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30)화 (31/401)

제30화

“제가 어찌….”

카미유는 오토의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형도 아버지 아들이잖아. 아버지께서는 형을 아들처럼 생각하셨어. 그러니까 같이 향을 피우면 기뻐하실 거야.”

“하지만….”

“싫어? 싫으면 말고.”

“…….”

“형도 같이 향을 피우면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실 거 같아서 꺼낸 말인데.”

“…하겠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3일 후에 위령제를 진행할 테니까 준비해.”

“명령, 받들겠습니다.”

그로부터 3일 뒤.

이오타 왕국에서는 오릭스 영주 부부를 위한 추모 및 위령제가 열렸다.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향로를 들고, 그 안에 향을 피웠다.

그건 평민 출신의 시종에 불과했던 카미유가 정식으로 스쿠데리아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오토가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또, 오토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개과천선해서 훌륭한 군주가 될 자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편하게 안식하시기를….’

카미유는 오릭스 영주의 명복을 빌어주며,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위령제가 끝난 후.

“기사 카미유.”

“예, 여기 있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의 부름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성을 하사한다.”

“예…?”

“오늘부터 기사 카미유를 스쿠데리아 가문의 정식 일원으로 인정하며, 앞으로 스쿠데리아의 성을 사용하는 걸 허락한다.”

“……!”

“이제 진짜 형이야. 카미유 드 스쿠데리아.”

“전하…!”

“그래도 내 부하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하극상할 생각은 말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자 오토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당신에 대한 카미유 드 스쿠데리아의 호감도 상태가 <절대적 충성> (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제 카미유는 더 이상 오토를 적대하지도, 불신하지도 않게 되었다.

가끔 한심하게 생각하기는 하겠지만, 오토를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목숨도 아낌없이 내던질 각오가 선 것이다.

* * *

오토는 위령제가 끝난 후 연회를 열어 그동안 고생한 왕궁 사람들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사실 이번에 가장 고생한 사람은 오토가 아니라 왕궁 식구들이었다.

그간 앙겔레스의 패악질에 시녀들과 시종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므로, 위로 차원에서라도 연회를 열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음?”

시녀장 올리브는 오토를 깨우러 갔다가, 오토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토는 아침잠이 매우 많아서, 깨우지 않으면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겨우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벌써 일어났나? 이불까지 깔끔하게 개어놨군?”

“세상을 바꾸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이불부터 개야죠.”

“좋은 자세다. 그런데 어디 가나?”

“아침 체력단련에 참여하려고요. 이제 저주도 풀렸으니까 슬슬 운동도 시작해보려고요.”

“오?”

“다녀오겠습니다.”

오토는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즉시 연병장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 연병장에서는 스푸너 교관의 감독하에 체력단련이 이루어졌는데,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몸 상태부터 끌어올려야 돼.’

<지지리도 못난 놈> 저주가 풀리고 30레벨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이 좋아진 건 결코 아니었다.

살이 빠질 대로 빠져서 심각한 저체중이었고, 근육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몸이 이러니 근력과 심폐지구력이 형편없으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지금 몸 상태로는 성역을 열어도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지.’

<성역>은 여는 게 다가 아니었다.

그 안에 든 고대의 권능들을 손에 넣기 위해선 최소 70레벨은 되어야 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레벨을 올리는 데 집중하면서,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론 두려움도 없진 않았다.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오토는 군필자이긴 했지만, 현역 시절에도 체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비전투부대에서 근무했던 탓에, 군 생활 중 체력단련의 비중이 높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전역 후에는 헬스의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으니,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한 일.

‘에라, 모르겠다. 죽기야 하겠냐.’

오토는 성큼성큼 연병장을 향해 나아갔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기에….

* * *

“추, 충성!”

전설의 교관 스푸너도 오토의 등장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상사 스푸너! 아침 체력단련 준비 중!”

“쉬어.”

“쉬엇!”

오토가 경례를 받아주자 스푸너가 물었다.

“전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체력 단련하려고요. 오늘부터 같이 할까 합니다.”

“예…?”

“왜요? 안 됩니까?”

“안 될 것이야 없지만…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국왕이신데….”

“상관없습니다. 체력은 곧 국력이라고 하잖아요. 운동하는데 계급과 신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같이 땀 흘리는 거죠.”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제 훈련 방식은….”

“병사들이랑 똑같이 대해주세요. 빡세게.”

“하, 하지만….”

“명령입니다.”

오토가 선을 그었다.

“같이 훈련하는 동안 계급과 신분을 반납하겠습니다. 그저 일개 병사라 생각하시고, 마음껏 굴려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 후 오토는 3분 만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헉! 허억! 헉! 헉! 허어억! 으억! 으어어어억!”

오토는 5킬로미터 달리기가 시작된 지 3분 만에 숨을 헐떡거리며 뒤처지기 시작했다.

“가, 같이… 가… 헉! 허어억! 으어어어억!”

오토가 주저앉으려던 찰나.

“지금 뭐하나!”

한 교관이 나타나 오토의 등을 떠밀었다.

“교육생은 고작 5킬로미터도 못 뛰나? 체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냔 말이다!”

“수, 숨이… 헉헉… 차, 차서… 허억… 허억….”

“5킬로미터 달리기는 의지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거리다! 일어나라! 어딜 주저앉나! 전쟁터에서도 그렇게 주저앉을 건가! 적들이 쫓아오는데도 이렇게 주저앉아서 그냥 뒈질 텐가!”

“아, 아닙니다!”

“그럼 뛰어라! 어서!”

“허억! 허억! 헉! 허억!”

결국, 오토는 함께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 중 맨 꼴찌로 연병장으로 되돌아왔다.

철푸덕!

연병장에 들어서자마자 체력이 다해 쓰러져버린 건 덤이었다.

