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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23화 (124/401)

123화

엘리제가 강도를 올리자 오토는 그저 샌드백에 불과했다.

빡!

“으악!”

맞고.

빡!

“컥!”

맞고.

빠악!

“꾸웨에엑!”

또 맞고.

오토는 몇 합을 채 주고받기도 전에 머리·어깨·무릎·팔·무릎·팔 등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머리가 쪼개지고, 어깨가 잘려 상반신의 3분의 1이 날아가고, 다리가 잘리는 등의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을 터.

그 뒤엔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오토는 어림잡아 47번쯤 쓰러졌다가 일어나며,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무력하다니.’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대련에 임하고 있었음에도, 그저 어린아이가 된 기분.

지금 오토 정도면 어딜 가나 상당한 수준이라 평가받을 실력.

그런데도 격차가 가히 어마어마했다.

하늘과 땅만큼이나.

“좀 쉬겠나?”

“아뇨.”

오토가 엘리제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더 갑니다.”

“좋은 자세다.”

엘리제는 오토의 투지와 근성이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오토가 변변한 공격 한 번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리 불만스러워하지는 않는 기색이었다.

텅! 터엉! 빡!

“으악!”

빡!

“꾸웨에엑!”

그렇게 수십 번도 더 쓰러졌을 무렵.

‘기회다.’

오토는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엘리제의 빈틈을 발견하고, 검을 쭉 찔러 넣었다.

툭.

그러자 검 끝이 엘리제의 배꼽 바로 아래에 살포시 닿았다.

“어?”

오토는 스스로도 놀랐다.

거의 4시간 동안이나 제대로 된 반격 한 번을 못했다.

그런데 급소 중 하나인 하복부에 찌르기를 성공시킬 줄이야!

심지어 엘리제가 대련의 난도를 올렸음에도….

[알림: <무적검술>의 성취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무적검술>의 성취가 3성에 도달했습니다!]

눈앞에 희미하게나마 알림창이 떠올랐다.

성장.

고작 몇 시간의 대련을 통해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배움이 빠르군. 인정한다.”

엘리제는 오토가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룩했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보았다.

“정말요?”

“아무리 무의식에 새겨진 검술이 좋아도, 그걸 녹여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롯이 네 스스로의 몫 아니겠나.”

“그런가요?”

“내가 원하는 움직임이 나오도록 유도했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해낼 줄은 몰랐다. 솔직히 놀랐다.”

“…맙소사.”

오토는 엘리제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보다, 그녀의 귀신 같은 눈과 힘 조절이 더욱 놀라웠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어마어마했다.

상대방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끔 유도한다는 것.

그건 개나 소나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모든 강자들이 가르치는 데 능했다면, 이 세상에 못난 제자가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엘리제의 이번 가르침은 지난번과는 또 달랐다.

지난번에는 오토가 의식적으로 검술을 펼칠 수 있게끔 놀아 주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나아간 가르침이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패턴으로 오토를 자극해서, 원하는 움직임을 나오도록 유도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엘리제가 원하는 움직임이란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검술이었다.

검술의 진리를 추구하는 엘리제와 <무적검술>은 그 맥락이 거의 완벽하게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약혼자.”

“네?”

“넌 재능이 있다. 천재라 불릴 자격이 있다.”

엘리제가 진심 어린 말투로 오토를 격려해 주었다.

“에이, 설마요.”

“정말이다. 나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너에게는 충분한 재능이 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절대 기죽지 마라. 죽지도 말고. 넌 내 약혼자다.”

“하하. 하하하하.”

오토는 엘리제가 자신을 격려해 주기 위해서 일부러 좀 띄워 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천재면 그쪽은 초천재입니까? 개나 소나 천재일 리가 없잖아요. 그래 봤자 태양 앞에 반딧불이 신세에 불과한 겁니다. 킁.’

실력 차이가 워낙에 압도적이라서, 엘리제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오토였다.

* * *

오토는 엘리제와의 대련이 끝나자마자 의무실로 실려 갔다.

비록 목검이라지만, 급소를 수십 대나 얻어맞은 덕분에 또다시 만신창이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손해는 결코 아니었다.

3일 동안의 벼락치기.

그리고 4시간 동안의 대련.

불과 나흘을 채우기도 전에 <무적검술>의 성취가 2성에서 3성까지 도달했으니, 오히려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끄어어어어억.”

물론 오토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살인적인, 골병이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도 높은 수련이었지만.

만약 오토가 <신마지체>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끊어지는 등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을 확률이 컸다.

즉, 오토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지옥훈련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끌끌끌.”

잠자코 대련을 지켜보던 카이로스가 엘리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가르침이 아주 훌륭하더구나?”

“과찬이십니다.”

“훌륭한 스승이다. 짐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 가르치지 못하겠거늘. 옛날에도 가르쳐 보겠답시고 낑낑거렸다가 부하 놈들 여럿 잡았지.”

“누구나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엘리제는 카이로스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어째서 자신을 짐이라고 칭하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카이로스란 사람과 검을 볼 뿐.

