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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42화 (143/401)

142화

바다에 빠진 오토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공포는, 오토를 눈 깜짝할 사이에 집어삼켜 버렸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 갔다가 익사할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삼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당시 김도진은 정말로 죽을 뻔했다.

물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된 죽음의 공포는, 김도진의 뇌리에 아주 깊게 각인되었다.

그 후 김도진은 수영은커녕, 조금 깊은 욕조조차 꺼리게 되었다.

그건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

아무리 무적황제의 권능을 얻고, 검술을 수련했다 한들 물에 대한 공포가 자동으로 극복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크라켄의 촉수를 자른 것도 모두를 구하기 위해 물에 빠질 걸 각오하고 용기를 낸 것이었을 뿐.

만약 오토가 크라켄의 촉수를 자르지 않았다면 <붉은 여신>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모두가 물고기밥이 되었으리라….

오토는 감히 헤엄칠 생각조차 못한 채 천천히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깊이, 더 깊이.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이렇게… 죽나.’

엄습하는 죽음이 느껴졌다.

‘무서워.’

죽음이 두렵지 않다?

적어도, 김도진은 죽음이 두려웠다.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들였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두렵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그저 즐겁게 게임을 즐기던, 희대의 쓰레기 캐릭터인 오토 스쿠데리아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평범한 게이머였을 뿐.

그런 김도진으로서는 늘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이 세계가 두렵지 않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단지 이겨내려고.

죽지 않으려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 뿐.

하지만 그런 강인한 정신력조차 어린 시절부터 깊이 각인된 공포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

‘살려… 줘. 제발. 누구라도 제발 도와줘.’

산소가 희박하니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서서히 눈이 감겼다.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삼촌…?’

문득 저 멀리 삼촌이 헤엄쳐 오는 게 보이는 듯했다.

‘삼촌, 도와줘요. 삼촌.’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삼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구원의 손길이 손을 맞잡아 주었다.

‘…삼촌?’

애써 눈꺼풀을 들어 올려 삼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을 맞잡아 준 사람은 삼촌이 아니었다.

삼촌이라 착각했던 사람은….

‘전하!’

카미유가 소리쳤다.

‘정신 차리십시오! 전하!’

‘형…?’

‘제가 모시겠습니다!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오토의 허리를 붙잡은 카미유가 수면 위를 향해 전속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푸하!”

수면 위로 떠오른 오토가 거친 숨을 토해내었다.

“빌어먹을! 정신 차리란 말입니다!”

카미유가 오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혀, 형!”

“한 번만 더 얼타면 군주고 뭐고 없습니다. 죽빵이라도 후려갈길 겁니다.”

“하아, 하아.”

“저 똑바로 보십시오.”

카미유가 오토의 얼굴을 붙들고 으르렁거렸다.

“물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빠져 보십시오. 제가 죽게 놔둘 거 같습니까?”

“쿨럭!”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건져 드릴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전하 뒤엔 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 같은 거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된단 말입니다.”

“…응.”

“극복하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하를 믿습니다. 전하도 스스로를 믿으십시오. 할 수 있다고.”

왜일까?

더는 물이 두렵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흐렸던 눈앞이 다시 또렷해졌다.

카미유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주변을 가득 메운 소음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깊게 각인되어 있던 공포가 서서히 묽어져 가고 있었다.

“헤엄… 칠 수 있을 것 같아.”

오토가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었다.

“좋습니다. 수영,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끌어 드리겠습니다.”

“해 볼게.”

그 순간.

퍼억!

크라켄의 공격에 의해 <폭군>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조각 하나가 오토의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꾸웩!”

오토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축 늘어졌다.

“…씨발.”

카미유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 * *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촉수가 잘린 크라켄은 계속해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쳐 댔다.

한편, 에이버리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잠시 패닉에 빠져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20미터짜리 대검을 휘두르며 크라켄의 촉수를 두 동강 내 버리는 놈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 기회다!”

에이버리는 망원경을 통해 <그놈>이 기절한 걸 보고 쾌재를 불렀다.

우습게도, 놈은 수영을 못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나뭇조각에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하기까지 했다.

첨벙첨벙!

기사가 기절한 놈을 붙들고 <붉은 여신>을 향해 수영을 해나가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놈만 처치하면 결국 이 해전은 나의 승리다!’

바다괴수 크라켄들이 작정하고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한다면 아무리 해적왕의 무적함대라 한들 속수무책일 터.

영리한 에이버리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거대한 황금색 대검을 휘둘러 크라켄의 촉수를 금발의 미청년.

지금은 기절해 있는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을 처치하는 게 관건이었다.

게다가, 그놈은 기절한 채 기사에 의해 구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습게도, 수영을 못하는 게 분명했다.

감히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바다에 발을 들여놓다니….

‘우주가 나를 돕는구나!’

이만한 호재는 두 번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놈을 죽여라! 놈부터 죽여야 한다!”

에이버리가 저 멀리 <검은 함대>를 홀로 상대하던 크라켄 한 마리에게 소리쳤다.

그 크라켄은, 에이버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검은 함대>를 놓아주었다.

