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40화 (141/401)

140화

오토가 푼 독은 독성이 어마어마했다.

마치 대[大] 해적시대가 열린 것처럼.

<꼬르륵 군도>에서 활동하는 해적 선장들의 절반 이상이 출항했으니, 그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했다.

해적영주 에이버리의 해적선을 선두로 하는 이 기다란 행렬의 끄트머리.

펑펑! 펑!

한 해적선의 함포가 불을 뿜으며, 근처에 있던 다른 해적선을 향해 포탄을 퍼부어 대었다.

콰앙!

와장창!

방심하고 있던 중 포탄을 맞은 해적선의 뱃머리가 박살나며, 나뭇조각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올리버 저 개새끼가!”

<가물치 해적단>의 선장 마이클은 올리버 선장의 <산낙지 해적단>이 대뜸 포격을 가해 오자 분노했다.

“뭣들 하는가! 쏴라! 쏴! 올리버 저 개새끼와 그 똘마니들을 모두 수장시켜 버려!”

<가물치 해적단> 역시도 황급히 뱃머리를 돌려 <산낙지 해적단>의 해적선을 향해 함포를 발사했다.

펑펑! 펑펑펑! 펑!

펑펑펑! 펑펑!

그렇게 행렬 끄트머리에서 <가물치 해적단>과 <산낙지 해적단> 사이에 벌어진 전투는,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쏴라! 쏴!”

“앞에 가는 놈들부터 쏴라!”

“그래! 어디 오늘 한번 죽어 보자!”

탐욕에 눈이 먼 해적들은,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함포를 발사하며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그게 해적들의 본질이기도 했다.

해적이란 족속들은 신뢰나 의리가 아닌 오직 <이익>에 의해서만 적과 아군을 구분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에이버리의 밑에 있는 선장들은 그런 성향이 특히 심했다.

평소에는 해적영주인 에이버리의 눈치를 보느라 마찰을 잘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힘에 의한 굴복이었을 뿐.

지금과 같이 커다란 이익이 걸려 있다면, 언제든 서로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족속들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이 걸려 있는 건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런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한편, 에이버리는 부하들이 자신을 뒤따라오고 있는 걸 발견하고 일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정보가 샌 건가? 아니면 모드레드 이 개자식이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건가?’

아무리 영리한 에이버리로서도 지금 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떤 쪽이든 가능성이 충분했기에, 지금 당장 콕 집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흠!”

에이버리는 고민했다.

‘이게 만약 함정이라면… 내 여정도 여기서 끝난다. 해적왕의 보물은 어쩌면 독이 든 성배였을지도.’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나….

‘나는 이미 늙었다. 이대로라면 10년은커녕, 5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평생의 숙원을 이룰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염원하던 강한 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에이버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일을 꾸민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 까짓것 미끼를 물어주마. 아무리 함정에 빠뜨렸다고 한들 이 에이버리를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결국, 에이버리는 항해를 강행하기로 했다.

위험한 줄 뻔히 알았지만, 강함에 대한 열망이 에이버리를 멈추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속도를 높여라! 더 빠르게 항해하라!”

“더 빠르게! 더 빠르게!”

에이버리와 앵무새 존슨의 목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해골섬>으로 향하는 <꼬르륵 군도> 해적들의 레이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꼬르르르륵!

에이버리와 해적 선장들은 각자의 해적선을 이끌고, 앞다투어 소용돌이에 몸을 던졌다.

* * *

붉게 노을 진 바다.

멀리 보이는 <해골섬>이 붉게 물든 채 명암이 져 있어 음산함을 더했고, 바다는 마치 피로 물든 듯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역시나 에이버리였다.

촤르르르르르르르!

첨벙!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른 에이버리의 해적선이 <해골섬>을 향해 무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뒤이어 다른 해적선들도 하나둘 솟구쳐 오르며 에이버리를 뒤쫓아 <해골섬>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했다.

“해골 모양의 섬…!”

에어버리는 <해골섬>을 보자마자 희열에 젖었다.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이 묻힌 곳! 사실이었구나! 사실이었어!”

에이버리는 지난 20년 동안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을 찾아 헤맸고, 그 과정에서 <해골섬>의 존재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런 <해골섬>을 실제로 보니, 에이버리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는 건 당연한 일.

“속도를 더 높여라! 더!”

“더 높여! 더 높여!”

야속하게도, 현실은 그런 에이버리의 다급한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았다.

펑! 펑펑! 펑! 펑펑펑!

펑펑펑! 펑!

에이버리를 뒤쫓던 해적선 하나가 함포를 발사했다.

콰앙!

날아든 포탄이 에이버리의 해적선 <뱀의 혀>의 후미에 적중했다.

“토마스 네놈이 감히!!!”

에이버리는 부하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자 극대노했다.

“크흐흐흐! 내 언제까지 네놈의 똥구멍만 핥을 줄 알았냐! 뭣들 하냐! 쏴라!”

“3, 2, 1!”

“Fire!”

토마스 선장은 에이버리를 향해 망설임 없이 포탄을 갈겨 대었다.

하지만 토마스 선장도 무사하진 못했다.

펑! 퍼엉!

뒤따르던 다른 선장이 토마스의 해적선에 포격을 가했던 것이다.

배신에 배신.

해적영주 에이버리의 밑에서 한솥밥을 먹던 해적들이, 서로를 향해 함포를 겨누었다.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이 묻혀 있다는 <해골섬> 앞바다.

