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난 네놈을 모른다.”
가이우스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언제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잡놈과 안면을 트고 지냈겠나?”
“그래?”
오토가 히죽 웃었다.
“아닌데. 잘 알 텐데.”
“뭣이?”
“카이로스 몰라?”
“카이… 로스?”
“식인황제 카이로스 모르냐고. 아주 잘 알 거 아냐.”
“개소리.”
가이우스가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카이로스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었다. 이미 죽은 인물이….”
“느그 아르곤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건 말이 되고? 카이로스가 살아 있는 건 말이 안 되냐?”
“……!”
“소감이 어때? 말로만 듣던 카이로스가 니 앞에 있는데.”
가이우스는 오토의 지적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카이로스를 올려다보았다.
“네놈이 아르곤 그 새끼의 후손이라 이 말이렷다?”
카이로스가 시퍼런 귀화[鬼火]가 뿜어지는 두 눈으로 가이우스를 노려보았다.
“다, 당신이 정말로 식인황제 카이로스란 말이오?”
그때.
- 어딜 감히!
- 폐하를 그 따위로 불러?
- 갈기갈기 찢어 주마!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의 망령이 스르륵 나타나 가이우스를 압박했다.
“히, 히이이이익?!”
가이우스는 말로만 전해 듣던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의 모습을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
오버하우저 가문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들에는 카이로스와 그 측근들에 관한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 자료 속 초상화와 망령기사들의 모습이 매우 흡사했던 것이다.
“흐흐흐흐.”
카이로스가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가이우스에게 얼굴을 가져다대었다.
“식인황제라… 그래, 식인황제인 짐을 직접 본 소감이 어떠냐?”
“으으으! 으으으으!”
“네놈의 팔을 즉석에서 구워 먹으면 어떻겠느냐? 어차피 팔 한쪽 정도는 구워 먹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 않느냐?”
카이로스가 오토를 돌아보았다.
“미리 진통제 좀 때려 박고 지혈 같은 것만 신경 쓰면 상관없지 않을까? 팔 한 짝이 아니라 다리 두 짝 다 구워 먹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오토는 카이로스의 협박을 능청스레 받아주었다.
“생각 있으면 말해. 내친 김에 즉석에서 구워먹어 봐. 나도 궁금하다, 야. 사람 다리 구워먹는 게 흔한 구경거리는 아니잖아.”
“크흐흐흐! 좋다! 여봐라!”
카이로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놈의 다리 한 짝을 즉석에서 구워 먹을 테니, 당장 숯을 가져와라!”
“예!”
그러자 병사들이 곳곳에 있던 모닥불들에서 숯을 빼왔다.
“얌전히 있지 못할까! 뭣들 하나! 놈을 꽁꽁 묶어라! 그래야 구울 때 편하지 않겠는가!”
“으악! 으아아아악! 이, 이러지 마! 으아아악! 제, 제발! 그런 끔찍한 짓은… 으아아아악!”
가이우스는 병사들이 자신의 몸을 꽁꽁 묶고, 한 쪽 다리를 숯불 위에 올려놓으려 하자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산 채로 신체 일부분이 구워져서 잡아먹히는 걸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두려워서, 완전히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소금을 뿌려서 먹어야 맛있겠느냐? 아니면 바비큐 양념을….”
카이로스가 한술 더 떠서 식인에 이용할 조미료 이야기를 할 때였다.
“끄윽!”
외마디 비명을 지른 가이우스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뒤로 풀썩 넘어가버렸다.
공포에 완전히 질려서 그만 기절한 것이다.
* * *
“에라이.”
오토는 가이우스가 기절해버리자 김이 샜다는 듯 투덜거렸다.
“벌써 기절하면 재미가 없잖아. 하여간 도움이 안 되네, 이 새끼는.”
오토가 기절한 가이우스의 머리통을 툭! 발로 차며 입을 삐죽였다.
“정신력이 형편없군. 꼴에 대업을 이루겠다는 놈이 정신력이 이리 약해서야. 쯧쯧.”
“하여간 그놈의 정신력은.”
오토는 카이로스가 꼰대처럼 정신력을 강조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라서 더 어이가 없네.’
카이로스의 정신력은 오토도 인정하는 바였으므로, 반박을 하고 싶어도 반박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놈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일단 가둬두고 정보를 빼내야지. 오버하우저 가문의 핵심 인물이잖아. 아르곤 대제에 관한 정보도 많이 알 테고.”
“나쁘지 않군.”
“일단 쭉 살려둬 보려고.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음?”
“묵혀뒀다가 인질로 쓴다거나, 세뇌시켜서 아르곤 대제 곁으로 보내 정보를 캐낼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죽이진 않을 생각이야.”
“흐흐흐. 역시 비열하구나.”
“별말씀을.”
오토는 카이로스가 극찬을 해주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지. 후후후.’
오토는 자신이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비열해질 수 있는지를 잘 알았기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셈이냐?”
“고가치 표적도 생포했고. 노동자들도 탈출시키는 중이고. 그럼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놈의 무덤을 도굴할 시간이라 이 말이렷다?”
“뭐가 있는지 한 번 보자고. 나도 궁금해.”
오토도 아르곤 대제의 무덤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게임으로 플레이했을 땐 율리우스―아르곤 대제―가 무덤을 발굴했었단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가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가자.”
“잠깐 기다려.”
“뭘 기다리느냐? 무덤 입구도 발견했는데?”
“기다리라니까.”
“왜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지 않느냐!”
“아 좀!”
오토가 짜증을 냈다.
“거 성질 진짜 급하네. 얌전히 좀 있지?”
