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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71)화 (72/401)

제71화

이오타 왕국의 갈등과 분열은 거의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딱히 교류도 없고, 동족 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한 데 뒤섞여 살게 되니, 분쟁이 벌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급기야는 작은 규모의 폭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토가 돌아온 후 이오타 왕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화합과 단결이 잘 되는 국가로 거듭났다.

오토는 돌아오자마자 옥좌 앞에 단상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합의 성서를 올려두었다.

스으으!

그러자 화합의 성서로부터 상서로운 오라가 뿜어져 나오며, 이오타 왕국 전체로 뻗어나갔다.

[알림: <화합의 성서>의 효과가 발동되었습니다!]

[알림: 앞으로 백성들은 당신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할 것이며, 갈등과 분열을 넘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성능은 확실했다.

오토가 화합의 성서의 효과를 발동시키고 하루가 지나자 전국 곳곳에서 올라오던 민원의 90퍼센트가 줄어들었다.

위대한 마법사 엘돌로곤.

살아생전 대현자라 불렸던 드워프 마법사가 평생에 걸친 연구로 만들어낸 성물답게, 그 누구도 이루어낼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맙소사.”

와지르 대공은 화합의 성서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화합의 성서는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이 탐낼 만한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역사상 수없이 많은 국가들이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하지 않았던가?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민심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건 사실 신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왜 괜히 유능한 군주들과 정치가들이 민심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는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생각을 일치시킨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하지만 화합의 성서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니, 그 어떤 나라라 할지라도 탐내지 않고는 못 배길 보물이었다.

만약 화합의 성서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이오타는 전 세계 국가들의 침공을 받을 게 분명했다.

“세상에 이런 성스러운 경전이 있었을 줄이야….”

정치가이자 행정 관료인 와지르 대공은 화합의 성서에 대해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이 경전만 있다면… 아무리 큰 대제국을 운영한다 한들 내부적인 문제로 망할 일은 없겠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경전을 얻은 것까지는 좋다.”

와지르 대공이 오토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당연히 제가 잘해야죠.”

“음?”

“제 가치관과 생각이 백성들에게 공유되니까. 제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거나, 그릇된 가치관을 품으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겠죠. 제가 만약 타락이라도 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대제국이라도 하루아침에 폭삭 주저앉을 테고요.”

오토는 화합의 성서가 가진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화합의 성서는 양날의 검과 같은 성물.

왕이 유능한 인물이라면, 화합의 성서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그러나 왕이 희대의 폭군이라면, 그 부작용도 어마어마하게 클 터.

화합의 성서는 일종의 집단지성―물론 완전한 건 아니지만―을 구성하는 것.

그런데 그 주체가 되는 군주가 개판이라면, 백성들까지 함께 개판이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주 잘 알고 있구나.”

“당연하죠. 이 정도 머리도 없어서 어떡하려고요.”

“끌끌.”

와지르 대공은 오토가 이번에도 영리한 면모를 보이자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이 코딱지만 한 나라가, 내 마지막 은퇴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 은퇴작, 불후의 명작으로 만드셔야죠.”

“끌끌끌… 불후의 명작이라….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구나.”

…라고 말하긴 했지만, 와지르 대공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직은 변방의 작은 나라인 이오타가 어쩌면 대륙을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 * *

오토가 화합의 성서를 이용해 이오타의 민심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있을 무렵.

서쪽 교역로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다.

고블린 상인 에고의 이름을 내건 <에고 상단>은 여느 때처럼 화물을 운송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에고 상단은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게 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유목민 기병들이 상단 행렬을 습격한 것이다.

“으악!”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 악!”

“컥!”

마치 폭풍처럼 들이닥친 유목민 기병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단 사람들을 무참히 도륙 냈다.

거의 학살에 가까운 살육을 벌인 것이다.

상단 사람들은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지만, 불행히도 살아남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크하하하하!”

“어딜 도망가느냐!”

유목민 전사들은 말―타타르 품종―을 타고 집요하게 쫓아와서, 도망치는 상단 사람들 거의 대부분을 무참히 사냥해버렸다.

“아직 쓸 만한 놈들은 노예로 삼을 테니 데려가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놈들은 그냥 죽여라.”

유목민 기병들을 지휘하던 전사는,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에고 상단이 운반하던 화물들을 통째로 꿀꺽 삼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마, 맙소사….”

에고 상단의 주인이자 고블린 상인 에고는, 상단 행렬이 습격을 받았단 소식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

이번에 습격당한 화물 행렬은,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다.

온갖 사치품들과 향신료, 그리고 이오타의 특산물인 <로이드 포션>이 잔뜩 실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고작 둘밖에 없단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아이고… 아이고오….”

에고는 화물 행렬을 통째로 빼앗겼다는 소식보다, 살아남은 사람이 고작 둘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그 많은 일꾼들을 다 잃었으니, 이를 어찌할꼬… 아아….”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

유족들에 대한 배상금도 주면 된다.

그러나 사람을 잃은 건 쉽사리 복구할 수 있는 피해가 결코 아니었다.

화물 운송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숙련된 일꾼은 매우 귀중한 고급 인력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죽은 일꾼들 대부분이 에고 상단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라, 에고의 슬픔은 더 컸다.

