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33화 (134/401)

133화

“쏴.”

<돛새치 해적단>의 선장 드레이크는 <전투망치 해적단>을 발견하자마자 발포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백기를 내걸었습니다, 선장.”

“그래도 쏴.”

“하지만….”

“잊었어? 우리의 원한을?”

드레이크가 시퍼런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에이버리의 부하들이야. 백기를 내걸었다고 해서 살려 준다면, 뒷감당만 힘들어질 뿐이다. 그냥 쏴.”

드레이크가 재차 명령을 내렸다.

“수장시켜 버려.”

“예, 선장.”

드레이크가 재차 명령을 내리자 선원들이 함포를 움직여 발포를 개시했다.

“3, 2, 1.”

“Fire!”

함포가 불을 뿜었다.

“단 한 명도 살려 두지 않을 거다. 단 한 명도.”

저 멀리 <전투망치 해적단>의 해적선들을 바라보는 드레이크의 눈에 피맺힌 원한이 이글이글한 타오르는 듯했다.

* * *

“에라이. 잘못 걸렸네.”

오토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필 <전투망치 해적단>의 해적선을 타고 있을 때 드레이크를 만났다?

어쩜 운이 없어도 이렇듯 지지리도 없을까.

해적 영주 에이버리와 그 부하들에 대한 드레이크의 원한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본래 드레이크의 아버지 윌리엄은, 에이버리의 밑에서 독자적인 해적단을 이끌던 해적이었다.

마치 <전투망치 해적단>처럼 말이다.

비록 해적이었지만 훌륭한 인품을 지녔던 윌리엄 선장은, 해적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두텁고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그가 이끄는 해적단은 범죄율이 매우 낮았고, 인명피해를 거의 일으키지 않기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바다의 신사>란 별명으로 불렸을까.

애초에 해적질보다는 주로 보물탐사나 몬스터 사냥 등 범죄와 거리가 먼 활동에 주력하기도 했고.

하지만 해적은 어디까지나 해적일 뿐.

“언제까지 범죄나 저지르고 산다는 말인가? 내 범죄자 인생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

오래도록 해적 생활에 회의감을 지니고 있던 윌리엄은, 은퇴를 결심하고 조국인 <카스티야 왕국>에 항복하고자 했다.

물론 윌리엄도 바보는 아니었으므로, 카스티야 왕국이 자신을 쉽게 사면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서 윌리엄은 수백 년 전에 활동하던 해적 영주의 보물을 들고 카스티야 왕국으로 향했다.

보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사면을 받아 국가가 인정한 해적인 <사략해적>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윌리엄의 계획은 비열한 배신자에 의해 에이버리의 귀에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는 매우 참혹했다.

에이버리는 가족들을 인질로 붙잡아 윌리엄을 협박했고, 보물을 빼앗은 뒤 온갖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범죄자 생활을 청산하고 사략해적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윌리엄의 꿈은, 에이버리에 의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그 끔찍한 비극에서 겨우 살아남은 드레이크는, 해군에 입대에 에이버리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해적이었단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했다.

그래서 드레이크는 부득이하게 해적이 되기로 했다.

해적 잡는 해적이 되어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다.

…라는 게 드레이크의 메인 스토리.

그런 복수귀를 상대로 항복이 통할 리 없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알려야 돼!”

“예?”

“우리가 해적이 아니라는 걸 알려야 한다고! 본국의 깃발을 내걸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오타 왕국의 깃발을 내걸었음에도, 드레이크는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전투망치 해적단>이 기만전술을 사용한다고 오해하는 게 분명했다.

콰앙!

포탄이 마검사 다섯 명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방어막을 때렸다.

쨍그랑!

방어막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마검사들이 나가떨어졌다.

펑! 펑펑!

이오타 왕국 역시 대응사격에 나섰지만 <돛새치 해적단>의 그림자도 맞추지 못했다.

‘저건 못 잡아.’

<돛새치 해적단>의 해적선 <붉은 여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

느려터진 <전투망치 해적단>의 해적선으로 <붉은 여신>을 상대한다는 건 어불성설.

이대로라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선단 전체가 꼬르륵! 침몰하리라….

“우리!!!”

오토가 <야만용사의 함성>을 끌어올려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해적 아니야!!! 나포한 거야!!! 나포!!! 우리 해적 아니라고!!!”

펑펑! 펑!

펑펑펑!

하지만 워낙에 거리가 멀고, 함포들이 내뿜는 소음 때문에 오토의 외침은 드레이크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300레벨쯤 됐다면 달랐을 텐데.’

오토가 아쉬움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 때였다.

“뺀질아.”

카이로스가 다가와 말했다.

“저놈들이 지금 우릴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렷다?”

“어.”

“그럼 직접 가서 말하면 되지 않겠느냐.”

“어떻게 가는데? 날아서 가냐?”

“뛰어가면 되지 않느냐?”

“이 미친놈이.”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여기 지금 바다 한복판이거든? 우리가 무슨 소금쟁이… 으악! 뭐 하는 거야!”

오토는 카이로스가 다짜고짜 <공주님 안기>를 시전해 자신을 들어 올리자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데려다 주마.”

“뭐?”

“짐이 섬에서 찐빠를 내지 않았느냐.”

카이로스가 말하는 <찐빠>란 용병계의 은어로서 <실수> 혹은 <사고>란 뜻.

집게섬에서 오토의 당부를 잊고 식인 게를 밟아 죽였던 게 어지간히도 맘에 걸렸던 모양.

