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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 (114)화 (115/401)

114화

베아트리체.

율리우스-아르곤 대제-의 아내인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악독한 희대의 꽃뱀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엄청난 미녀로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게 이머들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 당시 미녀 부분 4위를 기록 했을 정도로 외적으로 인기가 많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외형과는 다르게, 베아트리체는 희대의 꽃뱀이었다.

처음 등장할 때에는 율리우스의 먼 친척이라던 그녀는, 숙주가 된 게이머에게 접근해 왕비가 되는 걸 1차적인 목표로 삼는다.

만약 왕비가 되는 데 성공하면, 즉시 왕자를 하나 낳는다.

그 뒤엔 왕자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면서, 왕세자를 지지하는 파벌을 만들어 게이머의 권력을 좀먹는다.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게이머는 이미 덫에 완벽 하게 걸려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율리우스가 베아트리체에 맞서 게이머를 지지하는 세력 구도를 형성하면서, 게이머로서는 어느 쪽을 믿던 폐위당하 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니까.

즉, 베아트리체는 게이머로 하여금 율리우스에게 의지하게끔 만드는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인 셈이었다.

하지만 더욱 혈압이 오르는 것은, 게이머가 율리우스에 의해 뒤통수를 맞고 폐위를 당한 뒤의 스토리였다.

게이머가 참수형에 처해지고 화면이 회색으로 물들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출력된다.

율리우스는 패주의 아들인 왕세자를 사고사로 위장해 죽였다.

이 과정에서 패주의 왕비였던 베아트리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율리우스는 베아트리체를 왕비로 맞아들였으며, 과거 대륙을 통일했던 제국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크라레스로 바꾼 뒤 본격적으로 패권경쟁에 뛰어든다.

이후엔 란 문구가 떠오르며 게임은 초기화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베아트리체는 율리우스를 위해서라면 자기 배로 낳은 아이마저도 가자 없이 죽여 버리는 악마 같은 년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오토는 그제야 율리우스가 어째서 국호를 <크라레스>로 바꾸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율리우스가 곧 아르곤 대제였으니, 게이머의 왕위를 빼앗고 국호를 크라레스로 변경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준이 아니겠는가?

'어휴. 이 때려죽일 연놈들'

남편 율리우스는 사기꾼.

아내 베아트리체는 꽃뱀.

아주 부부사기단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군주를 유혹하는 패턴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형 태에 불과했다는 것.

희대의 악녀이자 요녀인 베아트리체는, 군주인 게이머를 유혹하는 데 실패하면 그 주변 인물들을 공략해 어떻게 해 서든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예컨대, 오토를 유혹하는 데 실패하면 카미유 혹은 고블 린 상인 에고(!) 같은 측근들을 공략하는 식.

물론 카미유를 유혹하는 건 불가능할 테지만....

'언제 등장하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이 시기쯤에 부활해 서 같이 환동하는구나. 맞아. 딱 이번 겨울이 지나면 같이 등장해서 소개시켜 줬었지.'

이제야 모든 아귀가 들어맞았다.

* * *

먼 옛날.

용병단장에서 강력한 군벌로 거듭나 작은 나라를 하나 만 들려던 카이로스는, 아르곤을 만나 의형제를 믿고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형님, 이쪽은 제 오랜 소꿉친구인 베아트리체입니다." 

카이로스는 아르곤의 소개로 만난 베아트리체에게 한눈 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카이로스 장군이시죠? 베아트리체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워요."

"카, 카이로스라 한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그녀와 맺어지지 못했다.

"저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답니다."

"・・・그렇군."

"하지만 저는 오라버니와 계속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 고 싶어요. 우리 어색해지지 않는 거죠?"

"무, 물론이다!"

그 후 카이로스는 얼마 가지 않아 베아트리체가 마음에 두었던 사람이 아르곤이라는 걸 눈치 했지만, 그렇다고 질투를 하거나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이미 아르곤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던 상태였기에, 카이로스의 성격상 의젓하고 충성스럽고 훌륭한 의동생을 질투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여러 집안 사정과 정치적인 상황상 아르곤과 베아트리체는 이어지기 힘든 사이기도 했고.

그렇게 미묘한 삼각관계가 이어지는 동안 카이로스는 베아트리체를 쭉 마음에 담아 두었다.

