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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63)화 (64/401)

제63화

성물은 게임 <영지전쟁>의 핵심 요소가 되는 아이템이었다.

얼마나 중요하냐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력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정도였다.

그래서 주인공 캐릭터인 100인의 군주들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나리오를 따라가다 보면, 성물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지기 마련이었다.

적게는 하나.

많으면 다섯 개 이상까지도….

100인의 군주들 중 하나인 콩기라트 부족의 족장도 마찬가지.

오토가 찾는 화합의 성서는 군주 캐릭터인 콩기라트 족장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획득할 수 있는 성물이었다.

사실 북쪽 교역로 개척은 오토가 아닌 콩기라트 족장의 몫이었다.

족장은 북쪽 교역로 개척한 후 화합의 성서를 손에 넣고, 그 힘을 통해 하브르 초원을 통일한다.

그 후 대륙으로 진출한 족장은,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정복한 정복군주인 <위대한 정복자 칸>으로 거듭난다. 

…라는 게 콩기라트 족장의 시나리오.

문제는 오토가 이오타를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북쪽 교역로를 아주 이른 타이밍에 먼저 개척해버렸다는 것.

덕분에 콩기라트 족장은 화합의 성서에 대한 실마리를 그만큼 빠른 타이밍에 얻게 되었고, 이곳 루체른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비효과네.’

오토는 북쪽 교역로 개척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었단 걸 깨달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데?’

본래대로라면, 콩기라트 부족은 허탕을 쳐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딱 마주쳤다는 것은, 오토의 예상보다 콩기라트 부족의 동향이 더욱 빠르다는 걸 의미했다.

‘결국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건가?’

오토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와 현실이 100퍼센트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어.’

더 큰 나비효과가 발생해 오토조차 상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여간. 성물 하나 없는 쓰레기 캐릭터라 이래저래 피곤하니까.’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괜히 최악의 쓰레기 캐릭터겠는가?

100인의 군주들 중에서 유일하게 획득 가능한 성물이 단 한 개도 없는 게 바로 오토 드 스쿠데리아였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다른 군주 캐릭터의 시나리오상에 등장하는 성물을 가로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휴. 하필 빙의해도 이런 쓰레기에 빙의하냐. 사기 캐릭터에 빙의해도 모자랄….’

그때.

쿵!

정말이지 거대한 덩치를 지닌 사내가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직접 왔네.’

오토는 그 덩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100인의 군주 캐릭터 중 하나인 그는, 훗날 <위대한 정복자 칸>이란 명예로운 칭호를 거머쥘지도 모르는 잠재력을 가진 전사.

‘아무칸.’

콩기라트 부족의 족장 아무칸도 화합의 성서를 손에 넣기 위해 이곳 루체른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다.

* * *

“오? 저놈 한 덩치 하는구먼?”

카이로스는 아무칸을 보자마자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

과거 무투파 황제였던 카이로스답게, 남자답게 생긴 아무칸을 보고 호감을 느낀 게 분명했다.

“쳐다보지 마.”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괜히 눈 마주치면 피곤해져.”

“뭐가 피곤해진다는 것이냐?”

“시비 붙는다고.”

“껄껄! 누가 감히 짐에게 시비를 걸 수 있다는 말이냐!”

“너 그러다 죽어.”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그렇게 경고한 이유는, 진짜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콩기라트 부족은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호전적이었고, 한 번 시비가 붙으면 반드시 피를 보았다.

패싸움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구 하나 목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싸우곤 했기 때문이다.

“먼 길 오느라 다들 고생했다. 피곤할 테니, 오늘 밤만큼은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쉬어라. 알겠는가?”

“예! 족장님!”

아무칸은 자신이 데려온 50인의 전사들과 함께 거하게 술판을 벌였다.

“뭐. 잘됐네.”

오토는 그렇게 혼잣말하고는, 동료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가자.”

“예, 전하.”

“넌 안 가냐?”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네놈이나 자러 가라. 짐은 더 마시다 올라갈 터이니.”

