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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4)화 (15/401)

제14화

“넓게 넓게 뿌려. 그래야 불이 잘 붙지.”

“알겠습니다.”

콘도르의 부하들과 고용된 용병들은 곳곳에 기름을 끼얹으며 불을 지를 준비를 했다.

대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영지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잡았다! 이놈들!”

“어딜!”

매복해 있던 이오타 영지의 군인들이 콘도르의 부하들과 용병들을 습격했다.

“죽여라!”

“이런 빌어먹을!”

그렇게 영지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영지에 불을 지르려는 콘도르의 부하들과 용병들.

그리고 그걸 저지하려는 이오타 영지의 군인들 간에 소규모 교전이 벌어진 것이다.

“뭐지…?”

“뭐야! 시끄럽게!”

“거 잠 좀 잡시… 으응?”

오르트 영지의 영지민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하나둘 밖으로 나와 보았다가, 전투를 목격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을 지르려는 자들과 그걸 막으려는 자들의 싸움.

문제는 불을 지르려는 자들이 한때 아군이었던 콘도르의 부하들이었다는 것이었고, 막으려는 자들이 점령군인 이오타 영지의 군사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영주님께서 불을 지르려고 하셨단 건가?”

“마, 말도 안 돼!”

오르트 영지민들은 경악했다.

존경에 마지않던 콘도르가 영지를 불바다로 만들려 했단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체포 완료! 전투 중지!”

“여기도 체포 완료했습니다!”

콘도르의 부하들과 용병들은 이오타 영지의 군인들에게 하나둘 제압되어 체포 후 압송되었다.

“이, 이럴 수가….”

콘도르는 방화 작전마저 실패하자 절망하고 말았다.

모든 게 끝이었다.

이번 작전에서 모든 부하들을 잃었고, 고용한 용병들마저 모조리 잃었다.

더는 끌어올 수 있는 병력이 없었다.

게다가 임시주둔지마저 불타버린 상황.

이제 남은 건 콘도르 혼자뿐.

“잡아라!”

“저기 콘도르가 있다!”

이오타 영지의 병사들이 콘도르를 발견하고 뒤쫓아 오기 시작했다.

“이런 개 같은!”

콘도르는 절망하고 있을 시간도 없이, 살기 위해 줄행랑을 쳤다.

이오타 영지의 병사들이 그 뒤를 바짝 추격했지만, 콘도르를 포획하는 데 실패했다.

콘도르의 무력이 워낙에 뛰어나 평범한 기사들과 병사들로서는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콘도르가 도망쳤습니다.”

카미유는 작전이 끝나자마자 오토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알아.”

“찜찜하지 않으십니까?”

“딱히?”

“그래도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카미유는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평가하는 듯했다.

콘도르가 모든 걸 잃은 이상 더는 오르트 영지를 되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글쎄.”

오토가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럴까?”

“예…?”

“일단 두고 보자고. 하암.”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품을 하더니 자러 들어가 버렸다.

* * *

다음 날 아침.

“다들 들어라!”

카미유는 오르트 영지민들을 모아놓고 간밤에 있었던 일을 전했다.

“전 영주였던 콘도르는 용병들을 끌어들인 것으로도 모자라 우리 영지에 불을 질러 불바다로 만들려 했다! 이는 사로잡힌 전 오르트 영지군 소속 기사들과 병사들이 증언해줄 것이며, 용병들 역시 증언할 것이다!”

그러자 콘도르의 부하들과 용병들이 앞다투어 그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콘도르는 폭군이었습니다! 부하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죽였습니다!”

“그 자식은 사랑하는 우리 영지가 불바다가 되는 걸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영지를 되찾겠다는 욕심뿐이었습니다!”

콘도르의 부하들은 이미 여러 번 실망을 한 터라, 충성심이랄 게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콘도르의 의심과 닦달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오만 정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콘도르를 도와 이 영지의 절반 이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었소.”

“영지민들의 피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작전이었소.”

용병들은 본래 돈을 받고 작전에 참가한 터라, 있는 사실을 그대로 실토했다.

용병인 그들이 콘도르를 옹호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그저 돈을 받고 작전에 참가한 것일 뿐이오. 그리고 콘도르는 의뢰 대금을 이 영지의 절반으로 지불하겠다고 했소.”

이번 작전에 참가한 용병들 중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자가 콘도르와 용병단 사이에 오갔단 계약 내용을 폭로했다.

“영지를 팔아먹어?”

“이런 개 같은! 제 놈이 영주면 다란 말이냐! 누구 멋대로 우리 삶의 터전을 팔아먹어!”

“이런 매국노 같은!”

오르트 영지민들은 폭로 내용에 크게 분노했다.

다른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영지를 불바다로 만들려 했던 것과 용병단에 영지의 절반을 넘기려 했던 건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계약 내용 중에는 영지뿐 아니라 영지민의 절반을 노예로 판매하는 조항도 있었소이다.”

추가로 이어진 폭로에, 오르트 영지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래, 영지의 절반을 넘기는 것까지는 백번 이해한다 치자.

그러나 영지민들의 절반을 노예로 팔아 의뢰 대금을 지불하려 했다는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영지는 일종의 작은 왕국과 같은 것.

어느 누가 자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판다는 말인가?

“개 같은 새끼!”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 그놈은 우리를 물건 취급했다!”

“이 X발놈!”

“누구 마음대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오르트 영지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덕분에 콘도르는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임시주둔지도 잃고.

