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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44화 (145/401)

144화

크라켄을 처치한 직후.

[알림: <ㅋ라 ᅟᅦᆫ>을 ㅓ치하셨 ᅟᅳᆸㄴ다!]

[알림: <ㅋ라 ᅟᅦᆫ>을 ㅓ치하셨 ᅟᅳᆸㄴ다!]

반쯤 지워진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201레벨 달성!]

[알림: 202레벨 달성!]

(중략)

[알림: 230레벨 달성!]

뒤이어 떠오른 경험치, 레벨업 관련 알림창은 비록 지워져 있지는 않았지만 매우 희미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 할 정도였다.

‘어쩌면 몇 개월 뒤에는 완전히 사라질지도. 도대체 왜 이러는지….’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제의 검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푸슥!

푸스슥!

그와 동시에 이번 전투에서 맹활약했던 <황금대검>이 당장에라도 가루가 될 듯 바스러지려 했다.

황금빛 찬란하던 검신은 어느새 빛바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기까지 했다.

크라켄들과의 전투에서 최대 출력을 개방한 덕분에 완전히 방전되어 버린 것이다.

‘어휴. 다시 쓰려면 얼마나 처먹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오토는 <황금대검>의 유지비에 몸서리쳤다.

다행히 파괴된 건 아니었지만, 다시 전투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히 천문학적인 양의 금을 ‘또’ 먹여야 할 터.

사실상 오토와 <황금대검>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극히 실용주의적이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오토의 성향상 <황금대검> 같이 가성비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무기는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고생했다.”

엘리제가 오토를 반겨 주었다.

“몸은 괜찮은가.”

“멀쩡합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비위가 좀 상하긴 했지만 <드래곤 스캇 젤리>는 효과만큼은 만점이었다.

지난번 카미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족히 몇 개월은 치료받아야 할 중상을 눈 깜짝할 사이에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괜찮으시겠어요?”

“뭘 말인가.”

“엘리제 님은….”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는,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와 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신하들까지 모두 구하신 겁니다.”

“뭐, 뭘 이런 걸 가지고 고맙다고 그러는 건가.”

엘리제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슥 돌렸다.

“그저 모두가 위험해 보이기에 한손 거든 것뿐이다.”

“아뇨. 선뜻 나서기 어려우셨다는 거, 압니다. 정말로 감사드려요, 엘리제 님.”

엘리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토가 그런 엘리제를 올려다보며 희게 웃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말 고마워. 그리고 고생했어. 형 아니었으면 물귀신이 되었을 거야.”

“기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겸양은.”

오토가 늘 한결같은 카미유의 모습에 피식 코웃음을 쳤다.

“뺀질이. 이번에는 한 건 했구나.”

카이로스가 다가와 오토를 칭찬해 주었다.

그런 카이로스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어서 마치 중병에 걸린 환자 같았다.

<원혼귀갑>을 한계 이상으로 개방하느라 부담이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뿜어져 나오는 귀기[鬼氣]를 버티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자자.”

오토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완전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남은 잔당들을 모조리 소탕하라!”

“예! 전하!”

명령을 내린 오토가 슥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에이버리의 해적선 <뱀의 혀>를 바라보았다.

‘40년? 오래도 해 먹었네. 근데 어쩌나. 오늘이 네놈 마지막이 될 텐데.’

뒤이어 <붉은 여신>이 에이버리의 <뱀의 혀>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마,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꿈! 꿈인 게야!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에이버리는 세 마리의 크라켄이 모조리 두 동강이 난 것을 보고 반쯤 미쳐 버리고 말았다.

크라켄 세 마리라면 해적영주의 세력 세 개를 합한 것보다 더 강력한 전력.

상황에 따라서는 모든 해적영주들을 쳐부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전략무기를 한꺼번에 잃었으니, 에이버리의 정신이 나가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두둥.

기함 <폭군>을 선두로 <검은 함대>가 <뱀의 혀>를 둘러쌌다.

완벽한 포위.

만약 <검은 함대>가 일제사격이라고 가한다면, 에이버리의 해적단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가 될 게 분명했다.