“야, 이.”

오토가 눈을 부라렸다.

“괜히 사고 치지 말고 곱게 올라가지?”

“짐이 무슨 사고를 친다는 말이냐! 네놈이나 사고 치지 마라!”

“아, 좀. 그냥 올라가자고.”

“조금만 더 마시다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더냐.”

“어휴. 적당히 마시고 올라와라. 사고는 치지 말고.”

오토는 짜증이 났지만, 카이로스를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잔소리를 해서 들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딱 두고 보자.’

오토는 훗날 자신이 더 강해진다면 카이로스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놓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객실로 향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경쟁자가 나타났으니까 작전에 영향이 가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좋아.”

오토는 카미유의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예?”

“오히려 좋다고.”

“……?”

“위기를 기회로!”

오토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다음 날 아침.

똑똑.

오토는 잠에서 깨자마자 에릭슨의 객실을 찾았다.

“…속이 쓰리군.”

에릭슨은 전날 과음했던 탓인지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오토를 맞아주었다.

“이것 좀 드시죠.”

“음?”

“해장하셔야죠.”

“예의 바른 인간이로군.”

에릭슨은 오토가 따뜻한 수프를 내밀자 꽤나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어제 어디까지 말했지? 너무 취해서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그러니까….”

오토는 에릭슨에게 어젯밤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말해주었다.

“이런. 할 말 못 할 말을 다 하고 말았군.”

“괜찮습니다. 창조신의 손을 가지신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가? 흠흠.”

“그나저나….”

오토가 에릭슨의 눈치를 살피면서,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에릭슨 님께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제안?”

“에릭슨 님이 부족으로 돌아가실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요. 그 새로운 물질도 채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그게 정말이냐?”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 방법이 뭐냐!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겠다!”

드워프는 성격적으로 결함이 심한 종족이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고 몇 배로 되갚아주는, 꽤 좋은 민족성을 지닌 종족이기도 했다.

그러니 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다는 에릭슨의 말은, 거의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좋습니다. 마침 아주 좋은 기회가 있거든요.”

“그게 뭐냐! 뭐든 하겠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테니까, 잘 들으세요. 지금 상황이 어떠냐면….”

뒤이어 오토의 입에서 솔깃한 제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추방당한 에릭슨으로서는 절대 거절하지 못할, 아주 달콤한 제안이….

* * *

“뭐야? 얘 죽었어?”

에릭슨과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온 오토는, 침대에 대자로 뻗어있는 카이로스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젯밤에 얼마나 퍼마신… 윽!”

오토는 순간 훅! 하고 끼쳐오는 술 냄새에 그만 기절할 뻔했다.

술 냄새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맡은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던 것이다.

“얘 왜 이래? 술독에 빠지기라도 했대?”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 여관에 있는 술을 다 마셨답니다.”

오토의 물음에 카미유가 대답했다.

“그 많은 술을 다?”

“예. 전하와 제가 객실로 올라온 후에 아무칸과 합석해서 술 대결을 했답니다.”

“가지가지 해요.”

“주인 말로는 아무칸이 먼저 뻗었는데, 카이로스 어르신도 그 뒤에 바로 뻗었답니다.”

“이기긴 했나 보네?”

“그런 모양입니다.”

“진짜 대단들 하다. 쯧쯧.”

오토가 혀를 찼다.

“목숨 내놓고 살아도 유분수지. 그깟 술에 목숨을 걸고 유치한 내기나 하냐. 애새끼들도 아니고.”

만약 평범한 일반인이 카이로스처럼 술을 퍼마셨다면, 목숨을 잃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 아닙니까? 패싸움 안 한 게 어딥니까.”

“그건 그래. 냅 둬.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문제는 그 <언젠가>가 무려 3일이나 될 줄은 오토도 몰랐다는 것.

“크으윽. 죽을 뻔했군.”

카이로스는 무려 3일 만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크윽.”

