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어이! 빨리 빨리 옮겨! 오늘 안에 끝내야 해!”
“아, 예!”
광산으로 팔려가게 된 카심은, 갱도에 잔뜩 쌓인 벽돌을 수레에 실어 밖으로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왜 나만 탄광이야!’
카심은 억울했다.
실전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오토가 직접 지휘하는 특수작전에 자원했더니, 혼자만 이런 막노동을 하게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까막이나 돌보고 있을 걸.’
<까막이>는 카심의 품에서 부화한 새끼 블랙 와이번의 이름이었다.
‘일 끝나면 빠르게 본국으로 복귀해야겠군.’
카심은 기왕 작전에서 빠지게 된 김에 이오타 왕국으로 복귀해 까막이나 돌보기로 했다.
어차피 광산으로 팔려온 이상 작전에 다시 참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왜?
오토 일행은 이미 작전지역으로 떠났을 테니까.
일을 마치고 뒤쫓는다 한들 오토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에, 카심으로서는 이오타 왕국으로 복귀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끄응!”
“왜 그렇게 힘을 못 써! 아직 옮겨야 할 돌이 산더미란 말이다!”
“제,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
“에라이! 야무진 놈이라더니 순 허당이구먼! 사내놈이 그거 좀 옮겼다고 허리가 안 좋다니!”
“…….”
“쯧쯧. 그래 가지고 어디 마누라한테 사랑과 존경을 받겠나. 사내구실도 못할 텐데.”
카심은 순간 울컥! 화가 치밀어 자신을 갈구는 광부를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비록 광산으로 팔려 오게 되었지만, 이 또한 작전이었다.
괜히 사고를 쳤다가 만에 하나 문제라도 불거지고, 그게 적들의 귀에까지 들어간다면 충분히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오토가 괜히 카심을 광산으로 보낸 게 아니었던 것이다.
“끙! 끄응!”
그렇게 마나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 근력만을 이용해 돌덩이들을 나르고, 또 나르던 중.
우르릉!
갑자기 갱도가 진동했다.
“으응?”
카심은 갑작스러운 진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 피해!”
“어서 달아나!”
광부들이 미친 듯 갱도 밖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어?”
카심은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지만, 얼떨결에 광부들과 함께 뛰었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와르르르르르르르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갱도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카심은 스스로에게 가속 주문을 걸고, 마나를 끌어올려서 갱도 밖을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워낙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작업을 하고 있던 터라, 갱도를 탈출하기란 불가능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카심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 갱도 안에 갇히고 말았다.
아니, 갇히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어어? 어어어어어어어어어?”
카심은 추락했다.
단순히 천장이 무너진 게 아니라, 갱도 전체가 붕괴되면서 지하 공간으로 떨어지고만 것이다.
* * *
한편, 오토 일행은 카심이 팔려간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대기하다가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다들 주목.”
<노가다 길드>의 직원이 말했다.
“혹시 한 달짜리 출장 가능한 사람 있나? 숙식 제공에 임금도 세 배인데?”
오토 일행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저요!”
“이 겨울에 한 달짜리면 무조건 가야지!”
“나 써 주쇼!”
오토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주 능숙하고 능청스럽게 일용직 노동자들을 연기해 냈다.
그건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은 그 어떤 임무를 맡더라도 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아주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중에는 위장하여 적진에 침투, 정보 수집과 암살에 관한 훈련도 있었다.
괜히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이 정예 중의 정예라 불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 결성한 용병단의 기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보안이 중요하기에, 한 달 동안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이동 시 안대를 착용하고 현장으로 갈 것이며, 외출 외박도 불가능하다. 도중에 그만두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러면 한 푼도 줄 수 없다.”
용병으로 위장한 아르곤 대제의 부하가 오토 일행에게 업무 내용을 설명했다.
“이런 시부럴!”
카이로스가 나섰다.
“중간에 그만두면 한 푼도 줄 수 없단 건 백번 양보해서 받아들일 수 있소! 근데 외출 외박도 안 된다는 게 뭔 개소리요? 그럼 내가 일하는 동안 여우같은 우리 마누라와 토끼 같은 내 새끼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이오? 이 추운 겨울에? 니미!”
“그건 걱정 마라.”
아르곤 대제의 부하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길드에 보증금을 넣어 두었으니, 지금 바로 출발하면 너희 가족들이 한 달 동안 먹고살 만한 액수의 돈을 보내 주겠다. 물론 그 돈은 임금으로 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정말이오?”
“우리 용병단은 바보가 아니다. 그 정도 안전장치도 없이 너희들이 일하러 가겠나?”
“그, 그건 그렇소만.”
“결정해라. 지금 당장 우리 용병단의 기지를 건설하는 현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일감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일 것인지.”
그러자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 셋이 슬그머니 빠졌다.
“한 달은 무리요.”
“난 안 되겠소. 아무래도 꺼림칙하오.”
“아쉽게 됐구려. 쩝. 나는 병든 노모를 모시고 있어서 집을 오래 비우기가 힘드오.”
마검사 셋은 각자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슬쩍 길드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역할은 다름 아닌 추적.
오토 일행이 탄 마차를 뒤쫓아 아르곤 대제의 무덤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게 그들의 임무였던 것이다.
“니미! 까짓것 한 달이면 못할 것도 없지! 좋소! 갑시다!”
카이로스가 시원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여간 밑바닥 출신이라 그런지 이런 역할이 아주 찰떡이라니까?’
카이로스는 거칠고 상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용병 출신.
고된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거친 사나이를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가겠소.”
“저도 데려가 주신다면 가겠습니다.”
