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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16화 (117/401)

116화

무덤 안으로 들어간 아르곤 대제는, 석상들이 모조리 파괴되어 있는 걸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발, 제발 그것만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니, 반쯤 정신이 나가서 묘실까지 쭉 내달린 아르곤 대제.

텅텅 비어 버린 보물 창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비어 있는 무기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

아르곤 대제는 불에 탄 무언가의 흔적을 보고,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불타 버린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화, 황후! 황후우!”

아르곤 대제는 엉금엉금 무릎으로 기어가서, 이제는 숯덩이가 된 베아트리체의 흔적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는 목 놓아 엉엉 울었다.

“흐으으으으으윽! 흐으으으으으으윽! 흐윽! 흐으으으윽!”

아르곤 대제는 과거를 떠올렸다.

‘내 비록 이번 생에서는 그대에게 황후 자리를 주지는 못할지언정, 먼 훗날에는 다를 것이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엔 반드시 그대에게 황후의 자리를 약속하겠소. 그러니 편히 눈을 감으시오. 곧 다시 만날 터이니.’

‘믿고 기다리겠어요.’

베아트리체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황후가 되지 못하고, 황비로서 눈을 감았다.

아르곤 대제는 쿠데타로 황위에 오른 만큼, 지지기반이 그리 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정권의 안정화를 꾀했다.

특히나, 그 중심에는 당시 황후의 가문이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후가 워낙에 혈통이 고귀하고, 위세가 대단한 가문 출신이라 폐위를 시켰다간 황제인 아르곤 대제조차도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할 게 분명했던 것이다.

어렵사리 일군 제국을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처박아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아르곤 대제는 베아트리체를 황비로서 내버려두어야 했다.

평생토록….

그래서 아르곤 대제는 흑마법을 통해 베아트리체를 부활할 수 있게끔 작업을 해 놓았다.

그런 뒤 황후의 시신과 베아트리체의 시신을 바꿔치기 할 수 있도록 안배를 해 놓았다.

베아트리체가 죽어서라도 황비가 아닌 황후로서 묻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 아르곤 대제 역시 환생한 지금.

아르곤 대제는 이곳 황릉으로 와 베아트리체와 재회해서, 과거에는 이루지 못했던 부부의 연을 맺으려 했다.

그런데 모든 게 물거품이었다.

다시 만나기로 한 베아트리체가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있을 줄이야….

“내 꼭 약속을… 흐윽… 지키려 했는데… 왜 이런 꼴로 여기 있단 말이오… 흐어어어어억….”

아르곤 대제는 몇 시간 동안이나 베아트리체의 시신―사실 잔해에 가까웠다―을 붙들고 오열했다.

“내 반드시 복수하리다. 백배 천배, 아니 만 배 이상으로 되갚아 줄 것이오.”

겨우 정신을 차린 아르곤 대제는 베아트리체의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아르곤 대제는 그 이상으로 분노해야만 했다.

“이… 이 무슨…!!!”

아르곤 대제는 왼쪽에 자리한 자신의 관 속 백골이 산산조각으로 으깨져 있는 걸 보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해골은 어디 갔는지도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뼈들은 거의 가루에 가깝게 바스러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축축하게 젖은 수의가 누렇게 물들고, 고약한 지린내가 나는 걸 보니 누군가 오줌이라도 쏴 갈긴 게 분명했다.

살아생전 사용하던 <제국의 심장>과 <황금대검>은 보이지도 않았다.

“어떤 개 같은 놈들이 이런 짓거리를….”

그 순간.

미끄덩!

쿵!

아르곤 대제는 무언가를 밟고 미끄러졌다.

“똥…?”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딱 봐도 인분이었다.

“이런 씨바아아아아알!!!”

악에 받쳐 쌍욕을 내뱉은 아르곤 대제.

도대체 어떤 미친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다하다 똥까지 싸질러 놓았을 줄이야….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죽음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여정일 뿐이니.

영원한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잠들고, 또 재회하리라.

유언은 지워져 있었고.

응. 좆까.

누군가 남겨 놓은 조롱이 아르곤 대제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이… 이이이이…!!!”

분노에 찬 아르곤 대제는 이빨이 부서져라 이를 악문 채 치를 떨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사고회로가 정지해 버렸으며, 치솟아 오른 혈압으로 인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무덤을 도굴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모든 보물을 강탈당하고, 황후는 살해당했고, 유골은 산산조각에, 누군가 오줌을 갈기고 똥을 싸질러 놓았으며, 이제는 유언을 적어 놓은 비석에 낙서까지 해 놨다.

평생, 현생뿐 아니라 전생을 통틀어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굴욕이었다.

“반드시.”

아르곤 대제가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갈았다.

분노가 골수까지 치밀어서, 눈의 실핏줄이 다 터져나갔던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 줄 것이다. 어떻게든. 찾아내서. 갈기갈기. 찢어서. 영원히. 죽어서도. 고통받게. 만들어 줄. 것이다.”

무덤을 나선 아르곤 대제는,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찾아라.”

“예!”

하지만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은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허리까지 올 정도로 폭설이 내린 상황이라, 배후를 추적하거나 어떠한 흔적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 * *

얼마 후.

이오타 왕국으로 귀환한 오토는, 즉시 에고를 만나 보물들을 어떻게 팔아치울지 상의했다.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에고는 오토가 가져온 보물들의 양을 보고 숨넘어갈 듯 경악했다.

전 대륙을 무대로 활동하는 거상[巨商]인 에고조차도 이런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들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다 아르곤 대제의 무덤을 도굴해서 가져오신 것입니까요?”

