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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87)화 (88/401)

제87화

과연 한 지역의 최강자를 상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토그릴은 엄청나게 강했고, 또한 빨랐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뛰어났다.

하브르 초원 최강자라는 타이틀이 딱지치기를 해서 딴 게 아니었다.

지금의 위치에 올라오기까지 숱한 전투를 치렀고, 또한 수없이 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렸을 터.

비록 카이로스만큼은 아닐지라도, 토그릴 역시 수없이 많은 아수라장을 거쳐 온 전투의 베테랑.

오토는 감히 비벼 보지도 못할 만큼의 전투경험을 지닌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토그릴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오토를 강하게 압박했다.

“창공에 서린 혼들이여! 놈을 찢어발겨라!”

거기에 더해 더 강력한 상위 등급의 매 정령 3마리를 추가로 소환해 내었다.

“끼이이이!”

“삐이이이이이!”

“끼이이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세 마리의 매 정령은, 매우 영리하게 오토를 압박했다.

빠질 땐 빠지고.

공격할 땐 공격하고.

때로는 토그릴의 빈틈을 노리는 오토의 반격을 대신 막아 주기까지 했다.

때문에, 오토는 정신없이 회피와 방어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토그릴만 해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강적인데, 3마리의 매 정령들까지 동시에 상대하려니 손발이 어지러웠다.

‘일단 시간 좀 벌자.’

오토는 급한 대로 입고 있는 <타오르는 화갑 세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시뻘건 화염이 뿜어져 나와 순간적으로 토그릴과 매 정령들을 밀어냈다.

화염이 적들을 숯덩이로 만들어버렸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적들을 잠시 물러나게 만들었을 뿐….

“그 따위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토그릴이 살벌한 말투로 오토를 비웃었다.

구멍이 뻥 뚫린 왼쪽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마치 피눈물을 연상케 했다.

“네놈을 솥에 넣고 삶아서 뼈는 사골을 우려내 국을 끓여 먹을 것이고, 살은 모조리 발라 우리 전사들끼리 나누어 먹을 것이며, 가죽은 내 텐트의 양탄자로 쓸 것이고, 두 눈알은 내 직접 씹어 먹어 줄 것이다.”

“하하… 하하하….”

오토는 그런 토그릴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X됐네.’

막상 부딪쳐 보니 토그릴의 강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해. 얘가 지금 이 시기에 이렇게 강했던가?’

오토는 시간대별로 어떤 캐릭터가 얼마나 강한지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토그릴은 그런 오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더욱 난감한 점은, 토그릴이 어느 곳 하나 모난 구석 없는 육각형 캐릭터였다는 거였다.

딱히 장점도 없지만, 그렇다고 단점도 없는 캐릭터가 바로 토그릴이었다.

때문에, 토그릴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름 아닌 <강함>이었다.

딱히 정해진 공략법 없이, 그냥 스펙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상대였던 것이다.

‘젠장. 석화의 눈도 안 먹히고. 화염방출도 피해 버리면 어쩌란 거야? 죽음구슬도 한 번 당했으니 두 번은 안 당할 테고.’

오토로서는 쓸 수 있는 카드를 모조리 쓴 상황이라서, 토그릴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두 동강을 내주마!”

토그릴이 대검을 휘둘러 오토를 노렸다.

“크윽!”

오토는 최선을 다해 토그릴의 공격을 피해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콰앙!

토그릴의 대검과 오토의 검이 부딪히고.

쨍그랑!

오토의 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악!”

오토는 비명을 내지르며 멀리 나가떨어졌다.

검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날아간 것이다.

“크윽….”

오토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주르르르….

가슴팍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토그릴의 대검이 오토의 검을 깨부순 것으로도 모자라서 <타오르는 화갑 세트>를 가르고 가슴팍을 벤 것이다.

만약 갑옷의 방어력이 조금만 낮았어도 치명상을 피할 수 없었을 터.

‘죽는다.’

순간 오토의 뇌리에 불현듯 두려움이 엄습하던 때.

- 이 머저리 같은 놈.

카이로스의 음성이 오토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 * *

- 쫄았느냐? 뒈질까 봐?

“말 걸지 마!”

오토는 안 그래도 죽을 위기인데 카이로스가 말까지 걸어오니 짜증이 팍! 나서 소리쳤다.

집중력을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

카이로스의 빈정거림이나 들어주기엔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 끌끌끌! 좀 치는 놈을 만나니 아쎄이답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구나!

“아쎄… 뭐?”

- 무식한 놈. 용병들 세계에서는 신참을 아쎄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르느냐?

“그딴 걸 내가 알아서 뭐해! 그리고 지금….”

그 순간.

퍼억!

토그릴의 발차기가 날아들어 오토의 배를 찍었다.

“악!”

또다시 날아가 땅에 처박힌 오토.

“큭! 말시키지 말라ㄱ….”

그때.

“끼이이이이이!”

“끼이이!”

“끼이이이익!”

3마리의 매 정령이 오토를 향해 급강하했다.

‘카이로스 이 미친놈이 지금 날 죽이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 아쎄이! 기본으로 돌아가라!

“자꾸 뭐라는 거야!”

오토가 토그릴과 3마리의 매 정령을 피해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쳤다. 

- 기술 몇 개 막히면 뒈질 것이냐? 밑천이 바닥났다고 해서 적에게 목숨을 내어줄 것이냐는 말이다!

“그거야 당연히 아니지!”

- 네놈에게는 무적의 검술이 있다.

“……!”

- 게다가 저 흉악한 놈은 왼쪽 눈이 없지 않느냐! 그거면 충분하거늘!

그 순간.

‘아!’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언을 듣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깨달았다.