“그리고 제 가르침이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약혼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엘리제는 오토가 실려 간 뒤에도 여전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토를 격려하고자 띄워 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진심이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약혼자가 구사하는 검술은 조금은 구식이지만, 완벽에 가깝습니다. 제가 본 검술 중 가장 검술의 진리에 가까울 정도로.”

“그래서?”

“하지만 무의식 속에 무적의 검술이 각인되어 있다고 해도, 그걸 풀어내는 건 결국에는….”

“사람, 사람이란 말이로구나! 옳거니!”

“그렇습니다.”

엘리제가 자신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카이로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름난 명검이든. 혹은 검술이든. 결국엔 검을 쥔 사람에게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끌끌.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카이로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약혼자의 재능은 뛰어납니다. 아무리 무의식 속에 새겨 넣은 것이라 해도, 받아들이는 자의 자질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방법이겠지요.”

“네 말이 옳다.”

“수련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재된 검술을 일깨우는 것도, 보통의 재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껄껄껄껄!”

카이로스가 크게 웃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로다! 뺀질이 놈을 아주 꿰뚫고 있구나!”

“그저 작은 재주일 뿐입니다.”

“약혼자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만한 재능을 지니고도 위축되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끌끌끌. 그건 녀석이 헛똑똑이이기 때문이다. 녀석은 세상을 보는 눈은 더없이 뛰어나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은 모른다.”

“그게 가능합니까?”

“짐도 그게 의문이니라.”

엘리제와 카이로스는 오토가 어째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자각하지 못하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건 오토가 멍청해서가 아니었다.

오토는 현대인.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검술을 접하는 이 세계 사람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인물.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뛰어남을 자각할 안목 자체가 길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세계를 게임으로만 접했기에, 그저 <무적검술>을 날로 먹었다고만 여겼던 탓도 있었다.

실제로는 재능이 없으면 <무적검술>을 무의식으로나마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뛰어나지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은 모른다라….”

엘리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카이로스의 말을 되뇌었다.

“끌끌끌.”

카이로스가 생각에 잠긴 엘리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혹시, 방금 하신 말씀이.”

“천생연분이란 말을 아주 귀신같이도 알아듣는구나.”

“제가 약혼자와 천생연분… 입니까?”

“끌끌끌! 알아들어 놓고 왜 모른 척을 하느냐? 끌끌!”

카이로스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애새끼에 불과하지만, 네가 곁에서 잘 훈육하면 그래도 사람 노릇은 할 놈이다. 필요하면 사랑의 매를 들어서라도 잘 두들겨 패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 될 날이 오지 않겠느냐.”

“열심히 가르쳐 보겠습니다.”

스승 입장에서 제자의 재능이 뛰어나다면, 가르칠 맛이 나는 법.

심지어 제자가 마치 스펀지처럼 가르침을 흠뻑 빨아들이는 수준이라면, 보람을 넘어 성취감마저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

비록 엘리제가 오토의 정식 스승은 아니었지만.

* * *

모두가 잠든 새벽.

“끙. 끄응.”

오토는 끙끙 앓다가 통증으로 인해 잠에서 깨었다.

욱신욱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자긴 글렀네.”

오토는 진통제 성분이 든 포션을 입에 털어놓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전하, 기침하셨사옵니까.”

침실 앞을 지키던 기사들이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때마침 카미유가 비번인지라, 다른 기사들로 대체되었던 모양.

“야심한 밤이옵니다. 왜 더 주무시지 않으시옵니까?”

“약 기운 돌 때까지 잠깐 몸 좀 움직여 주려고요.”

“하오나….”

“괜찮습니다. 여기 계세요. 전 괜찮아요.”

오토는 기사들을 물리치고, 홀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한기가 짙게 내리깔린 새벽.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서, 오토는 검을 휘둘렀다.

휙! 휘익!

복습.

오토는 엘리제와의 대련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면서, 그때의 움직임을 다시 재현해 보았다.

그러던 중.

스윽.

오토의 눈앞에 엘리제가 나타났다.

그건 진짜 엘리제라거나, 마법으로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순전히 오토의 집중력, 상상력, 기억력이 만들어 낸 환영이었을 뿐….

‘보인다.’

검이 움직이는 길.

엘리제의 검로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반격을 찔러 넣고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 이제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휙! 휘익!

오토는 그때 그 움직임이 몸에 익도록,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며 상상으로 대련을 이어나갔다.

수련을 계속해 나갈수록 움직임은 더욱 매끄러워졌다.

그러자 마치 막혔던 물꼬가 트인 것처럼, 오토의 검술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힌다.’

상상력이 확장되자 엘리제의 움직임이 더욱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더 위협적으로 돌변한 엘리제가 쉴 새 없이 오토를 압박해 왔다.

쒜에엑!

엘리제가 오토의 반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해 왔다.

‘막혔다면… 이렇게?’

한 발 더.

복습을 넘어서, 예습이었다.

‘피하고, 막고. 다시, 반격.’

촤라락!

왼쪽 아래서 오른쪽 위로.

대각선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이 엘리제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됐다.’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멈춰선 검 끝에 맺힌 달빛이 은은히 반짝였다.

그리고….

[알림: <무적검술>의 성취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무적검술>의 성취가 4성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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