“그렇다니까요.”

“이런 말은 보물은….”

털썩!

에고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오토가 어찌나 많은 양의 보물을 가지고 왔던지, 정신이 아찔해진 것이다.

“괜찮으세요?”

“소, 소인은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보물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요.”

“저는 뭐 알았겠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오토 역시 아르곤 대제의 무덤을 털어 본 게 이번이 처음이니만큼, 처음 보는 건 마찬가지.

“아무튼, 이거 다 처분할 수 있을까요? 티 안 나게?”

“금괴는 시세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푼다면 상관없습니다요. 천천히 푸는 수밖에는 없습니다요.”

“그럼 사치품이나 보석 같은 것들은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요. 세공품의 품질이나 양식 자체가 시대상이 워낙에 명확해서, 이 물건들이 시장에 풀린다면 꼬리가 밟힐 수밖에 없습니다요.”

“그럼 어떻게 하죠?”

“해상무역으로 멀리까지 가서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요.”

“으음!”

“안 그래도 소인이 세탁할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요.”

“그럼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죠.”

오토는 에고의 수완을 믿었기에, 사치품들과 보석을 잘 세탁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일단 금부터 천천히 풀죠.”

“대금은 무엇으로 받으시겠습니까요?”

“당연히 식량이랑 철이죠. 마정석도 좋고.”

식량·철·마정석은 다가올 세계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

비축해 둘 수 있을 때 비축해 두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면 식량·철·마정석의 값도 엄청나게 폭등할 테니, 그때 비싸게 되팔아도 될 테고.

“알아보겠습니다요.”

“네, 그럼 부탁해요.”

오토는 에고에게 보물의 처분을 맡긴 후 카이로스와 함께 다시 쿤타치 가문으로 향했다.

<옵시듐>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갑옷들을 구했으니, 카이로스의 부하들을 죽음의 기사로 재탄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 * *

“허어! 용케도 구해 왔구먼?”

알퐁달 어르신은 오토가 <옵시듐>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갑옷들을 구해 오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하기야, 전 대륙의 경매장과 골동품상점을 뒤져도 한 개나 나올까 말까 한 물건들을 잔뜩 구해 왔으니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우리 가문의 미래가 밝구먼! 콘라드가 말년에 피붙이 하나는 건진 게야! 끌끌끌!”

“과찬이십니다.”

“끌끌끌! 조금만 기다리도록 해라. 거기 어르신께선 이쪽으로 오시지요.”

알퐁달 어르신이 카이로스를 데리고 연구실로 향했다.

오토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응접실에서 차와 과자를 즐기며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약 2시간쯤 흘렀을 무렵.

“의식이 길어지니 좀 더 기다려야겠구나.”

연구실 문을 열고 나온 알퐁달 어르신이 유령처럼 스르르 미끄러져 오토에게 다가왔다.

오싹!

때마침 잠깐 졸고 있던 오토는, 알퐁달 어르신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제발 그렇게 다가오지 좀 마요! 진짜 유령 같잖아!’

아무리 판타지 세상이라지만, 진짜 귀신이 다가오는 것만 같아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오토라 했느냐?”

“아, 예.”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의식이 실패할 확률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끌끌. 이 나이 먹고 이렇게라도 할 일이 생긴 게 좋은 게야. 끌끌끌.”

“하하하.”

“내 살 날도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라도 과거의 억울한 인연들을 도와줄 수 있으니 기쁠 따름이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고요? 어르신께서는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개발하셨잖아요.”

“생명을 아껴 쓴다는 개념이지 영생은 아니란다. 그리고 이젠 살 만큼 살아서 별로 미련도 없구나. 이제 쉴 때도 됐지. 끌끌끌.”

“그래도 오래오래 사셔야죠.”

“끌끌끌. 됐다, 이 녀석아. 더 살라는 것도 이 나이쯤 먹으면 욕인 게야. 끌끌끌.”

알퐁달 어르신은 딱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없어 보였다.

‘하긴.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건 아니겠지.’

오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알퐁달 어르신에게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저어… 혹시.”

“음?”

“저번에 하신 말씀이요.”

오토가 알퐁달 어르신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네놈이 오토 드 스쿠데리아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알퐁달 어르신은 백내장에 걸린 그 눈으로 영혼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고 했기에, 그때 그 말이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알퐁달 어르신이 오토의 진짜 정체를 간파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고.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제가 오토 드 스쿠데리아면 손에 장을 지지신다고.”

“아.”

알퐁달 어르신이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삐걱! 끄덕였다.

“기억이 나는구나. 그래, 그랬지.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른다.”

“예?”

“그저 내 눈에 비친 네 녀석의 영혼이 이질적으로 보여서 그리 말했을 뿐이다.”

“이질적이라 하심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구나. 영혼과 육체가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만… 지금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어렵구나, 어려워. 뭐라 딱 정의할 수가 없어.”

“그, 그렇군요.”

“내가 드래곤이라면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터인데. 끌끌끌.”

“예? 드래곤이요?”

“고대문헌에 그리 적혀 있더구나. 드래곤의 눈. 그러니까 용안(龍眼)은 영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근데 그럼 뭐하겠느냐? 드래곤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멸종한 것을. 그저 이 늙은이가 눈이 침침해서 헛소리를 한번 뱉어본 것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그러나 알퐁달 어르신의 이어지는 말은 오토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래곤이 멸종했다?

멸종을 코앞에 두고 있긴 하지만, 아직 최후의 한 마리가 남아 있지 않던가?

그것도 오토의 바로 옆에.

‘누구… 세용???’

물론 치매를 앓고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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