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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69)화 (70/401)

제69화

무릇 재앙이 들이닥치기 전에는 반드시 전조현상이 나타나는 법.

뿌우우우웅!

독가스가 살포되었다.

“컥!”

“으어어어억!”

드워프들은 갑작스레 살포된 독가스에 목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다가, 하나둘 쓰러졌다.

최강의 생명체답게, 드래곤은 방귀마저 생화학 테러에 가까운 독성을 자랑했던 모양.

그건 오토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중독>에 걸렸습니다!]

[알림: 호흡이 곤란합니다!]

[알림: 생명력이 하락했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하락했습니다!]

(중략)

[알림: 생명력이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제, 제발… 그것만은… 제발….”

오토는 드래곤에게 애걸복걸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뿌직!

“…아.”

오토는 절망했다.

뿌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뒤이어 대참사가 펼쳐졌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푸드득! 푸드드드득!

드래곤이 꼬리를 마구 휘젓는 바람에 배설물이 사방팔방으로 휘날렸다.

흔히 치매 환자를 표현할 때 쓰곤 하는 <벽에 똥칠을 한다>가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

오토는 쏟아지는 배설물의 빗속에서 그저 멍하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토의 힘으로는 이 끔찍한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푸덕!

그 와중에 배설물에 얼굴을 얻어맞기까지 했다.

얼굴에 똥칠을 하고 만 것이다. 

- 응애! 애기 드래곤 응아 해쪄요! 응애!

드래곤이 오토를 돌아보며 나 잘했죠?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이….”

오토가 자포자기한 말투로 울분을 토했다.

“드래곤 주제에 벽에 똥칠을….”

억울함·분노·황당함·수치심 등 여러 감정들이 한 데 뒤섞인 목소리가 오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아.’

오토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려다가, 문득 든 생각에 입을 꽉 다물었다.

- 우리 도진이 밥은 먹었냐? 그렇게 삐쩍 말라서 어떡하려고 그래? 할미가 금방 밥 차려줄게.

오래전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맞다. 할머니도 치매로 고생하셨는데.’

할머니는 돌아가시기까지 약 3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는데, 그때 오토의 가족들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제일 고통스러워했던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할머니 본인이었다.

- 내가… 내가 죽어야지…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이 나이까지 꾸역꾸역 살아서 이런 추한 꼴을 보이누… 우리 손주 얼굴도 못 알아보고….

할머니는 자기 자신이 치매를 앓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 매우 고통스러워하셨다.

가족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에미야! 나 왜 밥 안 주냐! 시어미 굶겨 죽일 거냐?

할머니가 때때로 이상 행동을 보일 때마다, 그걸 곁에서 지켜보던 가족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기만 했다.

- 누구슈? 어째 낯이 익은데?

할머니의 증세는 더욱 심해져서, 나중에는 그토록 아끼던 손주조차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던 날, 눈을 감으실 때까지도.

드래곤처럼 벽에 똥칠하는 대참사까지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매우 고통스럽고 참혹한 시간이었다.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 응애! 애기 드래곤 응아 해쪄요! 응애!

“…….”

- 아빠! 나 응아 해쪄요!

“그, 그래.”

오토는 얼굴에 묻은 배설물을 쓱 닦고는, 드래곤에게 애써 웃어 보였다.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그래도 이게 어디냐.’

오토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드래곤이 미쳐 날뛰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 중에는 성격이 갑자기 확 돌변해서 매우 난폭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계관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이 미쳐 날뛴다?

오싹!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몰살당하는 건 물론.

수십 개의 도시가 초토화되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무차별적인 파괴와 학살을 일삼는 무시무시한 광룡[狂龍]보다는 응석받이 애기 드래곤이 낫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벽에 똥칠하는 건 별로긴 했지만….

“어… 우리 애기 똥 잘 쌌니?”

- 응애! 쌌쪄요!

“그, 그래! 잘했어! 아이고! 내 새끼! 똥도 예쁘게도 쌌네!”

- 꺄르르르르르륵!

드래곤은 오토가 장단을 맞춰주고 칭찬까지 해주자, 해맑은 미소―그게 과연 해맑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를 지으며 아기처럼 좋아했다.

‘미치겠네. 살다 살다 이제는 치매 걸린 드래곤 수발까지 드네. 아이고, 내 팔자야.’

그렇게 자괴감에 휩싸인 채 한참 동안이나 드래곤을 어르고 달랬다.

마치 정말 아기를 대하는 것처럼….

그러던 중.

“우리 애기 배고파? 어떻게 아빠가 오우거라도 한 마리….”

- 그게 무슨 소리냐?

드래곤의 정신이 돌아왔다.

- 아, 아니! 이게 무슨… 크윽!

정신을 차린 드래곤이 주변이 온통 똥 밭이 되어 있는 걸 보고 인상을 와락 구겼다.

-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왜 갑자기 온통 똥 밭이 되어 있는 것이야!

“저어… 그게….”

오토는 드래곤이 정신을 차린 걸 보고, 조심스레 그간 있었던 대참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 뭐, 뭣이? 내, 내가 치매라고?

“받아들이시기 힘드시겠지만….”

- 믿을 수 없다! 감히 드래곤인 날 속이려고 드는 것인가!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좀 들어주시죠.”

