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아르곤 그 새끼의 무덤이라고?!”
카이로스가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듯 자동으로 벌떡 일어나 눈을 부라렸다.
‘이쯤 되면 파블로프의 개 아니냐?’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건반사적인 반응에 피식 코웃음을 쳤다.
아르곤 대제의 ‘ㅇ’자만 나와도 저렇게 반응하다니….
‘어쩌면 어둠의 팬클럽 회장일지도?’
오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이로스에게 말했다.
“응. 아르곤 대제의 무덤.”
“그게 정말 있느냐?”
“그럼 없겠냐? 명색이 대제국의 황제였는데? 누구랑은 다르게 아르곤 대제는 대제국의 황제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화려하고 근사한 무덤에서?”
“이… 이이…!!!”
카이로스가 마치 과열된 주전자처럼 콧김을 씩씩 내뿜었다.
“그깟 무덤이 뭐가 중하다고! 어차피 뒈지면 다 같은 백골이거늘!”
어어?
백골 어르신 옆에 있는데 말이 너무 심하네?
하여간 자격지심은.
“거 좀 진정하고. 얘기나 들어봐.”
“아, 알겠다.”
“일단 아르곤 대제의 무덤은 존재해. 좀 많이 훼손됐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알짜배기는 멀쩡하다고 하더라고.”
“그게 정말이냐?”
“그렇다니까?”
“거기가 어디냐!”
카이로스가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한 기세로 오토에게 물었다.
“당장 가서 그 새끼의 무덤을 파헤치자! 그 빌어먹을 놈의 유골을 아주 잘근잘근 밟아 부수고! 해골은 짐의 술잔으로 쓸 것이다!”
“어차피 뒈지면 다 같은 백골이라며?”
“그, 그건.”
“그리고 아르곤 대제는 환생해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그깟 백골 부숴 뭐하게?”
“…….”
“하여간 그놈의 분노조절장애는.”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카이로스에게 설명했다.
“아무튼 아르곤 대제의 무덤 안에 온갖 보물과 유물들이 묻혀 있거든? 거길 털면 돼. 옵시듐으로 이루어진 갑옷 정도는 몇 개는 나올 거야.”
“으음!”
“문제는 아르곤 대제도 자기 무덤을 발굴하려고 노리고 있거든?”
“그게 정말이냐?”
“지금쯤 열심히 찾고 있을걸? 어쩌면 이미 찾아서 발굴을 준비 중일지도 모르고.”
오토는 경험상 율리우스―아르곤 대제―는 딱 이 시기쯤에 황릉을 발굴하고,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디냐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아르곤 대제의 무덤 위치가 역사서에 기록된 것도 아닌데.”
아르곤 대제의 무덤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오직 율리우스뿐.
수없이 많은 게이머들이 율리우스를 이용해 아르곤 대제의 무덤을 도굴해 보려고 했지만, 성공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 이 시기만 되면 율리우스가 감쪽같이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도 지난번 율리우스가 아르곤 대제임을 알게 되고 나서야 율리우스가 사라진 원인을 짐작해 본 거였다.
“이 뺀질이 놈이! 지금 변죽만 울리고 짐을 농락한 것이냐!”
“거,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봐라.”
“음?”
“나도 무덤 위치를 몰라. 근데 알아내면 되잖아.”
“어떻게?”
“그런 거대한 무덤을 발굴하는데 삽 한 자루로 되겠냐? 혼자 열심히 땅 판다고 황제의 무덤이 나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에라이.”
오토는 카이로스의 멍청한 표정을 보고, 설명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됐다. 말을 말자. 말을 마. 니가 그럼 그렇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술 퍼마시고 싸우는 것밖에 없지.”
“뭣이?”
“무덤 위치는 내가 알아낼 테니까, 넌 그냥 얌전히 있다가 따라오기나 해.”
“오호라!”
카이로스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잡일은 뺀질이 네 녀석이 다 할 테니, 짐은 그저 뒷짐만 지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렷다?”
“…….”
“껄껄껄!”
오토는 자신의 말뜻을 제멋대로 해석해 버린 뒤 정신승리를 시전하는 카이로스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더 말을 섞었다가는 화병이 날 것만 같았으므로….
