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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34)화 (35/401)

제34화

2시간 전.

“대공 전하. 성문 앞에 웬 청년이 찾아와 이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대공 전하를 뵙기를 청한다 합니다.”

콘라드 대공은 평소처럼 업무를 보던 중 오토가 보낸 목걸이를 받아보게 되었다.

“이 목걸이는….”

콘라드 대공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 청년이 성문 밖에서 날 만나길 청한다고 했나?”

“그렇다고 합니다.”

“지금 가겠다.”

콘라드 대공은 업무를 즉시 멈추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콘라드 대공의 손아귀는 오토가 보낸 목걸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수십 년 전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에게 선물했던 목걸이를….

* * *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어머니는 사실 쿤타치 가문의 가주인 콘라드 대공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과거 셀레나 폰 쿤타치는 우연히 오릭스 영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 대륙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을 지닌 가문이 한낱 시골 영지의 영주에게 딸을 시집보낼 리 있겠는가?

그래서 셀레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의 마나홀을 파괴하고, 검을 쥐던 오른손의 손목 힘줄을 끊어버리면서 가문과 완전히 의절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 방법까지 쓰지 않고서는, 오릭스 영주와 맺어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괘씸한! 이제 너는 내 딸이 아닐뿐더러, 우리 쿤타치의 일원도 아니다! 마음 같아선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으나, 죽은 네 어미를 생각해서 자비를 베풀겠다. 그러니 썩 꺼져라! 꼴도 보기도 싫으니!”

이에 분노한 콘라드 대공은 딸 셀레나를 쿤타치 가문에서 내쫓았고, 금단의 사랑은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 숨겨진 뒷이야기는 오토의 아버지인 <오릭스의 일기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오직 김도진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니 알아낼 수 있었던 아주 귀중한 정보였던 것이다.

“외조부라.”

콘라드 대공의 입에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놈은 누구이기에 감히 날 외조부라고 부르느냐?”

…라고 말했지만, 사실 콘라드는 오토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셀레나 그 아이를 쏙 빼닮았구나.’

오토의 얼굴에서 30년 전 내쫓았던 딸 셀레나의 모습이 언뜻 보였던 것이다.

“대공 전하께서 제 외조부님이시니, 외조부님이라 불렀을 뿐입니다.”

“미안하지만 내게는 딸이 없다. 그러니 나를 외조부라 부를 손주도 존재할 수가 없다.”

“비록 어머니께서 의절당하셨지만, 그렇다고 외조부님의 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감히 내 앞에서… 의절당한 가문의 배신자를 언급하는 것이냐?”

콘라드가 분노를 드러내던 순간.

“그저 부고를 전하러 왔을 뿐입니다.”

오토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최근 일은 아닙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콘라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에 침묵했다.

연을 끊고 연락 한번 없이 지낸 세월이 무려 30년.

그러나 갑작스레 들려온 딸의 부고는 콘라드 대공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랬… 던가.”

콘라드 대공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셀레나 그 아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이냐…?”

“오래되었습니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나. 자리를 옮기도록 하겠다.”

그렇게 오토는 콘라드 대공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말했지? 대놓고 들어갈 거라고?”

오토가 카미유의 귓가에 속삭였다.

“…….”

카미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에 할 말을 잃어버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토가 고귀한 쿤타치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았을 줄이야….

* * *

오토와 카미유는 성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정원으로 안내되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오토는 긴장했다.

콘라드는 사악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고귀한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쿤타치 가문의 가주이니만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네 어미는… 어떻게 죽은 것이냐.”

콘라드가 오토에게 물었다.

“저를 낳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정확히는 저주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뭣이?”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토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콘라드에게 말해주었다.

“이 미련한 것… 그렇게 죽으려고, 이 아비와 가문을 배신했던 것이냐….”

콘라드의 입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이를 먹긴 먹었네. 한 10년 전만 같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텐데.’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잠자코 기다렸다.

“알겠다. 이만 돌아가 보아라. 소식을 전했으니, 네 역할은 이제 끝났다.”

콘라드는 오토를 외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제 볼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어미의 부고 소식을 전했으면 됐지, 무슨 할 일이 더 있다는 말이냐? 설마 내가 널 손주로 인정이라도 할 줄 알았더냐?”

“그건 아닙니다.”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외조부님….”

“그리 부르지 말라 일렀다.”

“대공 전하께서는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가차 없으신 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가치를 증명하러 왔습니다.”

“가치라….”

콘라드의 표정에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무엇으로 네 가치를 증명할 것이냐? 내 기준은 높다. 어설픈 재주로는 나를 만족시키기는커녕, 실망만 안겨줄 터.”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냐? 네 가치를 증명할 수단이?”

“성역.”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역을 열겠습니다.”

그 순간.

‘이놈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콘라드는 제 귀를 의심했다.

* * *

무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쿤타치 가문에는 <성역>이라 불리는 아주 비밀스러운 공간이 존재했다.

