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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57)화 (58/401)

제57화

“케인 여단장… 그대는 어디에 있는 것이오? 보고 싶소. 오늘따라 그대가 정말 보고 싶구려.”

루이블랑 왕세자는 매일 같이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오토를 그리워했다.

오토를 향한 루이블랑 왕세자의 그리움은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깊어져만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왕세자는 지난 한 달 동안 반란군과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숱한 전투를 치르며 수없이 많은 병력을 잃었고,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전쟁의 참상도 질리도록 보았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하루하루 영혼마저 병들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와중에 힘의 균형이 너무나도 팽팽해서, 이대로라면 전쟁을 계속하기는커녕 휴전을 해야 할 판국이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이오. 1주일이면 돌아온다지 않았소. 내 그대의 힘이 절실하거늘. 그대만 돌아와 준다면 휴전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을 터인데….” 

그래서 루이블랑 왕세자는 오토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오토만 오면.

<검은 여단>과 여단장 케인만 와준다면 저 반란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그러나 그런 루이블랑 왕세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토는 이곳 진압군 진영이 아닌 반란군 진영에 가 있었다.

“뭐라? 이오타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날 찾아와?”

“그러하옵니다.”

“그놈은 한 달 전에 죽었을 텐데?”

오토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이미 알렉스 공작의 귀에까지 들어가 있는 상태.

그런데 죽었다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 돌아와서 만남을 청하니, 알렉스 공작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이오타 내부 사정으로 인해 잠시 죽음을 연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내부 사정?”

“기사 카미유로부터 암살을 당할 뻔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뭣이?”

알렉스 공작이 제 귀를 의심했다.

“카미유…? 고결한 기사 카미유가 군주를 암살하려 했다?”

“예, 전하.”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인가?”

카미유의 기사도 정신은 이곳 변방뿐 아니라 대륙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니 알렉스 공작이 보고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 카미유가 국왕 시해자, 즉 <킹 슬레이어>라는 불명예를 스스로 뒤집어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가?”

“예, 공작 전하.”

“우선 들라 하라. 내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할 터이니.”

알렉스 공작은 오토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의아하긴 했지만, 일단은 만나 보기로 했다.

* * *

“알렉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오토는 알렉스 공작을 만나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오호라?’

알렉스 공작은 그런 오토를 보고 매우 흡족해했다.

꼴에 일국의 왕이라는 자가 이웃 나라의 왕―아직은 아니었지만―에게 스스로 몸을 낮춘다?

로샨 왕국이 이오타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행위였다.

‘그래도 주제 파악을 아주 잘하고 있군.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도 저리 몸을 낮추는 걸 보면.’

오토를 바라보는 알렉스 공작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자네가 이오타의 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인가?”

“예, 공작 전하.”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건가.”

“동맹을 맺어 주십사 하고 찾아왔습니다.”

“동맹…?”

“저희 이오타는 작은 나라입니다. 반대로 로샨은 큰 나라입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와 동맹을 맺고 싶을 뿐입니다. 앞으로 저희 이오타는 로샨을 형님의 나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음.”

“부디 제 청을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유가 무엇인가?”

“살고 싶을 뿐입니다.”

“살고 싶다라….”

알렉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오타로서는 본국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토가 생각만 해도 두렵다는 듯 몸을 더 바짝 낮추며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로샨의 내전은 결국 전하께서 승리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럴 것이다. 조만간 왕세자의 목이 성벽 위에 내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알렉스 공작은 전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먼저 찾아와서 고개를 조아리는 오토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겉으로는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 척했다.

‘퍽이나 그러겠다.’

오토는 그런 알렉스 공작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속으로 웃었다.

현재 반란군과 진압군 간의 힘의 균형은 완벽에 가까워서,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승부가 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때문에, 현재 반란군과 진압군 사이에는 휴전협정에 대한 논의마저 진행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왕세자의 목을 성벽 위에 내걸겠다니,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공작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뒤에 부디 이오타에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내가 두려운가?”

“두렵습니다.”

오토는 아예 어전 바닥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 순 없으시겠습니까?”

“껄껄!”

알렉스 공작이 그런 오토를 보고 웃었다.

“물론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비란 아무렇게나 베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무릇 배은망덕한 존재라, 아무 대가 없는 자비를 받으면….”

교활하고 노련한 알렉스 공작은, 오토가 낮은 자세로 나오자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토는 그런 알렉스 공작보다 더 교활하고, 또한 노련했다.

“공작 전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결코 당연하다 여기지 않겠습니다.”

“으음?”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의무라….”

“공작 전하께서 한시라도 빨리 왕위에 오르실 수 있도록, 저희 이오타가 거들겠습니다. 부디 한 손을 거들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한 손을 거들 기회를 달라… 어떻게 거들 생각인가?”

“저에게는 5천의 군대가 있습니다. 그 5천의 군대로 조금이나마 공작 전하께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순간.

‘5천이라니!’

알렉스 공작의 눈빛이 달라졌다.