오토는 드래곤을 설득하느라 무려 10시간 동안이나 했던 말을 하고, 하고, 또 해야만 했다.

드래곤이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뿐더러, 좀 알아들었다 싶으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덕분에 대화 자체가 도돌이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래서 제 결론은 어르신이 치매에 걸리셨다는 겁니다.”

- 맙소사… 내가… 내가 치매라니… 이 쿠란이 치매에 걸리다니….

진실을 알게 된 드래곤.

아니, 치매 드래곤 쿠란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

치매 판정을 받았을 당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 오토는 그런 쿠란을 보고 안타까워 탄식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오오?”

“앗!”

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드래곤의 배설물을 삽으로 퍼 나르던 드워프들은, 쿠란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고는 양동이에 쿠란의 눈물을 받기 시작했다.

배설물처럼, 드래곤의 눈물도 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야 이.”

오토가 드워프들을 향해 눈알을 부라렸다.

하여간 드워프들이란.

창작밖에 모르는 새끼들.

창작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릴 줄 모르는 새끼들.

때와 장소도 가릴 줄 모르는 새끼들.

이 눈치 없는 새끼들….

- 내가 너무 오랜 세월을 살고 말았구나.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9,900년이 넘도록 꾸역꾸역 살았는가.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을….

“히익?!”

오토는 쿠란의 나이가 10,000살에 가깝다는 걸 듣고 경악했다.

끽해야 천 년 정도 살 줄 알았는데, 무려 만 살에 가까울 줄이야….

‘많이 늙긴 했네.’

쿠란을 처음 봤을 땐 너무나도 놀라서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나이 든 드래곤이라는 게 실감이 갔다.

날개는 군데군데 찢어지고 구멍이 나 있고.

탈모라도 왔는지, 비늘도 꽤 많이 떨어져 피부가 드러난 곳이 꽤 되었다.

수염도 축 처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노인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괜히 치매가 온 게 아니구나.’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쿠란을 달랬다.

“어르신. 진정하세요. 마음 아프시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나이가 드셔서 그런 건데요. 마음을 편히 가지셔야죠.”

- 벽에 똥칠까지 한 판국에 내 어찌 마음을 편히 가지겠느냐? 이런 추태를 부리고, 어찌 이 질긴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늙으면…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게야!

쿠란은 그렇게 말하고는 제 머리를 바닥에 내리치기 시작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것이다.

“어, 어르신! 그러지 마십쇼! 어르신!”

- 늙으면… 죽어야지….

“제발! 그러지 마십쇼! 늙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생명체가 늙고 병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 늙고 병드는 게 당연하다라….

“그럼요!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결국 심장이 뛰는 생명체 아닙니까? 그러니 나이를 먹으면, 늙고 병드는 건 당연하죠. 그리고 드래곤의 기대수명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르신 정도면 장수하신 거 아닙니까?”

- 그건 그렇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9천 살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나는 900년을 더 살았으니 장수하긴 했지.

“그럼 치매가 와도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 그건 그렇다만…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느냐? 치매에 걸린 이상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겠지. 그러니 이 질긴 목숨… 스스로 끊는….

“제가 모실게요!”

- 으음?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괴로워 마시고, 자책하지도 마세요. 제발 목숨을 끊는단 말씀도 마시고요.”

- 그, 그게 정말이냐? 늙고 병든 드래곤인 나를 모시겠다고?

“쉽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러니까 그만 슬퍼하세요.”

- 허허….

“제발요.”

오토의 말은 진심이었다.

치매 판정을 받고 괴로워하는 쿠란을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저랑 차근차근 얘기하시죠.”

그러자 쿠란이 대답했다.

- 누구… 세용?

오토는 혀를 깨물고 싶었다.

* * *

결국, 오토는 몇 시간 동안의 설득 끝에 쿠란을 모시기로 했다.

중간중간 쿠란이 치매가 도지는 바람에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합의를 본 것이다.

- 좋다. 앞으로 너에게 신세를 좀 지마. 잘 부탁하마.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토가 지칠 대로 지쳐서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인간인 네가 나를 모시기란 결코 쉽지 않을 터. 네가 나를 쉽게 모실 수 있도록 해주겠다.

“예…?”

스으으!

드래곤의 몸이 밝게 빛나더니, 뒤이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초 뒤.

“이제 날 모시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게다.”

당장에라도 관짝에 들어갈 것 같은 꼬부랑 노인이 오토를 향해 주름진 미소를 지었다.

“오? 변신도 가능하셨어요?”

“우리 드래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오!”

“혹시나 광룡이 되어 날뛸지도 몰라, 내 힘의 거의 대부분을 봉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너는 안심하고 나를 모셔도 될 게다.”

“좋습니다.”

그렇게 오토는 치매 드래곤 쿠란의 보호자가 되었다.

졸지에 짐을 하나 떠안은 격이었지만, 오토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때 좀 더 잘해드릴걸.’

오토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지난날을 후회했다.

“잘했다.”

카이로스가 오토를 칭찬해주었다.

“네놈에게도 그런 기특한 구석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나.”

“뭐 인마?”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법. 이것도 인연인데, 공덕 쌓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잘 모셔라.”

“그럴 거거든?”

어쨌거나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오토는 본래 목적인 화합의 성서를 손에 넣기 위해 대현자 엘돌로곤의 관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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