“하, 항복!”

“살려주십시오! 제발!”

“쏘지 마라! 항복하겠다!”

에이버리의 부하들은 감히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항해사는 선장인 에이버리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백기를 내걸어 버리는, 선상 반란으로 볼 소지가 다분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했다.

이미 전투는 패했고, 대세는 되돌릴 수 없이 기울어져 버린 상황.

게다가 <검은 함대>는 해적왕 바르도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해적들이 항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200년 동안 공석이었던 해적왕의 자리.

하지만 이젠 새로운 해적왕이 나타났으니, 마땅히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덕분에 오토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뱀의 혀>를 장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선실 내부까지 샅샅이 뒤져서 숨어 있는 적들을 모조리 끌어내고, 붉은 여신으로 압송하세요.”

“예, 전하!”

“아, 화물칸에 실린 재물도 남김없이 옮겨 실으시고요.”

오토의 명령에 마검사들과 이오타 왕국군 병사들이 <뱀의 혀>를 수색했다.

“…….”

에이버리는 부하들이 끌려가고 화물칸이 털리는 와중에도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던 중.

“흐흐… 흐흐흐흐… 으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혼자가 된 에이버리가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미친 듯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앵무새 존슨이 그런 에이버리를 따라 웃었다.

그 결과.

“꽤에에에엑!”

에이버리가 존슨의 목을 조르더니, 머리부터 입 안에 넣고 씹어 먹기 시작했다.

으적으적!

커다란 앵무새를, 그것도 지난 50년 동안이나 애지중지 키워 오던 반려조를 산 채로 씹어 먹는 모습이란 가히 충격적.

그만큼 에이버리는 미쳐 있었다.

광기에 완전히 지배당해 버린 것이다.

“노친네가 추하네.”

오토가 냉랭한 목소리로 에이버리를 평가했다.

확실히, 에이버리는 추했다.

명색이 해적영주임에도….

“드레이크.”

“예.”

오토의 부름에 대답하는 드레이크의 대답은 어느새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가.”

오토가 턱 끝으로 에이버리를 가리켰다.

“가서, 가족들의 원수를 갚아. 이제 네 차례야.”

“감사합니다.”

드레이크는 오토가 기회를 주자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는, 에이버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괜찮겠습니까?”

살짝 걱정이 되는지,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에이버리가 최약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해적영주는 해적영주.

게다가 반쯤 미쳐 있으니, 상대하기에 더욱 위험한 상태.

이제 갓 여정을 시작한 드레이크에게는 버거운 상대할 수 있었다.

“충분해.”

오토는 드레이크를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보란 듯 멋지게 해낼 거야.”

“그렇습니까?”

“설사 팔 한 짝이 날아간다 한들 어쩔 수 없어. 이건 드레이크의 싸움이야. 우리가 끼어드는 건 드레이크도 원하지 않을 거고.”

“예, 전하.”

오토는 드레이크를 믿었다.

자신의 신하가 되어 해군을 책임져 줄 남자가 해적영주 에이어리를 처단하고, 부모님의 원수를 갚으리라는 것을….

* * *

“에이버리.”

드레이크가 발걸음도 당당하게 에이버리의 앞에 섰다.

“원수를 갚으러 왔다.”

갈색, 파란색, 초록색이 뒤섞인 드레이크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불탔다.

“흐흐… 흐흐흐흐…!”

에이버리가 씹던 앵무새를 홱! 내던져 버리고는, 소매로 피와 깃털이 묻은 입가를 슥 닦았다.

“드레이크라고 했느냐? 흐흐흐! 한눈에 봐도 알겠구나! 흐으! 네놈의 윌리엄 그놈의 자식이라는 것을! 흐흐흐흐!”

에이버리가 한 손에는 해적검을,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이젠 하다하다… 네놈 같은 애송이 따위가… 흐으… 감히 이 해적영주인 이 에이버리에게… 이 바다뱀 에이버리를 능멸하는 것이냐!”

타앙!

탕! 탕! 탕!