“왜 그리 뜸을 들이냔 말이다! 지금 당장….”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준비는 하고 가야할 거 아냐.”
“으음?”
“미리 식량이랑 포션 같은 것도 좀 챙기고. 우리도 좀 쉬자.”
“그건 정신력으로….”
“기다려.”
오토가 눈을 질끈 감고 카이로스에게 지시를 내린 후 가까이에 있는 텐트로 향했다.
‘일단 3~4시간 정도 눈 좀 붙이고 챙길 거 챙겨서 출발하자.’
오토 일행 역시 지난 며칠 동안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한 채 노역에 동원되었기에,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였다.
평범한 노동자들보다야 훨씬 낫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인 이상 피곤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 * *
약 6시간 뒤.
“으. 삭신이야.”
오토는 마치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깨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푹 자도 모자랄 판국에, 허름한 텐트에서 모닥불 하나에 의지한 채 추위에 덜덜 떨면서 잤더니 온몸이 아픈 건 당연했다.
“드르렁… 드르르르르르러러어어엉…!!!”
옆을 돌아보니 야전침대에 누운 카이로스가 입을 쩍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코를 골고 있었다.
“…눈은 왜 뜨고 자는 건데.”
오토는 카이로스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잠들어 있는 걸 보고 흠칫 놀랐다.
하여간 이 인간은 곯아떨어진 자세도 어마어마하다.
“야, 일어나.”
“쿠울! 쿨쿨!”
“일어나라고.”
“드르렁~ 쿠울… 드르러어어엉~ 쿠울….”
“야 이! 안 일어나?”
흔들어 깨워보기까지 했지만, 카이로스는 도무지 깨어날 줄을 몰랐다.
말로는 정신력, 정신력 나불거렸지만 사실 카이로스도 피로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게 발로 차도 안 일어나냐?”
오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도 깨어날 줄을 모르는 카이로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에라이. 아르곤 자식 무덤은 나 혼자 가야겠다.”
“…아르곤?”
카이로스가 무슨 심봉사 마냥 눈을 번쩍 떴다.
“…진짜 파블로프의 개네.”
오토는 꿈쩍도 않던 카이로스가 <아르곤>이란 말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뜨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카이로스를 깨운 오토는, 각종 소모품과 장비를 챙겨 아르곤 대제의 무덤으로 향했다.
거의 3킬로미터 정도는 될 법한 통로를 통과하자 무덤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무덤이라고?”
무덤 내부 풍경을 본 오토가 혀를 내둘렀다.
무덤 안은 천장에 박힌 수천 개의 마정석들로 인해 대낮처럼 밝았는데,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무덤의 3분의 2 이상이 무너져 내려 있었음에도, 그 규모가 어지간한 월드컵 경기장에 맞먹을 정도였다.
아예 황궁을 하나 지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군대까지 있네.”
돌로 만들어진 병사들과 기사들의 석상이 오와 열을 맞추어 선 채로 아르곤 대제의 묘실을 지키고 있었다.
석상의 숫자는 족히 5천 개는 넘어 보였다.
“이거 완전 진시황릉이네.”
“진시화르응? 그게 뭐냐?”
“그런 미친놈이 있어.”
“음?”
“살아서는 불로장생하겠답시고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질 않나. 즉위 초부터 수십만 명을 동원해서 이런 대규모 무덤을 만들었거든. 이런 무덤 하나 만드는데 국력이 얼마나 낭비되는지 생각해 보면 이만한 개짓거리도 없지. 죽으면 다 똑같은 걸. 뒈져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무덤을 만드냐? 그럴 돈 있으면 나라 발전에나 쓰지.”
“음. 일리 있는 말이다.”
“아르곤 그 새끼도 참 대단하네.”
오토는 진시황이든 아르곤 대제든 이런 거대한 무덤을 만든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현대인이라 생각 자체가 다르기도 했지만, 효율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오토의 입장에선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낭비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던 것이다.
“딱 봐도 저 멀리 있는 곳이 아르곤 대제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겠지?”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군.”
“가자.”
오토가 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였다.
드륵, 드르륵!
갑자기 돌이 갈리는 듯한 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석상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오토 일행을 바라보았다.
“…에라이.”
오토는 족히 만 개는 될 법한 석상들이 자신을 노려보자 x됐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 곱게 무덤을 내어줄 리가 없지. 석상들을 괜히 만들었겠어.’
현실의 진시황릉이야 흙으로 빚은 뒤 구운 장식품에 불과했지만, 이곳은 다른 세계.
무덤 속 석상들이 살아 움직이며 침입자들을 공격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 폐하의 안식을 방해한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하리라.
- 폐하의 안식을 방해한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하리라.
- 폐하의 안식을 방해한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하리라.
척! 척! 척! 척!
석상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오토 일행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뭐라? 보고가 안 올라왔다?”
아르곤 대제는 정기적으로 올라오던 보고가 예상보다 몇 시간이나 늦어지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아르곤 대제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해하지 힘든 일이었다.
가이우스가 직접 발굴을 지휘하겠다며 현장으로 향했으니 보고가 더 자주, 더 정확하게 올라와야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굴 현장으로부터 올라오는 보고는 수십 명의 전령들을 동원해 2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이루어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상황이었다.
사실상 실시간 보고에 가까웠는데도, 벌써 8시간째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보고가 4번이나 누락될 리가 있나.’
아르곤 대제는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비하라. 내가 직접 발굴 현장으로 갈 것이니.”
본래 같았으면 조금이라도 미심쩍거나 위험요소가 있는 곳에는 얼씬도 안 했을 아르곤 대제였지만, 이번만큼은 과감히 움직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