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35)화 (36/401)

제35화

다음 날.

“전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카미유가 오토가 일어나자마자 다가와 말했다.

“분위기? 무슨 분위기?”

“간밤에 숙소 주변을 지키는 기사들의 숫자가 배는 늘어난 느낌입니다.”

“그래?”

“그들의 시선도 수상쩍습니다. 마치….”

“감시하는 거 같다고?”

“예.”

“그거 작은 외할아버지 짓일걸?”

오토는 누가 자신에게 기대를 하는지, 누가 자신을 경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긴. 하비에르 그 영감탱이가 날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지.’

오토는 하비에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다.

오토와 하비에르는 정치적으로 적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차기 가주로 만들려는 하비에르로서는 오토를 견제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외할아버지 말씀이십니까?”

“외조부님의 이복동생인데, 자기 아들을 차기 가주로 만들기 위해서 눈이 시뻘게져 있지. 그러니까 갑툭튀한 날 경계할 수밖에. 정통성을 따지자면 나야말로 차기 쿤타치 가문의 가주 자격이 있는 사람일 테니까.”

“아.”

“조심해야 할 건 외조부가 아니라 하비에르 그 양반이야.”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아들을 차기 가주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인간? 그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고,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것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

오토가 하비에르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말했다.

“날 눈엣가시로 여기고 제거하려고 들걸?”

“그럴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성역을 열고 그 안에 봉인된 무적황제의 권능을 손에 넣으신다면….”

“새 되는 거지. 자기 아들을 차기 가주로 만들겠다는 야망이 물거품이 될 테니까.”

“각별히 조심해야겠습니다.”

“당연하지.”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외조부님도 재끼려고 들걸?”

“반란… 말입니까?”

“응.”

“그게 가능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콘라드 대공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는 게….”

“가능해.”

오토가 딱 잘라 말했다.

“외조부님한테는 직계자손이 나밖에 없어. 반대로 하비에르의 아들은 이미 가문 사람들한테 차기 가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지지 세력이 탄탄하단 말씀이십니까?”

“응. 그러니까 내가 능력을 보여줘야 돼. 그래야 가문 사람들을 휘어잡지. 안 그러면 나도 죽고, 외조부님도 죽어.”

<성역>을 여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성역>을 여는 순간 쿤타치 가문 내부의 파벌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까지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오늘 당장이라도 날 암살하려고 들지도 모르지. 혹시나 내가 성역을 열기라도 하면 속된 말로 X되는 거니까.”

“그럼 어떡합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 밥은 먹고 살아야지.”

“…예.”

“여기는 뭐가 맛있으려나~?”

오토는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와중에도 식탐이 먼저인 모양이었다.

* * *

오토가 카미유와 함께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 무렵.

“어제 오후 셀레나의 아들 녀석이 찾아왔다.”

콘라드는 어전회의―가족회의에 가까운―를 열어 오토의 방문과 그 목적에 대해 가문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그런!”

“맙소사! 무적황제의 권능들이라니!”

쿤타치 가문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무려 1,000년 동안이나 베일에 휩싸인 <성역> 안에 들어있던 것이 무적황제의 권능이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됩니다!”

하비에르가 강하게 반말했다.

“가주님!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믿으십니까? 어딜 근본도 없는 놈의 지껄이는 말을….”

“근본이 없다?”

“……!”

“내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그, 그건….”

“아무리 의절당한 자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그 녀석에게 흐르는 피는 우리 쿤타치의 것이다. 아닌가?”

“마, 맞습니다.”

“감히 내 피를 이어받은 아이에게 근본이 없다니.”

화아악!

분노한 콘라드로부터 검붉은 오라가 뿜어져 나와 하비에르를 옥좼다.

“크, 크윽!”

고통스러워하는 하비에르.

“그럼 내게도 근본이 없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크윽!”

“그놈의 입. 늘 조심하라 일렀거늘.”

“죄, 죄송… 합니다… 가, 가주님… 제발… 크윽… 자비를….”

비록 한참 전에 전성기가 끝난 콘라드라지만, 그 무력은 여전했다.

이복동생인 하비에르쯤은 마력을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죽여 버리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 입, 조심하라. 마지막 경고다.”

“며,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믿겠다.”

콘라드는 그제야 하비에르를 옥죄던 마력을 거두고, 다시 쿤타치 가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 녀석의 말에 신빙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이 목숨까지 걸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속는 셈 치고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투자가 되겠지. 이틀 후에 성역을 열 것이라고 하니, 일단 지켜본 보도록 한다.”

쿤타치 가문 사람들은 가주인 콘라드의 말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동의를 표시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셀레나의 아들이 성역을 열 열쇠를 가지고 왔다니…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 것 아니오?”

“나는 믿지 않소! 무적황제의 권능이라니! 아무리 성역이라 한들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오!”

“거참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쿤타치 가문 사람들은 콘라드가 퇴장하자마자 저마다 한 마디씩을 떠들어대었다.

의견은 분분했다.

<성역>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오토의 말이 허풍에 불과할 거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콘라드… 이 빌어먹을 놈….’

