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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29화 (130/401)

129화

“카심, 카심이 사람들을 가까운 항구도시에 내려다 줄 수 있겠어요?”

“헉!”

카심은 오토가 특별 임무를 부여해 주자 매우 기뻤다.

물론 위험한 특수작전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임무가 중요하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다.

오토가 해적들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을 매우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던 만큼, 그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건 매우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간 이런저런 사건사고(?)들로 인해 낙오되면서 제대로 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던 카심으로서는, 오토가 직접 부여한 임무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믿고 맡겨만 주시옵소서!”

카심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쳐 대답했다.

“까악, 까악!”

어느새 거위만 한 크기로 성장한 <까막이> 역시 맡겨만 달라는 듯 깍깍 울어 댔다.

“좋습니다.”

“명령,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카심은 오토가 내어준 배를 타고 이오타 왕국의 선단에서 이탈했다.

“쯧쯧.”

카이로스가 멀어지는 카심의 배를 보고 혀를 찼다.

“그놈 참 팔자 한번 기구하구먼. 쯧쯧쯧.”

“으응? 그게 뭔 소리야?”

오토는 카이로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말하는 거야? 카심?”

“그렇다.”

“왜?”

“저놈 관상이 그렇다.”

“너 관상도 보냐?”

오토는 전직 용병·황제·사이비교주 출신인 카이로스가 이제는 관상까지 볼 줄 안다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이 세계에도 관상학이라는 개념이 있나?’

어쨌든.

“짐은 못 하는 게 없다!”

“그래서 관상 볼 줄 아냐고.”

“말하지 않았느냐? 소싯적에 수도승 노릇을 할 때에 나름 깊이 공부한 적이 있었느니라.”

“오~”

오토는 카이로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카이로스가 <공부>라는 것을 했다는 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카심 관상이 어때서 그래?”

“저놈 관상은….”

카이로스가 떠나가는 카심의 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무리에서 떨어진 늑대다.”

“으응?”

“저놈은 항상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 팔자다. 어느 집단에 속해 있던지, 항상 겉돌기만 할 가능성이 높다.”

“그, 그래?”

“눈에 회색빛이 도는 걸 보니 존재감도 없어서 어지간해서는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그 와중에 명줄은 질기니 뒈지고 싶어도 뒈지지도 못할 팔자로다. 가만….”

카이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카심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 팔자는 팔자인데. 이리저리 닿는 인연도 많구먼.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가 자신만의 무리를 이룰 운명이로다. 하여간 특이한 놈이로군.”

“카심이 독립이라도 한다는 거야? 자기 세력을 이뤄서?”

“그것까지 짐이 어떻게 알겠느냐? 관상이 그렇다는 것이지.”

“진짜 관상 볼 줄 아는 거 맞냐?”

오토는 솔직히 좀 미심쩍었다.

<관상은 과학>이라는 대한민국의 격언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 내 관상도 봐봐.”

“싫다.”

“왜?”

“네놈 같은 관상은 보는 게 아니다.”

“내가 어때서!”

“천기누설이란 말도 모르느냐? 네놈 같은 관상을 함부로 들여다보았다가는 재수 옴 붙는다, 이 말이다.”

“뭐? 재수가 없어? 이게 진짜!”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오호라! 네놈이 한번 해 보자는 것이냐? 좋다! 와라!”

카이로스가 철퇴를 뽑아 들고 오토에게 맞섰다.

“어쭈? 무기를 뽑아? 그래, 한판 뜨자.”

“껄껄! 뺀질이 놈 주제에! 얼마든지 덤벼 봐라!”

그렇게 카심의 관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오토와 카이로스는, 갑판 위에서 사이좋게 칼과 철퇴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졌다.

결과는….

“꾸웩!”

당연히 오토의 패배였다.

* * *

오토는 <집게섬>으로 가는 동안 주로 카이로스와 대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가 비었다!”

퍽!

“꾸웩!”

오토는 몇 번이고 나가떨어지면서도, 카이로스에게 덤비고 또 덤볐다.

이유는 간단했다.

카이로스는 과거 전 대륙을 아우르던 무력을 손에 넣었던 존재.

비록 과거의 힘을 되찾지 못한 상태일지라도, 카이로스는 순수 실력만을 따졌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 강자였다.

그나마 엘리제에게 비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가 카이로스이니만큼, 수련 상대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크윽!”

이미 반쯤 만신창이가 된 오토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해.”

“호오.”

카이로스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 지경이 되고도 또 덤비겠다는 것이냐?”

“아직. 버틸. 만해. 으윽.”

오토는 이를 악물었다.

‘바쁘단 핑계로 수련을 미룰 수 없어. 틈날 때마다 수련을 해 둬야 돼. 그러지 않으면 엘리제를 실망시키고 말아.’

엘리제를 실망시킨다?

오싹!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오토가 이렇듯 이를 악물고 수련하는 이유는, 엘리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해져야 해. 다가올 세계대전을 위해서라도.’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오토로서는, 바쁘단 이유로 개인 수련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그만 까불고 좀 쉬는 게 어떠냐? 뺀질아? 아무리 목검이라도 계속 쳐 맞다 보면 골병든다니까?”

“시끄럽고, 계속해.”

오토는 카이로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자세를 다잡았다.

‘충분히 해 볼 만해. 분명히 틈을 본 거 같았어. 집중, 집중하자.’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카이로스와 검을 주고받았다.

텅! 터엉! 텅! 텅텅!

오토와 카이로스의 검이 쉴 새 없이 부딪치며 공방을 주고받던 순간.