그렇게 오토 일행은 카이로스의 열연(?)과 마검사들의 적절한 밀고 당기기 덕분에 의심을 1도 받지 않고 취업(?)에 성공했다.
만약 모두가 군말 없이 따라가겠다고 말했다면 의심을 살 만도 한데, 다들 연기를 잘해서 별 탈 없이 넘어간 것이다.
* * *
취업에 성공한 오토 일행은 안대가 씌워진 채 아르곤 대제의 무덤 발굴 현장으로 보내졌다.
문제는 가는 데 걸린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는 것.
“…그냥 뛰어내릴까.”
오토는 사흘째 되던 날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마차라는 이동수단이 잘 닦인 도로를 달려도 덜컹거리기 일쑤인데, 비포장도로를 사흘 내내 달리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우웨에에엑!”
“윽!”
심지어 마검사들마저도 멀미를 참지 못하고,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토했을 정도였다.
문제는 불평·불만조차 허심탄회하게 속을 터놓고 할 수가 없었다는 것.
“다들 조금만 참으시오. 얼마 남지 않았소.”
마차 안에 아르곤 대제의 부하 한 명이 함께 타고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어야 했다.
투덜거리는 것조차 연기를 해야 했으니, 그냥 묵묵히 있는 게 차라리 나았던 것이다.
그렇게 고문에 가까운 여정이 계속되던 중.
덜컥!
마차가 멈추고.
“이 개새끼들아! 빨리 내려!”
“빨리 빨리 내려!”
“3초 준다! 빨리 안 내리면 죽여 버릴 것이다!”
문이 벌컥 열리며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욕설을 퍼부어 대었다.
발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태도가 180도 변해서, 노동자들을 노예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노동자들 전부가 오토 일행이었지만….
‘이 새끼들이.’
오토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정말 오래간만에 분노했다.
한창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뒈지고 싶어! 빨리 빨리 움직여!”
“어이! 이 자식 뒈졌으니까 저리 치워!”
“오늘 안에 정해진 할당량을 못 채운 놈들은 목을 매달 것이다!”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은 노동자들은 쉴 새 없이 채찍질하며, 그들을 압박하고 윽박질렀다.
심지어 살인마저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차라리 죽여! 죽이란 말이다! 동상에 걸려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데! 어떻게 더 일을 하란… 크악!”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던 노동자는, 그 길로 목이 뎅겅!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살려 보낼 생각이 없네. 발굴 작업을 마치면 다 죽일 생각이야.’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고, 때리고, 죽인다는 건 뒷감당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악질 염전주들에게 평생에 걸쳐 노동착취와 학대를 당하는 염전노예들조차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아르곤 대제의 악랄함과 사악함은 오토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끌끌끌… 밑바닥 인생들이여.”
죽은 노동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곳으로 검은색 로브를 입은 노마법사가 다가갔다.
“살아서는 쓸모없는 쓰레기들에 불과했으나, 죽어서는 아닐 것이다. 일어나라, 나의 종들이여.”
노마법사가 원숭이의 것으로 보이는 해골지팡이를 앞세워 주문을 외우자 죽은 노동자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구왁… 구와아아악….”
“그어어어어어어….”
노마법사는 죽은 노동자들을 즉석에서 좀비로 만들고, 그들을 조종해서 노역을 시켰다.
좀비는 동작이 굼뜨다는 단점을 빼면 노동을 시키기에 안성맞춤이기는 했다.
왜?
유지비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좀비는 먹일 필요도 없고, 재울 필요도 없다.
육체가 완전히 썩어 해골병사가 될 때까지 24시간 내내 부려먹을 수 있으니….
‘아르곤 대제… 아니 아르곤 이 씨발놈아! 니가 사람이냐!’
오토는 아르곤 대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악한 인물이라는 걸 깨닫고, 정말 진심으로 분노했다.
카이로스를 뒤통수친 것?
혹은 특정 군주에게 기생한 뒤 뒤통수를 치는 것?
물론 더럽고 비열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야망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노동착취와 학대를 일삼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좀비로 만든다?
악마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악질적이고 사악한 악행이었다.
‘이 개새끼들. 니들은 내가 다 죽인다.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다.’
오토가 분노에 치를 떨 때.
“으으… 으으으!!!”
카이로스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사지를 바들바들 떨었다.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서다 보니, 완전히 이성을 잃고 폭발하기 직전인 게 분명했다.
‘아, 안 돼!’
오토는 재빨리 카이로스를 붙잡았다.
‘뭣들 해! 빨리 잡아!’
오토의 눈짓에 마검사들이 카이로스의 팔·다리를 붙들었다.
심지어, 카미유는 카이로스의 목을 뒤에서 조르기까지 했다.
“참아. 제발 참아. 부탁이야. 제발.”
“읍! 읍읍! 으으으읍! 읍읍읍!”
“알겠으니까 참으라고. 지금 사고 치면 우리까지 다 죽어.”
“읍! 읍읍읍! 으으으으으읍! 읍! 읍읍! 읍! 읍읍읍!”
“미친놈아 나도 열받으니까 제발 한 번만 눈 딱 감고 참으라고.”
오토는 거의 애원하듯 필사적으로 카이로스의 귓가에 속삭여야만 했다.
어떻게든 카이로스를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이곳까지 침투해 온 의미가 없어짐은 물론 적들에게 둘러싸일 터.
만약 그렇게 되면….
“거기! 이 새끼들이 지금 뭣들 하는 거냐!”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뭔가 소란스러워졌다는 걸 눈치채고 오토 일행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