훗날 시간이 흘러 카이로스가 제국을 일구었을 무렵.

베아트리체는 기어코 제국의 대장군 아르곤의 첩이 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베아트리체는 아르곤의 정실부인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왜 안 올리겠다는 거냐? 눈치가 보여서 그러냐? 그건 상관 마라! 짐이 다 해결해 주겠다니까!" 

"괜찮아요, 폐하. 전 이거면 만족해요."

"그, 그러냐?"

"고마워요. 축복해 주셔서."

"고맙기는. 잘 살아라. 아르곤 그 녀석이 어련히 잘해 주겠지만."

그 후 카이로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몰락할 때까지 황후를 맞이하지 않은 이유였다.

* * *

다시 현재.

"뺀질이 네놈이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느나는 말이다!" 

카이로스가 재차 오토에게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저년이 옛날에도 니 뒤통수쳤겠지!"

"그, 그걸 네놈이 어찌?"

"척이면 척이지! 그걸 꼭 알아야 아는 거냐?" 

"크흠!"

"너 설마・・・ 저 악독한 년이랑 그렇게 그런 사이였냐?" 

오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절대 아니다!"

"그럼?" 

계속되는 추궁.

"무슨 관계인데? 그냥 친한 오빠 동생 뭐 그런 거였나?"

"그렇다!"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했나 보네?"

"・・・・・・!"

"맞네. 차였네. 어떻게 황제라는 인간이・・・."

"지, 짐은 그저 아르곤 그 자식에게 양보했을 뿐이다!"

"양보오오오~?"

오토의 눈이 평소보다 3배는 커졌다.

“뭐? 양보오오?"

"그, 그렇다!"

"상남자인 척은 혼자 다 하더니? 황제씩이나 해 처먹고서 고작 짝사랑이나 했다고? 평생 끙끙 앓으면서?"

"다, 닥쳐라!"

“심지어 저 꽃뱀 같은 년한테 순정을 바치셨어요? 아이고오!"

“닥치라 하지 않았느냐! 드, 듣기 싫다! 그 입 다물라! 다물라!"

"아. 예. 폐하"

오토가 빈정거리며 카이로스를 향해 굽신굽신 고개를 숙였다.

"어련하시겠사옵니까. 안 어울리게 짝사랑이나 하시다가 부부사기단한테 뒤통수나 맞으셨는데요. 덕분에 가진 거 죄 다 말아 드시고, 부하들 인생까지 조져 버리셨는데 어련하 시겠습니까요. 예에, 예에."

"이이・・・ 이이이・・・!!!"

오토의 조롱에 카이로스는 마치 성난 주전자처럼 얼굴이 시뻘게진 채 치를 떨었다.

"네놈이 감히 짐의 아픈・・・."

그때.

쩌어어억!

<원혼귀갑>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더니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의 망령이 나타나 카이로스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카이로스를 매섭게 몰아붙이며 아주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거 보쇼! 그러게 저 얼굴만 반지르르한 년은 만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저년 저거 남편 잡아먹게 생긴 년이라고 제가 몇 번을 말 했어요? 네?"

"저 간악한 년이랑 아르곤 그 새끼랑 어울려 다니더니!"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의 갈굼에 카이로스는 진땀을 뻘뻘 흘려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그게 아니라・・・."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카이로스.

"형님답지 않게 짝사랑이나 하실 때부터 알아봤수! 차라리 그 엘프 아가씨가 백번 나았소!" 

막시무스가 두 눈에서 시퍼런 귀화를 뿜어내며 카이로스를 갈궜다.

"아, 아리엘?!"

“이게 뭐요! 형님이 여자 하나 잘 못 만나서 우리까지 이 신세가 된 게 아니오!"

"그. 그건 미안하게 됐・・・."

"형님 인생 하나 말아먹은 걸로도 모자라서 우리 인생까 지 같이 말아 드시니까 속이 시원하쇼? 엉?"

"・・・・・・."

"하긴! 술도 말아 드시는 거 좋아하셨지? 크응!" 

그뿐만이 아니었다.

"참 잘하셨습니다. 아르곤 그 새끼한테 여자 뺏겨, 나라 뺏겨. 심지어 뺏긴 여자는 처음부터 형님에겐 마음도 없었지요? 아마?"

