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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10)화 (111/401)

제110화

탄광으로 팔려 갔던 이오타 왕국의 공군참모총장 카심은, 갱도가 무너져 내리는 대형사고에도 생존에 성공했다.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들에 깔려 죽기 직전이었는데, 바닥까지 같이 무너져 내려 지하공간으로 추락한 덕분이었다.

카심은 반중력 주문을 이용해 마치 낙하산을 탄 사람처럼 추락하는 속도를 줄여서 추락사를 피해내었다.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답게, 위기의 순간 적절한 주문을 떠올려 최악의 상황만은 피한 것이다.

하지만 카심의 임기응변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쾅! 콰앙! 쾅! 쾅! 쿠웅!

돌덩이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면서, 카심은 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만 했다.

추락사는 피했을지언정,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들까지 막아낼 순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약 1분쯤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을 피했을 때.

쿠웅!

“흐으으으으윽?!”

카심은 코앞에 10톤은 족히 나갈 것 같은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는 걸 보고 혼비백산하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주르륵….

오죽 놀랬느냐 하면, 뭔가 뜨거운 것이 바지를 축축하게 적셨을 정도였다.

철푸덕!

카심은 다리에 힘이 풀려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무리 정예 중의 정예라는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라 할지라도, 짧은 순간 죽을 위기를 수십 번이나 넘기다 보니 그만 멘탈이 나가 버린 것이다.

“으어. 으어어어어.”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린 카심은,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침을 줄줄 흘리며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끄응!”

정신을 차린 카심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답게, 금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난 것이다.

‘빌어먹을. 그냥 까막이나 보고 있을걸.’

카심은 오토를 따라나섰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야간투시경을 꺼내 작동시켰다.

우웅!

무적황제의 권능의 일부인 <투시> 마법이 걸린 야시경이 작동하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개판이군.’

주변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수백 개에 달하는 돌덩이들이 떨어져 있음은 물론, 갱도에서 추락한 광부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이 추락사, 혹은 추락 후 바위에 깔린 시체들이라서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

실전경험이 충만한 카심조차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부디 편히 잠들기를.’

카심은 광부들의 시신을 향해 애도를 표했다.

늘 안전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육체노동자들은, 이렇듯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긴….’

애도를 마친 카심은 주변을 둘러보던 중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연적인 지하공간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대한 건축물이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한 빛도 보였다.

‘설마 유적지인가?’

그때.

우우웅!

어른 몸통만 한 크기의 정육면체의 돌덩이 수십 개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불그스름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뭐, 뭐야!”

화들짝 놀란 카심.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와 동시에 정육면체들이 카심을 향해 시뻘건 광선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씨바아아아아알!”

그렇게 카심은 멘탈이 회복되자마자 정체불명의 정육면체들을 피해 달아나야만 했다.

* * *

야심한 밤.

“전하. 우리 군이 5킬로미터 밖에 도착했습니다.”

노동자로 위장한 마검사가 오토 일행의 숙소로 들어와 보고했다.

“좋습니다. 일단 다들 지쳐 있을 테니 하루 정도는 매복해서 휴식을 취하라고 하세요.”

맘 같아선 당장에라도 공격 명령을 내려서 이 인간 같지도 않은 악마들을 쓸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달려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이오타 왕국군을 곧바로 전투에 투입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명령이었다.

적어도 하루쯤은 휴식을 취해야 전투력도 유지되고, 장병들의 불만도 나오지 않을 터.

“내일 밤 적당한 때가 오면 공격하세요.”

“예, 전하.”

오토의 명령을 받은 마검사가 숙소를 떠나고.

“내일 밤이냐?”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물었다.

“높은 확률로?”

“알겠다.”

카이로스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 동안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저지르는 만행에 눈이 몇 번이나 뒤집혔던 카이로스는, 인내심이 거의 한계점에 다다라 있었다.

“참느라 수고했어. 딱 하루만 더 참자. 알겠지.”

“짐의 인내심을 무시하지 마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 어련하시겠어요.”

말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지금도 당장에라도 날뛰고 싶어 하는 걸 꾸역꾸역 참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제까지 질풍노도냐? 너는?’

카이로스는 언제 어떻게 폭발해서 사고를 칠지 모르는 10대 청소년 같았다.

“공격이 시작되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과연 고결한 기사답게, 카미유가 민간인 피해에 관한 의견을 내었다.

확실히, 이오타 왕국군이 공격을 시작하면 전투 중 노동자들이 다치는 상황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럼 카미유가 공격이 시작되면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통제해. 안전하게 전투 현장에서 이탈할 수 있게끔. 카미유는 전투는 신경 쓰지 마. 노동자들을 인솔해서 안전을 확보하는 걸 최우선으로 해.”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가 의견을 받아들여 주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게끔 명령을 내리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짧은 작전회의가 끝나고, 오토 일행은 지친 몸을 뉘고 잠을 청했다.

그러던 중.

“일어나! 이 새끼들아!”

“당장 일어나!”

“신속하게 집합해라! 집합!”

어두컴컴했던 숙소 주변이 환해지면서,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텐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또 뭔데?”

눈을 좀 붙이려던 오토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텐트를 나섰다.

“지금부터 철야작업을 실시하겠다! 모두 집합하라!”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에 노동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18시간 동안 지옥 같은 노동에 시달리다가 겨우 눈 좀 붙이려는데, 철야 작업이라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했다.

