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스으으!
철퇴로부터 빠져나온 카이로스의 영혼이 왕세자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음.”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왕세자.
“어떠냐?”
오토가 왕세자, 아니 왕세자의 몸을 차지한 카이로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육체는 좀 궁합이 맞는 거 같냐?”
“아직 잘 모르겠다.”
카이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깨질 것 같다.”
“깨졌으니까, 아프지.”
“음?”
“니가, 니 뒤통수친 거잖아. 철퇴로.”
“이런 젠장!”
카이로스가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다가 손에 피가 잔뜩 묻어나오는 걸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걸 생각을 못 했군.”
“…….”
“어쩐지 아프다 했다.”
투덜거리는 카이로스.
‘이거 X신 아냐?’
오토는 카이로스의 지능을 의심했다.
‘그거를 생각 못 한다고? 쯧쯧. 저 지능으로 어떻게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모르겠네.’
그러는 사이.
“으윽. 머리가 많이 아프구나.”
카이로스는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실제로, 왕세자의 머리통이 으깨질 뻔한 건 사실이었다.
철퇴에 조금만 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면, 깨진 수박처럼 펑! 하고 터졌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좀 어떠냐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아니 그거 말고.”
오토가 인상을 팍! 썼다.
“육체랑 궁합이 좀 맞는 거 같아?”
“으음.”
카이로스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대답했다.
“나쁘지 않다.”
“그래?”
“왠지 이 몸이라면 짐의 영혼을….”
그때.
푸스슥!
그간 카이로스의 영혼을 담고 있던 철퇴가 바스러졌다.
너무나도 거대한 영혼인 카이로스를 오랫동안 담고 있었기에, 이제는 내구도가 다한 것이다.
“어어?”
오토는 철퇴가 바스러진 걸 보고 살짝 당황했다.
“너 이제 어떡하냐? 니 집 부서졌는데?”
“뭣이?”
“만약에 그 몸이 지난번처럼 썩어들어가면 어떡해? 그럼 돌아갈 데가 없잖아.”
카이로스의 영혼은 워낙에 거대한 것.
그간 수없이 많은 흉악범들의 육체가 카이로스의 영혼을 담아냈지만, 1시간 이상 버틴 적은 없었다.
짧으면 1분.
길어야 30분이면 육체가 썩어들어 가 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별일 없을 것 같다.”
“그래…?”
“가뿐하군.”
다행스럽게도, 왕세자의 육체는 카이로스의 영혼을 담아내는 게 가능했던 모양.
“잘됐네.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한다, 인마.”
오토는 카이로스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다시 태어났다…?”
“새 육체를 얻었잖아. 그럼 다시 태어난 거지, 뭐.”
“그, 그렇군.”
“얼마나 좋냐? 니가 좋아하는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데?”
“음! 그건 아주 좋은 일이로구나! 음핫핫핫!”
카이로스는 벌써부터 술 생각이 간절한지, 아직도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헤벌쭉 웃었다.
‘쟤 진짜 아무리 봐도 멍청한 거 같단 말씀이야.’
오토는 그런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사이.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항복하겠소!”
여기저기서 로샨인들의 항복 선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오타 왕국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이오타 왕국군 병사들의 입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엄청난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던 로샨 왕국의 내전은, 이 전투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아닌 이오타 왕국의 승리로 말이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로샨 왕국> 정벌에 성공하셨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92레벨 달성!]
[알림: 93레벨 달성!]
[알림: 94레벨 달성!]
[알림: 95레벨 달성!]
[알림: 96레벨 달성!]
로샨 왕국이 이오타 왕국에 비해 국력이 컸기 때문인지, 무려 5레벨이 한꺼번에 올랐다.
잠재적인 적도 제거하고, 영토도 확장하고, 레벨까지 올리고.
일석이조를 넘어 일섬삼조의 성과를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 * *
전쟁이 끝난 후.
“짐은 이런 시골 깡촌에서 왕 따위, 할 생각이 없노라. 알아서들 해라.”
루이블랑 왕세자.
아니, 카이로스는 로샨 왕국의 왕관을 어전에 휙! 내던졌다.
마치 뭐 이런 잡동사니가 다 있느냐는 듯이….
하기야, 과거 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해본 경험이 있는 카이로스에게 로샨 왕국의 왕관이 잡동사니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
“…….”
“…….”
“…….”
로샨 왕국의 신하들은 그런 카이로스의 돌발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곧 수긍했다.
‘미쳐버리고 말았구먼.’
‘하긴. 제정신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테지.’
그들은 왕세자가 전쟁에서 패배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왕가의 상징인 왕관을 헌신짝 버리듯 내던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오타 왕국에 점령당한 이상 왕가의 혈통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건 불가능하기도 했고.
덕분에 흡수합병은 생각보다 더 빨리 이루어졌다.
왕세자의 탈을 쓴 카이로스가 왕위를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바람에, 신하들로서는 더는 저항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 시간부로 로샨은 이오타 왕국에 흡수합병 되었음을 정식으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랍니다.”
카미유는 선언문을 읽은 뒤 로샨의 신하들에게 오토를 소개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 전하께서 납십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신하들은 오토에게 고개를 조아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늉에 불과했다.
‘촌놈 같으니.’
‘내전만 벌어지지 않았어도 네놈 목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이런 치욕이 있나.’
로샨의 신하들은 속으로 오토를 욕하고, 업신여기고, 조롱하고, 경멸했다.
“다들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당분간은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테니, 모두들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오토는 간단히 그 말을 남기고, 어전을 떠났다.
“그냥 가십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그럼 가지? 더 있어?”
“저들과 어울리시면서 시간을 좀 더 보내셔야 합니다.”
카미유의 조언은 옳았다.