"여자 잘못 만나면 집안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도 몰라요? 저년은 처음부터 아르곤 그 새끼랑 붙어먹고 있었는데!"

아가토와 힐데가르트 역시 카이로스에게 그간 쌓인 서운 함과 답답함을 거침없이 토해내었다.

'꼬숩다.'

오토는 부하들에게 갈굼을 당하는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고소해했다.

카이로스를 욕을 먹을 만했다.

안 봐도 뻔했다.

카이로스의 측근들은 아르곤과 베아트리체가 뭔가 싸한 인물이라는 걸 알고, 수 차례 경고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그런 조언들을 모조리 무시하거나, 혹 은 알아서 하겠다면서 대충 얼렁뚱땅 넘어갔을 터.

박힌 돌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굴러들어온 돌들만 감싸고 돌다가 아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리라・・・.

'이래서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니까? 독불장군이 좋은 게 아냐. 팔랑귀도 문제지만. 어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오토는 카이로스를 반면교사 삼아서. 신하들의 말을 경청 하는 훌륭한 군주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는 사이.

“오・・・ 라・・・ 버니・・・."

베아트리체가 마치 물을 갈망하는 듯한 몸짓으로 카이로스를 향해 손짓했다.

"피, 피가・・・ 모・・・ 자라・・・ 요・・・ 피가・・・ 피가・・・ 모・・・ 자・・・ 라・・・ 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간절하고, 불쌍하고, 또 절박하게 들리던지 오토마저도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그녀의 목소리에는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게끔 만 드는 마성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즉, 괜히 요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피・・・ 가・・・ 모자・・・ 라・・・ 요・・・ 오라버・・・ 니・・・ 저 좀・・・ 도와・・・ 주・・・ 세요・・・ 피・・・ 피를・・・."

베아트리체가 카이로스를 향해 애원했다.

"・・・베아트리체."

카이로스는 그런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야 이!"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버럭 소리치며 <각성의 부지깽이>로 머리를 꽝! 내리쳤다.

깡!

“커헉!"

피를 토하는 카이로스.

뭔 사람 머리에서 깡 소리가 나?

아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야 이 미친놈아! 정신 안 차려?"

"으음?"

"그렇게 당해 놓고도 저 악마 같은 년이 불쌍하냐? 아르곤 그 새끼랑 붙어먹고 널 작정하고 이용해 먹었는데?"

"저년 때문에 니 인생도 박살나고. 니 부하들 인생까지 작살났잖아."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이로스의 발밑을 향해 검을 툭! 내던졌다.

"이만 끊어내." 

“끊어낸다라…”

"악연은 한 번이면 족하잖아. 두 번까지 갈 게 뭐가 있어. 옛날에 저질렀던 머저리 짓, 지금이라도 끊어내. 니 손으로 직접."

오토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꽉 다문 채 카이로스를 지켜 보았다.

* * *

카이로스는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오라・・・ 버니・・・ 피・・・ 피가・・・ 피・・・ 가・・・ 필・・・ 요・・・ 해요・・・."

베아트리체의 목소리와 절뚝절뚝 걸어오는 발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꽈악.

카이로스의 손이 점의 자루를 부서지라 움켜쥐었다.

그때는 몰랐다.

베아트리체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하지만 이제는 안다.

철퇴 안에 깃든 채 무(無)의 공간에서 수백 년을 지내면 서, 카이로스는 베아트리체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련한 감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는 못했지만・・・.

베아트리체는 아르곤의 방패막이였다.

카이로스의 측근들은 끊임없이 숙청의 칼날을 들이밀며 아르곤을 제거하려 시도했다.

때문에, 아르곤은 수 차례 정치적 위치에 처했다.

그중 몇 번은 정말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할 수도 있었다.

그때마다 베아트리체는 방패막이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내었다.

카이로스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아르곤을 숙청하려 할 때마다 베아트리체가 마음에 걸려 도무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왜?

아르곤이 반역죄로 처형당하게 되면 일가친척 모두가 같이 휘말릴 테고, 그럼 베아트리체 역시 같이 처형해야 했을 테니까.

하나를 잃는다면 모르되, 둘을 잃는 건 카이로스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 라버니・・・."

촤라락!

복수의 칼날이 과거의 악연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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