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오토와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이 군영 안을 내 집 안방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토가 <투시> 스킬을 이용해 쥐새끼처럼 경비병들의 시선을 피해갔을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 숨어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지, 정지, 정지. 움직이면 공격하겠다. 오징어.”
“사과.”
오토는 순찰 중인 경비병들이 서로 마주칠 때마다 주고받는 암구호―암호―까지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은 쉬웠다.
“누구냐! 오징어!”
“사과.”
“수고 많으십니다.”
“예, 수고하세요.”
오토는 암구호를 알아낸 뒤부터는 숨어서 다니지 않고, 아예 대놓고 군영 안을 돌아다녔다.
순찰 중인 경비병으로 위장하니, 굳이 숨거나 피할 필요가 없어 지휘부 텐트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전하, 아무래도 지휘부 텐트에 접근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카심이 오토에게 속삭였다.
“그래 보이네.”
지휘부 텐트는 꽤나 큰 공터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평범한 병사들이 아닌 중무장한 기사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있었다.
지휘부 텐트에는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급 장교들이 있을 게 분명했으므로, 경비가 매우 삼엄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순찰을 도는 말단 병사들이 가까이 접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합니까?”
카심이 오토에게 물었다.
“어. 음. 그러니까.”
오토가 잠시 생각하다가 카심을 빤히 쳐다보았다.
“카심.”
“가, 갑자기 왜 그렇게 보십니까?”
“미안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리둥절해 하는 카심.
“어? 여기 진압군 첩자가 있네?”
“예?”
“뭐해? 진압군 첩자가 여기 있는데?”
오토가 나머지 마검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검사들은 오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멍을 때리다가, 이내 곧 말귀를 알아듣고는 카심을 붙잡았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뭐야! 이거 안 놔? 이 자식들아!”
“미안.”
“갑자기 사과는 왜 하시는….”
그 순간.
퍼억!
다른 마검사 하나가 카심에게 주먹을 날렸다.
“악!”
비명을 지르는 카심.
퍽! 퍼억! 퍽! 퍽! 퍽! 퍽!
카심을 둘러싼 마검사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어대었다.
“꾸웨에에에엑….”
눈 깜짝할 사이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카심.
“이게 무슨 소란이냐!”
“뭐냐!”
그 소란에 반란군에 소속된 기사들이 모여들었다.
“충성! 첩자로 의심되는 자를 붙잡았습니다!”
오토가 다가온 기사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였다.
“첩자로 의심되는 자? 여기 이놈 말이냐?”
기사가 쓰러져 신음하는 카심을 가리키며 물었다.
“암구호도 모르고, 자기 소속 부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체포했습니다.”
“오호?”
기사는 뜻밖의 수확에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시간에 적의 첩자를 붙잡았으니, 큰 상을 받을 게 분명하지 않겠는가?
“아주 잘했다.”
“아닙니다!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군기가 아주 바짝 들어 있군. 좋다. 그놈을 끌고 와라. 마침 사령관 각하께서도 지휘부에 계시니, 첩자를 심문하고 싶어 하실 것이다.”
“예!”
카심의 희생 덕분에 오토 일행은 손쉽게 지휘부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오토 이 X발놈아!’
카심은 질질 끌려가면서 속으로 오토에게 쌍욕을 퍼부어대었다.
설마하니 자신을 제물로 바칠 줄이야….
* * *
“오호라! 첩자를 포획하다니!”
캐니언 능선에 주둔 중인 반란군 사령관 아퀴나스 장군은 뜻밖의 보고를 받고 매우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첩자를 심문한다면 진압군 측 정보를 캐낼 수도 있을 터.
만약 그 정보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라도 된다면, 아퀴나스 장군의 앞에 출셋길이 열리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이놈이 첩자인가?”
아퀴나스 장군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꽁꽁 묶여 있는 카심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기사가 보고했다.
“아주 잘도 다져놨군. 쯧쯧.”
아퀴나스 장군이 카심의 몰골을 보고 혀를 찼다.
코가 반쯤 뭉개지고,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든 카심의 몰골은 상당히 흉측했다.
잘도 다져놨단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저 병사들이 첩자를 붙잡은 겐가?”
“그렇다고 합니다.”
“아주 군인정신이 훌륭한 친구들이로구먼.”
아퀴나스 장군이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토에게로 다가왔다.
“자네가 분대장인가?”
“충성! 그렇습니다!”
“어느 부대 소속인가? 내 자네의 지휘관에게 이야기해 포상을 내리도록 조치함세.”
“예, 사령관 각하. 제 소속은….”
오토가 대답했다.
“진압군 특수전부대입니다.”
“음?”
아퀴나스 장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진압군 특수전부대?”
“예, 사령관 각하.”
“지금 뭐라는….”
“퉤!”
오토가 아퀴나스 장군을 향해 침을 뱉었다.
“……!”
아퀴나스 장군은 마치 감전이라도 당한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쓰러져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오토의 입 안에 숨겨져 있던 <비열한 죽음 구슬>이 아퀴나스 장군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렸던 것이다.
마치 총알처럼….
“……!”
“……!”
“……!”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지휘부 텐트 안에 있던 고위급 장교들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이, 이게 무슨 짓… 컥!”
뒤이어 가장 먼저 입을 연 기사의 목이 날아갔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크윽!”
“악!”
텐트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차례차례 쓰러졌다.
단 2초.
오토와 마검사들이 텐트 안에 있던 사령관과 고위급 장교들을 황천길로 보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컥!”
“으악!”
마검사들은 나아가 텐트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도 기습으로 처리해버리는,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작전수행능력을 보여주었다.
“전하, 모두 처리했습니다.”
설리번이란 이름의 마검사가 오토에게 말했다.
“이제 빠르게 탈출을….”
“탈출을 왜 해?”
“예?”
“이제 반란군이 우리 손에 들어왔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위장자의 거짓된 얼굴 주문이 있을 텐데?”
“……!”
“어려운 주문 아니잖아.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라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오토가 말한 <위장자의 거짓된 얼굴> 주문이란, 간단히 말해 변신 마법이었다.
[위장자의 거짓된 얼굴]
사용자의 외모 중 일부를 특정 대상으로 변신시켜주는 주문.
얼굴, 머리카락, 목소리를 완벽하게 바꾸어준다.
단, 타고난 체형까지 변화시켜주지는 못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분류 : 액티브 스킬
등급 : 3성
지속시간 : 120분
재사용 대기시간 : 1,4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