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오토와 마검사들은 <위장자의 거짓된 얼굴> 주문이 끝나기 10분 전 반란군 진영에서 탈출했다.
그런 뒤 즉시 왕세자가 이끄는 진압군 진영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케인 여단장? 이 꼭두새벽에 무슨 일로 날 찾았소?”
근심·걱정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왕세자는, 오토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꽤나 놀란 듯했다.
“아무 설명도 해 주지 않고 그저 기다리라더니?”
“예, 전하.”
오토가 왕세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작전에 성공했습니다.”
“작전…?”
“지금 바로 캐니언 능선으로 진격하시면 됩니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왕세자는 오토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이 꼭두새벽에 캐니언 능선을 공격하라는 거요?”
“예, 전하.”
“하지만 캐니언 능선에는 적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 아니오? 지금 거길 공격했다가는….”
“어차피 공격하시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건 그렇소만….”
왕세자는 오토의 지적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캐니언 능선에 병력을 꼬라박으려고 했던 건 왕세자 본인이었으니까.
“저를 믿고 지금 공격하십시오.”
“이보시오, 케인 여단장.”
왕세자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갑자기 그렇게 진격하라고 하면, 섣불리 군대를 움직이기가 어렵소이다.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을 해주어야….”
그때.
“전하.”
장군 한 명이 나타나 왕세자가 보고했다.
“이오타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 그게 사실이오?”
“예, 전하. 보고에 의하면 이오타에서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장례식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맙소사.”
왕세자는 보고를 받은 직후 오토를 돌아보았다.
‘예~ 죽여 드렸습니다아~’
왕세자의 표정을 본 오토는 속으로 웃었다.
자신이 죽여 달라던 상대가 사실은 코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놀라는 걸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
“케인 여단장… 정말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죽었구려? 며칠 만에?”
“죽여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이리 빨리 실행하실 줄은 몰랐소.”
“곤잘레스 그 악독한 놈은 한 번 찍은 표적을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추격해서 어떻게든 죽여 버립니다.”
오토는 괜히 카미유를 헐뜯으면서, 왕세자에게 말했다.
“케인 여단장… 그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구려.”
“오토 드 스쿠데리아를 죽여 달라고 하시니 죽여 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캐니언 능선을 점령하게 해달라고 하시니, 점령하실 수 있게 판을 깔아드렸습니다.”
“좋소.”
왕세자가 결단을 내렸다.
“내 케인 여단장을 한번 믿어 보리다.”
왕세자는 오토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토는 반란군에 쫓기던 왕세자를 구해 주었고, 나아가 훗날 위협적인 적이 될 세력의 우두머리를 제거해 주기까지 했다.
이러니 절대적 신뢰를 보내지 않고는 못 배길 수밖에.
“지금 즉시 캐니언 능선으로 진격하겠소.”
씨익-.
가면 속 오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오토를 신뢰하게 된 왕세자는, 더는 묻지도 따지지 않고 캐니언 능선으로 진격했다.
“저, 적이다! 적들이 쳐들어온다!”
“놈들이 온다!”
캐니언 능선에 남아 있던 반란군들은 진압군의 갑작스러운 진격에 크게 당황했다.
현재 1,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수 병력만이 능선을 지키고 있는 상황.
그마저도 전투 병력이 아닌, 대부분 취사병·보급병·행정병 같은 비전투 병력이 대부분이었다.
사실상 빈집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왕세자가 이끄는 진압군의 수는 무려 15,000명이나 되었다.
캐니언 능선이 아무리 전략적 요충지라고 한들, 10배가 넘는 병력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을 터.
“저, 전투 준비!”
“신호탄을 쏘아 올려라! 본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피융! 펑!
피유우웅! 펑펑!
캐니언 능선에 남아 있던 반란군들은 황급히 신호탄을 쏘아 올려 본대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진격하라!”
“모조리 죽여라!”
15,000명이나 되는 진압군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능선을 타고 올라와서, 반란군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맙소사.”
진압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몸소 전투에 참가했던 왕세자는, 캐니언 능선에 남아 있는 반란군 숫자가 예상보다 적은 걸 확인하고는 크게 놀랐다.
원래대로라면 반란군들로 득실득실거려야 할 텐데….
‘케인 여단장…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오?’
왕세자는 저 앞에서 반란군들을 무차별적으로 썰어 버리고 있는 오토의 뒷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왕세자로서는 오토가 어떠한 작전을 벌였는지,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오토는 반란군을 쳐부수면서 신나게 레벨업을 하는 중이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전쟁터는 언제나 훌륭한 경험치 공급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투만이 전부가 아니긴 했다.
그러나 전투가 경험치를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이 주는 건 명백한 사실.
[알림: 86레벨 달성!]
[알림: 87레벨 달성!]
[알림: 88레벨 달성!]
오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란군들을 쓸어버리면서, 경험치를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겼다.
그 결과.
[알림: 해금 임박!]
[알림: 90레벨을 달성하면 <석화의 눈> 스킬이 해금됩니다!]
90까지 남은 레벨은 단 2.
2레벨만 올리면 <칼립소의 눈> 체계의 두 번째 스킬인 <석화의 눈>을 사용할 수 있게 될 터.
‘한 명이라도 더 처치한다.’
오토는 신이 나서 반란군들을 더더욱 거세게 몰아붙이며, 경험치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 좋구나, 애송이.
