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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95)화 (96/401)

제95화

오토는 카이로스의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았다.

만약 그냥 불렀다면 카이로스의 말마따나 ‘네놈이 뭔데 짐을 오라 가라 해?’ 라며 성질만 낼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토는 전령을 통해 보낸 서신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만약 카이로스가 움직이길 거부한다면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 등등 옛 부하들이 황제 폐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할 것. 

…이라고.

아무리 고집불통·독불장군·유아독존인 카이로스가 할지라도 옛 부하들을 언급한다면 움직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라는 게 오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말하라!”

“커헉!”

“방금 뭐라고 지껄인 것이지 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컥! 어, 어르신! 커헉! 놔 주셔야 말씀을 드릴… 컥!”

카심은 억울했다.

‘아니 x발! 놔 줘야 말을 하지! 숨도 못 쉬겠는데!’

카이로스가 멱살을 워낙 세게 잡아서, 질식사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짐이 잠시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구나. 흠흠.”

“커헉!”

“놔 줬으니 말해 봐라.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냐.”

“그,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전하께서 서신으로 적어 보내신 내용을 어르신께 전달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뺀질이 놈이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가 짐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쿤타치 공국으로 오라고 했다고?”

“예, 어르신.”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라….”

카이로스가 그 이름들을 되뇌었다.

세 이름 모두 과거 카이로스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끼는 부하들의 이름이었다.

‘폐하! 오늘 저녁에 뒷산에서 고기나 구워 먹으면서 한잔 콜?’

‘폐하. 저 시집 좀 보내 주세요. 저 벌써 낼모레 쉰이에요.’

‘제발 바보짓 좀 그만하십쇼. 황제라는 분이 도대체 뭐하고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문득 카이로스의 뇌리에 녀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뺀질이 놈이 그렇게 말한 게 사실이렷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거짓말이라면… 뺀질이 놈의 강냉이를 다 털어 버릴 것이다.”

“그, 그거야 두 분이서 원만하게 합의를 하시면 되는 부분이라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하하.”

“속는 셈치고 한번 가 보도록 하지.”

카이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쌩! 하고 술집을 뛰쳐나갔다.

그런 뒤 새로 만들어진 목장으로 가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세 보이는 타타르 품종의 말을 훔쳐 탔다.

“이랴!”

“히이이이이이이이잉!!!”

그렇게 카이로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쿤타치 공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카이로스의 머릿속엔 의문이 가득했다.

‘그놈들이 어떻게 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설마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그럼 짐처럼 부활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군. 그렇다고 뺀질이 놈이 내게 거짓말까지 했을 리는 없을 텐데.’

하지만 직접 가 보기 전에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카이로스는 일단은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확실할 테니까.

* * *

한편, 오토는 매일 밤 습격해 오는 망령기사들을 상대로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망령기사들이 매일 밤 짙은 안개를 뚫고 나타나는 바람에, 밤새도록 싸우지 않고서는 쿤타치 공국을 지켜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 번째 전투가 끝난 직후.

“목소리가… 잘… 안 나와… 으어어어어….”

오토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밤새 <야만용사의 포효> 스킬로 아군들에게 버프를 걸어 주느라 목청이 남아나질 않았던 것이다.

“드십시오.”

카미유가 따뜻한 차를 가져와 오토에게 내밀었다.

“목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따뜻한 음료가 도움이 된답니다.”

“땡큐.”

“그나저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카이로스가 어르신이 올 때까지?”

카미유가 주변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주변 환경은 처참했다.

“으어. 으어어어어.”

“내 다리… 내 다리이이!”

“더는 못 싸우겠습니다. 정말 더 이상은….”

병사들의 절대다수가 완전히 지쳐 있었던 데다가, 부상자나 사망자도 상당했다.

게다가 몸은 멀쩡하더라도, 망령기사들이 내뿜는 귀기에 노출되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병사들이 상당히 많았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악!”

“죽어, 죽어어어어!”

전투가 끝났음에도 아직도 무기를 든 채로 허공에 칼질을 하는 병사들마저 있을 지경.

마검사들과 마법사들도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는 상태라, 더 이상의 전투는 힘들 것 같았다.

콘라드는 성벽에 기대어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지칠 대로 지쳐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저 쿤타치 공국의 왕으로서, 가문의 가주로서 전혀 티를 내고 있지 않았을 뿐….

“다음 전투는 정말 어려울 겁니다.”

“나도 알아.”

오토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 전투 때 무너질 거야. 만약 어떻게든 버텨낸다고 해도 그 다음 전투 때는 반드시 무너져. 나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윽.”

오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목이 쉴 대로 쉬어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필 이럴 때. 카이로스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번 망령기사들의 습격도 오토의 계산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망령기사들의 습격이 벌어진다는 정보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시기에 망령기사들이 폭주하는 건 예상에는 없던 시나리오였다.

