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다음 날 아침.
쿤타치 공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하비에르·쿠조 부자가 반란 혐의로 체포당했으니, 수뇌부들이 크게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앞으로 피 튀기는 후계자 쟁탈전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끝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수뇌부들은 입장은 반으로 나뉘었다.
“끌끌끌! 드디어 우리 쿤타치 가문에 정당한 후계자가 생기는구려!”
“정말 다행이오! 껄껄껄!”
대다수의 수뇌부들은 이 소식을 반겼다.
그도 그럴 것이, 하비에르·쿠조 부자가 쿤타치 가문의 주인이 되는 걸 반겼던 사람은 애초에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X됐다… 이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하는 것이거늘….’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아… 썩은 동아줄이었구나.’
하비에르·쿠조 부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공포에 떨었다.
하비에르·쿠조 부자가 숙청당한 이상 그들이라고 무사할 리 없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같은 신세가 될 것이 뻔했던 것이다.
“끌끌끌! 좋은 아침이오!”
“속이 안 좋소? 아침부터 표정들이 영 좋지 못하구려! 간밤에 잠이라도 설치긴 게요?”
덕분에 하비에르·쿠조 부자를 지지했던 이들은 아침 회의에 참석하면서 은근한 조롱을 받았다.
“…….”
“…….”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장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반대파에서 조롱을 좀 한다고 한들 귀에 들어올 리도 없었고.
또, 고작 그 정도로 동요하기엔 아침 회의의 풍경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공국의 왕이자 가문의 수장인 콘라드가 아니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오토가 무려 옥좌에 앉은 채 수뇌부들을 반겼다.
콘라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확했다.
아직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콘라드가 오토를 후계자로 완전히 인정했단 뜻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옥좌를 내어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토의 앞에는 하비에르·쿠조 부자가 꽁꽁 묶인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읍! 으읍! 읍읍! 읍!(이 개새끼야! 죽일 거면 빨리 죽여라!)”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으읍!(얼마나 더 우릴 욕보이려는 거냐! 이 X발놈아!)”
하비에르·쿠조 부자는 악을 써댔지만 오토가 재갈을 물린 덕분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다.
단 한 마디의 개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이유로, 오토가 아예 말을 할 권리조차 박탈해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회의는 제가 할아버님을 대신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토는 수뇌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슬쩍 눈짓했다.
그러자 카미유가 나서서 하비에르·쿠조 부자의 죄목―당연히 부풀려진―을 읊었다.
“…하여 죄인 하비에르와 쿠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형에 처하도록 한다.”
판결이 내려진 뒤.
“솔직히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죄인들과 가깝게 지내시던 분들이 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토가 하비에르·쿠조 부자와 결탁했던 이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오싹!
공포에 질린 사람들.
‘이, 이렇게 죽는 건가….’
‘죽는구나….’
하지만 오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대공 전하께서는 여러분들이 지난날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벌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쿤타치 가문의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해서 그랬다는 걸 이해하시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신 겁니다. 우리는 결국 다 같은 쿤타치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러니 지난날은 덮어두고, 앞으로는 위대한 쿤타치 가문이 옛 영광을 되찾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알겠습니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오토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뇌부들이 일제히 넙죽 엎드려 절했다.
“그리고 죄인들은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처형토록 하세요. 오늘 아침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 혹시.”
오토가 덧붙였다.
“저한테 성의를 좀 표시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따 점심시간 끝나고 찾아오시면 제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순간.
빠직!
카미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 이 미친놈아! 대놓고 뇌물을 받겠다고 말하면 어떡해!!!’
어째 잘 나가나 싶더라니….
* * *
“껄껄껄껄!”
콘라드는 아침 회의 결과를 듣고 크게 만족했다.
아주 기대 이상이었다.
오토는 하비에르·쿠조 부자를 공개적으로 처형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였을뿐더러, 그들을 지지하던 이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오토는 하비에르·쿠조 부자를 지지하던 이들까지 처형하지는 않았다.
오토가 자비로워서?
그럴 리가!
오토는 쿤타치 가문의 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기회를 준 것뿐이었다.
어차피 후계 구도가 완벽하게 기울어져 버린 이상 하비에르·쿠조 부자를 지지하던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0.0001퍼센트조차 없을 테니, 무리해서 숙청을 벌일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콘라드를 대신해서 하비에르·쿠조 부자를 공개적으로 처형한 덕분에, 오토는 수뇌부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아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제 쿤타치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는 오토라는 걸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그리 좋으십니까?”
“암! 좋고말고!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크핫핫핫핫~!!!”
친위대장의 물음에 콘라드가 크게 웃었다.
“자리를 만들어 주었더니 가신들과 가문의 혈족들을 아주 제대로 휘어잡지 않았는가? 지략도 뛰어나고 정치력 또한 훌륭하기 짝이 없구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디 그뿐인가? 무적황제의 권능까지 손에 넣었으니, 무력이 아쉬운 것도 결국 시간문제에 불과할 터! 우리 가문이 옛 영광을 되찾는 것 역시 시간문제일 뿐일세.”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대공 전하.”
“껄껄껄~!!!”
