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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09)화 (110/401)

제109화

“이 새끼들이! 빨리 빨리 모이라고 말했을 텐데! 장난 같나!”

“첫날이라 아직 감이 안 오는 모양이지? 신고식 좀 치르게 해 줘야겠나?”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오토 일행을 둘러쌌다.

“으으! 으으으으으으으!”

카이로스는 그 와중에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오토와 동료들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그런 카이로스의 모습은 마치 곧 폭발하는 압력솥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일단 재우자.’

오토는 하는 수없이 <각성의 부지깽이>를 꺼내 카이로스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퍼억!

“……!”

카이로스가 눈을 번쩍 뜨더니,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오토에게 아주 제대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덕분에 기절해 버린 것이다.

카미유가 뒤에서 목을 오랫동안 조른 탓도 있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텐데.”

때마침 아르곤 대제의 부하가 오토에게 다가와 물었다.

투구 밑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걸 보니, 조금만 심기를 거슬렀다간 피를 볼 모양이었다.

“아, 예. 이 친구가 일을 잘하는데 간질이 있답니다.”

간질은 경련·발작을 일으키는 병.

그래서 간질을 앓는 환자들은 이따금씩 발작을 일으키곤 했으므로, 충분히 일리 있는 변명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을 까뒤집고,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부들부들 떠는 카이로스의 모습이 꼭 발작이 일어난 간질 환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간질이라… 일은 할 수 있는 건가?”

“그래도 증상이 없을 땐 일을 잘하는 친구이니, 한 번만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군.”

아르곤 대제의 부하가 등을 돌렸다.

“알겠으니 괜한 소란 일으킬 생각 말고, 군말 없이 통제에 따르도록. 그러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카이로스의 분노 대폭발로 인한 위기는, 오토의 적절한 거짓말과 변명으로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네놈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보고 들었겠지. 이곳은 지옥이다. 네놈들은 납치당한 것이고, 우리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릴 것이다.”

그러자 마검사들이 털썩 주저앉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납치라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기다리는 처자식들이 있습니다!”

과연 마검사들의 연기력은 남달랐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노동자들을 아주 훌륭하게 연기해내서,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만약 아무도 겁을 먹지 않고 묵묵히 통제에 따랐다면, 충분히 의심을 살 만도 했는데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넘어간 것이다.

“통제에 잘 따르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일해라. 그럼 공사가 끝났을 때 집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약속하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오토 일행 중에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개뿔. 다 죽이겠지. 이 많은 사람들 모두 다.’

노동자 수천 명에 대한 인신매매와 살인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일용직 노동자들이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엄연한 백성.

이 사태가 알려진다면, 노동자들이 속한 나라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정보국을 동원해 사건의 정황을 캘 테고, 그 뒤엔 군대를 통원해 배후를 토벌하려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아르곤 대제는 더 몸을 사려야 할 테고, 만약 탄로 나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숙소로 이동해서 작업복과 연장을 챙긴다. 실시.”

“실시.”

숙소는 개판이었다.

천막으로 된 텐트 안에 대충 모닥불을 하나 피워 놓았을 뿐이고, 곧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야전침대가 전부였다.

이불조차 이가 득실거릴 것 같은 낡은 군용 모포가 전부라서, 이 추운 겨울날에 버티려면 어림도 없어 보였다.

“각자 삽과 곡괭이를 들고 집합하는 데 30초. 실시.”

“실시!”

오토 일행은 기절한 카이로스를 숙소에 휙! 던져놓고 연장을 챙겨 현장으로 향했다.

* * *

깡! 까앙! 깡!

푹! 푹!

와르르르르!

현장은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언 땅을 파고, 바위를 부수고, 흙과 돌덩이를 치우며 열심히 무덤 입구를 찾고 있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네.’

오토는 공사 현장의 규모가 생각보다 더 크다는 걸 확인하고 혀를 내둘렀다.

과연 대륙을 통일했던 초대 황제의 무덤이라 그런지, 그 스케일부터가 남달랐던 것이다.

‘이런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려면 비밀로 할 수밖에 없겠네.’

오토는 어째서 아르곤 대제가 이런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대규모 공사를 대놓고 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테고, 그럼 숟가락을 얹으려고 달려드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닐 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저지른 악행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건 결코, 절대 아니었지만.

“휴식 시간은 없다. 점심때가 되면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질 테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일해라.”

그렇게 현장에 투입된 오토 일행은 각자 연장을 움켜쥐고 발굴 작업에 나섰다.

“빨리 먹어라! 점심시간은 15분이라는 걸 잊지 마라!”

허여멀건 죽 같은 걸 먹은 시간을 빼면, 오토는 새벽 2시까지 죽어라 일했다.

‘그냥 ’

오토 일행이야 잘 단련된 강자들이니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평범한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커헉!”

“제, 제발 10분. 아니 5분만 쉬게 해 주십쇼.”

“자, 잘못했습니다! 일하겠습니다! 일!”

노동자들이 지쳐 쓰러질 때마다 모진 채찍질이 가해졌고, 그럴 때마다 죽는 사람이 꼭 한두 명씩은 나왔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흑마법사들이 나타나 죽은 노동자들을 좀비로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작업을 급하게 진행해서 그런지,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터졌다.

와르르르르르르르!

커다란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서, 그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덮쳤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제발!”

