 준비를 했다.

“저게 진짜 광기지.”

첨탑에 오른 오토는 망원경을 통해 적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카미유 역시 오토의 의견에 동의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콘도르는 대대로 일궈온 이 땅을 제 손으로 불태우면서까지 영지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외세라 할 수 있는 용병단에 영지의 절반을 팔아먹으면서까지….

“근데… 콘도르를 저렇게 만든 건… 영주님 아니십니까?”

“으응?”

“너무 몰아붙이신 거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럼 아닙니까?”

“누가 보면 내가 쟤 타락시킨 줄 알겠네.”

“맞지 않습니까?”

“야 이.”

오토가 눈을 부라렸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악마 같잖아!”

“…….”

“어어? 표정 봐?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오!”

오토가 분통을 터뜨렸다.

“요즘 자꾸 하극상….”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저도 가보겠습니다.”

카미유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여기 더 있다간 오토에게 또 갈굼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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