콘라드는 불과 1주일 남짓한 시간 만에 오토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처음엔 오토에게 한없이 차가웠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외할아버지로 변한 것이다.
* * *
그날 오후.
쿤타치 가문의 수뇌부들은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오토가 머무르는 곳으로 앞다투어 달려갔다.
이제 오토가 쿤타치 가문을 이어받으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기에, 미리미리 줄을 대놓으려는 것이다.
- 저한테 성의를 좀 표시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따 점심시간 끝나고 찾아오시면 제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오토가 노골적으로 뇌물을 바칠 시간을 주기도 했고.
“소가주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이고~ 이런 귀한걸~.”
오토는 그들이 바치는 뇌물을 꼬박꼬박 다 받아먹었다.
“…37번 어디 계십니까? 이리 나오십시오.”
“여기 있소이다!”
카미유는 아예 번호표를 만들어 쿤타치 가문의 수뇌부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대기열을 관리했다.
‘…내가 이러려고 기사가 된 건 아닌데.’
하다 하다 이제는 뇌물을 받는 것까지 돕게 될 줄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아~ 이런 건 별론데~ 저는 현금이 좋은데~.”
“그, 그렇습니까?”
“어째 성의가 좀 부족하신 거 같네요?”
“아, 아닙니다! 다시 준비해 오겠습니다!”
오토는 작정하고 한 몫 단단히 잡으려는 듯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수뇌부들의 주머니를 터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콘라드의 절대적인 신임과 지지를 받게 된 이상 수뇌부의 충성은 물론이요, 그들이 가진 돈까지 뜯어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어우야~ 이게 다 얼마야~?”
오토는 낮에 받은 뇌물들의 가치를 매기면서 즐거워했다.
어디 그뿐인가?
공개적으로 처형당한 하비에르·쿠조 부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오토는 상당량의 금화를 챙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좋지, 안 좋아?”
“좋기야 하겠습니다만… 너무 밝히시는 거 아닙니까?”
“밝혀야지.”
오토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세계정ㅂ… 아니 대륙 통일을 하려면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전쟁은 돈으로 하는 거잖아?”
“전쟁을 돈으로 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왜 굳이 대륙을 통일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거 광기 아닙니까? 야망이 아니라?”
카미유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무작정 대륙을 통일하겠답시고 전쟁을 일으키는 건 결코 야망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왜?
개인의 욕심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테니까.
“카미유.”
“예, 전하.”
“지금 세상이 어떻다고 생각해?”
“이만하면 평화롭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달라.”
“……?”
“내 눈에는 이 세계가….”
오토가 게임 <군주전쟁>의 메인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한폭탄처럼 보여. 곧 뻥! 하고 터질 시한폭탄. 큰 전쟁이 벌어질 거야. 대륙 전체가 피로 물들.”
“전에 말씀하셨던 세계대전 말씀이십니까?”
카미유가 오토와 와지르 대공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아라드 제국이 무너지면서 세계대전이 시작될 거라는?”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어야 3년 남았어. 우리는 그 안에 강한 군대를 양성하면서, 무기와 식량을 비축해야 돼.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 거고. 동맹도 많이 만들어야겠지.”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100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와 같은 오랜 군사 격언이 있었으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장비 맞추러 가자.”
“갑자기 무슨 장비를 맞추신다는 겁니까?”
“여기 쿤타치 가문이잖아.”
오토가 히죽 웃었다.
“좋은 장비가 얼마나 많겠어?”
“그거야 그렇겠습니다마는….”
“창고에서 썩어가는 장비들 좀 가져가자.”
“하지만….”
“달라고 하면 줄 거야.”
오토는 콘라드가 자신의 부탁을 다 들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
이미 콘라드는 호감도작이 끝난 상태였으니까.
* * *
“가문의 보물창고를 열어 달라?”
“예, 할아버님.”
“끌끌끌! 손주가 필요하다는데, 보물 창고쯤이야 못 열어주겠느냐. 열어줄 터이니, 필요한 물건은 뭐든 가져다 쓰도록 해라.”
“헤헤헤. 감사합니다.”
오토의 예상대로, 콘라드는 흔쾌히 보물창고를 열어주었다.
사실 보물창고는 쿤타치 가문의 가장 큰 자산이었다.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무기·방어구·액세서리가 보관되어 있었다.
또한, 다양한 마법과 검술이 담긴 스킬북도 수백 권이 넘었다.
“이게 다 아티펙트들입니까?”
카미유가 보물창고에 전시되어 있는 아이템들을 훑어보며 혀를 내둘렀다.
“엄청 많지?”
“이렇게 많은 아티펙트가 전시되어 있는 곳은 처음 봤습니다.”
“처음 봤겠지. 여기가 유일하니까.”
오토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여러 번 봐본 적이 있었으므로, 보물창고의 규모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자… 보자….”
오토는 즉시 자신이 찾는 물건들을 향해 움직였다.
오토는 이곳에 있는 아이템들과 스킬북들 중에서 무엇이 알짜배기인지,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구경하면서 훑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원하는 물건이 있는 장소로 가서, 필요한 아이템과 스킬북을 획득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