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며칠 전.
“카심.”
“예, 여기 있습니다.”
오토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카심을 불러냈고, 어명을 내렸다.
‘안쓰러우니까 떠먹여 줘야겠다.’
오토는 그간 카심이 고생한 게 못내 안쓰러워서, 이번 기회에 공을 세울 기회를 주기로 했다.
<꼬르륵 군도>를 청소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겨서, 카심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다.
“공군참모총장 카심에게 명한다. 나 이오타 왕국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현 시간부로 그대를 점령군 헌병대장에 임명하며, 공군참모총장과의 겸직을 명한다.”
“……!”
“헌병대장으로서 혹시나 모를 반란에 대비해 정보를 수집하고, 치안 유지에 힘쓰라. 또한.”
오토가 덧붙였다.
“흉악범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라. 그들의 재산은 흉악범죄를 저질러서 일군 것. 그러니 동전 한 닢조차 사라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순간.
‘돈 벌어오란 얘기군.’
카미유는 오토가 내린 명령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다.
오토는 해적들의 재산을 빼앗는 데 진심이었다.
그 증거로 오토는 카심에게 무려 어검[御劍]을 하사하기까지 했다.
“공군참모총장 카심은 어검을 받들라.”
“예, 전하.”
“그대에게 어검을 맡기니, 임무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오토가 빛바랜 <황금대검>을 카심에게 건네주었다.
힘을 다 잃어 무슨 시멘트로 만든 막대기 같았지만, 어쨌거나 국왕인 오토가 내려주는 검이니만큼 어검은 어검이었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카심은 오토가 어검까지 내려주자 감격해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어검을 내려준다는 것은, 국왕의 전권을 위임한다는 뜻.
그만큼 카심을 신뢰하기에, 막중한 책임을 맡긴단 의미가 아니겠는가?
“신(臣) 카심! 분골쇄신하여 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귁! 귀귀귁!”
펭이도 덩달아 오토에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넌 왜 경례해?
펭족 왕자잖아, 너.
“자, 펭이 너도 어검.”
오토는 문득 카심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펭이가 귀여워서, 화분에 심어져 있던 대파를 쑥 뽑아 건넸다.
“귁! 귁귁! 고맙다! 귁!”
펭이는 오토가 어검―비록 대파였지만―을 내려주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자, 그럼 가서 일들 보세요.”
“예! 전하!”
“귁! 귀귁귀윅!”
카심과 펭이는 그 길로 사령부를 뛰쳐나가 <꼬르륵 군도> 내의 흉악범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들의 재산을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빠짐없이 몰수해 버렸다.
오토가 준 임무를 아주 완벽하게 수행해낸 것이다.
“국왕 전하의 명이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돈이 될 만한 물건에는 빠짐없이 빨간 딱지를 붙여라!”
“귁! 귀귁!”
“예!”
그렇게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해나가던 중.
“수상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카심은 비열한 배신자 모드레드의 저택을 몰수하다가 수상쩍은 자를 체포하게 되었다.
심문 결과는 놀라웠다.
‘맙소사! 오버하우저 상단이 칼리프 왕국과의 밀무역을 시도하다니! 전하께서 아주 좋아하시겠군!’
카심은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즉시 사령부로 달려가 오토에게 보고했다.
카심의 예상대로, 오토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왜?
아르곤 대제를 엿 먹일 건수를 아주 제대로 잡은 셈이었으니까.
* * *
건수를 잡은 오토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미소가 가득했다.
“밀무역이라.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네.”
“오버하우저 상단이 밀무역을 시도한답니까?”
“응.”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드레드를 통해서 에이버리랑 짝짝꿍 해 보려고 했다는데?”
“오버하우저 상단의 사정이 그리 어렵습니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카미유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오버하우저 상단이 탄탄한 자금력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전 대륙을 무대로 활동하는 초거대 상단이니만큼, 굳이 밀무역에까지 손을 댈 필요가 있겠나 싶었던 것이다.
“사재기라도 했나 보지.”