“이런 씨발! 야 이 개새끼들아! 그만큼 부려 먹었으면 됐지 무슨 놈의 철야작업이냐! 이럴 거면 차라리 죽여라! 죽이란… 으아악!”

참다못해 폭발했던 노동자가 쓰러졌다.

차라리 죽이라니, 진짜로 죽여 버린 것이다.

“또 불만 있는 사람 있나?”

항의하던 노동자를 베어 버린 기사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으로 근처에 있던 노동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

“…….”

“…….”

살벌하기 짝이 없는 협박에 겁먹은 노동자들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발굴 작업이 끝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작업이 완료되면 보내 주도록 하겠다. 그러니 다들 군말 없이 철야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시작된 철야 작업.

노동자들은 곳곳에 설치된 모닥불에 의지해 싸늘한 추위와 짙은 어둠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진짜 이 악마 새끼들. 두고 보자.’

오토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았다.

딱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이오타 왕국군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이 분노를 더 이상 참을 필요도 없을 터.

“다들 수고가 많군.”

그때.

“일꾼들을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르곤 대제의 동생 가이우스가 오토의 앞을 슥 지나가며 기사들에게 물었다.

‘어?’

오토는 가이우스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눈을 빛냈다.

‘설마 아르곤 대제가 온 건가?’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아르곤 대제는 강하다.

게임 시작 초반부터 매우 강력해서, 지금 전력으로는 감히 붙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강적이었다.

“힘들 테지만, 다들 조금만 고생하라. 이 모든 게 폐하를 위한 일이 아니던가.”

“물론입니다.”

“작업이 끝나면 폐하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그대들을 크게 치하하실 것이니, 그때까지만 분발하라. 알겠는가.”

“예!”

오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크게 기뻐했다.

‘휴! 이게 웬 떡이야?’

대화의 흐름으로 유추해 봤을 때, 아르곤 대제는 오지 않고 심복이라 할 수 있는 가이우스만 온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해볼 만했다.

‘가이우스라면 해볼 만하지.’

가이우스 역시 힘을 숨긴 강자였지만, 아르곤 대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충분히 잡아 볼 만했다.

‘너 잘 걸렸다. 딱 대.’

만약 가이우스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면, 정보를 캐낼 수도 있을 테고 인질로 삼아 아르곤 대제를 협박할 수도 있을 터.

고가치 표적이 제 발로 굴러들어왔으니, 오토 입장에선 쾌재를 부를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 * *

가이우스의 방문 이후 노동 강도는 엄청나게 세졌다.

철야 작업을 마친 후 주어진 휴식 시간은 고작 2시간.

노동자들은 고작 2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또다시 현장으로 끌려나와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그러던 중.

“앗! 입구! 입구다!”

어둠이 아스라이 내려앉았을 때 즈음 마침내 무덤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업 중지! 모두 작업 중지!”

“물러나라!”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라!”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박!’

오토는 무덤 입구가 발견되자 엄청나게 좋아했다.

만약 지금 무덤 입구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내일부터는 이오타 왕국군이 직접 작업을 해야 했을 터.

오토 입장에선 무덤 입구를 찾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었다.

“작업자들은 모두 숙소로 이동하라! 작업 중지!”

숙소로 돌려보내진 노동자들의 심경은 복잡했다.

작업이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리고 혹시나 저들이 약속을 어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두 가지 생각이 겹쳐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저, 적이다!”

“적들이 나타났다! 모두 전투 준비!”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뭔데?”

혼란에 휩싸인 노동자들이 술렁였다.

“왔다.”

오토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있던 삽을 움켜쥐었다.

“흐으. 드디어 때가 왔군.”

카이로스도 벌떡 일어나 광기에 찬 눈을 빛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면 이오타 왕국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뜻일 터!

때가 됐다.

지난 며칠 동안 참았던 분노를 터뜨릴 때가.

“구출작전이 시작된 것이니 다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십시오! 천천히! 일렬로! 제 통제에만 따른다면 무사히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카미유가 나서서 혼란에 빠진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드가자.”

오토가 텐트를 나섰다.

쒜엑!

텐트를 나서자마자 검이 날아들었다.

스윽.

오토는 몸을 살짝 틀어서 검을 피하고, 손에 쥔 삽을 휘둘렀다.

푸욱!

그러자 삽이 오토를 공격했던 기사의 투구를 가르고 얼굴에 박혔다.

털썩!

쓰러진 적은 즉사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하기야, 삽의 날이 얼굴을 거의 두 동강 낼 정도로 깊이 박혔으니 움직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쑤욱!

오토가 적의 가슴을 밟고 얼굴에 박힌 삽을 빼냈다.

“거 x나게 안 빠지네. 퉤.”

오토가 쓰러진 적의 시체에 가래침을 탁! 뱉으며 투덜거렸다.

지난 며칠 동안 놈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숱하게 봐 왔더니, 이래도 분이 안 풀렸다.

“어지간히 열받았나 보구나? 뺀질이?”

“너도 봤으면 알잖아. 이 새끼들이 얼마나 사람 같지 않은지.”

오토가 카이로스의 말에 살벌하게 대꾸하며 텐트의 천막을 확! 걷어 젖혔다.

“다 죽이러 가자.”

스으으.

그렇게 말하는 오토의 두 눈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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