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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13)화 (114/401)

제113화

척! 척! 척! 척!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만 명의 석상들.

“모두 전투 준비!”

마검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거 더럽게 많구먼. 끌끌끌. 지은 죄가 하도 많다 보니 뒈져서 무덤이 도굴당할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로군.”

카이로스가 <원혼귀갑>을 개방해 망령기사들을 불러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오토만큼은 전투를 준비하는 대신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이걸 싸워야 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굳이 싸울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싸우면 한 세월인데. 어림도 없어. 머릿수 차이가 너무 나. 싸우려면 밖에 대기하고 있는 우리 군을 여기까지 데리고 와야 하는데. 그러다 무덤이 무너지면 다 같이 생매장당하는 거고.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오토라고 해서 딱히 공략법을 아는 게 아니었다.

오토도 아르곤 대제의 무덤을 도굴하는 게 처음이니만큼, 공략법은커녕 몸으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약점을 알아보자.’

오토가 <투시> 스킬을 사용해 다가오는 석상들을 스캔해 보았다.

마치 엑스레이처럼….

‘오호라.’

오토는 석상들의 가슴 한복판에 주먹만 한 마정석이 박혀 있는 걸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골렘에는 핵이 있지.’

대부분의 골렘들은 핵을 파괴하면 동력을 잃기 마련.

석상들 역시 골렘의 일종이니까, 핵을 파괴하기만 하면 될 터.

“가슴 정중앙만 노려! 굳이 싸우지 말고! 가슴 정중앙에 핵이 있어!”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석상을 향해 검을 쭉 내질렀다.

푸욱!

오토의 검이 석상의 가슴 정중앙을 관통하고.

퍼엉!

안에 있던 마정석, 그러니까 골렘의 핵이 폭발하며 석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공략법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가슴 정중앙에 자리한 핵을 파괴하는 것.

“약점만 노리면서 앞으로 전진해!”

“예! 전하!”

오토와 마검사들은 몰려드는 석상들 정중앙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약점을 안 이상 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호라.”

카이로스도 오토가 알려 준 공략법대로, 망령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들의 가슴 정중앙을 노려라.”

그러자 수백여 명의 망령기사들도 석상들의 가슴 정중앙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펑펑! 펑! 펑! 펑펑! 펑! 펑! 펑! 펑펑! 펑! 펑펑! 펑펑펑! 펑!

덕분에 오토 일행에게 접근했던 석상들은 전투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터져나가기 일쑤였다.

오토 일행의 실력이 워낙에 뛰어났기에, 약점을 들킨 이상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 * *

그렇게 오토 일행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만 명에 가까운 석상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모세의 기적을 일으켰다.

그렇게 약 30분쯤 돌파했을 무렵 오토 일행은 아르곤 대제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묘실 입구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척! 척! 척! 척!

물론 그런다 한들 모든 석상들이 파괴된 건 아니었다.

“세 명씩 총 여섯 명. 교대로 대기하면서 입구를 방어하세요.”

“예, 전하.”

오토는 마검사 여섯 명에게 좁은 입구를 지키도록 명령하고, 묘실을 향해 쭉 직진했다.

입구가 좁은 만큼 세 명이서 돌아가면서 방어한다면, 석상들을 충분히 막아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 내 눈!”

통로를 통과해 다음 장소에 도착한 오토는,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 두 눈을 감쌌다.

이유는 간단했다.

반짝반짝!

온갖 귀중품과 금은보화가 마치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 번쩍임 때문에 잠시나마 시력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크윽.”

오토는 눈부심 때문에 가까스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결과.

“이, 이게 다 얼마야?”

오토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이 드넓은 광장에 무려 10킬로그램짜리 금괴가 15미터 높이까지 쌓여 있는 걸 보니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갖 보석, 귀중품들이 한가득 들어 있는 보물 상자는 도대체 몇 개인지 눈으로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

쌓인 금괴만 해도 족히 몇백 톤은 훌쩍 넘어갈 게 분명했기에….

‘이래서 가능했던 거였어?’

오토의 기억에, 율리우스는 이따금씩 곡물·철·말·가축 등을 사재기했다가 비싼 값에 되팔거나 아예 특정 품목들을 독점해 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경제력을 미끼로 숙주로 삼은 군주를 지원해 주면서, 환심을 사는 게 율리우스의 주된 패턴이었다.

그만한 자금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이곳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와 귀중품들을 야금야금 팔아치워서 마련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자금이 받쳐준다고 한들 높은 수준의 경제적 감각, 넓은 인맥, 그리고 수완이 받쳐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런 개 같은!”

카이로스가 버럭 화를 냈다.

“넌 또 왜 급발진이냐? 뭐가 불만인데?”

“아르곤 그 새끼가 이 많은 보물들을 어디서 구했겠느냐! 다 백성들의 고혈을 빤 것이 아니겠느냐!”

“엥?”

“이 빌어먹을 놈이 짐을 뒤통수치고 황위에 올랐으면 황제 노릇이라도 잘 해먹어야지! 이런 거대한 무덤을 만든 걸로도 모자라 이 많은 금은보화를 창고에 처박아 놔? 이만한 돈이면 나라 살림에 크게 보탬이 되었을 게 아닌가! 도대체 얼마를 해 처먹은 것이야!”

“오?”

