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설마.’
오토는 에고와 상인들이 몰려온 걸 보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그렇게 됐습니다요.”
에고가 오토에게 화물 행렬이 약탈당했단 사실을 말해주었다.
“으… 으으!”
오토는 보고를 듣자마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얼굴을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이럴 줄 알았다.’
콩기라트 부족의 이인자이자 아무칸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되어야 할 카이세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토그릴.
하브르 초원에서 가장 큰 세력인 케레이트 부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그 역시 100인의 군주 중 하나였다.
애초에 하브르 초원의 메인 시나리오 자체가 콩기라트 부족의 젊은 족장 아무칸과 케레이트 부족의 족장 토그릴의 대립이었던 것이다.
‘카이세이가 이렇게 빨리 뒈지는 게 말이 돼?’
카이세이는 아무칸과 대등한 실력자로서, 그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영웅 유닛이었다.
그래서 아무칸이 죽거나 사라지더라도 충분히 토그릴과 맞서 싸우는 게 가능했다.
아무리 못해도 서쪽 교역로 정도는 방어해주길 기대했는데….
‘일이 계속 꼬이네.’
아무칸의 한 타임 빠른 등장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하긴. 엘돌로곤의 무덤 안에 저 영감님이 잠들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오토는 카미유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쿠란을 힐끔 쳐다보았다.
“누구… 세용?”
“…….”
쿠란은 또다시 치매기가 도져서, 지난 며칠 동안 얼굴을 트고 지냈던 카미유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것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난감하네.’
여기는 게임 <영지전쟁> 속 세계.
그러나 게임과 현실이 100퍼센트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의심이 아닌 확신이었다.
게임 시나리오의 기본적인 뼈대와 정보들은 똑같지만, 그 흐름이 조금씩 엇나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게임과 현실이 100퍼센트 똑같을 수 없기에, 자그마한 사건 하나가 커다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더 신경 써야겠어.’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칸의 엉덩이를 또 한 번 걷어찼다.
“야 이! 너 때문이잖아!”
“커헉!”
아무칸은 또다시 저 멀리 날아가 철푸덕! 하고 볼썽사납게 엎어졌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칸이 다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칸이야 워낙에 맷집이 좋은 캐릭터인데다가, 오토가 진심으로 때린 게 아니라서 그저 밀려난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저걸 확 그냥!”
오토는 맘 같아선 아무칸을 두들겨 패고 싶은 걸 꾸욱 참았다.
기껏 부하로 받아들인 놈을 때려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에휴!
내 팔자야!
“아무튼.”
오토가 에고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우리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 말씀이시죠?”
“이만저만이 아닌 정도면 좋겠습니다만… 사실상 소인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요.”
“그렇겠죠. 아무리 뒷감당을 하려고 해도 금액이 만만치가 않을 테니까.”
“전하,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요? 이대로라면….”
“에고 님도 망하고. 저도 망하고. 다 함께 하하호호 즐겁게 망하는 거죠. 쫄딱.”
“복수해야 합니다요. 망할 땐 망하더라도 우리 일꾼들에 대한 복수는….”
“당연히 해야죠.”
오토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우리 사람들, 우리 돈, 우리 구역. 이 세 가지를 다 건드렸는데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두겠어요?”
만약 일꾼들은 살려두고 화물과 교역로만을 약탈한 것이라면 최소한의 협상의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일꾼들을 모조리 학살해버린 이상 협상은 물 건너간 셈.
백 번 양보해서 협상을 하더라도, 유가족들의 분노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했다.
사람 목숨을 보상금 몇 푼으로 때울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10배로 되갚아줄 겁니다.”
오토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섬뜩하고도 냉랭한 말투로 복수를 선언했다.
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혹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 * *
띠링!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피의 복수]
내용 : 서쪽 교역로를 탈환하고, 약탈과 학살을 일삼은 이들을 응징하라.
진행률 : 0% (0/1)
보상 : 고블린 상인 에고의 선물 상자
주의 :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