노동자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은 치료는커녕, 부상당한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죽여 버린 뒤 좀비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뒤 무력을 앞세워 분노한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런 멍청한 버러지들 같으니! 사고를 안 내는 것도 일이다! 네놈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썼어도 나지 않았을 사고가 아닌가! 이런 사고가 한번 터질 때마다 작업 속도가 느려진다는 걸 모르는가?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오늘은 사고 수습을 해야 하니 2시간 연장근무를 실시하겠다! 뭣들 하나! 어서 일해라! 일!”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로 떠넘겨지기까지 했다.

그날 새벽.

새벽 2시까지 작업을 하다가 숙소로 복귀한 노동자들은, 몸을 누이자마자 마치 시체처럼 잠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또 다른 지옥일 뿐이었다.

“끙. 끄응. 끙끙. 끙.”

“추, 추워.”

“으으으으으으으으.”

노동자들은 온몸의 근육통으로 인해 끙끙 앓고 신음했으며, 추위로 인해 덜덜 떨었다.

고작 4시간밖에 되지 않는 수면시간조차 고통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지옥을 만들어 놨네.’

그때.

“전하.”

노동자로 위장한 마검사 한 명이 텐트 안으로 들어와 오토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그는 <노가다 길드>에서 일행을 이탈했던 세 명의 마검사 중 하나로, 오토 일행을 추적해 무덤 위치를 알아내는 임무를 맡았던 이였다.

“현재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마검사가 슬쩍 오토의 곁에 누우며 속삭였다.

“어디죠?”

“아라드 제국의 서쪽 변방입니다.”

“아.”

비록 곧 망할 예정이긴 했지만, 아라드 제국은 현재 세계 최강대국.

황제의 허락 없인 언감생심 삽을 뜰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황제가 허락한다 한들 이곳이 아라곤 대제의 무덤인 게 밝혀지는 순간 거의 모든 유물을 빼앗기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던가?

그나마 무덤이 변방인데다가 인적이 극히 드문 오지[奧地]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이렇듯 비밀스럽게라도 공사를 진행하는 게 가능했으리라….

“수고하셨어요.”

“별말씀을.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합니까?”

“우리 군 1,500명만 빠르게 투입하죠. 그럼 여길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오토가 슬쩍 지도를 꺼내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좋네요. 로샨과 하브르 초원을 통과시킨다면 제국에 들키지 않고 병력을 투입할 수 있겠어요.”

오토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오타 왕국군을 나누어 이곳저곳에 배치해 놓았다.

무덤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기에, 병력을 빠르게 출동시킬 수 있도록 미리 전투준비태세를 갖추어 놓았던 것이다.

“들키지 않고 조심히 오라고 전해주세요.”

“예, 전하.”

오토의 명령을 받은 마검사는, 다시 텐트를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며칠만 기다려라.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오토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속으로 분노를 깊게 갈무리했다.

* * *

한편, 아르곤 대제는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공사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자신의 무덤을 1분 1초라도 빨리 발굴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라도 보고를 받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어떻게 되었다던가?”

“예, 폐하. 안전사고가 몇 번 터지는 바람에 공사 진행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합니다.”

“뭐라?”

“무능한 버러지들이 작업에 소홀한 덕분에 생긴 일이라 합니다.”

“쓰레기들 같으니. 하긴. 하루하루 막노동으로 벌어먹고 사는 놈들이 일이라고 제대로 하겠는가.”

사실 아르곤 대제는 숙련된 공병[工兵]부대를 동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현재 상인에 불과한 아르곤 대제로서는 그런 정규군까지는 보유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사병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라면 몰라도….

“그래서 얼마나 지체되었나?”

“최대한 놈들을 쥐어짜고 있으니 늦어도 열흘 안에는 황릉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으음.”

“폐하, 제가 직접 가서 발굴 작업을 지휘하겠습니다.”

“가이우스 네가 직접 가겠다는 말인가?”

“예, 폐하. 폐하께서 잠드신 황릉을 발굴하는 작업입니다. 제가 직접 가서 챙기는 게 옳을 듯합니다.”

“오오.”

아르곤 대제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가이우스는 그의 친동생이자 후손이었으며, 또한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그런 가우스가 직접 발굴 현장을 지휘하겠다니, 아르곤 대제로서는 좋아하는 게 당연했다.

아무래도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다. 허락하도록 하마. 단,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검은 십자회 놈들이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니.”

“예, 폐하.”

“작업이 완료되면 곧장 연락하라. 내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갈 것이니.”

“아예 폐하를 영접할 준비까지 해 놓겠습니다.”

가이우스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영접할 준비>란 발골 작업에 참여한 모든 노동자들을 깔끔하게 생매장시켜서, 아르곤 대제의 황릉이 발견되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묻어버리겠단 소리였다.

“어찌 천한 버러지들이 폐하께서 황릉에 강림을 영접하게 둘 수 있겠습니까? 깔끔하게 정리해 놓아야겠지요.”

“믿음직스럽구나, 나의 후손이여.”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뵙겠습니다.”

가이우스는 즉시 공사 현장으로 떠났다.

오버하우저 가문의 최정예 기사 30명과 500명의 사병들이 가이우스를 뒤따랐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이오타 왕국군을 태운 유목민 기병대가 발굴 현장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랴! 전하께서 기다리신다! 속도를 높여라!”

그리고 그런 기병대를 지휘하는 건 아무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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