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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00)화 (101/401)

제100화

데구르르르르!

탓!

창문을 깨고 파티장에서 도망친 오토는, 지붕을 쭉 미끄러졌다가 훌쩍 점프해 성벽 위로 도약했다.

쌔앵!

그리고는 산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건 오직 생존을 위한 도주였다.

“아니이이이이이이이이!”

내달리는 오토의 입에서 절규가 터졌다.

“저 여자가 지금 왜 여기에 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토는 조금 전 파티장에 입장한 한 쌍의 남녀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었고, 커플도 아니었다.

그들은 할아버지와 손녀였다.

노인의 이름은 지안카를로 반 잘츠부르크.

아라드 제국의 대공인 그는, 그 이름도 유명한 북부대공이었다.

과거 식인황제 카이로스가 북벌을 명분으로 쌓은 초거대 장벽의 3분의 1을 맡은, 제국의 방패와 같은 인물이 그였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사람은 북부대공 지안카를로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손녀였다.

엘리제 반 잘츠부르크.

북부대공의 딸인 그녀는 175cm의 장신에 대륙 제일의 미녀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큰 키와 아름다운 외모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무력>이었다.

엘리제는 게임 <영지전쟁> 세계관 최강자였다.

그녀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검술의 천재. 

어느 시기든 세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정도로, 그 강함이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러다 게임 후반부에 접어들면  위대한 <그랜드 아크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 일대일로는 그 누구에도 지지 않는 무적의 경지를 이룩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파혼당한 거 아니었냐고!’

오토의 약혼자이기도 했다.

* * *

아주 오래 전.

콘라드는 쿤타치 가문의 부흥을 위해 북부대공 지안카를로와 약속했다.

만약 서로 손주·손녀를 보거든 사돈을 맺자고.

그러나 오토의 어머니 셀레나가 쿤타치 가문에서 쫓겨나 의절을 당한 뒤 약속은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콘라드가 사실상 대가 끊기게 되면서,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토가 이 세계에 빙의한 후 이야기는 달라졌다.

정확히는 오토가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닌 덕분에, 소문이 퍼진 게 컸다.

게임과 이 세계가 100퍼센트 맞아떨어지지 않은 덕분에 이런저런 변수들이 생기면서, 오토의 존재가 잘츠부르크 가문에까지 알려지게 된 게 분명했다.

그마저도 확실치는 않지만….

‘아. 진짜 x됐네.’

엘리제의 등장은 그 어떠한 변수보다 오토에게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엘리제는 그 엄청난 무력만큼이나 컨트롤하기가 어려운 존재였고, 호감도를 쌓는 방법조차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캐릭터였다.

수없이 많은 게이머들이 엘리제를 결혼하거나, 혹은 부하로 만들기에 도전했다.

엘리제 같은 세계관 최강자를 아군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게임을 발로해도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엘리제와 결혼하거나 부하로 삼는 데 성공한 게이머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쭙잖게 접근을 시도했다가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목이 뎅겅 날아가기 일쑤.

그래서 엘리제는 절대로 건드리거나 시비가 붙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게이머들에게 일종의 자연재해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토도 빌드를 짤 때 엘리제와 최대한 접점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서 게임을 플레이했을 정도였다.

일정 시기만 넘기면 엘리제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약혼이 완전히 깨지기 때문이었다.

‘왜 왔지? 그간 내가 너무 나댔나? 아닌데. 고작 이 정도 나댄 거로 잘츠부르크 가문까지 내 소식이 흘러들어갈 리가 없는데.’

오토는 엘리제라는 무시무시한 빌런(?)이 등장한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최대한 멀리멀리 도망가야 돼. 계획이 다 꼬이더라도 한동안은 쭉 숨어 있어야 돼. 안 그러면….’

오싹!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엘리제와 엮이는 순간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지를 잘 알기에,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때까지 쥐 죽은 듯 조용히 숨어 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왜?

오토조차도 엘리제를 제어하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만약 여기서 코를 꿰었다간….

슈우우웅!

펑!

무언가 날아와 오토의 근처에서 폭발했다.

“이게 뭐… 히익?!”

오토는 저 멀리 수없이 많은 빛의 검들이 마치 미사일처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걸 보고 오줌을 지릴 뻔했다.

분명 저 빛의 검들은 오러로 이루어진 것일 터.

세상에서 오러로 빛의 검을 만들어 미사일처럼 날려 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

“으아아아악!”

오토는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오는 빛의 검들을 피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펑펑! 펑! 펑! 펑! 펑펑! 펑!

빛의 검들이 오토의 주변으로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던 중.

푸욱!

빛의 검 하나가 오토의 코앞에 떨어져 성벽에 박혔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뒤이어 24자루나 되는 빛의 검들이 오토의 주변에 원형으로 박히며, 하나의 작은 감옥을 이루었다.

“…….”

오토는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스으으으!

위험하게 반짝이는 빛의 검들이 마치 <언제든 폭발해서 널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어디 움직여 봐>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벅저벅!

누군가 오토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얀 군복을 입은 장신의 여기사.

엘리제 반 잘츠부르크.

빛의 검으로 오토를 우리에 갇힌 수퇘지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어딜 도망가나.”

엘리제가 냉혹한 목소리로 오토에게 말을 건넸다.

