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칼리프 왕국으로 가는 길은 매우 편안했다.
난파선이나 다름없던 배들을 커다랗고 튼튼한 범선들로 교체한 상태라 침몰할 염려가 없었다.
거기에 세계 최고의 쾌속선 붉은 여신과 해적왕 바르도의 검은 함대의 군함 다섯 척까지 더해졌다.
꼬르륵 군도에 머물며 신선한 과일, 육류, 럼주 등 보급도 넉넉하게 챙겼다.
덕분에 항해는 여정을 시작했던 초기보다 몇 배는 빠르고, 쾌적했다.
그리고 오토는…….
“예, 잘하고 계십니다. 발을 계속 움직이십시오.”
“어푸! 어푸!”
“좋습니다. 천천히 앞으로 가 보겠습니다.”
카미유가 허우적거리는 오토의 손을 잡고, 천천히 끌어주었다.
오토는 항해하는 동안 카미유에게 수영 교습을 받았다.
지난번 <해골섬 해전> 당시 카미유가 구해 줬던 것을 계기로, 오토는 서서히 물 공포증을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물에 백 번을 빠지든 천 번을 빠지든 구해 주겠단 카미유의 말은 오토의 마음을 크게 안정시켜 주었다.
언제든 구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박히자 더는 물이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칼리프 왕국까지 가는 동안 천천히 물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 오토는, 마침내 물 공포증을 완벽하게 극복해내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수영 실력도 엄청나게 늘었다.
“오? 뺀질이 놈이 이젠 제법 물장구를 치는구먼?”
늘 그렇듯 뱃머리 위에서 럼주를 퍼마시던 카이로스는, 오토가 수영하는 걸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첨벙첨벙!
촤아아!
저 멀리 오토가 물살을 가르며 마치 날치처럼 튀어 오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운 지 불과 2주일 사이에 접영까지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 것이다.
“한 마리의 돌고래가 따로 없구먼. 끌끌끌.”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카미유가 오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물에 대한 공포증이 심해서 그렇지, 수영은 딱히 가르칠 것도 없었습니다.”
“음?”
“한두 번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알아서 잘하십니다.”
“끌끌끌. 천재는 천재라는 것인가. 하긴. 검술도 빠르게 깨달아가는 녀석이니 몸 쓰는 것이라면 뭔들 못하겠느냐.”
“동의합니다.”
그때.
“으아아아아아아악!”
수영을 즐기던 오토가 돌연 비명을 내질렀다.
“전하?”
“음?”
카미유와 카이로스는 오토가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미유는 오토가 물 공포증이 또 다시 도진 줄 알고 아예 바다에 뛰어들 기세였다.
하지만 오토는 물 공포증이 도진 게 아니었다.
“콰아아!”
알고 보니 6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백상아리 한 마리가 오토를 뒤쫓고 있었다.
“죠, 죠스다! 죠스으으으으!”
당황한 오토는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아예 마나까지 끌어올려 미친 듯 헤엄쳤다.
“…….”
카미유는 상어에게 쫓기는 오토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힘들게 물 공포증을 극복했는데 상어 공포증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어째 좀 불안하긴 했지만, 카미유는 그러려니 하고 썬베드에 읽던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오토 정도 되는 강자가 백상아리에게 잡아먹혔다면 역사서에 길이 남을 웃음거리로 남을 터.
물 공포증을 극복한 이상 오토 걱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저 당황해서 쫓기는 것일 뿐,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상어 하나쯤 찜 쪄 먹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 * *
이오타 왕국의 선단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칼리프 왕국의 항구도시이자 무역항인 <잘랄라바드>에 도착했다.
잘랄라바드는 예로부터 대륙 서쪽과의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
그런 만큼 엄청난 숫자의 무역선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배를 대고 화물을 내리려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답니다.”
작은 배를 타고 육지에 다녀온 카미유가 오토에게 보고했다.
“뭐? 두 달이나 기다리라고?”
“화물을 내리려는 배들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안 난답니다.”
“에라이.”
오토는 입을 삐죽이고는, 카미유에게 명령했다.
“돈 좀 찔러 줘.”
“뇌물을 주란 말씀이십니까?”
“안 그러면 두 달이 아니라 육 개월로 늘어날걸?”
“…….”
“어쩔 수 없어. 칼리프 왕국이 원래 그래. 돈도 많은 놈들이 죄다 부패해 있다고.”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의 명령에 따라 뇌물을 주기 위해 다시 육지로 향했다.
“여긴 예나 지금이나 호황이로구먼.”
카이로스가 저 멀리 잘랄라바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와 본 적 있어?”
“과거엔 짐의 영토였느니라. 끌끌끌.”
“아?”
“바로 여기서 해전을 벌였….”
그 순간.
부들부들!
옛날이야기를 하던 카이로스가 돌연 부르르 떨며 뒷목을 움켜쥐었다.
“…설마 여기서 벌어진 해전에서 활약한 게 아르곤 그 새끼였냐.”
“아르곤… 네 이노오옴…!!!”
“어휴.”
오토는 옛일을 떠올리며 치를 떠는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그냥 과거를 잊는 게 나을 것 같다. 뭐 좋은 추억이 있다고 자꾸 끄집어내서 사서 스트레스를 받아. 아르곤 새끼한테 뒤통수 맞은 기억밖에 없을 텐데.”
“다, 닥쳐라!”
“그나저나 별일 없으려나….”
오토는 잘랄라바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다.
그건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칼리프 왕국은 안정적이지가 못하니까.’
칼리프 왕국은 예로부터 내전이 끊이지 않는 국가라서 수도인 <알살람> 지역을 빼면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한 분쟁지역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칼리프 왕국은 봉건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중앙집권이 제대로 이루어진 국가도 아니었다.
