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오토의 중독 증상은 매우 심각했다.
칼립소의 독은 화학적 물질이 아닌 마법적인 저주에 가까웠기에, 평범한 해독 포션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지독한 독성은 평생 처음 봅니다.”
오죽했으면 수준 높은 쿤타치 가문의 치료 전문 마법사들조차 애를 먹었을 정도.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러서라. 내 직접 치료할 터이니.”
황급히 달려온 콘라드가 치료사들을 밀치고 직접 오토의 상태를 살폈다.
“지독한 저주로군.”
콘라드는 뛰어난 마검사답게 오토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다들 물러서 있어라. 지금부터 해독 마법을 사용할 것이다.”
콘라드는 손수 오토의 몸에 마법진을 새기고, 주문을 외웠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여긴….”
오토가 눈을 떴다.
“이제 좀 정신이 드느냐?”
“대공… 전하.”
“어허.”
콘라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할아비를 그리 딱딱한 호칭으로 불러서야 되겠느냐?”
“…예?”
“앞으로 외조부님이라 부르도록 하여라.”
오토를 대하는 콘라드의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성역>을 열고 나니 쿤타치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손주 대우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알림: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알림: 당신에 대한 콘라드의 호감도 상태가 <따스한 애정>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콘라드는 철저히 실력을 추구하는 인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눈곱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인정하는 인물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또 따뜻한 이중적인 면도 있었다.
오토가 <성역>을 연 것으로도 모자라 탐사를 마치고 무사히―중독 증세로 인해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귀환한 이상, 콘라드의 호감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예, 외조부님.”
오토는 그런 콘라드의 달라진 모습에 씩 웃으며 말했다.
“몸은 어떻느냐.”
“개운합니다.”
“그럴 것이다. 내가 직접 치료했는데 어련하겠느냐.”
“역시 외조부님이십니다. 헤헤.”
“그래, 그런데… 성역 안은 어땠느냐?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느냐?”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무적황제의 권능들이 있었습니다.”
“오오! 그래서 손에 넣은 것이냐?”
“아직 다 넣지는 못했습니다.”
“으음!”
“그래도 무적황제의 검술과 권능 하나는 얻었습니다.”
“무적황제의 검술…!”
콘라드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세상에 뛰어난 검술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 무엇도 무적황제의 검술에 견줄 순 없는 법.
그 검술을 배워왔다니, 콘라드가 기대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로 무적황제의 검술을 익혔느냐?”
“예, 외조부님.”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무적황제의 검술을 익혔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게 그러니까….”
오토는 콘라드에게 안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맙소사… 5년을 수련했다는 말이냐? 그 며칠 사이에?”
“예, 외조부님.”
“얼마나 수련했느냐?”
“이제 겨우 기초만을 닦았을 뿐입니다.”
“훌륭하구나. 무적황제의 검술이라면 기초를 닦는데 5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니.”
콘라드는 오토의 말에 실망하지 않았다.
콘라드는 마검사.
마법사이면서 또한 검사[劍士]이기도 한 존재.
오랜 세월 깊이 있게 검을 수련해온 만큼, 5년 동안 기초를 닦았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권능은 어떤 것을 얻었느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얻은 이 권능에 대해서 알아갈 시간이.”
“하긴.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니 그럴 것이다. 알겠다. 보채지 않으마. 당분간 푹 쉬면서 무적황제의 검술과 권능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여라. 대신 진전이 있을 때마다, 이 외조부에게 보고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외조부님.”
“푹 쉬도록 하여라.”
병실을 나서는 콘라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다음 날.
컨디션을 회복한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마터면 큰일 나실 뻔했습니다. 이제 다 나으신 겁니까?”
“응. 외조부님이 치료해줘서 다 나았어. 어제 푹 잤더니 오늘은 완전 멀쩡해.”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그나저나 이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조지지?”
“예…?”
“하비에르랑 쿠조 말야.”
오토는 <성역>을 나서자마자 적들을 박살 낼 생각부터 했다.
이제부터는 전쟁이었다.