* * *
쿤타치 가문을 떠나 이오타 왕국으로 복귀한 오토는, 즉시 아르곤 대제의 무덤 찾기에 나섰다.
‘잘됐네. 어차피 이번 겨울은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 겨울은 다가올 대전쟁에 대비해 군사력을 기르고, 식량과 자금을 비축하는 시즌이었다.
그렇기에 오토도 개인적인 수련 외에는 딱히 공식적인 일정이 없었다.
때마침 한가한 기간인지라 아르곤 대제의 무덤을 도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부르셨습니까요.”
오토의 부름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고블린 상인 에고가 고개를 숙였다.
“어쩐 일로 소인을 찾으셨습니까요?”
“혹시 최근에 노동자들의 대규모로 고용된 현장이 있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말 그대로 많은 숫자의 노동자들이 고용된 공사현장이 있었냐고 묻는 거죠. 삽, 곡괭이, 골렘 같은 장비를 많이 구매해 간 곳이 있을 텐데요.”
“전하, 지금은 겨울입니다요.”
에고가 난처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겨울철엔 공사가 없어서 대규모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건설 장비를 구매하는 곳은 없습니다요.”
“알죠.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잖아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요.”
“부탁해요.”
아르곤 대제의 무덤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오토가 취한 방법은, 노동 인력과 건설 장비의 유통을 추적하는 거였다.
사람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황릉을 발굴하는 대규모 공사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르곤 대제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놓고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건설 장비를 구매하진 않았겠지. 분명 유령상단 같은 걸 내세워서 다른 경로로 필요한 노동력과 물자를 조달했겠지. 후후.’
그래서 오토는 전 대륙을 무대로 활동하는 상인인 에고에게 정보를 수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여러 상단에 걸쳐 인맥이 넓은 에고라면 반드시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요.”
에고가 오토를 찾아와 보고했다.
“뭐죠? 그 이상한 점이라는 게?”
“한 용병단에서 기지 역할을 하는 요새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요.”
“그래서요?”
“노동자들을 대도시 같은 곳에서 한꺼번에 많이 모집한 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조금씩 모집했습니다요.”
에고가 이상하다고 말한 이유는, 굳이 노동자들을 여기저기서 수급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겨울.
주로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일감이 없는 시기였다.
만약 이 겨울에 노동자들을 고용하겠다고 공고를 낸다면, 일감이 없어 쉬고 있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 뻔했다.
굳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고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고용된 노동자들의 총 인원 수가 거의 3,000명을 넘습니다요. 게다가 삽, 곡괭이는 물론 시장에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골렘들의 재고가 동이 났습니다요. 이 정도면 규모의 공사라면….”
“거의 작은 왕궁 하나를 짓는 수준이죠?”
“그렇습니다요.”
“노동자들의 이동 경로와 건설 장비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나요?”
“그러실 줄 알고 소인이 정보를 수집해 왔습니다요.”
“역시.”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고 불렀지. 후후후. 결국 돈과 물류의 흐름이 모든 걸 결정한다니까.’
에고는 전 대륙을 무대로 활동하는 상인.
현실로 따지자면 글로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었다.
즉, 세계 각국의 정보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로 위장해 잠입할 수 있는 기회는 만들어 왔습니다요.”
“오오!”
“소인이 직접 알아봐 드립니까요?”
“아뇨, 아뇨.”
오토가 손사래를 쳤다.
“제가 직접 알아볼 테니까 정보만 주세요.”
“전하께서 직접 잠입하시는 것입니까요?”
“위험한 임무거든요.”
아르곤 대제가 본인의 무덤을 직접 발굴하는 현장에 잠입하는 임무이니만큼, 그 위험성은 가히 어마어마할 터.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까요? 이만한 일이라면 보통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요?”
“그게 뭐냐면….”
오토가 에고의 기다란 귓가에 대략적인 내용을 속삭여 주었다.
물론 율리우스가 사실은 아르곤 대제라는 비밀은 빼고….
“히이이이이이익?!”
그러자 에고가 놀라 자빠졌다.
