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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46화 (147/401)

146화

모든 100인의 군주들은 캐릭터성에 맞는 성물 아이템이 존재한다.

오토가 가장 처음으로 만났던 언데드 군주 나즈락의 경우 불사[不死]의 원천인 <영생의 초상화>가 성물이고.

아무칸은 시나리오상 획득 가능한 <화합의 성서>가 고유의 성물.

헬무트의 벽돌.

토그릴의 토템.

드레이크의 해적선 <붉은 여신>도 고유의 성물이었다.

에이버리 또한 100인의 군주였으므로, 당연히 성물이 존재했다.

드레이크와 마찬가지로, 에이버리의 해적선 <뱀의 혀>도 성물이었다.

능력은 <꼬르륵 군도> 근처의 커다란 암초들을 일종의 워프 게이트처럼 활용하는 것.

괜히 에이버리가 <꼬르륵 군도>의 지배자로서 모든 해적들 중 가장 신출귀몰 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꼬르륵 군도> 주변 해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능력이라, 에이버리가 방구석 여포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점이 존재했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진정한 쓰레기 캐릭터가 맞았다.

하다못해 카심이 주워 온 펭이 녀석조차 고유의 성물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오토는…….

“하아.”

오토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각성의 부지깽이>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니크 아이템에 불과한 <각성의 부지깽이>는…….

“이게 피를 흘리지 않을 방법이었던 겁니까?”

놀란 드레이크가 오토에게 물었다.

“어? 어.”

잠깐 딴생각에 잠겼던 오토는, 드레이크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굳이 방어선을 뚫을 이유가 없잖아? 피를 안 흘릴 순 없겠지만 적게 흘릴 순 있으니까.”

“아아.”

“봐. 아무도 우릴 공격하지 않잖아.”

<꼬르륵 군도> 중심부까지 들어왔음에도 오토의 함대를 공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꼬르륵 군도> 밖에서부터 밀고 들어왔다면 제아무리 <뱀의 혀>를 앞세웠다고 한들 검문검색을 피할 수 없었을 터.

그러나 이미 중심부까지 들어온 이상 검문검색 같은 건 받지 않아도 되었다.

“에, 에이버리 선장이 검은 함대를?”

“맙소사! 해적왕의 함대를 정말 얻었단 말인가!”

해적들은 에이버리의 해적선 <뱀의 혀>가 전설의 무적함대를 이끌고 복귀한 걸 보고 그저 놀랐을 뿐이었다.

에이버리가 정말로 해적왕 바르도의 함대를 얻었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렇게 해적들이 혼란에 빠진 지금이 오토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해군 제독 드레이크.”

오토의 근엄한 목소리로 드레이크에게 명령했다.

“예, 여기 있습니다.”

드레이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오토의 명령을 받들 준비를 했다.

“이오타 왕국의 국왕으로서 명한다. 군도 중심부를 점령하라.”

“예, 전하.”

드레이크는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검은 함대>를 산개시켰다.

그리고….

펑펑! 펑! 펑펑펑! 펑! 펑펑! 펑펑! 펑펑펑! 펑펑! 펑펑! 펑!

<검은 함대>가 일제히 함포를 발사해 일종의 해군기지인 중심부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 * *

“으악! 으아아악!”

“이런 빌어먹을!”

“적이다! 적의 공격이다!”

무려 본진 한복판에서 기습을 당한 해적들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진 포탄 세례를 얻어맞았으니, 해적들로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죽거나 도망치는 것뿐….

펑펑! 펑!

몇몇 발 빠른 해적들이 해적선을 기동해 대응사격에 나섰지만, 그건 오히려 악수에 가까웠다.

왜?

<검은 함대>는 최우선 타격 목표는 저항하는 해적선들이었으니까.

펑펑펑!

콰앙!

“으아아아아아아악!”

“커헉!”

대응사격에 나섰던 해적들은 예외 없이 <검은 함대>의 포탄 세례를 받고 가장 먼저 침몰하는 영광을 누렸다.