“반드시… 복수해줄 것이다…. 우리 상단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으득!”

에고는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복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정들었던 일꾼들에 대한 복수도 복수였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건 무너진 신뢰의 회복이었다.

상인의 생명은 신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에고 상단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 많은 화물 행렬을 모조리 강탈당한 상단과 누가 거래를 하고 싶어 할까?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에고는 복수에 성공해야 했다.

그리고 빼앗긴 화물들을 모두 되찾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에고 상단이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 당장….”

에고가 입을 열었다.

“이오타 왕국으로 간다.”

* * *

화합의 성서를 이용해 민심을 수습한 오토는, 즉시 다음 행보에 대비한 작업에 들어갔다.

때는 늦가을.

‘한동안은 내정에 힘쓰면서 군사력을 기른다.’

오토의 다음 목표는 이곳 서쪽 변방을 벗어나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

그래서 오토는 이번 겨울 동안 군사력을 기르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러던 도중 또다시 변수가 발생했다.

수도로 복귀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전하, 콩기라트 부족 전사 타르고가 찾아와 아무칸을 만나게 해달랍니다.”

“아.”

오토는 카미유의 보고에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족장과 전사들이 갑작스럽게 실종됐으니까 찾아온 거구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만나게 해줘야지.”

“알겠습니다.”

오토는 아무칸을 데리고 콩기라트 부족 전사를 만났다.

“조, 족장.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타르고….”

아무칸이 씁쓸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 되었다.”

“족장….”

“나와 전사들은 이제 콩기라트 부족의 전사가 아니다. 이분을 모시는 부하가 되었다. 그러니 너는 돌아가라. 다시는 날 찾지 마라. 내 어머님께도 그리되었다 전해드려라.”

“그, 그럴 순 없습니다!”

타르고가 아무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족장! 하필 이런 시기에 족장이 자리를 비우시면 어찌한단 말입니까?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초원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전방에 나가 있던 우리 부족의 전사 500명이… 케레이트 부족 놈들의 기습으로 전사했습니다.”

“……!”

“케레이트 부족 놈들이 기세를 몰아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벌써 목초지 5개를 빼앗긴 상황입니다.”

“뭐라? 도대체 카이세이는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카이세이는 아무칸이 가장 아끼는 부하이자 콩기라트 부족의 이인자.

아무칸은 자신이 없더라도 카이세이가 충분히 콩기라트 부족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카이세이는 그러한 능력이 있는,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고.

“카이세이 장군은… 전사했습니다.”

“뭣이!”

“케레이트 부족의 족장 토그릴의 손에 그만….”

“맙소사. 카이세이가 죽다니.”

아무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떠한가.”

“계속해서 후퇴 중입니다. 이대로라면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우리 부족은 멸망할 것입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전사들이 모시고 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울란바토르도 위험합니다.”

<울란바토르>란 콩기라트 부족이 가중 중요시하는 영토로서, 국가로 따지자면 수도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지금쯤이면 서쪽 교역로도 이미 놈들의 손에 넘어갔을….”

그 순간.

“이런 개자식들이!”

오토가 버럭 소리치며 분노를 토해내었다.

“왜 갑자기 거품을 물고 그러십니까?”

“네놈은 왜 또 지랄발광이냐?”

카미유와 카이로스는 오토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고파아… 나 배고프단 말이야아….”

그 와중에 치매 드래곤 쿠란은 조금 전 밥을 먹었는데도 배고프다고 징징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기저귀 갈아달라고 징징거리지 않는다면야….

“아니! 그 서쪽 교역로가 우리 왕국이랑 이어지는 거잖아! 거길 빼앗기면 우리나라 물류 흐름이 끊긴다고!!!”

물류의 흐름이 끊기면 무역업도 멈추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어마어마할 터.

오토가 노발대발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맥경화야! 동맥경화! 그러면 어떻게 돼? 우리 다 죽는 거야! 다!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경제 곱창 나면 민심이 떡락하고, 폭동 일어나고, 반란 일어나고, 결국에는 내 머리통이 성벽 위에 내걸리겠지! 성난 백성들이 날 가만히 안 둘 테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이오타 왕국의 경제는 무역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는데, 서쪽 교역로가 막히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다.

또한, 이번 겨울에는 늘어난 인구 때문에 식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교역로를 통해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번 겨울에 최소 수만 명의 백성들이 굶어 죽을 게 분명했다.

이 또한 변수.

아무칸이 자리를 비운 것으로 인해 생긴 나비효과였다.

“그러게 왜 기어 와가지고, 이 난리를 만들어! 니 나와바리에 가만 자빠져 있을 것이지!”

오토가 아무칸을 향해 버럭 소리치며 드롭킥을 시전했다.

“컥!”

드롭킥에 맞은 아무칸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도망치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카미유가 작게 혼잣말했다.

쒸익쒸익!

오토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일을 만들지? 아주?”

“죄송… 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어?”

“아, 아닙니다.”

“평소에 세력 관리를 얼마나 못했으면 그 잠깐 사이에 교역로를 뺏….”

오토가 아무칸을 본격적으로 갈구려던 그때.

그때.

“전하, 전하!”

“전하아아!”

“아이고오! 전하!”

고블린 상인 에고.

그리고 평소 이오타 왕국과 거래하던 상인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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