‘그래, 해보자.’

방법이 떠오르자 어지러웠던 손발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피하고, 피하고, 석화.’

토그릴과 매 정령들의 공격을 피해낸 오토의 두 눈에서 회색 섬광이 뿜어졌다.

<석화의 눈>을 다시 한 번 사용한 것이다.

“소용없다!”

토그릴은 <석화의 눈>을 고스란히 맞아 가면서, 계속해서 오토를 공격했다.

애초에 피할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 자신의 마법저항력을 믿고 몸으로 때웠다.

‘기회는 온다.’

오토는 굴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해, 계속해서 토그릴의 몸 왼쪽을 향해 <석화의 눈>을 뿜어내었다.

그러던 순간.

‘지금!’

오토가 토그릴의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어딜!”

토그릴은 오토의 반격에 어림도 없다는 듯 호통을 내지르며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

놀란 토그릴.

빙그르르!

오토는 토그릴의 옆구리에 박혔던 검을 거칠게 뽑아내며, 마치 왈츠와 같은 움직임으로 그의 왼쪽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촤락!

촤라락!

오토의 검이 토그릴의 옆구리와 등을 갈랐다.

“크, 크윽!”

토그릴이 신음을 토해내며 휘청거렸다.

“끼이이이이이!”

“끼이이!”

“끼이이이익!”

매 정령들은 그런 토그릴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오토가 토그릴의 왼쪽에 딱 붙어  있어서, 자칫 잘못했다간 주인을 공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토그릴은 자신이 어째서 오토에게 연속으로 공격을 허용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글쎄. 왜 그럴까.”

토그릴과 등을 맞댄 오토가 냉소를 지었다.

토그릴은 왼쪽 눈을 잃은 덕분에 왼쪽 사각지대가 잘 보이지 않았고, 오토는 그걸 이용했다.

<석화의 눈>으로 토그릴의 왼쪽 팔과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둔화를 걸었다.

그런 뒤 왼쪽 사각지대로 파고들어 <무적검술>의 움직임대로 토그릴의 약점을 노린 것이다.

- 끌끌끌! 거 봐라! 되지 않느냐!

“그러네.”

오토가 저 멀리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카이로스는 늘 그렇듯 적의 시체를 깔고 앉은 채 가죽 주머니에 든 무언가―분명히 술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과연 카이로스.

과거 숱한 전투를 주름잡던 절대자답게,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란 귀담아들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속된 말로 <짬>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맙단 말은 나중에 하고… 일단 끝낼게.”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토그릴의 사각지대를 집요하게 공략했다.

“이… 이이…!!!”

토그릴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사방팔방으로 공격을 퍼부어 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토는 절대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않고, 토그릴을 철저히 농락했다.

그러던 중.

“죽여 버릴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토그릴이 버럭 소리치며 대검을 크게 휘두르던 순간.

서걱!

오토의 검이 토그릴의 목을 갈랐다.

털썩!

토그릴이 쓰러졌다.

“……!”

“……!”

“……!”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랐다.

오랜 시간 하브르 초원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초원 통일을 꿈꾸던 케레이트 부족의 족장이 어느 이름 모를 대륙인에게 쓰러진 것이다.

* * *

[알림: <토그릴>을 처치하셨습니다!]

[알림: 케레이트 부족의 잠재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알림: 토그릴의 시나리오가 삭제되었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102레벨 달성!]

(중략)

[알림: 106레벨 달성!]

레벨이 올랐다.

[알림: 레벨이 올라 <투시>와 <석화의 눈> 스킬이 강화되었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라 <칼립소의 눈> 스킬체계의 상위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알림: <맹독응시> 스킬을 사용 가능합니다!]

덕분에 새로운 스킬도 얻었다.

하지만 오토에게는 자신의 성장을 점검할 여유가 없었다.

토그릴의 죽음은 치열하던 전투를 끝내는 신호탄과도 같아서, 어느덧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조, 족장께서 전사하셨다.”

“아아.”

“족장이… 죽다니.”

토그릴의 죽음이 알려지자 케레이트 부족의 전사들은 큰 충격을 받고,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불리하던 전투를 지탱해주던 존재가 쓰러졌으니, 싸울 의지가 사그라지고만 것이다.

“하, 항복!”

“항복하겠소!”

케레이트 부족의 전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그렇게 전투는 끝이 났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토그릴이 전사한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연합군 장병들의 입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 죽는 줄 알았네.”

오토는 긴장이 탁! 풀리는 바람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어붙으면 안 돼. 좀 더 침착해져야 돼. 실전에서는 당황하면 죽는 거야.’

오토는 토그릴과의 대결에서 많은 걸 배웠다.

‘상황이 언제나 내 뜻처럼 흘러갈 리도 없고. 항상 유리하게 싸울 수만은 없어. 그런 상황이 부닥쳤다고 얼어 버리면, 그땐 정말 죽어. 앞으로는 좀 더 냉정해지자. 침착하게 해법을 찾는 거야.’

아무리 무적황제의 권능을 얻었다고 한들, 일개 방구석 게이머에 불과했던 오토가 실전에서 이만큼 해낸 것도 대단한 거였다.

그것만으로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강자인 토그릴과의 대결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점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었다.

“끙!”

오토가 힘겹게 몸을 일으킬 때였다.

“주군.”

아무칸이 오토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올렸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그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이오타 왕국군을 뺀 마그리트 왕국군, 콩기라트 부족, 헬무트의 군대, 그리고 케레이트 부족까지 모두 다.

설마하니 콩기라트 부족의 족장이자 초원의 젊은 늑대 아무칸이 사실은 젊은 대륙인의 부하였을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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