병력도 잃고.

이제는 가장 큰 자산인 민심마저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다.

“후후후.”

오토는 오르트 영지민들이 콘도르를 욕하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로써 콘도르가 오르트 영지를 되찾을 방법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었다.

민심이 돌아선 이상 이제는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상황을 되돌리는 게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오토는 민심이 콘도르를 떠났다고 해서 그게 다 자신에게 오는 게 아니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잘해야 돼.’

오토는 즉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오르트 영지 탈출에 성공한 콘도르는,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 개 같은 새끼… 감히 날 가지고 놀다니….”

오토에 대한 콘도르의 분노는 가히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콘도르의 인생은 오토로 인해 완전히 박살 난 셈이었다.

영지를 잃고, 부하들을 잃고, 이제는 민심마저 잃고.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 인생.

남은 건 그저 몸뚱이뿐이라서, 앞으로는 떠돌이 용병으로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겠지만….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네놈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

콘도르는 오토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콘도르에게 영지를 되찾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오직 복수.

오토에 대한 증오심만이 콘도르를 움직이게 만드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 * *

오토는 즉시 오르트 영지의 민심 수습에 나섰다.

“영지민들은 들어라! 영주님께서는 그간 너희가 겪은 고초를 생각하시어, 이번 가을에는 세금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셨다!”

카미유가 영지민들을 불러놓고 오토의 의지를 전달했다.

“세, 세금을 안 받겠다고?”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영지민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세금을 안 받겠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당사자가 무려 천하의 개망나니라고 소문난 오토였다.

오토는 악덕영주의 표본과 같은 인물이었기에, 그런 관대한 정책을 펼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도 안 믿는 눈치입니다.”

“그래 보여.”

오토는 상태창을 들여다보다가 민심이 전혀 올라가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좀 지나야 할 테니까 일단 지켜보자.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영지민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하겠지.”

“현명하십니다.”

“일단은….”

오토가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말했다.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딜 갑니까?”

“가보면 알아.”

“……?”

“출발하기 전에 삽이랑 곡괭이 좀 챙기고.”

카미유는 오토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오토는 카미유를 데리고 북쪽 산맥으로 데리고 갔다.

“어디 어디쯤이었는데… 어디냐….”

오토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독도법―지도를 보고 지형지물을 이해하는 기술―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지도를 보는 것도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뭘 찾으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물었다.

“콘도르를 상대할 방법.”

“예…?”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콘도르는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해서, 더는 오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상태.

그런데 왜 콘도르를 상대할 방법을 찾는단 말인가?

“콘도르가 영주님을 암살할 것에 대비하신다는 겁니까?”

“콘도르가 나뿐만 아니라 영지 전체를 초토화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비하는 거지. 정확히는.”

“예…?”

“콘도르를 너무 쉽게 본 것 같은데? 걔는 죽을 때까지 포기할 인간이 아니야.”

오토는 콘도르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콘도르는 이쯤에서 물러날 빌런이 아니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른바 <콘도르의 역습>이란 이벤트가 발생한다.

고대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콘도르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돌아와 플레이어에게 복수를 드는 이벤트 말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콘도르를 막을 수 없다.

타락한 콘도르는 나즈락보다 더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괴물.

아직 각성조차 못 한 오토가 그런 콘도르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콘도르의 역습> 이벤트에서 살아남으려거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 오토는 그 특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고.

“여기다.”

오토가 마침내 웬 자그마한 동굴을 찾아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동굴 안에… 뭐가 있습니까?”

“뭐가 있긴 있지.”

오토가 카미유를 데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서며 대답했다.

“동굴이 막혔습니다.”

“자.”

오토가 말안장에서 곡괭이와 삽을 꺼내 카미유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주십니까?”

“막혔으니까 파야지.”

“제가 팝니까?”

“그럼 영주인 내가 팔까?”

“…….”

“얼른 파. 난 좀 쉬고 있을게.”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돗자리를 깔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

카미유는 그런 오토의 뻔뻔한 태도에 부르르 떨었지만, 곡괭이를 들고 막힌 동굴을 뚫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계급이 깡패인걸.

쾅! 콰앙!

“어어? 곡괭이질에 감정이 실린 거 같은데?”

“아닙니다.”

콰앙! 콰아앙! 콰직!

“맞는 거 같은데. 지금 내 머리통 쪼갠다는 생각으로 뚫고 있는 거 아냐?”

“절대로 아닙니다.”

콰직! 쾅! 콰아앙! 쾅!

“절대로.”

카미유는 분노를 원동력 삼아 막혀 있던 동굴을 금세 뚫어내었다.

탁! 치익!

오토는 동굴이 뚫리자 성냥으로 랜턴에 불을 붙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건….”

카미유가 동굴 안쪽에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골… 아닙니까?”

동굴 안쪽에는 웬 허연 백골 한 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백골의 뻥 뚫린 오른쪽 눈에는 황금으로 만든 가짜 눈이 하나 박혀 있었으며.

바로 옆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검은 철퇴가 덩그러니 나뒹굴고 있었다.

“누구의 유골입니까? 보아하니 아주 오래된 유골 같은데….”

“떠오르는 거 없어?”

“예?”

“황금으로 만든 가짜 눈. 그리고 철퇴. 딱 떠오르는 사람 없냐고.”

“서, 설마.”

카미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백골… 혹시… 식인황제 카이로스의 유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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