“예?”
“만약 무덤을 제때 발굴해서 보물을 챙겼다면? 미리 몇 가지 품목들을 정해서 무리해서라도 사재기를 해 놓고, 보물을 처분해서 그 대금을 갚으려 했겠지. 그렇게만 됐다면, 아르곤 대제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부자가 됐을 거야.”
오토는 아르곤 대제가 어떠한 상황에 처했고, 무슨 이유로 밀무역이라는 범죄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근데 우리한테 보물을 강탈당했잖아?”
“밀린 대금을 갚기 어려워졌다는 겁니까?”
“정답.”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자금 흐름이 꼬여 버리니 제아무리 오버하우저 상단이라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공교롭게 됐습니다.”
“인정.”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비열한 배신자 모드레드가 오버하우저 상단과 인맥이 있었다니….
“카심.”
“예, 여기 있습니다.”
“1계급 특진입니다.”
“예에?”
카심의 눈이 크게 떠졌다.
“1계급 특진이라면….”
“이제부터 계급장에 별을 두 개 달아도 된다는 뜻이죠. 이제 카심 준장이 아니라, 카심 소장이 되는 겁니다.”
“헉!”
“정말 중요한 정보를 물어오셨어요. 국익에 큰 도움이 될 정보입니다. 그간 이래저래 고생하신 것도 있고, 이번에 큰 공을 세우셨으니까 당연히 진급시켜 드려야죠.”
“추, 충성!!!”
카심이 마치 번개에라도 맞은 것처럼 경례를 올려붙였다.
‘크흑! 전하께 인정받다니!’
카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간 수 차례 낙오되어 제대로 된 공을 세울 기회도 없었던 카심.
하지만 국익에 큰 도움이 될 정보를 습득한 덕분에 오토에게 공을 인정받았고, 1계급 특진까지 하게 되었다.
카심으로서는 그저 감개무량할 수밖에.
“소장! 카! 심!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카심이 오토에게 넙죽 엎드려 절했다.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울긴 왜 울어요.”
“크흑!”
“괜찮아요, 괜찮아. 어휴. 그간 어지간히 힘드셨나 보네.”
오토는 카심을 잘 달래 주었다.
그간 카심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를 잘 알기에….
“그럼 이번 작전도 카심이 주도하는 걸로 하죠.”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럼요.”
오토가 안 될 것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미 카심은 단순히 마검사라 불릴 수만은 없는 존재.
그간 고난과 역경을 겪은 덕분에 알게 모르게 강해진 상태에다가, 레이저를 발사하는 정육면체 덕분에 화력도 어마어마했다.
이제는 어엿한 이오타 왕국의 기둥 중 하나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카심, 제가 이번 작전을 맡겨도 될까요?”
“예!!!”
“아이고, 귀청이야.”
오토가 화들짝 놀랐다.
카심의 대답이 얼마나 우렁찼던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삐이이이이이이-
순간적으로 이명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좋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카심에게 명령했다.
“나 이오타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명한다. 공군참모총장 카심.”
“예, 여기 있습니다.”
“해군참모총장 드레이크와 함께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선 나포 작전을 지휘하라. 실시.”
“실시이이이이이이이!!!”
신이 난 카심은 사령부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복명복창하더니 우당탕! 하고 뛰쳐나갔다.
“귁! 귁귁!”
펭이가 그런 카심의 뒤를 쫄래쫄래 뒤쫓았다.
‘전하께 칭찬받고 싶다! 칭찬받고 싶어! 이번 임무도 빈틈없이 완벽하게 수행해서 전하의 칭찬을 받아야지!’
내달리는 카심의 머릿속엔 오직 오토에게 칭찬받을 생각밖에 없었다.
칭찬은 카심도 춤추게 했다.
* * *
정보를 입수한 오토는 즉시 오버하우저 상단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거래가 이루어지게끔 유도했다.
오버하우저 상단은 기다렸다는 듯 거래에 응해 왔고, 접선 날짜가 잡혔다.
