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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32화 (133/401)

132화

“거 빨리 빨리!”

“조심해!”

“거 더럽게 안 썰리네! 퉤!”

푸르푸르의 몸에 달라붙은 수십여 명의 드워프들이 열심히 해체작업을 벌였다.

“푸르… 푸르르르르….”

다리가 모조리 잘린 푸르푸르는, 산 채로 해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불쌍해할 필요는 없었다.

갑각류답게 아주 오랜 세월을 사는 푸르푸르는, 배가 고프면 해안가 작은 마을을 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괴수.

지난 수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을지 생각해 보면, 산 채로 해체당해도 쌌다.

해체당하면서 푸른 체액을 콸콸 뿜어내던 푸르푸르는,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181레벨 달성!]

[알림: 182레벨 달성!]

[알림: 183레벨 달성!]

(중략)

[알림: 200레벨 달성!]

고대 괴수인 푸르푸르 사냥에 성공하자 무려 200레벨이 올랐다.

‘으으. 복귀 마렵네.’

오토는 당장에라도 성역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무적황제의 세 번째 권능.

무한한 지식의 힘으로.

대학살의 서.

한 손에 커다란 책을 든 학자의 동상 뒤에 보관되어 있는 책의 이름.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마법들이 기록되어 있는 그 책은, 오토를 진정한 마검사로 만들어줄 아이템이었다.

진정한 마법이 무엇인지.

과거 무적황제가 왜 일인군단이라 불렸는지.

단 하나의 주문이 어째서 전쟁의 판도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지.

그 해답이 <대학살의 서> 안에 있었다.

‘복귀하자마자 성역부터 다녀와야겠네. 대륙 진출 전에 대학살의 서를 얻어야 돼.’

오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을 슥 휘저어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치워 버렸다.

‘근데 왜 자꾸 희미해지는 거야? 신경 쓰이게.’

알림창이 날이 갈수록 희미해져서, 알아보는 게 점점 힘들었다.

이대로라면 스스로의 성장조차 체크하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오토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푸르푸르가 죽어 식인 게들이 사라진 백사장에는 여러 개의 텐트가 설치되었다.

하브르 초원 유목민들의 전매특허와도 같았던 원형 텐트는, 어느새 이오타 왕국의 제식 야전텐트가 되어 있었다.

“다들 좀 괜찮으십니까?”

오토는 이번 작전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몸소 돌보는 성의를 보였다.

“괜찮습니다!”

“좀 긁힌 것뿐입니다!”

다행히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의외로,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은 카미유였다.

카미유는 운이 없었다.

푸르푸르가 쓰러지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가시에 찔렸고, 그 때문에 오른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피부가 찢기고, 근육이 파열되고, 심지어 뼈까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좀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카미유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정말 괜찮습니다.”

“한 몇 달은 쉬어야 할 부상 아냐? 오른손잡이잖아.”

“왼손을 쓰면 됩니다.”

“그게 돼?”

“그렇게 수련했습니다.”

하여간 지독한 인간 같으니.

절레절레.

오토는 카미유의 지독함에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짙은 갈색을 띠는 젤리를 건넸다.

“먹어.”

“이게 뭡니까?”

“진통제야. 효과 좋더라고.”

“감사합니다.”

아무리 마법으로 치료를 받고, 포션을 마셨다고 한들 통증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법.

욱신욱신 통증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카미유는, 오토가 건네준 젤리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먹었다.

“근데 왜 그렇게 보십니까?”

“으응?”

“뭔가 기대감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계시잖습니까.”

“기, 기대는 무슨! 내가 무슨 기대를 한다고 그래! 걱정돼서 그러지! 걱정돼서!”

카미유는 오토를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 보았지만, 이미 젤리를 먹은 마당에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설마하니 먹고 죽을 걸 주었겠냐 싶기도 하고.

“근데… 원래 맛이 이렇게 이상한 겁니까.”