“아, 아르곤 대제의 무덤….”
“쉿.”
오토가 주변을 슥슥 돌아보며 에고의 입을 틀어막았다.
“에고 님이니까 특별히 말해 주는 겁니다. 아시겠죠.”
끄덕끄덕!
에고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마, 맙소사.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까요.”
“더 자세한 건 지금 말해 드리기 곤란하니까 일단은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알겠습니다요.”
“그럼 에고 님은 이제 뭘 하셔야 할까요?”
“낄낄낄!”
에고가 언제 놀라 뒤집어졌다는 듯 웃었다.
“소인이야 전하께서 도굴하신 보물들을 세탁해서 처분할 판매망을 확보해야겠습죠.”
“캬아!”
척하면 척.
오토는 에고가 자신의 말을 아주 찰떡같이 알아듣자 감탄사를 내뱉었다.
카이로스 같은 돌머리랑 이야기를 하다가 에고와 같이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니 속이 다 시원했던 것이다.
“에고님 역할이 막중합니다. 도굴보다 세탁이 더 중요한 거 아시죠? 절대 출처가 알려지지 않게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분해야 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낄낄낄!”
오토는 에고의 수완을 믿었으므로, 세탁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지 않았다.
고블린이라서 그렇지, 에고의 수완은 아르곤 대제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 * *
다음 날.
오토, 카미유, 카이로스, 그리고 30명의 마검사들은 노동자로 위장하고 이오타 왕국을 떠났다.
그런 뒤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노동자들을 모집한다는 도시의 <노가다 길드>로 향했다.
<노가다 길드>는 각종 장인들이 모인 <기술자 길드>의 하위단체로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육체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곳이었다.
현실로 따지자면 인력사무소와 그 역할이 거의 비슷했다.
며칠 후 새벽.
노동자들로 위장한 오토 일행은, 새벽같이 <노가다 길드>로 가서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데려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어이, 거기.”
<노가다 길드>의 직원 하나가 오토 일행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이오타 왕국의 공군참모총장 카심은, 직원이 자신을 지목하자 화들짝 놀랐다.
그간 새끼 블랙 와이번을 돌보느라 독박육아(?)에 지쳐 있던 카심은, 때마침 특수작전이 있다기에 이때다 하고 자원했다.
아무리 새로운 클래스를 얻었다지만 그 역시도 근본은 마검사.
스스로의 성장과 실전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가끔씩은 특수작전에 참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하필 운이 영 좋지 못했다는 것.
“넌 광산으로 간다.”
“예에?”
카심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에고가 미리 이곳 <노가다 길드>에 기름칠을 해 놓았기에, 오토 일행은 모두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데려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광산이라니?
이게 뭔 개소리란 말인가?
“과, 광산이요?”
“광부들이 갱도에 쌓인 돌덩어리들을 치울 노가다꾼이 필요하다고 의뢰를 해 왔다. 특별히 보수는 두 배를 더 쳐준다니, 빨리 따라와라.”
“그, 그게.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 돌덩이 같은 걸 날랐다간 며칠 끙끙 앓아누울 겁니다.”
“이 추운 날 일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면서 허리 타령이야! 한 며칠 쫄쫄 굶고 싶어?”
“…….”
“불쌍해 보여서 뽑아 줬더니 배부른 소리나 지껄이고 있군!”
“그게 아니라….”
카심이 오토에게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오토는 카심을 도와줄 수 없었다.
‘의심받겠지?’
만약 카심이 보수를 두 배나 쳐준다는 일감을 거절했다는 걸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알게 된다면, 만에 하나라도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일감이 없는 시즌에 하루치 임금을 두 배로 쳐준다는 걸 거절할 노가다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지목당한 이상 일단 가는 게 옳았다.
‘그냥 가세요.’
‘저, 전하!’
‘빨리요.’
‘…알겠습니다.’
카심은 오토가 눈짓을 보내자 하는 수 없이 길드 직원을 따라 터벅터벅 대기실을 나섰다.
결국, 카심은 이번에도 엉뚱한 곳으로 팔려 감으로써 또다시 작전에서 빠지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세 번 연속 낙오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