가만히 있던 해적선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단 한 발의 포탄조차 맞지 않았으니, 그들의 발 빠른 대응이 되레 화를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포격이 멈추고.

“이 자식들아! 오래간만에 한바탕 놀아 보자!”

“오오오오오오오오!”

카이로스는 자신의 부하들인 영혼기사들을 데리고 <붉은 여신>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번개처럼 상륙해 덤벼드는 해적들을 닥치는 대로 소탕하기 시작했다.

“이오타 왕국군은 나를 따라라!”

“예!”

카미유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마검사들과 이오타 왕국군 병사들을 데리고 상륙해 적 해군기지 장악에 나섰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항복하는 자들은 살려 두되, 반항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마라!”

오토는 <야만용사의 함성>을 내질러 아군에게 버프를 걸어주고, 해적들에게는 디버프를 걸어 후방지원을 톡톡히 했다.

기습을 당한 해적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고,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카미유와 카이로스가 각자의 병력을 이끌고 상륙하자 승패가 완전히 기울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오토가 기함 <폭군>에서 내려 뭍에 상륙했을 때.

처억!

카미유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오토를 맞이했다.

“전하,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그러자 좌우로 도열해 있던 마검사들과 이오타 왕국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어느새 일군을 호령하는 군주로 거듭난 오토가 좌우를 살피며 명령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우선 부상자들부터 수습하면서, 재정비부터 하십시오. 적들의 잔당들을 완벽히 소탕하고, 이곳을 완벽히 장악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예! 전하!”

그렇게 오토는 <꼬르륵 군도> 장악에 성공함으로써 사실상 대륙 서남부 바다를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단순히 해상무역으로 시작했던 여정이 바다의 패권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 *

한편, 아르곤 대제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무덤을 도굴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범인을 찾기는커녕, 사건은 오리무중이었다.

꼭꼭 숨어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팔아치우고 손을 턴 것인지.

가진 정보력을 총동원해 보았지만, 놈들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입막음을 위해 쓴 돈이 도대체 얼마인가.’

구출된 노동자들이 각자의 조국에 신고하면서, 아라드 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기사단들이 범인을 찾아 수사를 시작한 상황.

때문에, 아르곤 대제는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뿌려야만 했다.

‘적자다. 이대로라면 돌아올 결재일에 대금을 지불하지 못한다.’

얼마 전.

아르곤 대제는 대규모 사재기를 진행했다.

특정 품목들을 대량으로 매입해 놓고, 그 대금을 무덤에 있던 보물들로 치르겠단 의도였다.

계획은 좋았다.

만약 일이 성사됐으면 최소 10배 이상의 이문을 남겼을 테니까.

하지만 보물들을 도굴당한 덕분에, 사재기했던 품목들의 대금을 치를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금계획이 꼬여 버린 터라 역풍을 아주 제대로 맞게 된 것이다.

‘몇 가지 물품을 환불하더라도 대금이 부족하다. 상단의 재산을 급매로 내놓는다면 어찌어찌 막을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상단의 신용도가 크게 훼손될 터. 뭔가 방법을….’

그때.

“폐하.”

상단의 핵심 간부 중 하나인 젊은 상인 <글렌>이 입을 열었다.

이제 갓 20살에 불과한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장사수완을 발휘했던 천재 장사꾼이었다.

“근심이 깊어 보이시옵니다.”

“음.”

“감히 폐하의 의중을 짐작할 수는 없사오나, 소인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글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심계가 깊고, 또한 교활하기까지 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살인도 서슴없이 지시할 만큼 과감해서, 아르곤 대제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는 인재이기도 했다.

“물론이다, 글렌.”

“현재 우리 상단은 자금의 흐름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옵고, 이를 타개하기가 쉽지 않사옵니다.”

“바로 보았다.”

“소인도 여러 방면으로 해결책을 고민해 보았사오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사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소인이 칼리프 왕국의 상인을 하나 알고 있사온데, 주로 취급하는 품목이 마정석이옵니다.”