수십여 개의 크고 작은 해적단들이 서로를 향해 포탄을 발사하며 한바탕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해전[海戰].

쏴아아아아아아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군함 <붉은 여신>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해적선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포탄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그 어마어마한 기동력을 믿고, 적진 한복판에 뛰어드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더 빠르게 기동해! 더! 각을 주지 마! 마구 휘저어! 우리의 원수들이다! 모조리 수장시켜 버려!”

용감하게도, 뱃머리에 선 드레이크는 아버지 윌리엄 선장의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선원들을 지휘했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붉은 여신>을 지휘하는 드레이크에게서는 앳된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전투에 나선 드레이크는 결코 해적 잡는 해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복수귀도 아니었다.

기나긴 복수행에 서서히 미쳐간,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한 복수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한 배를 책임지는 선장이요, 군함의 함장이었으며, 뛰어난 해군 제독이었을 뿐!

“붉은 여신!”

에이버리는 윌리엄의 해적선 <붉은 여신>이 나타난 걸 보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오냐, 내 오늘 네놈들을 모조리 수장시켜 주마! 함포를 방열하라! 놈들을 모조리 박살내라!”

에이버리의 해적선 <뱀의 혀>가 함포를 방열함과 동시에 뱃머리를 해적선들에게로 향했다.

“네놈 아비 곁으로 보내주마!”

에이버리의 첫 번째 표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드레이크였다.

물론 <붉은 여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해적선이라, 명중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에이버리는 해적영주였고, 그의 해적선 <뱀의 혀>에는 그 비싼 함포가 무려 12문이나 장착되어 있었다.

낮은 명중률?

에이버리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질보다는 양.

계속해서 포탄을 퍼붓다 보면, 결국에 한 발쯤은 맞히기 마련이었으므로.

“포격 준비!”

“Ready!”

“3, 2….”

바로 그때.

첨버어어어엉!

첨벙! 첨벙! 첨벙! 첨벙!

그야말로 거대한 군함들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며 물살을 갈랐다.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거대한 군함들이 얼마나 컸는지, 큰 파도가 일어났을 정도.

“저, 저것은…!”

에이버리는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열두 척의 군함.

검은색 도색에 황금색으로 장식된 그 배들은….

“해적왕 바르도의 검은… 함대….”

200년 전 <무적함대>라 불렸던 그 전설의 함대가 분명했다.

그중 가장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기함 <폭군>은 무려 74문이나 되는 함포를 탑재한, 이름 그대로 바다의 폭군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우우우우웅!

기함 <폭군>을 중심으로 열두 척의 군함들이 일제히 뱃머리를 돌려 해적선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방열을 마친 함포들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셋, 둘, 하나.

Fire!

펑펑! 펑! 펑! 펑펑! 펑! 펑펑펑! 펑펑펑펑! 펑! 펑! 펑! 펑펑펑! 펑! 펑펑펑! 펑펑펑펑펑펑! 펑! 펑펑펑! 펑펑! 펑! 펑! 펑펑펑! 펑!

해적선들을 향해 포탄 세례가 퍼부어졌다.

* * *

기함 <폭군>의 뱃머리 위.

망토가 함포들이 내뿜는 충격파로 인해 나부꼈다.

손가락으로 해적 모자를 깊게 눌러썼던 오토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자 사이로 드러나는 금발이 마치 황금처럼 윤기를 발했다.

시야는 자욱했다.

기함 <폭군>을 포함한 열두 척 군함의 일제사격.

마정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증기가 바다를 희뿌옇게 뒤덮은 덕분이었다.

오토는 마치 화약 연처럼 자욱하게 깔린 증기들이 사라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증기가 걷히며 초토화된 바다가 서서히 그 풍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어느새 되돌아온 <붉은 여신>이 무적함대에 합류했다.

타핫!

<붉은 여신>으로 뛰어내린 오토가 드레이크를 향해 커틀러스[Cutlass] 형태의 해적검을 내밀었다.

바르도의 모자에 이어 2순위로 해적왕의 함대를 지휘할 수 있게 해 주는 두 번째 성물이었다.

“…이건.”

“나, 이오타 왕국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현 시간부로 함대의 지휘권을 드레이크에게 부여한다.”

“……!”

“함대를 부탁해.”

드레이크와 배를 바꿔 탄 오토는 카미유, 카이로스, 그리고 부하들과 함께 <붉은 여신>을 몰고 해전이 벌어지고 있는 바다 한복판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펑! 펑펑!

포격에 맞고 침몰해 가던 해적선 하나가 <붉은 여신>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마치 최후의 발악처럼….

콰직!

<붉은 여신>의 뱃머리 장식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포탄 한 발에 의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거 되게 구질구질하네.”

오토가 눈살을 찌푸렸다.

침몰 중에도 함포를 발사하는 그 못된 심보가, 마치 엄한 사람의 발목을 잡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악귀 같았다.

번쩍!

찬란한 황금색 섬광이 번뜩이고.

촤라라라라라라!

오토가 침몰해 가던 해적선을 통째로 두 동강을 내 버렸다.

콰아아아!

두 동강 난 해적선이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이 믿지 못할 광경에 경악했다.

일 검에 커다란 해적선 한 척을 두 동강 내 버린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이, 이게 무슨….”

카미유가 오토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그런 오토의 손아귀에는 아르곤 대제 평생의 동반자였던 <황금대검>이 시퍼런 오러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려 20미터에 가깝게 늘어난 황금색 검신을 빛내며.

그리고 카이로스는….

“크, 크윽!”

돌연 뒷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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