“이번 기회에 그때 낸 찐빠를 만회하도록 하겠노라.”

“그러니까 그게 뭔 개소리냐고!”

“직접 보면 알 것이다.”

그렇게 말한 카이로스가 오토를 안고 갑판 위에서 뛰어내렸다.

“으아아아악! 나 수영 못해! 수영 못한다고! 으아아아악!”

물 공포증이 도진 오토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어?”

오토는 예상과는 다르게 바다에 빠지지 않자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이로스가… 수면을 밟고 서 있었다.

“너… 뭐냐?”

“꽉 잡아라, 뺀질아.”

다음 순간.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카이로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붉은 여신>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아!

이거 무협소설 아니라고!

* * *

같은 시각.

“서, 선장! 저길 보십시오!”

“뭔데.”

“사람이, 사람이….”

“사람이 뭐?”

“물 위를 뛰어오고 있습니다! 뛰어오고 있다고요!”

드레이크를 보고를 받고 어이가 없어 피식 냉소를 지었다.

“요즘 럼주를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뛰어? 세이렌에게라도 홀린 거야?”

“아닙니다! 진짭니다! 보십시오!”

“하.”

드레이크는 황당해하면서도 부하가 가리킨 방향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뛰네?”

드레이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쌔앵!

저 멀리 웬 미친놈이 금발의 미남자를 안아 든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도 럼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뱃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면 습관적으로 럼주를 마시기 마련.

스스로에게 의심이 든 드레이크는, 눈을 끔뻑끔뻑 떴다 감았다.

“…진짜네.”

확인 결과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진짜로 사람이 물 위를 뛰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어느새 <붉은 여신>의 바로 앞까지 도착해 있을 정도로.

타핫!

수면을 박차고 부웅! 뛰어오른 청년이 <붉은 여신>의 갑판 위에 착지했다.

웬 금발의 미청년을 공주님처럼 안아 들고서.

“…….”

“…….”

“…….”

선원들은 이 믿지 못할 기현상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저 멍하니,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눈만 끔뻑거렸다.

너무 엄청난 일을 겪다 보니 그만 사고회로가 고장 난 것이다.

차라리 날아왔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역시나 선장인 드레이크.

“뭐, 뭣들 해! 죽여 버려!”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고, 공격!”

“공격하라! 공격!”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선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들고 적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 * *

“으어어어어.”

카이로스는 <붉은 여신>에 올라타자마자 완전히 뻗어 버렸다.

물 위를 달리느라 가진 마나와 체력을 다 써 버려서, 탈진하고 만 것이다.

“뒷일은 알아서 해라, 뺀질아. 헉, 허억.”

카이로스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마나가 고갈되어 <원혼귀갑>을 개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전성기 시절의 카이로스라면 바다 위를 온종일 뛰어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테지만.

“…뒈지란 거냐.”

오토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데려다준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적진 한복판에 던져 놓은 꼴이라, 이게 도와준 건지 아니면 죽으라고 사지로 내몬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죽어라!”

드레이크의 부하들이 다짜고짜 무기를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에라이.”

오토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가뿐했다.

해전[海戰]에서의 드레이크는 무섭다.

하지만 갑판 위에서 벌어지는 백병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이 시기의 드레이크는 이제 갓 해적으로 거듭난 상태라, 아직은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제압하는 쪽으로 가자.’

오토가 목검을 뽑아 들었다.

드레이크의 부하들 정도는 목검으로도 제압할 자신이 있었기에.

빡! 빠악! 빡!

목검이 덤벼드는 적들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꾸웩!”

“악!”

적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빡! 빠악!

드레이크의 부하들을 상대하는 오토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일방적인 학살.

아니, 구타.

무적황제의 권능을 사용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오토는 오직 검술만을 사용해 드레이크의 부하들을 때려눕혔다.

철컥!

드레이크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권총을 꺼내들었다.

‘위험.’

오토는 드레이크의 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위력을 갖추었는지를 잘 알았다.

이 세계의 모든 화기류는 화약이 아닌 마정석을 이용한 방식이라, 매우 비쌀뿐더러 연사 속도도 느렸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엄청나다.

드레이크의 권총 <피의 복수>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으로서, 비록 두 발밖에 쏘지 못하지만 그 위력은 어지간한 대포도 울고 갈 정도.

저것에 맞았다간 제아무리 마나로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무사하지 못할 터.

지금 오토의 수준으로는 상반신이 완전히 터져나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

오토는 드레이크가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걸 보자마자 침을 찍! 내뱉었다.

“퉤!”

쒜에엑!

<비열한 죽음구슬>이 드레이크의 총에 명중했다.

“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총을 놓친 드레이크.

퍽! 퍼억!

오토는 그 사이 두 명의 적들을 더 제압하고, 순식간에 드레이크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물 흐르듯 유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

엘리제와 카이로스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아낸 검술이었다.

“……!”

놀란 드레이크가 다급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오토를 향해 휘둘렀다.

‘어딜.’

어느 틈에 뽑아 들었는지, 오토의 진검이 드레이크가 휘두른 검을 쳐냈다.

챙! 채앵! 챙!

세 번의 충돌.

휘리리릭!

저 멀리 날아간 드레이크의 검이 갑판에 푹! 꽂혔다.

다음 순간.

스릉.

오토의 검이 드레이크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얌전히 굴어.”

오토가 드레이크에게 경고했다.

“죽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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