카이로스는 그런 오토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 듯했다.
- 처음 봤을 때는 쓰레기 그 자체였거늘. 이제는 하급 용병 정도는 되는구나.
오토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아직은 햇병아리.
과거 대륙을 호령하는 절대자의 위치에까지 올라가 봤던 카이로스의 눈에는 여전히 어설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너는 뭐 처음부터 셌냐?’
- 뭣이?
‘검 한 자루로 제국을 세웠다며? 처음 검을 잡았을 때는 약했을 거 아냐.’
- 웃기는 소리!
카이로스가 반박했다.
- 짐은 태어날 때부터 강했다! 돌잡이 때부터 검을 잡았고! 세 살이 되던 해에는 늑대를 사냥했다! 다섯 살에는 호랑이를….
‘뻥 치시네.’
오토는 카이로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세계라지만 인간이 무슨 드래곤볼에 나오는 초싸이어인도 아니고, 어떻게 3살에 늑대를 사냥하고 5살에는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말인가?
‘왜? 솔방울로 수류탄 만들고 모래알로 총알도 만든다고 하지? 축지법도 하냐? 너?’
오토는 어느 북쪽 왕국의 옛 독재자를 떠올리며 카이로스에게 빈정거렸다.
- 엥? 수류탄? 그게 뭐냐?
당연한 말이겠지만, 카이로스가 수류탄 같은 현대 투척 무기를 알 리 없었다.
‘됐고, 지금은 말 걸지 마라. 바쁘니까.’
오토는 카이로스의 개소리를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반란군들을 쓸어버리고 경험치를 먹으려 했다.
그러나….
“엥?”
주변을 돌아보니 적이 없었다.
온통 시체뿐.
오토의 주변에는 죽은 반란군들의 시체만이 가득할 뿐, 살아 있는 적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없네…?”
그때.
“이겼다!”
“캐니언 능선을 점령했다!”
“놈들이 도망간다!”
왕세자가 이끄는 진압군 장병들의 입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토가 신나게 검을 휘두르며 경험치를 먹는 동안 어느새 캐니언 능선 점령에 성공한 것이다.
* * *
전투가 끝난 후.
“케인 여단장!”
왕세자는 오토에게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소이까? 캐니언 능선이 이렇듯 텅텅 비다시피 하다니! 무슨 수를 쓴 것이오? 이제 제발 좀 알려주시오. 내 부탁하오.”
왕세자는 오토가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너무나도 궁금해했다.
“별건 아닙니다. 먼저 사령관을 포함한 지휘부 고위급 장교들 모조리 암살했습니다.”
“모, 모조리?”
“그렇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했소? 다음에는?”
“사령관과 고위급 장교들로 위장해 거짓 명령을 내렸습니다. 진압군의 후방으로 돌아가 기습 공격을 펼친다는 명분으로, 병력을 이동시켰을 뿐입니다.”
“맙소사.”
왕세자는 오토의 말을 듣고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게… 정녕 가능한 일이오? 고작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이런 변방의 약소국을 상대로는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오토가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강대국이었으면 어림도 없지.’
강대국일수록 군 지휘체계가 촘촘할뿐더러, 장교들의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장교들 개개인의 능력치 또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또한, 통신 마법이 발달해 있어 보고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로샨 왕국과 같은 약소국의 군대는 허점이 수두룩하기 마련이라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농락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약소국… 약소국이라….”
왕세자가 오토의 말을 되뇌었다.
‘자존심이 상했겠지.’
오토는 왕세자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신의 조국이자 소유하게 될 국가가 <이런 변방의 약소국>이란 평가를 받았으니,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왕세자는 서쪽 변방을 장악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큰 야망을 품은 자.
왕세자는 화를 내는 대신 오토에게 물었다.
“그대는 저 대륙의 강대국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소?”
“물론입니다.”
“대륙이란 어떤 곳이오?”
“대륙은….”
오토가 대답했다.
“도시 하나의 경제력이 로샨 왕국의 10배 이상인 곳이 수두룩합니다.”
“그 정도요…?”
“아주 강력한 기사라면… 혼자서 로샨 왕국을 멸망시키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마, 말도 안 되오!”
왕세자는 오토의 말을 쉽사리 믿지 못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오? 대륙의 기사들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와 검은 여단조차 대륙에서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닙니다.”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륙에서 활동 중인 영웅 유닛들의 전투력은 가히 엄청났다.
당장 쿤타치 가문만 해도 단 3일이면 로샨 왕국을 멸망시키는 게 가능했다.
물론 현재 쿤타치 가문은 여러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인지라,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현재 오토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과 대륙의 수준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우리 로샨 왕국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겠소?”
“그건 왕위에 오르신 뒤에 생각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아.”
왕세자는 오토의 현명한 대답에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실언을 했구려. 케인 여단장의 말씀 잘 알아들었소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날 생각부터 했구려. 대륙 진출은 저 반란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후 왕위에 오르고, 이오타 놈들까지 정벌한 뒤에 생각해 보겠소. 어차피 오토 드 스쿠데리아도 뒈진 마당에, 이오타를 정벌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토는 가면 속에서 사악하고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왕세자를 부추겼다.
“승전을 축하드리오나, 지금은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음?”
“기세를 몰아 반란군의 뒤를 쫓으셔야 합니다.”
오토는 캐니언 능선을 내려갔던 반란군 9천 명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