로샨의 신하들, 아니 로샨인들 모두에게 오토는 정복자일 뿐이었다.
힘에 의해 굴복한 것이지, 결코 마음으로 따르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토는 신하들뿐만 아니라 로샨 왕국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군주로서의 능력과 매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민심을 얻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어? 바빠.”
“전하!”
“바쁘다니까.”
오토는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카미유를 스쳐지나 가버렸다.
민심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 * *
오토는 로샨 왕국의 전쟁 후 복구 사업은 신하들에게 맡겨둔 채 카이로스와 더불어 술판을 벌였다.
카이로스가 다시 태어난 걸 기념해 한잔하기로 한 것이다.
콸콸콸콸!
카이로스는 알콜에 대한 내성이라도 있는지, 독한 술을 병째로 들이킴에도 전혀 취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대체 안 취하는 이유가 뭐냐? 딸꾹!”
오토가 벌게진 얼굴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그런 오토의 눈은 반쯤 풀려 있어서, 누가 봐도 얼큰하게 취했단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짐은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서 술에 취하지 않는다!”
“말이 되냐? 딸꾹! 그 몸 원래 니 것도… 딸꾹! 아니잖… 딸꾹!”
“껄껄! 네놈 같은 애송이가 어찌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짐의 주량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껄껄껄!”
“너 그러다… 딸꾹! 알코올중독으로 뒈져.”
“나약한 놈들 얘기는 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벌컥벌컥!”
카이로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40도가 훌쩍 넘어가는 독한 위스키를 다시 병째로 들이켰다.
그런 카이로스의 테이블에는 빈 위스키병이 수십 병이나 쌓여 있었다.
저 빈 병들에 들어 있던 게 물이라 해도 배가 불러서 더 못 마실 텐데….
“미친놈… 딸꾹! 내가 진짜… 너랑 다시는… 술 안….”
털썩.
오토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그만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껄껄! 애송이 같으니!”
카이로스는 정신을 잃은 오토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웃었다.
“짐은 술로는 대륙에서 제일이니라. 껄껄껄!”
하지만 그런 카이로스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또륵, 또르륵.
테이블 밑 카이로스의 집게손가락 끝에서 독한 알코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실 카이로스는 술이 센 게 아니었다.
마나를 운용해 알코올을 손가락 끝으로 은근슬쩍 배출해서, 혈중알코올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수밖에.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니라.”
카이로스는 오토를 한 번 비웃어준 뒤 달을 벗 삼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러던 중.
“짐이 미안하구나.”
카이로스의 입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짐이 너희들을 지켜주었어야 했거늘… 그 악독한 놈에게 속아 너희들까지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그 옛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아르곤 대제가 카이로스의 부하들을 어떻게 했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카이로스는 옛 부하들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동이 틀 때까지….
* * *
로샨을 정복한 이오타 왕국은, 본격적으로 내정에 집중했다.
로샨 정복을 계기로 대륙의 서쪽 변방을 완전히 통일한 셈이었으니, 한동안은 조용히 힘을 길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개의 영지와 국가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다름 아닌 <분열>이었다.
이오타 왕국이 로샨을 정복한 지 3개월쯤 되던 무렵.
“카미유 경, 목수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습니다.”
“카미유 경! 큰일 났습니다! 거리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카미유 경! 병사들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져 3명이 죽고, 69명이 다쳤습니다. 관련자들은 현재….”
“카미유 경! 로샨의 왕궁 앞에서 칼부림이 일어났습니다.”
카미유는 밀려드는 보고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할까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위험하다.’
카미유는 지난 몇 주 동안 온갖 종류의 민원에 시달렸고, 그 원인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똑같았다.
갈등과 분열.
이오타 왕국의 백성들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서로 싸우기 일쑤였다.
출신 지역에 따라 무리를 이루고, 다른 지역 출신들로 이루어진 무리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대륙의 서쪽 변방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른바 <파슈토>라 불리는 이곳 대륙의 서쪽 변방 지역 사람들에게는 국가의식이 없다시피 했다.
애초에 같은 민족이라 생각지도 않았다.
이곳 <파슈토> 지역 자체가 워낙에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곳.
그러다 보니 백성들은 국가보다는 출신 마을, 혹은 영지에 대한 충성심과 공동체 의식이 더 강했던 것이다.
게다가 로샨인들이 이오타 왕국의 지배를 거부하면서, 이런저런 사회문제가 터져 나올 수밖에.
그나마 이오타 왕국의 군대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버티고 있어 주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문제는 국왕이라는 작자가 3개월째 개인 수련에만 집중하지, 국정 운영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대로라면 본국은 사분오열로 찢어진다.’
카미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위험신호라는 걸 판단하고, 즉시 오토를 만났다.
백성들의 갈등과 분열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하십니까?”
카미유는 오토가 큰 배낭에 짐을 싸고 있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보면 몰라? 짐 싸잖아.”
“그러니까 짐을 왜 싸시는 겁니까?”
“갈 데가 있으니까 싸지.”
“쿤타치 가문에 가십니까?”
“거긴 겨울 지나고.”
“그럼 어디 가시는 겁니까?”
“화합의 성서 찾으러.”
“그게 뭡니까?”
“뭐긴. 이름 그대로지. 그 성스러운 성물이 우리 백성들을 사이좋게 만들어줄 거야.”
“……?”
“뭐해? 짐 안 싸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나 혼자 보내려고 했어? 카미유도 같이 갈 거니까 빨리 짐 싸.”
그 순간.
‘도망쳐야 한다.’
카미유는 오토에게 끌려갔다가 개고생을 할 게 뻔하다는 걸 알았기에,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
카미유는 순간 불현듯 찾아온 현기증에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