빠악!

오토의 검이 카이로스의 골반을 강타했다.

“……!”

카이로스의 자세가 살짝 무너지고.

푸욱!

오토의 검이 카이로스의 턱밑을 아래서부터 위로 찔렀다.

“크으윽!”

카이로스의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됐어.”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잡힐 듯 말 듯 애를 태우던 카이로스의 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하는 데 성공했으니, 지난 며칠 동안 흠씬 두들겨 맞은 보람이 있는 셈.

[알림: <무적검술>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실제로, 희미하게나마 떠오른 알림창이 오토의 검술 실력이 성장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근데 상태창은 왜 자꾸 희미해지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그때.

“크윽. 감히 짐의 턱주가리를 찌르다니.”

카이로스가 턱을 매만지며 오토에게 으르렁거렸다.

“열 배로 두들겨 맞을 준비는 됐느냐? 뺀질아?”

“응 안 해~”

“뭣이?”

“이겼으니까 그만하겠다고.”

“이런 치사한 놈 같으니! 막판에 이겼으니 됐다는 것이냐!”

“원래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인 거 모르냐? 히히히!”

오토는 목검을 휙! 내던지고는 갑판 위에 설치해 놓은 썬배드 위로 가 몸을 뉘였다.

“크으. 날씨 조오타.”

막판에 이겨서 기분이 좋았기 때문일까?

욱신욱신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곡소리보다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카미유가 피식 웃으며 오토에게 라임과 달콤한 시럽을 첨가한 음료를 건네주었다.

“당연히 좋지. 며칠을 두들겨 맞았는데.”

“예, 뭐.”

카미유가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298번 지고 딱 한 번 이기셨으니 좋아하실 만도 하겠습니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야 이.”

오토가 으르렁거렸다.

“그걸 꼭 언급을 해야 직성이 풀려?”

“그건 아닙니다.”

“조용히 있어? 엉?”

오토가 한 마디만 더 해 보라는 듯 카미유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는, 라임향 가득한 음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전하.”

“왜. 뭐. 또 왜. 이번엔 내가 몇 대 맞았는지 알려 주게?”

“진짜 알려 드립니까?”

“감봉당하고 싶어?”

“죄송합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왜 저랑은 대련 안 하십니까.”

카미유는 오토가 카이로스하고만 대련을 하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토와 카미유의 검술 실력은 거의 대등해서 서로에게도 아주 좋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형은 알아서 강해질 사람이라서.”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아서 강해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지 왜 없어. 후후후.”

오토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카미유를 향해 묘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런지, 슬슬 따스해진 날씨 덕분에 볕이 딱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형 상대는 따로 있어. 내가 아니라고. 곧 만나게 될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오토는 속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 * *

“괜찮으십니까?”

카미유가 카이로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토가 며칠째 대련을 해 주지 않으니, 카이로스에게라도 대련을 신청해 보겠단 의도였다.

“짐이 목검으로 좀 맞았다고 안 괜찮을 것 같으냐? 이런 빌어먹을!”

…라고 말했지만 카이로스는 어지간히도 약이 오른 기색이 역력했다.

막판에 이기고 내뺀 오토의 비열하고, 야비하고, 치사한 행태가 꽤나 효과가 있었던 모양.

마지막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자라던 오토의 말을 마치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 듯했다.

“뺀질이 이노옴. 고작 며칠 수련한 주제에 짐에게 유효타를 성공시킬 줄이야. 꼴에 천재는 천재로구먼. 적어도 한 달은 넘게 걸릴 줄 알았거늘.”

“어르신, 대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저도 어르신과 대련하고 싶습니다.”

카미유가 카이로스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네놈도 맞고 싶은 것이냐?”

“맞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전하께서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강해져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제가 전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전하께서 저를 지키시게 될 겁니다. 저는 군주에게 짐이 되는 무능한 기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끌끌끌! 그 마음가짐이야 가상하다만, 뺀질이 놈은 천재다. 샌님 네놈으로서는 따라가기도 벅찰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전하를 지킬 수만 있다면, 전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여간 기사란 족속들이란.”

카이로스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카미유에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걸 보면, 정말로 카미유가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오냐, 대련해 주마. 대신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어르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카미유가 미소를 지으며 목검을 뽑아 들었다.

* * *

며칠 후.

“전하, 저기 집게섬이 보인답니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카미유가 오토에게 보고했다.

“그래? 끄응.”

역시 붕대를 칭칭 감은 오토가 낑낑거리며 대답했다.

<집게섬>까지 오는 동안 매일 같이 카이로스에게 두들겨 맞은 덕분에 두 사람 다 성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오토나 카미유나 둘 다 수련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아, 저기 보이네. 다 왔네.”

“상륙 진행합니까?”

“절대 안 돼.”

오토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대기. 무조건 대기. 아무도 섬에 못 들어가게 해. 절대로. 백사장 근처에도 가면 안 돼.”

“위험한 곳인 겁니까?”

“이 좋은 섬이 왜 무인도로 남아 있겠어?”

“아.”

카미유는 그제야 오토의 경고를 이해했다.

<집게섬>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해양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금싸라기 같은 섬.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인도로 남아 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일단 우리 가둬 놓은 해적들 있잖아.”

“예, 전하.”

“제일 악질인 놈부터 차례대로 번호 매겨서 갑판 위에 데려다 놔.”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가 왜 그런 명령을 내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군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해적들은,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왜?

오토의 얼굴에 냉혹하고도 섬뜩한 표정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피바람이 휘몰아치기 마련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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