카미유가 오만 상을 다 쓰며 오토에게 물었다.

“솔직히 좀 역겹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도 몰라?”

“그렇긴 합니다만… 뭔가 구립니다. 향도 그렇고. 짭짤하면서도 뭔가 느끼하기도 하고. 굉장히 불쾌합….”

그때.

‘뭐지?’

카미유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말을 하다 말았다.

그 사이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간질간질!

상처 입은 오른팔이 미친 듯 간지러웠다.

깜짝 놀라 붕대를 풀어보았던 카미유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상처가… 재생이 되고 있다.’

새살이 돋아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최소 몇 개월 동안은 쓸 수 없을 것만 같던 카미유의 오른팔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이 약… 뭡니까.”

카미유가 완벽하게 치료된 자신의 오른팔을 신기하다는 듯 매만지며 오토에게 물었다.

조금 전 오토가 건네준 젤리가 평범한 진통제가 결코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런 약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신비한 약을 만든 겁니까? 쿤타치 가문입니까?”

“아니?”

“그럼 누구입니까.”

“형도 잘 아는 사람.”

“예…?”

“쿠란 어르신이 만드신 거야. 히히히.”

“아.”

카미유는 조금 전 오토가 준 젤리를 만든 사람이 쿠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럴 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

그때.

‘잠깐.’

문득 카미유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70화 참조―이 있었다.

“이건 드래곤의 똥으로 만든 약이라오. 어떤 부상을 입더라도 그대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니, 소중히 간직하시오.”

“이거 설마.”

카미유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오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줄행랑을 친 것이다.

* * *

3일 동안 집게섬에 머물며 휴식을 취한 원정대는, 다시 칼리프 왕국을 향해 항해를 이어나갔다.

드워프들과 마검사 몇, 그리고 이오타 왕국군이 집게섬에 남았다.

원정대가 칼리프 왕국에 다녀오는 동안 푸르푸르의 잔해를 해체하고, 무역거점을 건설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칼리프 왕국에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다.

오토는 긴 코트를 벗고, 하늘하늘한 얇은 셔츠 하나만을 걸친 채 지냈다.

띵! 띠잉!

카미유는 오토가 뱃머리에 걸터앉아 기타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것을 보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하십니까?”

“보면 몰라? 기타 치잖아. 진짜 너무 지루해. 배는 두 번 다시 못 탈 거 같아.”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악기 다루시는 거, 오랜만에 봅니다.”

“으응?”

“어렸을 때는 자주 치셨잖습니까. 피아노도 치시고. 노래도 곧잘 부르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만.”

“그랬나? 몰라. 기억 안 나.”

오토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현을 뜯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파랗게 피어난 서리꽃 하나가….”

오토의 입에서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음?”

“뭐지, 이 노래는.”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오토에게로 향했다.

오토는 타고난 미성에 울림이 깊은 목소리의 소유자.

거기에 노래까지 잘 부르니, 절로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 라아아아….”

노래가 끝나고.

“브라보!”

“휘이이익!”

“호우!”

오토는 갑자기 쏟아진 환호와 박수갈채에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잠깐 노래에 집중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이 뱃머리 주변에 빙 둘러앉아 있었다.

“뺀질아.”

카이로스가 다시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냐? 생긴 대로 논다더니, 기생오라비같이 생기면 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냐?”

“뭔 소리야?”

“그리 노래를 잘 부르는 줄 알았으면, 술자리 때마다 불렀을 것을. 술안주로 아주 제격이로구나.”

카이로스가 아르곤 대제의 해골로 만든 술잔으로 벌컥벌컥 럼주를 들이켜며 오토를 칭찬했다.

“잘 들었습니다.”

카미유도 오토를 칭찬했다.

“역시 타고난 재능은 어디 안 가나 봅니다.”

“타고난 재능이라니?”