아직 해적영주 에이버리의 죽음이 <꼬르륵 군도>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았기에, 오버하우저 상단은 오토가 흘린 정보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전 함대. 출항한다.”
“출항하라!”
오토는 <검은 함대>를 이끌고 출항에 나섰다.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선들을 나포하기 위해 출동한 것이다.
굳이 <검은 함대>까지 끌고 나온 이유는, 혹시나 모를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는 매사에 더 철저해야 돼.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오토는 지난번 에이버리와의 전투에서 큰 교훈을 얻었기에, 한층 더 신중해져 있었던 것이다.
슈우우우우우우!
<붉은 여신>과 함께한 덕분에 <검은 함대>의 항해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거대한 군함들이 마치 쾌속정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항해하는 광경이란, 가히 장관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스으으으!
함대는 때론 <뱀의 혀>를 앞세워 암초에 워프 게이트를 생성했고, 그 덕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작전지역까지 이동했다.
이제 <꼬르륵 군도> 주변 해역에서 이오타 왕국의 해군을 대적할 세력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는 나머지 네 명의 해적영주들이 연합한다 해도 감히 <꼬르륵 군도>를 넘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세계 각국의 해군들 역시도 공중지원 없이 순수 해군력만으로는 <꼬르륵 군도>를 언감생심 넘볼 수 없을 터였다.
‘대륙 서남부 해역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네. 하하하.’
기함 <폭군>의 뱃머리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오토는, 문득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었다.
그저 해상무역과 그를 위한 무역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나섰던 여정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해 버릴 줄이야….
이건 오토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도치 않았던 결과.
‘길 가다 지갑 주운 꼴이네.’
물론 지갑을 주웠으면 인근 파출소에 가져다주는 게 참된 시민의 도리일 테지만….
“전하, 전방에 에고 상단의 무역선들입니다.”
“뭐?”
오토는 드레이크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웬 에고 상단?”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기요.”
오토가 칼드웰을 돌아보았다.
“혹시 이 근처로 우리 무역선들이 지나가게 되어 있었나요? 전 따로 보고받은 게 없는데?”
“제가 알기론 없었습니다.”
에고 상단의 핵심 간부인 칼드웰이 고개를 저었다.
“이 근처 해역은 해적영주 에이버리 때문에 많은 무역선들이 기피하는 항로입니다. 에고 님이 이곳으로 무역선들을 보낼 리 없습니다.”
“역시 그렇죠?”
오토가 냉소를 지었다.
“이것들이 아주 미쳐 가지고. 이젠 우리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하네?”
오토가 생각하기에, 저 멀리 에고 상단의 무역선들은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선들인 게 분명했다.
에고가 미치지 않고서야 상단 무역선들의 이동 경로를 비밀로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 오버하우저 상단은 밀무역선들이 발각되면, 에고 상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했으리라….
“전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드레이크가 오토에게 말했다.
“포위해.”
“예, 전하.”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함대가 일제히 기동하며, 산개하기 시작했다.
<붉은 여신>의 효과를 받은 함대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오버하우저 상단의 무역선들을 포위해버렸다.
“카심!”
오토가 마검사들과 함께 <붉은 여신>에 타고 있는 카심을 향해 소리쳤다.
“모든 선박을 장악하라!”
“예! 전하!”
카심은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붉은 여신>을 타고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선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런 뒤 마검사들을 지휘해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선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나포해 버렸다.
‘상당한데?’
오토는 저 멀리 카심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
‘언제 저렇게 컸대?’
카심의 전투력은 가히 발군이었다.
최근 알게 모르게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막상 활약하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던 것이다.
‘저러다 영웅으로 각성하는 거 아냐?’
바로 그때.
스으으!
밀무역선의 대장선 갑판 위에서 전투를 벌이던 카심이 상서로운 서광에 휩싸였다.
그 서광은 오직 오토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
그 의미는…….
“야 이! 그렇게 뜬금없이 각성하지 마!!!”
오토의 입에서 황당함 섞인 절규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