문어는 해양생물 가운데서도 대단히 지능이 높은, 교활하기까지 한 생명체.

바다괴수인 크라켄 역시 대단히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에이버리의 명령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애초에 에이버리의 명령이 없었더라도, 크라켄들은 오토부터 작살낼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촉수를 자를 수 있는 인간부터 없애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촤라라라라락!

첨버엉!

크라켄이 <검은 함대>를 뒤로 하고 수면 아래로 풍덩! 잠수했다.

그런 뒤 <붉은 여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 * *

“크윽!”

카미유는 기절한 오토를 기어코 물 밖으로 건져 올려 <붉은 여신>의 갑판 위에 데려다 놓았다.

“전하! 정신 차리십시오! 전하!”

“…….”

“전하, 전하!”

카미유가 흔들어 깨워 보았음에도, 오토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겨우 물 공포증을 극복하나 싶었는데, 하필 나뭇조각에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을 줄이야….

‘호흡은 있다.’

확인해 보니 심정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기엔 상황이 너무나도 급박했다.

저 멀리 수면 아래로 크라켄의 실루엣이 보였다.

<붉은 여신>이 최대 속력을 내보았으나 크라켄과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갔다.

“샌님아!”

카이로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온다! 빌어먹을 문어 놈이 온단 말이다!”

제아무리 카이로스라 할지라도 크라켄을 맞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전성기 시절이라면 몰라도.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라켄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흐흐! 오냐!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느냐! 와라! 문어숙회를 만들어 주마!”

카이로스가 <원혼귀갑>을 개방했다.

<원혼귀갑>의 쩍 벌린 아가리에서 수천여 마리의 망령들이 튀어나와 크라켄을 마구 난도질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라켄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크라켄의 입장에서는, 망령들의 공격이 마치 불개미 떼가 달려드는 것만 같았던 모양.

그렇게 카이로스가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어쩐지 무겁더라니.”

카미유는 기절해 있는 오토가 <황금대검>을 꽉 움켜쥐고 있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 공포증이 있는 주제에 익사 직전에도 그 무거운 <황금대검>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꽉 붙들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죽으려고 작정했든지.

아니면 <황금대검>만이 지금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인 걸 알았기에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돈이 아까워서 못 놓은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아닐 것이다. 설마.’

카미유는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본능적으로 차용증을 내밀었던 게 생각나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인간이었다.

크라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반쯤 나사 빠진 생각을 하게끔 만들다니….

‘어쩔 수 없다.’

카미유가 오토의 손에 들린 <황금대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 상황에서 믿을 건 <황금대검>만이 유일했으므로….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때마침 크라켄이 망령들을 몰아내고 그 거대한 촉수를 휘둘러 <붉은 여신>을 후려치려 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카미유가 <황금대검>을 움켜쥐던 바로 그때.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검의 비[雨]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펑펑! 펑! 펑! 펑! 펑! 펑! 펑펑펑! 펑펑! 펑! 펑! 펑! 펑펑펑! 펑! 펑펑! 펑! 펑! 펑! 펑펑펑!

오러로 이루어진 빛의 검들이 마치 포탄처럼 크라켄을 두들겨 대었다.

휘청!

첨버어어엉!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던 크라켄이 뒤로 갸우뚱! 넘어가 바다에 처박혔다.

“……!”

놀란 카미유가 빛의 검들이 날아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수면 위를 마치 땅처럼 밟고 선 전쟁의 여신이.

‘엘리제 아가씨!’

카미유는 그녀의 정체가 오토의 약혼녀인 엘리제라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어째서.

북부 장벽 너머에 있어야 할 그녀가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아! 벌써 한 달이 지난 건가!’

그간 항해를 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다.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음을….

“감히.”

엘리제의 입에서 나지막한, 그러면서도 분노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엘리제의 목소리는 목청껏 소리친 것이 아니었음에도, 지금 이 바다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의 귓가에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전쟁의 여신의 분노가 언령[言霊]으로서 전해진 것이다.

“내 눈앞에서, 내 약혼자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 같나.”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

엘리제가 휘두른 검으로부터 칼날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바다를 반으로 갈랐다.

그 옛날.

어느 예언자가 신의 권능을 빌려 바다를 갈랐던 것처럼.

전력을 다한 엘리제의 무력은, 전설을 넘어 신화와도 같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칼날 폭풍에 휩쓸린 크라켄이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 수백여 미터를 밀려나더니, 그대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크라켄을 일 검에 반으로 갈라 죽여 버릴 줄이야….

‘이게… 인간의 무력이 맞나?’

카미유가 경악하는 사이.

“약혼자, 괜찮은가.”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일까?

어느새 오토의 곁에 나타난 엘리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엘리제의 목소리가 돌연 심각해졌다.

그 짧은 순간 심정지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생명체에게 있어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부욱!

엘리제가 다급히 오토의 상의를 찢었다.

스윽.

뒤이어 엘리제가 오토의 고개를 젖혀 기도를 확보하고, 가슴 정중앙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서른.

그리고….

슥.

엘리제가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오토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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