그러나 쿤타치 가문 사람들조차도 <성역> 안에 정확히 뭐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엄청난 검술, 혹은 마법이 봉인되어 있다는 이야기만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올 뿐….

“방금 뭐라 했느냐?”

“성역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문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난 1,000년 동안 그 누구도 열지 못했던 곳을 열겠다는 말이냐?”

“예.”

“허어!”

콘라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성역을 열지 못한다면, 목숨을 내어놓겠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콘라드는 오토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목숨을 내어놓는다는 말에 일단 믿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네가 만약 성역을 연다면… 나는 너를 인정할 것이다. 성역을 연다는 것은 우리 가문에 크게 이바지를 하는 셈이니.”

“예, 대공 전하.”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만, 성역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느냐?”

“무적황제의 다섯 가지 권능이 잠들어 있습니다.”

“무, 무적황제?!”

콘라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적황제.

그는 무려 1,500년 전 활동했던 고대의 절대군주로서, 전설을 넘어 신화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바, 방금 무어라 했느냐? 무적황제라 했느냐?”

“예, 대공 전하.”

“그 무적황제의 권능들이… 무려 다섯 가지나 잠들어 있다? 성역 안에?”

“맞습니다.”

“맙소사….”

무적황제는 인간의 몸으로 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니만큼, 그 권능들 또한 무시무시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만약 오토가 <성역>을 열어 그 안에 봉인된 무적황제의 권능을 가지고 나올 수만 있다면….

‘우리 쿤타치가 대륙 제일의 가문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아니, 대륙통일도 못 할 게 뭐란 말인가?’

무적황제의 권능이란 아무리 냉철한 콘라드라도 동요하게끔 만드는,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제아무리 허무맹랑하다 할지라도….

“너는 이미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를 실망시켰다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콘라드가 오토에게 약간은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 실망하실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성역을 언제 열겠느냐.”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니, 3일 정도만 쉬었다가 열겠습니다.”

“3일이라… 우리 가문이 성역이 열리기를 기다린 게 어언 1,000년. 그 긴 세월을 기다렸는데 3일이 무슨 대수겠는가. 좋다. 여기 머무르면서 푹 쉬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토는 쿤타치 가문의 성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 * *

그날 밤.

오토와 카미유는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콘라드가 오토와 카미유를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이 철저히 대접하란 명령을 내렸기에, 여느 강대국의 왕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괜찮으시겠습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뭐가?”

“콘라드 대공이 지금은 이렇게 좋은 대접을 해주지만, 성역이 열린 뒤에 돌변하기라도 한다면….”

“그럴 일은 없어.”

오토가 웃으며 카미유를 안심시켰다.

“콘라드 대공은 그럴 사람이 아냐. 선은 지킨다고.”

“하지만….”

“물론 가문의 다른 친척들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적어도 콘라드 대공은 믿을 만해.”

“으음.”

“그리고 안전장치도 확실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안전장치가 있습니까?”

“있지.”

“설마 그 철퇴를 믿고….”

“그럴 리가.”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철퇴의 힘이 강력하긴 해도 여기서 살아남을 정도는 아냐. 콘라드 대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인물인지는 잘 알지?”

“젊었을 때 혈마라고 불렸단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콘라드는 현재 알려진 강자들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간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아무리 늙었다지만, 그래도 호랑이는 호랑이.

아무리 <카이로스의 징벌>의 힘을 빌려 쓴다고 한들 오토가 1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오토가 웃으며 말했다.

“뭡니까?”

“성역은 연 사람만 드나들 수 있어.”

“예…?!”

카미유가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응. 최초로 연 사람한테만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이 생겨. 그러니까 성역을 연다 한들,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야. 권능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고.”

“그렇다면….”

“쿤타치 가문에서 내 뒤통수를 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미쳤어? 성역에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내 뒤통수를 치게? 오히려 나한테 더 잘해줘야 할걸? 나한테 잘 보여야 성역에 봉인되어 있던 권능들 중에서 하나라도 얻어 배울 수 있을 테니까.”

“……!”

“나 바보 아니니까 걱정 붙들어 매.”

“알겠습니다.”

오토는 카미유를 안심시킨 후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뭐라? 셀레나의 아들이란 놈이 찾아왔다?”

“그렇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콘라드의 이복동생인 하비에르는 오토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주인 콘라드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현재 하비에르의 아들이 강력한 차기 가주 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콘라드의 외손자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콘라드가 오토를 쿤타치 가문의 차기 가주로 지명한다면,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물론 오토가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겠지만….

“놈이 묵고 있는 숙소 근처에 기사들을 배치하고, 철저히 감시하라. 알겠는가?”

“예!”

“이노옴. 뭘 주워 먹어보겠다고 굴러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허튼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라면 내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토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다.

혈통상 쿤타치 가문의 직계자손이 오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방계 혈족들이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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