카이로스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1층 주점으로 내려가 오토와 카미유, 그리고 에릭슨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류했다.

“왔냐? 좀 어떠냐?”

“짐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그간 피로가 쌓여서 오래 잔 것뿐이다.”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사실 카이로스는 죽을 맛이었다.

배는 고프고.

속은 쓰리고.

숙취 때문에 괴로워하느라 안색은 퀭하고.

아무리 마나를 이용해 알콜을 배출해냈다고 한들, 한계 이상으로 마신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 그렇다!”

“그럼 한잔할까?”

“뭐, 뭣이?”

“지금 한잔하자고. 술은 해장술이 최고라며? 아침부터 달리면 되겠네.”

“그건….”

카이로스는 오토의 도발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머뭇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큰소리 떵떵 치며 호기롭게 한잔했을 텐데, 지금은 도저히 그럴 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못 마시겠냐?”

“아, 아니다!”

“에이~ 그런 거 같은데~ 쫄았냐? 어? 술 세다고 그렇게 허세를 부리더니 술병 났다고 몸 사리네~?”

“절대 그렇지 않다! 짐의 주량은 대륙 제ㅇ….”

그때.

“카이로스라고 했던가.”

놀랍게도, 아무칸이 오토 일행의 테이블로 다가와 카이로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카이로스와 술 대결을 펼친 후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딱 봐도 카이로스처럼 술병 때문에 앓아누웠던 게 분명했다.

“술 좀 하더군.”

“껄껄!”

카이로스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술을 좀 마셔? 껄껄! 그건 네놈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네놈 같은 주량으로 어디 술자리에 끼기나 하겠느냐? 네놈은 앞으로 술을 마실 때 한 방울씩 마시도록 해라! 안 그럼 취해서 쓰러질지도 모르지 않느냐? 껄껄껄!”

“이… 이이…!!!”

아무칸은 카이로스의 조롱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얼굴까지 다 빨개졌지만, 딱히 반박은 하지 못했다.

왜?

먼저 쓰러진 건 누가 뭐래도 아무칸이었으니까.

“다시… 붙자.”

아무칸이 카이로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지금은 내가 바쁘니… 며칠 후에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 붙는 거다.”

“다시 붙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느냐? 안주빨이라도 세워보려는 모양인데, 꿈 깨도록 해라. 네놈의 주량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짐을 이기지 못할 것이니!”

오토는 그런 카이로스와 아무칸을 보며 생각했다.

‘쯧쯧. 머저리들. 세상이 어느 때인데 술 가지고 자존심 싸움이냐.’

…라고.

“설마 다음엔 질 것 같아서 겁먹은 건 아니겠지?”

“짐이 겁을 먹어? 껄껄껄! 짐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럼 다시 붙자.”

“좋다. 대신 짐이 이기면 네놈은 짐을 형님으로 모셔야 한다. 그래도 다시 붙겠느냐?”

“물론.”

“오호라. 오냐, 네놈의 도전을 받아들이마.”

“며칠 후.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 보자. 기다려라.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올 테니.”

아무칸은 그 말을 남기곤 콩기라트 부족의 전사들을 이끌고 여관을 나섰다.

“이런 젠장. 저놈과 또 붙는다고? 윽. 속이 벌써부터 안 좋아지려고 하는군.”

카이로스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혼잣말했다.

아무칸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주가―알콜중독자―인 카이로스조차도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괴물 같은 주량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일어나.”

오토가 카이로스를 잡아끌었다.

“엥? 갑자기 어딜 간다는 거냐?”

“쫓아가야지.”

“설마 아침 댓바람부터 저놈들이랑 한판 붙을 셈이냐?”

“그건 아니고. 다 계획이 있으니까, 그냥 따라오기나 해.”

“아무리 그래도 해장은….”

“가면서 해! 가면서!”

오토는 일행을 데리고 여관을 나섰다.

화합의 성서를 손에 넣기 위해 카슈미르 산으로 향하는 아무칸과 50인의 전사들을 뒤쫓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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