“어렸을 때부터 노래 잘하시고, 악기 잘 다루시기로 유명하셨잖습니까. 장래희망이 음유시인이셨던 거, 잊으셨습니까?”

오토는 카미유의 물음에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형아! 나는 이담에 커서 음유시인이 될 테야!’

‘형아! 이거 내가 만든 노래야! 한 번 들어 봐!’

‘전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할 거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었구나, 내가.’

오토 드 스쿠데리아와 김도진은 공통점이 많았다.

김도진도 노래도 곧잘 하고, 피아노와 기타도 잘 쳤다.

비록 오토 드 스쿠데리아만큼 타고난 미성과 울림 깊은 목소리는 가지지 못했지만….

“근데 그 노래는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자작곡입니까? 너무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어. 음. 그러니까.”

오토는 차마 자신이 작사·작곡했다고 거짓말하지 못했다.

“오래된 음악 서적에 악보가 있더라고. 하하. 하하하.”

“혹시.”

“으응?”

“한 곡 더 청해도 되겠습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래! 뺀질아! 한 곡 더 뽑아 봐라!”

카이로스도.

“전하, 저도 부탁드립니다.”

마검사도.

“높으신 나으리께 감히 부탁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인도 듣고 싶습니다.”

이름 모를 선원도.

모두가 오토의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

“흠흠.”

오토는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몇 곡 불러 보죠.”

갑판 위에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망망대해를 벗어난 원정대가 칼리프 왕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전하! 전방에 해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우선 백기부터 내걸어.”

오토가 카미유의 보고에 씩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처럼 해적들을 끌어들이시려는 겁니까?”

“바로 그거지.”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오토는, 굳이 해적들과 해전[海戰]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괜히 배가 부서지거나 침몰이라도 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게 아군이든 해적이든.

“알겠습니다. 백기를 내걸겠습니다.”

“응.”

카미유는 오토의 명령에 따라 선단에 백기를 내걸도록 했다.

그런데.

펑펑! 펑!

백기를 내걸었음에도, 해적들이 함포를 쏴 대며 공격해 왔다.

“무력시위인가?”

오토는 일단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거리가 좀 있어서, 포탄에 맞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놈들인데 백기를 내걸었는데도 포탄을 쏴 대? 마정석 안 아깝나?”

뭔가 이상했다.

해적들의 최우선 순위는 누가 뭐래도 돈.

살인·강간·방화와 같은 중범죄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들이지, 해적질의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표적으로 삼았던 배를 침몰시켜 버리면, 해적들은 뭘 먹고 산단 말인가?

배는 해적들에게 있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보물단지나 마찬가지인데.

“돈 벌기 싫은 놈들이 이 세상에 있다고?”

<투시> 스킬을 켜 전방에 나타난 해적들이 무슨 깃발을 달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머리 위에 긴 지느러미가 돋아난 해골이라면….

‘돛새치 해적단? 드레이크가 왜 여기에?’

드레이크 선장은 100인의 군주들 중 하나.

‘잠깐. 드레이크의 주적이… 에이버리잖아.’

드레이크 선장의 메인 스토리는 같은 100인의 군주 중 하나이자 해적 영주인 에이버리 선장에게 복수하는 것.

오토가 탄 배는 <전투망치 해적단>의 해적선.

<전투망치 해적단>은 에이버리가 운영하는 <바다뱀 해적단>의 하부조직.

그렇다는 말은….

‘항복이 통할 리 없어.’

오토는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전투 준비!”

드레이크는 복수귀[復讐鬼].

에이버리 선장뿐 아니라 <바다뱀 해적단>에 속한 모든 해적들에게 일말의 자비도 없는 냉혈한.

해적 깃발은 내린 지 오래였지만, 드레이크가 <전투망치 해적단>의 해적선을 몰라볼 리 없었다.

즉, 지금 드레이크 선장은 이오타 왕국의 선단을 <전투망치 해적단>이라 오해하고 침몰시켜 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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