현재 반란군의 병력은 2만여 명 정도.

진압군의 병력도 거의 엇비슷해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렇듯 양측의 전력이 팽팽한 상황에서 5천 명이나 되는 병력을 더 확보한다면….

‘5천이라면… 팽팽하던 힘의 균형을 깨기에 충분하지. 암, 충분하고말고.’

울며 겨자 먹기로 작성하고 있던 휴전협정서 따위, 지금 당장 찢어버려도 좋을 터.

“정말로 그 정도의 병력을 지원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내 기꺼이 이오타에 자비를 베풀 걸세. 적어도 20년 정도는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지.”

…라고 말했지만, 알렉스 공작의 겉과 속은 180도 달랐다.

‘끌끌끌. 그깟 약속이야 왕위에 오른 뒤에 깨버리면 그만일 터. 오냐, 내 한 5년 정도는 내버려 두마.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끌끌끌.’

알렉스 공작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단 1도 없었다.

최근 들어 급성장한 이오타는 로샨 왕국에게 점점 위협적인 세력이 되어가고 있었다.

루이블랑 왕세자와 마찬가지로, 알렉스 공작 역시 내전이 끝난 후 이오타를 가만 놔두지 않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구라치네.’

오토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으므로, 알렉스 공작을 내심 비웃었다.

“내 자네의 성의를 봐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겠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일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토가 알렉스 공작을 향해 고개를 넙죽 조아렸다.

“성심성의껏 공작 전하를 돕겠습니다!”

“내 기대하지! 껄껄껄껄!”

그렇게 이오타 왕국은 알렉스 공작의 반란군과 동맹을 맺고, 왕세자가 이끄는 진압군과 맞서 싸우게 되었다.

* * *

알렉스 공작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네가 선봉에 서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네.”

알렉스 공작은 오토가 이끄는 이오타의 군대를 앞세우고자 했다.

왜?

반란군의 전력을 보존하고 싶었으니까.

그건 알렉스 공작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는 판단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단연 최전방이라 할 수 있다.

그 최전방에 이오타의 군대를 배치시키면, 큰 피해를 입으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반대로, 반란군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을 테니, 전력을 고스란히 보전하는 게 가능하지 않겠는가?

훗날 이오타를 침공할 예정인 알렉스 공작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토는 그런 알렉스 공작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에, 쉽사리 그 수법에 넘어가지 않았다.

“전하,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신 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뭣이?”

알렉스 공작이 눈을 부라렸다.

“지금 자네의 군대를 앞세우기 싫다는 것인가?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데도?”

“제 군대를 앞세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뭔가?”

“저희 이오타의 군대가 나타난다면, 왕세자가 순순히 전투에 응해주겠습니까?”

“……!”

“왕세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저희 이오타의 군대가 나타나면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버티기에 들어갈 겁니다.”

“그, 그건….”

알렉스 공작은 오토의 지적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전하, 저희 이오타의 존재는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철저히 비밀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왕세자의 방심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으음!”

“전하께서 먼저 군대를 이끌고 왕세자의 군대와 맞서 싸우십시오. 그러면 제가 이오타의 군대를 이끌고 왕세자의 뒤를 치겠습니다.”

“쩝.”

알렉스 공작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오토의 말을 반박하거나, 혹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못했다.

왜?

오토의 전략에 빈틈이 없음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게 옳았으니까.

‘어쩔 수 없군.’

알렉스 공작은 못내 아쉬웠지만, 오토의 전략을 따르기로 했다.

맘 같아서는 이오타의 군대를 제물 바치듯 희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오토의 지적대로, 그런 식으로 병력을 운용했다가는 왕세자가 싸워주지 않을 게 뻔했다.

즉, 반란군도 어느 정도의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는 이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좋다. 자네의 의견에 따르지.”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작전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지.”

“그리하십시오.”

“아, 그런데 말일세.”

알렉스 공작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오토에게 물었다.

“어쩌다 카미유 같은 고결한 기사에게 암살을 당할 뻔한 건가? 부득이하게 죽음을 위장했던 이유가 뭔가?”

“그것은….”

오토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기사 카미유는 고결한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음?”

“카미유 그놈은 겉으로는 고결한 기사인 척 가면을 쓰고 살지만, 그 속은 시커멓다 못해 어둠보다도 더 어둡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고결한 기사 카미유가 속이 검다니?”

“그놈은 말입니다….”

오토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알렉스 공작에게 카미유에게 온갖 끔찍하고 악랄한 죄를 뒤집어씌웠다.

겸사겸사.

어차피 죽음을 위장했던 그럴싸한 핑곗거리도 만들 겸 얄미운 카미유도 골탕을 먹일 겸, 아무렇게나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시각.

‘…전하가 어디 가서 내 욕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카미유는 갑작스레 귀가 심하게 간지러워지자 그 범인이 오토라고 확신했다.

평생을 고결한 삶을 살아왔던 카미유를 욕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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