‘콘도르를 처치하신 분이 고작 5킬로미터 달리기도 제대로 못 한다고?’

‘어검술도 쓰신다던 분이 왜 이러시지?’

병사들은 오토가 콘도르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하고, 또 어검술을 사용해 키메라를 처치한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강자가 고작 5킬로미터 달리기조차 간신히 해내는 저질 체력일 줄이야….

오토의 강함이 템빨이었단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병사들로서는 의아해하는 게 당연했다.

“허억… 허어어어억….”

오토는 연병장에 대짜로 뻗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오토는 쉴 수가 없었다.

“자! 다음은 팔굽혀펴기를 실시하도록 한다! 가볍게 20개씩 5세트 실시한다! 실시!”

“실시!”

팔굽혀펴기가 시작되고.

“파, 팔이… 안 움직… 크윽!”

“뭐하나! 일어나라! 더 세게 밀린 말이다! 본 교관이 밀어주도록 하겠다! 이 악물고 밀어라! 어서!”

“여어어어엉차아아아아아아!”

하지만 팔굽혀펴기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모두 철봉에 매달린다! 실시!”

“실시!”

“지금부터 턱걸이를 실시한다! 20회를 채우지 못하면 철봉 위에서 식사할 테니 그렇게 알도록!”

“악!”

팔굽혀펴기가 끝나고 턱걸이가 시작되었지만, 오토는 단 하나도 하지 못했다.

교관의 도움으로 팔굽혀펴기 100개는 어찌어찌 채웠지만, 팔 근육이 완전히 지쳐버려서 철봉에 매달리다가 철푸덕! 떨어진 것이다.

“의무병! 당장 전하를… 아니! 교육생을 의무대로 옮겨!”

“예!”

결국, 오토는 아침 체력단련을 완주하지 못했다.

의지는 충만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 * *

그날 저녁.

“끙… 끄응….”

오토는 아침 체력단련에서 무리를 한 덕분에 앓아눕고 말았다.

레벨과는 별개로, 저주의 후유증 때문에 기초체력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체력단련에서 퍼졌다는 게 사실인가?”

“갑자기 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끙.”

“내일 아침엔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겠군. 근육통은 운동한 날보다 그다음 날에 더 심해진다.”

“그, 그렇겠죠.”

“내가 도와주마.”

“네…?”

“어금니 꽉 깨물도록.”

“갑자기 그게 무슨….”

그 순간.

퍽!

올리브의 커다란 주먹이 오토의 등짝을 강타했다.

“커헉!”

오토는 올리브에게 한 대 맞고 토할 뻔했다.

내장을 뒤흔들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오토의 가련한 육체로는 올리브의 주먹에 실린 파괴력을 감당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가, 갑자기 왜 때리시는….”

그때.

[알림: 치료(물리)를 받았습니다!]

[알림: 근육통이 1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피로가 1 회복되었습니다!]

오토의 눈앞에 알 수 없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게 치료라고? 그냥 패는 건데?’

하지만 오토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퍽! 퍼억!

올리브의 주먹질이 온몸 구석구석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으악! 으아아아악!”

“엄살이다! 딱 대라!”

“꽤엑!”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가! 입 꽉 다물고 버텨라!”

“으아아악!”

올리브는 오토의 등, 배, 가슴, 팔, 다리 등 주요 근육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인정사정없이 주먹질을 퍼부어대었다.

[알림: 치료(물리)를 받았습니다!]

[알림: 근육통이 1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피로가 1 회복되었습니다!]

효과는 놀라웠다.

[알림: 근육통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피로가 완전히 풀렸습니다!]

[알림: 근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알림: 근지구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알림: 심폐기능이 향상되었습니다!]

30분 정도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은 대가로, 오토는 아침 체력단련에서 얻은 근육통과 피로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또, 근력·근지구력·심폐기능이 소폭 상승하는 작은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어떤가?”

“하나도 안 아픈데요? 개운하고?”

“우리 부족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치료법이다.”

“오오! 대단합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네…?”

“지금 네 몸은 전반적으로 신체 밸런스가 깨진 상태다. 거북목에 어깨는 굽었고, 허리 아치도 심하군. 좌우 밸런스도 맞지 않고.”

“그래요? 그럼 어떻게….”

“엎드려라.”

올리브가 침대를 가리켰다.

“가, 갑자기요?”

“누우라면 누울 것이지 뭘 그렇게 말이 많나!”

“으악!”

오토는 올리브에 의해 강제로 침대에 엎어졌다.

“이 악물고 참아라.”

올리브는 그렇게 말하더니, 엎드린 오토의 등 위에 올라탔다.

“지, 지금 뭐 하시는….”

오토가 당황하던 순간.

으드득!

“으아아아악!”

으득! 으드득!

“사, 살려ㅈ… 으아아아악!”

으드득!

올리브는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오토의 등·어깨·허리·허벅지·종아리 등을 골고루 마사지해주었다.

[알림: 골격이 바로잡힙니다!]

[알림: 뭉친 근육이 풀렸습니다!]

[알림: 근육이 유연해집니다!]

[알림: 관절 가동범위가 늘어났습니다!]

알고 보니, 올리브는 치료(물리)뿐 아니라 마사지에도 일가견이 있는 뛰어난 물리치료사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치료를 받는 당사자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것만 뺀다면….

“전하!”

그때, 오토의 비명을 들은 카미유가 침실로 난입해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

카미유는 오토가 올리브의 밑에 깔린 채 발버둥 치고 있는 걸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두 분… 오붓한 시간 보내시길….”

“야 이! 뭔 오붓한 시간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오토는 카미유에게 해명(?)을 하지 못했다.

올리브의 마사지가 너무 아파서, 그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