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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38)화 (39/401)

제38화

오토는 처음 정수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을 시작으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두들겨 맞았다.

퍽! 퍼억!

아칸은 쓰러진 오토를 아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 실망이다!

“악!”

- 반격조차 못 하다니!

“자, 잠깐! 잠깐만요! 일단 대화로 원만하게… 으악!”

- 성역에 든 자의 수준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가!

“때린 데 또 때리ㅈ… 악!”

오토는 아칸이 휘두르는 검―이었지만 사실은 몽둥이에 가까운―을 피하기 위해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하지만 그런 허접한 움직임으로 아칸이 휘두르는 검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쏟아지는 매타작.

아칸의 날 없는 검은 오토의 팔·다리·어깨·허리·머리를 가리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제, 제발! 으아아아악!”

오토는 울고불고 애원했지만, 아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칸은 인간이 아닌 갑옷에 깃든 망령과도 같은 존재.

이곳 <성역>에 든 자에게 무적의 검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자이니만큼, 인정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성역>에 든 자에게 무적의 검을 가르칠 뿐….

“제, 제발 그만해… 나… 나… 아파… 이러다 나 죽어… 나… 나… 죽는단 말야… 나… 너무 아파… 그, 그만해에에에….”

엄살이 아니었다.

아칸의 검은 가혹했다.

벌써 피부 곳곳이 찢어지고, 근육이 뭉개져 있었다.

뼈도 몇 군데는 부러져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었다.

“헉, 허억, 헉….”

그 와중에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바람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이런 X발… 설마설마했더니 이젠 맞아 죽게 생겼네….’

오토는 또다시 게임과 현실의 차이점을 뼈저리게 느끼며, 치를 떨었다.

게임으로 아칸을 만났을 땐 곧바로 무적의 검을 배웠었건만….

‘이젠 진짜 죽는구나….’

오토는 자신의 목숨이 다했다고 생각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진 마당에 폐가 찢어져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

아무리 <신마지체>를 얻었다고 한들 70레벨 따리가 <성역>의 파수꾼과 같은 아칸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맞아 죽을 뿐….

- 일어나라! 반격하란 말이다!

카이로스의 응원이 들려왔지만, 오토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 이런 젠장!

카이로스는 오토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오토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려서, 카이로스가 대신 아칸과 싸워주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바로 그때.

스으으!

홀 바닥에 원형으로 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은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알림: <성역>이 당신을 축북합니다!]

[알림: 생명력이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꺼져가던 오토의 생명의 다시 활활 타올랐다.

“어? 뭐지?”

오토는 만신창이던 몸이 회복되자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게 사람인지 다진 고깃덩이인지 분간이 안 갔었는데, 지금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해져 있었던 것이다.

- 성역은….

아칸이 오토에게 말했다.

- 성역에 든 자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

- 적어도 나 아칸에게 무적의 검을 배울 때까지… 그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것이다.

“그, 그래요…?”

오토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건 다행이네요… 진짜 죽는 줄 알았… 으악!”

오토는 말을 하다 말고 아칸이 검―날이 없으니 몽둥이에 가까웠지만―을 휘두르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 다시 가겠다.

“자, 잠깐! 숨 쉴 틈은… 악!”

- 배워라! 이 대련은 그대가 무적의 검을 배우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영원히!

“여, 영원히…?”

- 그렇다!

아칸은 그렇게 소리치며 오토를 다시 먼지 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 * *

오토는 아칸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아주 뼈저리게 깨달았다.

‘…영원히 패겠단 소리잖아.’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칸은 엄청나게 빨랐고, 또 엄청나게 강했다.

때문에, 오토는 죽기 일보 직전까지 두들겨 맞고 다시 부활하는 과정을 무한으로 반복해야만 했다.

무적의 검을 배우기는커녕, 제 한 몸 지키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무적의 검은 개뿔… 이건 그냥 고문이잖아….”

49번째로 부활한 오토는 억울함에 울먹였다.

단언컨대, 이건 고문이 맞았다.

오토의 능력으로는 아칸과 대련은커녕, 공격을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말은….

‘난 여기서 영원히 처맞기만 해야 하는 건가…?’

그때.

- 어이, 뺀질이.

몇 시간 동안 조용하던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말을 걸어왔다.

“왜….”

- 놈의 움직임을 계속 봐라.

“뭐…?”

- 저 깡통의 검술은 완벽하다. 이건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깡통의 검술이 너무 완벽한 거다.

“그래서?”

- 그냥 계속 맞으면서 저 깡통 놈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익혀라.

“뭔 소리야?”

- 이건 어떻게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맞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이건 몸으로 익히는 수련이다. 무식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그게 무슨….”

- 마음 같아선 내가 대신해주고 싶지만, 그러면 네 수련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몸으로 부딪쳐라. 어차피 뒈지지도 않는데, 뭐가 무서운 것이냐? 고통은 참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저 깡통 몸의 움직임을 따라 하려고만 해봐라.

“하지만….”

- 저 깡통 놈이 네 녀석을 죽이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죽였을 것이다. 만약 검이 날이 서 있었다면? 네놈은 이미 수천 번도 더 죽었다! 이 시련의 의도를 파악하란 말이다!

“알겠어!”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았다.

카이로스는 왕년에 철퇴 한 자루로 대륙의 3분의 1을 점령했던 패왕이었고, 또한 황제였다.

역사가들의 평가야 어떻든, 그 무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믿어보자.’

오토는 카이로스를 믿고, 아무런 생각 없이 아칸과의 대련에 임해보기로 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크윽….”