‘실제로 보니까 예쁘긴 엄청 예쁘네… 가 아니라. 나 이제 진짜 x됐네.’

오토는 순간 엘리제의 미모에 혹했지만, 이내 곧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도살장에 끌려온 수퇘지처럼 고개를 떨궜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네에.”

“나는 엘리제 반 잘츠부르크다.”

“그, 그러시군요.”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와라.”

엘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토를 가두었던 빛의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숲을 향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튈까?’

오토는 잠깐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어차피 튀어 봐야 벼룩일 뿐, 엘리제로부터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성역의 어릿광대 석상 뒤에 봉인된 무적황제의 권능을 얻는다면 가능할 테지만, 그건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지금은 그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수밖에….

* * *

같은 시각.

“자,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하하하!”

콘라드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엄청나게 당황했다.

‘이런 빌어먹을! 기어코 냄새를 맡았구나!’

지안카를로와 엘리제의 방문은 콘라드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콘라드는 오토가 나타난 이후 지안카를로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긴 했지만, 연락은 하지 않았다.

왜?

생각이 달라졌으니까.

옛날에는 쿤타치 가문의 부흥을 위해 지안카를로와 사돈을 맺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지안카를로와의 친분이 두텁기도 했고.

그러나 오토가 성역을 열고 무적황제의 권능을 얻게 된 이상 쿤타치 가문의 부흥은 시간문제에 불과해서, 지안카를로와의 정략결혼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 아이가 검술의 천재이긴 하나 우리 오토도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거늘. 뭐가 아쉬워서 이 결혼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안카를로의 손녀에 대한 소문이 그리 흉흉한데, 어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녀석을 호랑이굴로 집어넣겠는가. 그럴 순 없다.’

사교계에서 엘리제의 평판은 좋지 못했다.

아니, 좋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괴담에 가까웠다.

춤을 신청한 백작가 아들의 팔을 잘라 버렸다는 둥.

결투를 신청했던 기사를 두 동강 내버렸다는 둥.

북부 장벽 너머 야만인들을 죽이고 그 인육을 즐겼다는 등.

폭력적인 성향에 대한 소문은 애교에 불과했다.

북부의 야만인들 여럿과 더불어 난잡하고 음란한 사생활을 즐긴다,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시녀를 죽이고 그 피를 마셨다, 남자를 꼬드겨서 잠자리를 가진 후 정기를 모조리 빨아먹어서 미라로 만든다.

기타 등등등….

엘리제에 대한 소문들은 하나같이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것들뿐이었다.

물론 콘라드도 바보는 아닌지라 그 소문들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형님.”

지안카를로가 콘라드에게 정말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이 동생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외손자가 돌아왔으면 이 동생에게 귀띔이라도 해 주셨어야지, 어찌 그리 무심하십니까?”

“그, 그것은….”

“이 동생 정말로 섭섭합니다.”

지안카를로는 그렇게 말하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 교활한 영감탱이 같으니! 옛날엔 그렇게 사돈을 맺자고 질척거리더니만 연락 한번을 안 해? 이제는 손자가 아깝다 이거지?’

제국의 대공답게, 지안카를로도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안카를로는 콘라드의 속내를 뻔히 꿰뚫어 보고 있었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었다.

왜?

이 결혼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형님의 손자와 결혼시키는 게 아니면 답이 없다. 형님의 외손자야말로 마지막 희망.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어떻게든 엘리제와 결혼을 시켜야 한다.’

엘리제는 그간 일으킨 사건·사고와 헛소문―개중에는 진짜인 것도 몇 있었지만―들로 인해 혼삿길이 완전히 막혀 버린 상태.

게다가 어지간한 남자라면 말을 섞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사실상 연애결혼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오토와의 정략결혼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 * *

한편, 엘리제에 의해 숲으로 끌려간 오토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아주 공손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아, 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의 약혼녀이다.”

“그, 그랬습니까? 저, 저는 몰랐습니다.”

“신경 쓸 것 없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

“하지만 너는 나와 결혼할 자격이 없다.”

“네…?”

“너는 너무 약하다.”

엘리제가 마치 벌레를 보듯 경멸에 찬 시선으로 오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너와 같이 약해빠진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

“여, 역시 그렇죠?!”

오토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재빨리 입을 놀렸다.

“저 같은 약골이 어떻게 언감생심 엘리제 님과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압니다! 하하하!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죠!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강해져라.”

“예?”

“강해지면 된다.”

“그, 그게 무슨 말씀….”

“시간을 줄 테니 강해져라. 나의 결혼상대가 될 수 있도록.”

“…….”

“만약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강해지지 못한다면, 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고….”

스릉!

엘리제가 검을 뽑아 오토의 턱 끝에 겨누었다.

“내 손으로 널 죽일 것이다.”

“히, 히익?!”

“한 번에 강해지라고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시간을 주겠다. 차근차근 강해지면 된다. 강해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

“…….”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너의 성장을 점검할 것이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그 순간.

띠링!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숙제검사]

내용 : 매달 1회 엘리제에게 얼마나 강해졌는지 검사를 받을 것.

타입 : 장기 퀘스트 (36개월)

진행률 : 0 / 36 (0%)

보상 : 생존 및 엘리제와의 결혼

주의사항 : 이 퀘스트를 중도 포기하거나 클리어에 실패한다면, 엘리제의 손에 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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