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발굴 작업이 끝난 현장은 어느새 전쟁터로 돌변해 있었다.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장군!”
아무칸과 무려 2,500명이나 되는 유목민 전사들은, 아주 잔인하게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도륙 냈다.
절대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되고,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말 것이며,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하게 확인사살까지 하라는 오토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런 오토의 명령은 아주 훌륭하게 이행되었다.
사실 굳이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유목민 전사들의 잔인함이야 워낙 유명해서, 그냥 내버려두었어도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에게 끔찍한 죽음을 선사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오토는 유목민 전사들까지 온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무덤 위치가 하브르 초원과 접경지역인지라, 유목민 전사들까지 추가적으로 빠르게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 노동자들을 보호하라! 이들을 이 지옥에서 탈출시키는 게 우리 임무다!”
카미유는 1,500명의 이오타 왕국군을 지휘해,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고결한 기사 카미유는 이 추운 겨울날 처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된 육체노동에 나섰다가 생지옥으로 끌려온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게 오토의 의지이기도 했고.
그렇게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어버린 발굴 현장.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토는 <야만용사의 함성> 스킬을 내질러 아군에게 버프를, 적에게 슬로우 디버프를 건 후 적들을 닥치는 대로 쳐부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전하! 여기 있습니다!”
오토의 장비를 가져온 마검사 다섯 명이 오토를 둘러싸고 주변을 철통같이 경계했다.
오토가 갑옷을 착용하는 동안 보호해주려는 것이다
철컥, 철컥!
마검사들이 경계를 서준 덕분에 오토는 <타오르는 화갑 세트>의 착용을 무사히 맞췄다.
다른 동료들 역시 아군이 가져다준 장비를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섰다.
“흐흐흐.”
한편, 카이로스는 흑마법사들을 집중적으로 사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흑마법사들에 대한 카이로스의 분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죽은 노동자들을 즉석에서 좀비로 바꾸어 다시 발굴 작업에 투입시킨 흑마법사들의 만행은 카이로스를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옛 부하들이 망령이 되어 이승을 수백 년 동안이나 떠돌았던 카이로스로서는 망자를 능욕하는 흑마법사들의 행태에 더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퍼억!
카이로스의 거대한 작업용 망치가 도망치던 흑마법사의 머리통을 부쉈다.
그 결과.
쩌억!
후우우우우우우우우웁!
<원혼귀갑>의 도깨비 얼굴이 입을 쩌억! 하고 벌리더니 흑마법사의 영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아, 안 돼에에에에! 제발, 제발 그것만은!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흑마법사의 영혼은 발버둥 쳐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입을 벌린 <원혼귀갑>은 흑마법사의 영혼을 마치 진동청소기처럼 인정사정없이 빨아들여 버렸다.
-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흑마법사의 영혼이 내지르는 귀곡성이 울려 퍼지고.
스르르!
뒤이어 흑마법사의 영혼이 유령 마법사가 되어 카이로스의 곁에 나타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자업자득.
인과응보.
노동자들에게 저질렀던 만행과 같이, 카이로스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 내보내 주십시오! 폐하!
- 저 자식들한테서 아르곤 그 새끼의 냄새가 나요. 내보내 주세요.
- 거 빨리 한바탕합시다!
<원혼귀갑> 안에 깃들 카이로스의 옛 부하들이 미친 듯 날뛰었다.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씨익-
카이로스가 미소를 지으며 <원혼귀갑>의 힘을 해방했다.
스르르르르르르!
그러자 <원혼귀갑>의 쩍 벌린 입으로부터 망령기사들이 튀어나와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은 적들의 영혼은 <원혼귀갑>에 고스란히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며 카이로스의 새로운 노예가 되었다.
카이로스는 적들을 처치하면 처치할수록 더 많은 군사들을 보유하게 되는, 일인군단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
“아,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가이우스는 난데없는 적들의 습격에 크게 당황했다.
이곳은 아라드 제국의 서쪽 변방.
하브르 초원과 인접한 오지 중의 오지인지라, 인적이 드물다 못해 아예 없는 곳이었다.
그때.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시뻘건 화염이 솟구치고.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반쯤 통구이가 된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몸에 불이 붙은 채….
화르르르르!
그리고 이내 곧 시뻘건 화염을 뿜어내는 갑옷을 입은 오토가 나타나 가이우스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네놈이 벌인 짓이었나!”
“알면서 뭘 물어. 이 씨발놈아.”
“씨, 씨발놈?”
“그래, 씨발놈들이지. 니 새끼들 다.”
오토는 어지간히도 열이 받은 상태라, 쌍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부어 대었다.
이곳에 잠입한 순간부터 봐왔던 참혹한 만행들 덕분에 반쯤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무덤 하나 파겠답시고 이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죽이고, 심지어 언데드로 만들어서까지 부려먹는 놈들이 씨발놈들이 아니면 뭔데?”
“감히!”
가이우스가 버럭 소리쳤다.
“큰일을 하는데 이런 작은 희생쯤이야!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인생들이다! 이렇게라도 쓰임새가 있는 걸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래, 뭐. 무슨 일을 하던 희생은 따르기 마련이지.”
오토가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왜?
오토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으니까.
“나는 사람이 평등하다고도 생각 안 해. 근데, 정도가 있는 거야.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니들은 그걸 넘은 거야.”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가!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만약 네놈의 만행을….”