‘대응해야 돼. 상황이 언제나 내 맘 같을 수 없어. 생각해 보자. 카이로스가 올 때까지 버틸 방법을.’

지난번 토그릴과의 대결 당시에도 토그릴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해서 당황했던 것이 사실.

오토는 이번에는 토그릴과의 대결 때처럼 당황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방법을 찾는 데 몰두했다.

그러던 중.

“어?”

오토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눈을 빛냈다.

“왜 그러십니까?”

“마법사들이랑 마검사들 다 불러 모아.”

“방법을 찾으신 겁니까?”

“어쩌면?”

오토는 확신하지는 못했다.

게임으로 플레이할 당시에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이라, 먹힐지 안 먹힐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시도는 해 봐야 하는 법.

“일단 불러 모아 봐. 시도는 해 봐야지.”

“예, 전하.”

오토는 마검사들과 마법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 지금부터….”

오토의 이야기를 들은 마검사들과 마법사들은 이게 무슨 작전인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오토의 말이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이해가 안 가시더라도 한 번만 따라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예, 소가주님.”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복수… 복수를 원한다.”

“배신자를… 처단할 것이다.”

망령기사들이 안개를 뚫고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는 대낮.

안개가 워낙 짙다 보니, 해를 다 가려서 아직 밤이 찾아오지도 않았는데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적이다!”

“전군! 전투 준비!”

예상보다 빠른 공격에 쿤타치 공국의 군대는 재빨리 전열을 가다듬고, 다가올 전투에 대비했다.

그러던 중.

마검사들과 마법사들이 일제히 똑같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그러자 성벽 앞으로 수백 개의 환영들이 나타났다.

그 환영들은 모두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복수… 복수우우우우우우!!!”

“배신자가… 저기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라!!!”

망령기사들은 즉시 광분 상태에 휩싸여 환영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더욱 빠른 공격속도와 이동속도로….

하지만 망령기사들이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댄다고 한들 환영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환영에 불과해서, 망령기사들의 공격은 그저 허공을 가른 것에 불과했다.

디코이 주문[Decoy spell].

환영을 불러내는 마법.

불러낸 환영은 그저 허상에 불과해서, 어떠한 효과도 없었다.

다만 지속시간 동안에는 그 어떤 공격에도 사라지지 않을 뿐….

“오오!”

“오오오오오오!”

사람들은 망령기사들이 환영들을 공격하며 헛발질을 하는 걸 보고 놀라워했다.

설마 하니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망령기사들을 현혹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간단한 방법이 아니었다.

왜?

아무 환영을 불러낸다고 해서 망령기사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저거… 율리우스 아닙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마검사들과 마법사들이 불러낸 환영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율리우스와 쏙 빼닮아 있었다.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율리우스는 아니고.”

“똑같이 생겼습니다만?”

“비슷하긴 한데 율리우스는 아냐. 아르곤 대제지.”

“……!”

“망령기사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아르곤 대제가.”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 * *

디코이 주문으로 아르곤 대제의 환영들을 불러낸 후로 전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복수… 복수우우우우우우!!!”

“죽어라… 배신자여…!!!”

망령기사들은 환영인 줄로 모르고, 계속해서 아르곤 대제의 형상을 공격했기에 굳이 싸워서 물리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껄껄껄!”

콘라드는 오토가 기지를 발휘해 망령기사들을 묶어 둔 걸 보고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이런 영리한 녀석 같으니!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 35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사태를 어찌 이리도 간단히 해결한 게야!”

“어쩌다 보니 이 사태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거죠.”

“망령기사들이 나타났던 이유가 아르곤 대제와 관련이 있었다는 말이냐?”

“예, 할아버님.”

“그걸 어찌 알게 되었느냐?”

“숲속이 어떤가 싶어서 투시를 사용했다가….”

오토가 콘라드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허어.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운이 좋았죠. 투시를 해 보지 않았다면 사연을 알아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운도 곧 실력이니라. 네 녀석에게 무적황제의 권능이 없었다면, 어찌 망령기사들의 기억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겠느냐. 능력이 있기에 곁을 스치는 행운도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하하….”

“정말이지 충성스러운 자들이로다. 이승을 떠도는 망령이 되어서까지도 군주에 대한 충성을 지켜나갈 줄이야.”

“안타까운 일이죠. 저런 충신들이 망령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비극 아닐까요? 영웅들이 잠든 영묘 같은 곳에서 영면에 들어도 모자랄 판에.”

“듣고 보니 네 녀석 말이 옳구나. 안타까운지고.….”

어쨌거나 오토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전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고, 쿤타치 공국은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났을 때.

“……!”

“……!”

“……!”

열심히 환영들을 공격하며 허공에 삽질을 하던 망령기사들이 불현듯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일제히 성벽 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망령기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망령기사들이 신하의 예를 올린 곳에 그들의 황제가 우뚝 서 있었다.

이오타 왕국에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온 황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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