콘라드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테지만, 하비에르와 쿠조가 이대로 물러설 리 없었다.
앞으로 온갖 더러운 방법들을 동원해 오토를 제거하려들 테고, 수틀리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여간 골치 아프다니까, 그것들은.”
오토가 투덜거리던 그때.
웅! 우웅!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철퇴가 강하게 진동했다.
- 애송이! 이제 약속을 지켜라! 설마 짐과의 약속을 어길 셈이냐!
- 당장 육체를 내놓아라!
- 대답하지 못할까!
카이로스의 목소리가 오토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아 좀!”
오토가 팍! 인상을 썼다.
“예?”
당황한 카미유.
“아, 신경 쓰지 마. 얘가 자꾸 보채서.”
오토가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철퇴를 가리키고는, 카이로스에게 빽! 소리쳤다.
“얼마나 됐다고 보채냐! 성역에서 나온 지 아직 24시간도 안 됐어! 나도 밥 좀 먹자! 밥! 나더러 눈 뜨자마자 빈속에 술부터 들이부으란 거냐! 그리고 아직 점심때도 안 됐어! 지금 마시면 낮술도 아냐! 해장술이라고!”
- 무식한 놈 같으니. 술은 언제 마셔도 옳다는 것을 모르느냐? 아침이면 어떻고, 낮이면 어떻다는 것이냐?
“좀 기다려! 이따 밤 되면 마시게 해줄 테니까!”
- 그게 정말이냐?
“약속한다니까?!”
- 크흠! 그렇다면 짐이 넓은 아량으로….
“웃기시네. 애새끼처럼 징징거린 주제에 점잔 떨기는.”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이로스와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술 못 처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아니지. 이건 술 못 처먹고 죽은 귀신 본인인 거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술 한잔하게 몸 좀 빌려 달래.”
“아?”
“이따 저녁에 술 한잔하게 해주려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카미유가 조금 걱정이 되는지 물었다.
“걱정 안 해도 돼. 몸을 뺏으려고 했다면, 기회는 여러 번 있었어. 근데 그 대신에 날 도와주더라고. 고마운 마음에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지.”
“알겠습니다.”
“일단 먹던 밥이나 마저 먹자.”
“예, 전하.”
* * *
오토가 <성역>에서 무적황제의 검술과 권능 하나를 습득했단 소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쿤타치 가문 전체에 퍼져나갔다.
덕분에 날벼락을 맞게 된 하비에르와 쿠조 부자는 아주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오토가 정식으로 쿤타치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나아가 차기 가주 자리까지 꿰차는 건 시간문제.
콘라드의 후계자가 없었던 덕분에 쿤타치 가문을 꿀꺽하기 직전이었던 하비에르·쿠조 부자로서는 다 된 밥상이 통째로 엎어져 버린 격.
“아버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라면 우리 부자는….”
“누가 앉아서 죽어준다더냐?”
하비에르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암살을 밀어붙이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이다.”
하비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빌어먹을 놈이 성역을 열기 전에 뒈지든, 지금 뒈지든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어쨌든 뒈지면 그만인 것을.”
“그, 그렇긴 합니다만….”
쿠조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놈이 성역에서 돌아온 이상, 호위 병력이 더 늘어났을 겁니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호위 병력이 늘어났다고 해서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
“다 방법이 있으니, 너는 이 아비만 믿으면 된다. 알겠느냐?”
“예, 아버님.”
하비에르는 아들 쿠조를 안심시킨 후 살기 넘치는 눈을 빛내며 이를 갈았다.
“어디서 굴러먹다 기어들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네놈은 모르겠지… 네놈이 이미 시체나 다름없다는 것을….”
* * *
아침 식사를 마친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훈련장으로 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보자….’
스킬창을 열었다.
[칼립소의 눈]
무적황제의 다섯 가지 권능 중 하나이자, 사악한 마녀 칼립소의 핵심 스킬 체계.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각 스킬의 위력이 강해지며, 또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개수도 늘어납니다.