에이버리가 발작하듯 방아쇠를 당겼다.

간신히 몸을 굴려 총알을 피한 드레이크가 오히려 에이버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채앵!

드레이크의 검과 에이버리의 검이 맞부딪쳤다.

퍼엉!

드레이크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

퍽!

에이버리가 드레이크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레이크가 몸을 데구르르 굴려 머리에 구멍이 날 뻔한 위기를 넘겼다.

기묘한 싸움이었지만,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해적들의 싸움일지도 몰랐다.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한 손에는 해적검을.

가까운 거리에서 뒤엉킨 드레이크와 에이버리의 결투는,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끔 할 정도로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쳤다.

그러던 중.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뱀의 혀>의 갑판에 시뻘건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시뻘겋게 달아오른 에이버리의 해적검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올랐다.

“네놈 애비 곁으로 보내 주마아아앗!”

에이버리가 활활 타오르는 해적검을 휘둘러 드레이크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화르르르르르르르!

시뻘건 불길 역시 마치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드레이크를 위협하며, 그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었다.

불타는 갑판 위.

“크윽!”

드레이크는 에이버리의 공격에 점차점차 궁지에 몰렸다.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에이버리가 맛이 간 눈을 빛내며 광소를 터뜨렸다.

촤라락!

불타는 해적검이 드레이크의 가슴을 베었다.

“으으으윽!”

드레이크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검상을 입은 가슴에서는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불타는 에이버리의 해적검이 상처를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흐흐흐! 내 지옥으로 가기 전 네놈부터 보낼 것이니, 아비와 함께 기다리도록 하여라. 흐흐!”

에이버리가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드레이크를 비웃을 때.

스으으!

드레이크의 해적검이 시퍼런 오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건…!’

드레이크는 문득 어떠한 검술이 자신의 뇌리에 스며듦을 느꼈다.

‘해적왕 바르도의 검술…?’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웅!

해적검으로부터 강력한 에너지가 흘러들어오기까지 했다.

검은 <검은 함대>를 지휘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해적왕 바르도의 힘이 깃들어 있는 일종의 신물이었던 것이다.

“흐흐흐흐흐! 뒈져라! 윌리엄의 자식아!”

에이버리가 불타는 해적검을 휘둘렀다.

채앵!

드레이크가 바르도의 해적검을 들어 에이버리의 검을 쳐냈다.

“……!”

순간 엄청난 충격이 전해져 오자 에이버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야.”

드레이크가 바르도의 검을 휘둘러 200년 전 해적왕의 검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바르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가 갑판을 불태우던 불길을 몰아내었다.

챙! 채앵!

전세는 역전되었고, 접전은 계속되었다.

바르도의 힘을 손에 넣은 드레이크는, 에이버리를 압도했다.

“말도 안 돼! 왜! 도대체 왜! 크아아악! 왜에에에에에에에!”

에이버리의 입에서 악에 받친 절규가 터져 나왔다.

평생에 걸쳐 갈망하던 강한 힘.

그 힘이.

해적왕 바르도의 힘이.

한낱 애송이의 손에 있었다.

에이버리로서는 통탄할 노릇이었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네놈을 도륙내고 바르도의 힘을….”

그 순간.

푸욱!

드레이크의 검이 에이버리의 가슴 정중앙을 관통했다.

“커헉!”

피를 왈칵 토해내는 에이버리.

툭.

손에 쥔 권총이 갑판 위로 떨어졌다.

“애, 애송이… 따위가… 이 에이버리리가… 윌리엄의 자식새끼에게….”

철컥.

드레이크가 <피의 복수>의 총구로 에이버리의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네놈은 죽어서도 사죄하지 못하겠지. 네놈이 갈 곳은 지옥뿐일 테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족들의 복수다.”

퍼엉!

<피의 복수>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털썩!

머리 없는 늙은 몸뚱이가 갑판 위를 나뒹굴었다.

드레이크는 죽은 에이버리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신 발걸음을 돌려, 오토에게로 향했다.

척!

드레이크가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신(臣) 프랜시스 드레이크, 이오타 왕국의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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