오토는 카이로스가 오래간만에 군주다운, 의젓한 발언을 하자 솔직히 좀 놀랐다.

“하다못해 북벌 군자금으로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또 그놈의 북벌이냐.”

오토는 카이로스가 잘 나가다가 드리프트를 시전하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놈의 북벌.

북쪽에 뭐 꿀이라도 발라 놨냐?

왜 그렇게 북쪽에 집착해?

과거에도 카이로스는 북벌에 과도하게 집착하다가 민심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광기에 사로잡혀서 폭정을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었다.

역사서에서는 대륙을 완전히 통일하지도 못한 주제에 북벌부터 신경 쓰다가 반란의 빌미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

‘근데 애매하네. 그게 실책이긴 했나. 지금 와서 보면 아닌데. 선견지명에 가까웠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면, 카이로스의 북벌은 카이로스의 가장 큰 업적이기도 했다.

카이로스가 북벌을 위해 쌓은 거대한 장벽인 <위대한 방벽>은 지금에 와선 북쪽의 야만인들과 북부제국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내는 최후의 방어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아르곤 대제의 업적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어쨌든!

“일단 됐고. 계속 가 보자.”

오토는 보물들을 더 구경하고 싶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놓았다.

“이야.”

다음 방은 온갖 갑옷들과 무기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무기고였다.

무기고에는 특별히 엄청나게 뛰어난 아이템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개 기사단을 무장시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다.

“여기 있네.”

개중에는 카이로스가 찾던 <옵시듐>으로 제작된 갑옷도 무려 수십 벌이나 있었다.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뿐 아니라 다른 망령기사들까지도 죽음의 기사로 만들기에 충분한 수량이었다.

“야! 니 부하들 희망이 보인다?”

“끌끌끌! 될 놈은 되는 법이니라! 크핫핫핫핫!”

카이로스는 부하들에게 육체를 만들어줄 첫 번째 선제 조건을 갖추게 되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늘 부하들에게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던 카이로스였기에, 육체를 얻어줄 방법을 찾았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도 됐고. 그럼 그 다음은….”

오토가 저 멀리 보이는 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르곤 대제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안식처를 향해서….

* * *

묘실 안에는 두 개의 관이 자리했다.

순백색의 알 수 없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관들은, 황금으로 새겨 넣은 문양이 매우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죽음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여정일 뿐이니.

영원한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잠들고, 또 재회하리라.

묘비에는 아르곤 대제가 살아생전 직접 새겨 넣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놀고 자빠졌네.’

오토는 글귀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관이 왜 두 개지? 이건 아르곤 그 새끼 거고. 그럼 다른 하나는….’

오토가 시선을 돌려 오른쪽에 자리한 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

카이로스가 무표정으로 오른쪽에 자리한 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뭐야. 쟤 왜 저래.’

오토는 카이로스의 표정이 평소와 180도 다른 걸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황제랑 나란히 잠들었다면… 황후라는 건데.’

오토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행복했소?”

카이로스의 입에서 아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싹!

순간 오토는 온몸에 쫙! 끼치는 소름에 부르르! 떨며 경기를 일으켰다.

‘으윽! 너, 너무 참기 힘들어!’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카이로스가 오른쪽 관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마음에 담아 뒀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아르곤 대제의 아내가 되어 제국의 황후로서 이곳 황릉에 묻혔다는 것.

‘의형제한테 나라를 뺏긴 걸로도 모자라서 좋아하는 여자까지 뺏겼다고? 아이고, 형님. 세상 남자다운 척은 다 하시더니 순 호구셨네요.’

정확한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현재 정황들로 봤을 때는 그랬다.

의형제인 아르곤 대제에게 아주 철저하게, 골수까지 쪽쪽 빨린….

“잠깐 나가 있죠.”

“예, 전하.”

오토는 카이로스를 위해 잠시 묘실을 비워주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렇게 오토는 무기고에 털썩 주저앉아 마검사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던 중.

“이, 이 무슨!”

오토는 묘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카이로스의 외침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데! 뭔 일 있냐!”

“저, 저거 뭐냐!”

카이로스가 황후의 관이 있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 히익?!”

오토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체.

아직 수분기가 충만해서, 썩은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훅! 하고 끼쳐 오는 썩은 악취가 어찌나 심했는지, 코가 순간적으로 마비될 지경이었다.

“저, 저게 뭐야?”

오토는 그 썩은 시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했다.

반쯤 썩은 시체이긴 했어도, 흔한 언데드 몬스터인 좀비나 구울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스으으!

게다가 시퍼렇게 썩어서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피부 곳곳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우 특이한 문양들이 초록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카이….”

썩은 시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1,000년 묵은 가래가 드글드글 끓는 것 같으면서도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카이로스… 오라버니…?”

놀랍게도, 시체가 카이로스를 알아보았다.

“오라버… 니… 께서… 여기… 어떻… 게… 절… 깨우기… 로… 한… 사람… 은… 폐… 하… 뿐… 이었….”

그 순간.

‘설마?’

오토는 어쩌면 그 시체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았다.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베아트리체…?”

그러자 카이로스가 홱! 고개를 돌려 오토에게 물었다.

“네, 네놈이 그 이름은 어찌 아느냐?”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저 악독한 년이 그 새끼 마누라니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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