- 투시 (사용가능)
- 석화의 눈 (사용불가)
- 맹독응시 (사용불가)
- 영혼강탈 (사용불가)
- 즉사의 마안 (사용불가)
무적황제의 권능은 단순히 스킬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각 권능 당 적게는 3개, 많게는 5개까지의 스킬이 담긴 스킬체계였던 것이다.
[투시]
<칼립소의 눈> 스킬체계에 속한 스킬.
시력을 극대화시켜 극한의 상황에서도 시야를 확보해준다.
참고 : 캐릭터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투시 범위와 마나 소모량이 줄어듭니다.
‘되나?’
오토는 <투시>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스으으!
그러자 오토의 두 눈이 어두운 초록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모든 사물이 반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레벨이 낮아서 아주 두꺼운 물체나 벽을 완벽하게 투시할 순 없었지만, 얇은 옷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눈은 또 왜 초록색이십니까?”
카미유가 물었다.
“카미유.”
“예…?”
“오늘 빨간색 팬티 입었네?”
“……?”
“아주 음란해? 안 그런 척하더니, 앙큼하게 야시시한 색이나 입고?”
“절대 아닙니다.”
카미유가 강하게 부정했다.
“제가 빨간색 속옷을 입었다고 누가 그럽니까?”
“다 보이는데?”
“예…?”
“다 보인다고.”
오토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자신의 눈가에 가져다 대며 히죽 웃었다.
“이제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그 순간.
쒜엑!
카미유가 번개처럼 목검을 휘둘렀다.
따악!
오토가 목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운이 좋으십니다.”
카미유가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실력인데?”
히죽 웃는 오토.
“남 속옷을 훔쳐보는 건… 더러운 성범죄자들이나 저지르는 짓입니다.”
“에이~ 그냥 잘 되나 시험해본 거지~.”
“버릇을 고쳐드리겠습니다.”
카미유가 오토를 죽을 기세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 따악! 딱!
오토는 카미유의 공격을 모조리 막거나 피해버렸다.
“정말로… 검술을 배운 겁니까? 성역에서?”
검술의 ㄱ자도 모르던 오토가 공격을 너무나도 손쉽게 방어해낼 줄이야….
“그럼 내가 뻥 쳐?”
“좋습니다. 얼마나 강해지셨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련.
‘엄청난 발전이다.’
카미유는 자신과 대등하게 대련하는 오토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단 며칠 사이에 이렇게나 강해질 줄이야….
그러나 아직은 카미유를 꺾을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무적검법>의 기초를 닦은 것에 불과하기에, 앞으로도 갈 길이 구만리 같았으므로….
20분 뒤.
따악!
카미유의 목검이 오토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악!”
비명을 지르는 오토.
“방금 죽으신 겁니다.”
“으으… 머리야… 아이고오… 나 죽네….”
“다신 제 속옷을 훔쳐보지 마십시오.”
“으으으으….”
카미유는 싸늘히 말하고는, 오토를 남겨두고 훈련장을 떠났다.
‘이대로라면 금방 따라잡힌다. 아무래도 수련을 다시 시작해야겠어.’
카미유는 오토의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에 큰 자극을 받았다.
조금 전 대련에서 오토가 보여주었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서,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군주인 오토가 기사인 자신인 보호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날지도 몰랐으니까.
* * *
그날 저녁.
쿠조는 머리를 좀 식히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아버지 하비에르가 오토를 제거할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기는 했지만,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서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왜 가주의 친위대가 저기에?’
쿠조는 술판이 열린 거리의 술집에 가주 콘라드의 친위대가 경호를 서고 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저, 저놈은!’
쿠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퍼마시고 있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처음 보는 금발의 미청년이 가주 친위대의 호위를 받고 있다?
그놈이 분명했다.
<성역>을 열어 쿠조의 차기 후계자 자리를 위태롭게 만든 놈이….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분노한 쿠조는 술판이 벌어진 곳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차기 후계자 자리를 엎어버린 놈의 상판대기라도 보고 싶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