한편, 하비에르는 콘라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나에게 또 이런 굴욕을 주다니… 두고 보자… 언제까지 네놈이 날 짓밟을 수 있을 줄 아느냐!!!’

하비에르는 자신의 아들을 차기 가주에 앉혀놓자마자 콘라드에게 복수할 생각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이복동생이란 이유로 업신여김을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려는 것이다.

* * *

“이 개 같은 새끼이이이!!!”

하비에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분노를 토해내었다.

“다들 지켜보는 앞에서 나에게 모욕을 주다니! 콘라드! 이 빌어먹을 개새끼야! 내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내가 쿤타치 가문의 지배자가 되면! 그 즉시 그 빌어먹을 놈부터 처단할 것이야!”

“아버님! 고정하십시오!”

하비에르의 아들이자 가장 강력한 차기 가주 후보인 쿠조가 뜯어말렸다.

“결국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고정하십시오. 듣는 귀가 많습니다.”

“크흠!!!”

“그나저나 셀레나의 아들놈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뭘 어째?”

하비에르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는 그놈의 말을 믿느냐?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르는 놈이 성역을 연다는 것을?”

“물론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놈을 신경 쓰느냐!”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만약 셀레나의 아들이 성역을 열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그, 그건….”

하비에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토가 <성역>을 열어 그 안에 봉인되어 있는 무적황제의 권능을 손에 넣는 날에는….

“저도 믿기지는 않지만, 그놈이 진짜 성역을 열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아시질 않습니까?”

교활한 하비에르는 그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어떻게 될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콘라드는 <성역>이 열리면 오토를 쿤타치 가문의 정식 일원으로 인정할 테고, 그걸 계기로 후계자를 갈아치우려 들 것이 분명했다.

하비에르와 쿠조 부자를 천천히 압박하면서, 오토를 차기 가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님.”

쿠조가 하비에르에게 말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결단…?”

“만에 하나라도 성역이 열리면 저나 아버지나 끝장입니다. 큰아버지가 저와 아버지를 살려둘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아시질 않습니까?”

“그, 그렇지.”

“성역이 열리든 안 열리든 그건 저와 아버지에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네 말이 옳다. 성역은 열리더라도 우리 손에 열려야 하는 것이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놈의 손에 열려선 안 될 일이다. 그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놈이 셀레나의 아들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제거해야 합니다.”

쿠조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저와 아버지가 기다린 세월이 얼마입니까? 왜 큰아버지가 여태 차기 가주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버텼겠습니까? 다 저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주기 싫어서가 아닙니까? 여기서 성역이 열리기라도 하면, 그간 참아왔던 세월이 물거품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셀레나의 아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놈을 어떻게 제거한다는 말이냐? 섣불리 손을 썼다가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둔 수가 있지 않습니까.”

“……!”

“어차피 셀레나의 아들이라면 언젠가는 제거해야 할 존재입니다. 이번 기회에 잠재적 위험 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겁니다. 그러면 쿤타치 가문은 아버지와 제 것이 될 겁니다.”

“좋다.”

결국, 하비에르가 결단을 내렸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그놈을 제거해야겠구나.”

“언제 일을 치르실 생각이십니까?”

“오늘 밤이다. 괜히 뜸을 들였다가 때를 놓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그렇게 하비에르와 그의 아들 쿠조는 오토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로서는 오토가 <성역>을 여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 * *

그날 오후.

“가자.”

“어디 가십니까?”

“가보면 알아.”

오토는 카미유를 끌고 숙소를 나섰다.

“어디 가십니까.”

호위를 맡은 기사들 중 하나도 오토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구경 좀 하려고요.”

“구경… 말씀이십니까?”

“외갓집에 왔는데 좀 둘러보면 안 되나요?”

“그, 그야….”

기사는 오토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콘라드로부터 오토를 지키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어디 가지 못 하게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좀 구경시켜 주시죠. 방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네요.”

“알겠습니다.”

오토는 기사의 안내에 따라 성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여기서부터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기사들이 오토의 앞을 가로막았다.

왜냐하면, 오토가 가려는 방향에 <성역>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못 들어간다는 겁니까? 어차피 제가 이틀 후에 열기로 했는데.”

“그건….”

“사전 답사한다고 생각해주시죠. 괜히 못 들어가게 할 이유도 없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딱히 오토를 막지 않았다.

사실 <성역>의 입구는 형식상 통제되어 있을 뿐 쿤타치 가문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구경이 가능했다.

왜?

어차피 지난 1,000년 동안 누구도 열지 못했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도 아무도 못 여는데, 괜히 삼엄하게 경비를 세울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인력 낭비일 뿐인데.

“이야~ 멋있다~.”

오토가 원형으로 된 <성역>의 입구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구경하는 사이.

‘설마.’

카미유는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간 오토의 행동 패턴을 떠올려 본 결과….

‘지금…?’

바로 그때.

스으으!

<성역> 입구가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카미유의 생각대로, 오토가 그 틈을 타고 <성역>을 열어버린 것이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