죽도록 맞고 회복되기를 반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말대로, 고통도 점점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몸이 회복되기에, 고통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움직임을 따라 하면서 반격해라! 깡통 놈이 빠르고 강한 게 아니다! 완벽한 검술을 구사하고 있을 뿐!

“반격…?”

- 계속 피하고 막으려고 하니, 얻어맞는 거다! 이 멍청한 놈아! 반격을 해서 공격의 주도권을 빼앗아 와야지! 놈이 네 공격을 막거나, 피하게끔 만들어야지! 최선의 방어는 곧 공격이란 말도 못 들어봤느냐!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언을 곱씹었다.

‘반격… 반격이라… 하긴. 내가 공격을 해야, 아칸도 나를 마음껏 패지 못하겠지. 흔해 빠진 말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언에 따라 방어나 회피보다는 공격을 시도했다.

- 음! 답을 찾아가는 것인가!

오토가 본격적으로 반항하기 시작하자 아칸의 투구 밑에서 만족스럽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하지만 이제 고작 첫 발걸음을 떼었을 뿐.

“크악!”

- 배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으아아아악!”

결과는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검술의 ㄱ자도 모르는 오토가 카이로스의 조언 몇 마디를 듣고 무적의 검술을 단숨에 배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신마지체>를 이루어 검술 숙련도가 25퍼센트 증가한다고는 해도….

* * *

오토가 <성역>에 들어간 지 5일째 되던 날.

혹시나 싶어 <성역>을 방문한 콘라드는 딱히 특이사항이 없자 카미유에게 관심을 보였다.

“카미유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들어본 적이 있다. 기사도 정신이 투철하다지? 많은 군주들이 자네를 탐냈다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좋은 제안이 많았을 텐데. 뿌리친 이유가 뭔가.”

“이미 한 번 충성을 맹세하고, 기사 작위를 받은 몸입니다. 출세를 위해 그 맹세를 저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듣던 대로 훌륭하군.”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라?”

“기사는 군주에게 충성하는 존재. 충성의 맹세를 지킨다고 하여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니질 않습니까.”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콘라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기사도 정신이 강조되는 이유는 그만큼 지켜지지 않기 때문일세.”

“…….”

“개인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군주를 배신하는 기사들이 널리고 널렸네. 이런 세상에서 주목받던 유망주인 자네가 한낱 시골 영지의 개망나니 곁에 남았다는 건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일 아니겠나.”

그 순간.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카미유는 콘라드의 말을 듣고 놀랐다.

쿤타치 가문의 정보력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이오타 영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일단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단 며칠 만에 오토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알아낸 것이다.

“이보게.”

“예, 대공 전하.”

“잠시 시간이 있으면 나와 차 한잔하지.”

“하지만….”

“여긴 괜찮을 걸세. 혹시 그사이에 녀석이 성역에서 나온다고 해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라 내 약속함세.”

현재 <성역> 앞은 가주인 콘라드 직속 친위대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서, 쿤타치 가문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감히 접근조차 못 하는 금지구역으로 변해 있었다.

“자네에게 듣고 싶네.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그리 말씀하신다면….”

카미유는 콘라드를 따라 잠시 <성역> 앞을 떠났다.

콘라드에 오토에 대해 궁금해하는 듯하니, 좋은 이야기들을 좀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 *

오토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처음 48시간 동안은 어느 정도 시간의 흐름을 의식한 것 같았는데, 그 뒤로는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1분 1초도 쉬지 않고 아칸에게 대련을 빙자한 매타작을 당하다 보니까, 모든 걸 망각한 채 오직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이나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또, 졸리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배고픔이나 졸림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대소변과 같은 생리현상을 겪는 인간이란 사실마저도 잊은 것만 같았다.

오직 검, 검, 그리고 검.

카이로스의 조언대로, 아칸의 움직임을 보고 배우는 데만 집중했다.

- 허리를 좀 더 틀어야지! 뭐 하나!

‘나도 노력하고 있어!’

- 느리다! 느려! 배움이 이렇게 느려서 언제 강자가 되겠나!

‘잔소리는 사절이거든?’

- 쯧쯧쯧!

이따금 카이로스와 티격태격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을 뿐….

그러던 어느 때.

쾅!

오토의 검이 아칸의 왼쪽 목 언저리에 명중했다.

“……!”

오토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한 걸 보고 스스로 놀랐다.

그 공격이 아칸과의 대련을 시작한 이후 첫 유효타였기 때문이다.

“성공… 했다?”

- 드디어 배웠군.

아칸의 투구 밑에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 배워…? 내가?”

- 그렇다.

“이제 고작 한 대 때렸을 뿐이잖아?”

- 그 한 대가 시작이다. 그대는 이미 무적의 검을 배웠다. 앞으로도 계속 갈고 닦아야겠지만… 기초는 닦은 셈이다.

“에이~ 설마~.”

그때.

- 뺀질이! 축하한다! 

카이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와 오토를 축하해주었다.

- 무적의 검을 배우는 데 성공하다니! 솔직히 놀랐다!

‘내, 내가? 배웠다고? 진짜로?’

- 끌끌! 아직 감이 안 오는 모양이로군!

‘말이 돼?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 5년이면 짧은 시간은 아닐 텐데? 물론 이 완벽한 검술의 기초를 닦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볼 수 없겠지. 다른 놈들 같았으면 10년, 아니 평생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으응…?’

- 뺀질이. 네놈은 해냈다. 5년 만에 완벽한 검술의 기초를 닦았으니, 이만하면 빠른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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