“설마… 밀무역을 하자는 것인가?”

아르곤 대제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그날 밤.

전[前] 해적영주 에이버리와 비열한 배신자 모드레드의 시신이 부둣가에 보란 듯 내걸렸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자 선언이었으며, 또한 드레이크에게는 짧은 복수행의 종착지를 의미했다.

“원수, 갚았어.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막내. 다들, 부디 편히 잠들길.”

드레이크는 럼주를 바다에 뿌리며, 죽은 가족들을 추모했다.

그 럼주는 에이버리에 의해 바다에 버려졌던 가족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위로주[酒].

“이젠 정말 훌훌 털어낼 수 있겠어.”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오토가 드레이크에게 물었다.

“예, 전하.”

“좋네.”

오토가 드레이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복수도 했겠다, 어린 시절의 꿈도 이뤘겠다. 이젠 좀 내려놔도 되겠지.”

“어린 시절의 꿈… 말입니까?”

“해군이 되고 싶어 했잖아.”

“그걸 어떻게…?”

드레이크의 꿈은 해군 장교가 되는 거였다.

어린 시절.

‘아빠! 왜 숨어?’

‘쉿! 조용히 해! 아빠 잡혀 간다!’

‘으응?’

‘해군들은 아빠가 나쁜 사람인 줄 알거든. 그래서 조심해야 해.’

‘싸우면 아빠가 져?’

‘그럼. 해군들은 아주 강하단다. 하하하.’

‘그럼 나도 해군 할래! 해군!’

드레이크는 아버지가 해군들이 지나갈 때마다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걸 보고, 해군이 되기로 결심했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멋진 정복을 차려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 해군 장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조만간 멋진 정복도 한 벌 맞춰 주고, 임관식도 열어 줄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오토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자 드레이크는 문득 궁금해졌다.

“전하.”

“응?”

“하오면 전하의 꿈은….”

“이야! 날씨 좋다! 시원하네!”

오토가 딴청을 피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푹 쉬고! 내일 봐~!”

오토가 어깨에 걸친 코트자락이 부는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카미유가 그런 오토의 뒤를 말없이 뒤따랐다.

* * *

“먼저 들어가. 바람 좀 쐴게.”

오토는 좀 걷다가 카미유를 돌아보고 말했다.

“잠깐만 혼자 있고 싶어.”

“근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고집은.”

오토는 카미유를 향해 눈을 한 번 흘기고는, 부둣가에 걸터앉았다.

“…꿈은 무슨.”

오토의 씁쓸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꿈?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이 세계에 빙의한 후에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오직 생존을 위해.

그저 닥쳐올 세계대전을 부지런히 대비할 뿐….

‘내가 아는 정보가 양날의 검이 되고 있어. 이건 위험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세계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이점이었다.

그리고 그건 오토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장 큰 무기가 독이 되기도 했다.

‘난 에이버리가 소환할 수 있는 크라켄은 한 마리라고 예상했어. 그래서 싸움을 걸었고, 거기에 맞춘 전략을 짜고 전술을 구사했다. 근데 에이버리가 소환한 크라켄은 세 마리. 그래서 역습을 당했고, 위기에 처했어. 만약 엘리제 님이 나타나 주지 않았다면….’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내 약점은… 변수에 취약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성역에서 무적검술을 배울 때도 그랬고.

하브르 초원에서 토그릴을 상대할 때도 그랬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허를 찔렸고, 위기를 맞았다.

‘애초에 몰랐다면. 가진 정보가 없었다면. 더 신중하게 접근했겠지. 아니면 아예 피해 가거나. 근데 그게 아니니까, 자신감 있게 덤벼들게 되는 거야. 무모하게.’

오토는 어설프게 아느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계속 변수가 생기고 있고, 나비효과는 커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진 정보는 위험해져. 신뢰성이 점점 더 떨어질….’

그때.

“앉아도 되겠나.”

엘리제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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