“니 형이 알면 보복할 거라고? 아니, 아르곤 대제라고 불러야 하나?”
“……!”
“이용해 먹을 만한 군주에게 접근해서 이런저런 지원을 해 주는 척하면서 서서히 그 세력을 잠식해 나간다. 그 뒤에 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 대륙의 패권을 넘본다. 이게 니들 계획이겠지. 그 옛날 아르곤 그 새끼가 카이로스를 이용해 먹었던 것처럼.”
“그, 그걸 어떻게!”
가이우스는 오토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단 걸 듣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모르는 것도 있어. 아르곤 그 새끼가 빙의한 건지. 아니면 환생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안 죽고 살아 있는 건지. 그건 니 새끼한테 차근차근 물어보려고.”
“이노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야. 근데.”
오토가 덧붙였다.
“내 생각엔 그게 더 불행할 것 같아. 여기서 뒈지는 것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토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튀어나가 가이우스를 덮쳤다.
* * *
오토에게 있어 가이우스를 호위하는 기사들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내, 내 팔! 내 팔이! 으아아아아악!”
“커헉! 쿨럭쿨럭!”
가이우스를 호위하는 기사들은 <맹독응시>와 <석화의 눈>에 크게 저항하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져 버렸다.
오토가 최근 폭발적으로 레벨을 올린 덕분에 스킬들의 위력이 강화되어, 어지간한 마법저항력으로는 석화와 중독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찌어찌 운 좋게 오토에게 접근했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건 죽음뿐이었다.
“죽어라!”
한 기사가 오토에게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퉤!”
오토가 침을 탁! 뱉었다.
“……!”
그 기사는 비명조차 지르고 못한 채 나가떨어져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오토가 뱉은 <비열한 죽음구슬>에 투구부터 두개골까지 관통되어 즉사한 것이다.
그렇게 오토는 기사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해 버리고, 가이우스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네놈이 알량한 실력을 믿고!”
가이우스가 버럭 소리치며 오토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 채앵!
오토와 가이우스 사이에 벌어진 일대일 대결.
‘보여.’
오토는 가이우스의 공격의 흐름이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는 걸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달랐다.
엘리제에게 과외를 받은 효과가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무적검술>의 성취가 1성이었을 때는 그냥 무작정 검을 휘두른 수준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좀 더 여유가 생긴 느낌이었다.
물론 강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었지만, 지금 확실한 것은 오토의 실력이 가이우스보다 우위라는 것.
“마, 말도 안 돼!”
가이우스는 자신의 검술이 오토에 의해 완벽하게 파훼당하자 경악했다.
오토의 실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서 당황한 것이다.
가이우스는 당황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으악!”
오토의 검이 가이우스의 허벅지를 베었다.
“크윽!”
자세가 무너진 가이우스.
빠악!
오토가 순간적으로 가이우스의 손목을 발로 차 검을 날려 버렸다.
“……!”
검을 놓친 가이우스가 움찔! 당황한 사이.
퍼억!
오토의 발차기가 이번엔 가이우스의 명치에 박혔다.
“커허억!”
나가떨어진 가이우스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명치를 아주 제대로 찍힌 덕분에 호흡곤란이 온 것이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니까….”
오토가 <각성의 부지깽이>를 꺼내 헐떡거리는 가이우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주 살벌하게, 죽일 듯이 패기 시작했다.
빡! 빠악! 퍽! 퍽! 퍽! 퍽! 퍽! 퍼억! 퍽! 빠악!
“으악! 으아아아아악! 악! 아아아악! 제, 제발! 으아아아아아악!”
가이우스는 비명을 질러 대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지만, 부지깽이에게는 자비란 게 없었다.
죽여 버리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패는 거라서, 폭력의 강도가 그냥 패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 * *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살아서 도망친 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오타 왕국군과 유목민 전사들이 주변을 경계하던 경계병들부터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고, 철저하게 포위·섬멸 작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고생했어. 지금부터 노동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집중해.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집까지 가지도 못할 테니까.”
“예, 전하.”
현재 노동자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절대 이 지역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몸 상태가 정상이라 할지라도 이 추운 겨울날에 먼 거리를 이동했다가는 객사하기 딱 좋은데, 만신창이인 상태라면 하루가 못 가 죽을 게 분명했다.
“우리 정체는 철저하게 숨겨야 하니까, 보안에 신경 쓰고. 안전한 장소까지 인솔한 다음에 복귀해. 가장 가까운 마을이나 도시에 데려다 놓으면 될 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오토가 인벤토리를 열어 수표를 꺼냈다.
“세탁된 수표니까 어디서 쓰던 출처를 알아내기 힘들 거야. 안심하고 써. 저 많은 인원들을 먹이고 재우려면 돈이 좀 필요할 거야. 남은 돈은 나눠 주고.”
“현명하십니다.”
카미유는 오토의 철두철미함과 배려에 미소를 지었다.
“자, 보자….”
카미유에게 명령을 내린 오토가 쓰러져 있는 가이우스의 머리채를 잡아채고는, 질질 끌고 왔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거든?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
“자 봐.”
오토가 가이우스의 머리채를 확 끌어당겨 고개를 강제로 위로 향하게 했다.
“네놈이 아르곤 그 새끼의 후손이란 말이렷다? 흐흐흐!”
“누, 누구….”
“짐이 누구일 것 같으냐.”
카이로스가 악귀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