칼리프 왕국은 전형적인 부족국가.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이 수도 인근을 점령하고, 족장이 국왕이라 할 수 있는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정치체계를 가진 국가가 칼리프 왕국이었다.
그래서 각 부족들 간에 불화가 끊이질 않았고, 심심하면 내전이 벌어졌다.
오죽하면 칼리프 왕국의 1년은 365일 중 하루를 뺀 364일 동안 내전을 치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세계 최대의 마정석 생산국이자 수출국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그저 돈만 많은 후진국 취급받는 이유였다.
‘그래서 밀무역도 성행 중이지. 아르곤 대제도 그 점을 노린 거고.’
현 술탄에게 적대적인 부족들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밀무역에 진심이었다.
때문에, 칼리프 왕국은 세계에서 밀무역이 가장 성행하는 국가이기도 했다.
‘빨리 술탄을 만나서 유물을 팔아먹고 복귀해야 할 텐데. 여기서 괜히 내전에 휘말렸다간….’
그 순간.
퍼엉!
저 멀리 항구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안 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와 동시에 오토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늘 반란군에 의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칼리프 왕국.
만약 세계 최대의 마정석 매장량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망해 버리고도 남았을 국가가 바로 칼리프 왕국이었다.
이렇게 내전이 끊이질 않는 주제에 수백 년 동안이나 국가가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칼리프인들이 엄청나게 호전적인 전투민족이기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수없이 많은 강대국들이 칼리프 왕국의 마정석을 노리고 쳐들어왔지만, 그들이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칼리프 왕국은 거친 바다, 뜨거운 사막, 그리고 기본적으로 3천 미터가 넘는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였다.
자그마한 나라에 여러 기후와 지형이 공존하는 바람에 침략하는 입장에서는 욕이 절로 나오는 것은 물론.
거기에 더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칼리프인들의 격렬한 저항까지 더해지면, 침략자들로서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정석을 약탈하기는커녕, 엄청난 전쟁 비용과 군사력 손실만 입은 채 손을 털고 나와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칼리프 왕국은 <강대국들의 무덤>이란 별명까지 있는 아주 기묘한 국가였다.
오죽했으면 이곳 칼리프 왕국 점령에 성공한 사람이 과거 식인황제 카이로스뿐이었을까.
아르곤 대제가 대륙을 통일한 이후 가장 먼저 독립에 성공한 국가 역시 칼리프 왕국.
그만큼 칼리프인들의 호전성과 근성은 전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것.
문제는 그런 호전성과 근성을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도 쓴다는 점이었다.
“이 미친놈들이 또 싸움질이네! 또!”
오토는 직감적으로 전쟁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잘랄라바드와 같은 무역항에서 대폭발이 일어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미친놈들은 지들끼리 싸우려고 태어났나. 힘도 좋아요, 아주.”
사실 칼리프 왕국의 내전은 게임 <영지전쟁>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에게도 아주 진절머리가 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칼리프 왕국과 뭔가를 하려고만 하면 내전이 벌어져서, 일에 차질이 빚어지기 일쑤.
심지어 내전이 벌어질 확률도 무작위라서, 게이머가 예측하는 게 아예 불가능할 정도였다.
괜히 칼리프 왕국의 왕자이자 군주 캐릭터 중 하나인 <살라딘 왕자>의 클리어 난이도가 최상급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왜?
빌드를 짜는 게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언제 어느 때 어느 부족이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니까.
“히필 내가 술탄이랑 거래하러 왔을 때 싸움질을 시작하네. 어휴.”
오토가 한탄할 때.
펑! 퍼엉!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포대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딱 봐도 누군가 마정석을 이용해 만든 폭탄을 미리 설치해 뒀다가 터뜨린 게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선으로 위장해 있던 반란군의 선박들이 돌연 함포를 방열하더니, 칼리프 왕국의 군함들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반란군들의 공격은 이오타 왕국의 함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이오타 왕국의 함대는 칼리프 왕국의 함대에 이어 두 번째 표적이었다.
오토가 끌고 온 검은 함대의 군함 다섯 척은 그 체급부터가 어마어마해서,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반란군의 입장에선 매우 거슬리는 게 당연했으므로, 선제공격을 시도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텅! 터엉!
팅! 팅! 팅! 터엉!
검은 함대의 군함들은 반란군이 쏜 포탄을 모조리 튕겨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방어력.
괜히 해적왕 바르도의 무적함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함포, 방열.”
해적왕의 모자를 꺼내 쓴 오토가 함대를 움직였다.
“3, 2, 1, Fire.”
오토의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펑! 펑! 펑펑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펑펑! 펑! 펑! 펑! 펑!
검은 함대의 함포들이 불을 뿜었다.
그 결과.
와장창!
와르르르르르르!
우지끈!
이오타 왕국의 함대를 공격했던 반란군 군함 열 척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흔적도 없이 침몰해버렸다.
방어력은 물론 화력의 체급 차이가 하늘과 땅이었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카미유가 위험해.’
뿐만 아니라, 만약 항구가 반란군에게 점령당한다면 술탄과의 거래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될 터.
“함대! 산개하라! 적 군함들을 모조리 침몰시켜라!”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검은 함대가 일제히 흩어져 항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전 병력.”
오토가 부하들을 향해 명령했다.
“항구로 상륙해 카미유 경을 구출한다. 또한, 상황에 보고 칼리프 왕국군을 도와 반란군 진압에도 힘을 보태기로 한다. 명령은 상륙 후 상황에 따라 다시 전파하겠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붉은 여신>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물살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