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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55화 (156/401)

155화

“야시경 껴.”

오토가 카미유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전하.”

카미유가 품속에서 2개의 렌즈가 달린 야시경을 꺼내 쓰고, 오토를 뒤따랐다.

슥, 스윽.

오토가 움직이자 근처에 매복해 있던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도 야시경을 끼고 사원으로 향했다.

“은인께서는 어쩐 일로….”

“왕세자 저하가 위험하십니다.”

“예…?”

“비키세요.”

오토는 입구를 지키던 칼리프 왕국의 기사들을 물리치고는, 매우 빠른 걸음으로 사원 안으로 진입했다.

카미유와 마검사들 역시 오토를 뒤따라 사원 안으로 진입했다.

“주변부터 정리하세요.”

“예, 전하.”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검사들이 사원 곳곳으로 흩어져 숨어 있던 암살자들을 조용히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암살자들은 야시경을 낀 마검사들의 소형 석궁[石弓]에 의해 소리·소문 없이 황천길로 떠났다.

암살자 주제에 오히려 암살을 당한 것이다.

마검사들이 사용하는 소형 석궁은 드워프들이 제작한 물건으로, 100미터 이내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마검사들은 좁은 실내에서 적들과 맞서 싸울 때 석궁을 마치 총처럼 활용했다.

게다가 마검사들은 <소음 저감 주문>을 사용했기에, 암살자들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걸 까맣게 몰랐다.

암살자들로서는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동료들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숨어 봤자지.’

투시 능력을 활성화시킨 오토는, 암살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암살자들을 숨겨주던 어둠은, 오히려 오토 일행의 편이었다.

어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야간전투에 있어 전술적으로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신속하게.’

오토가 수신호를 보냈다.

슥슥.

카미유와 마검사들이 빠르게 사원 중심부를 향해 이동했다.

* * *

“그 옛날 위대한 선지자의 후손들인 저희들이….”

한편, 살라딘은 암살자들이 자신을 노리는지도 모른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살라딘의 곁을 지키는 수십여 명의 기사들 역시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는 있었으나, 누구도 암살자들의 접근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그건 기사들이 무능해서가 아니었다.

암살자들의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났을 뿐….

스릉.

천장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암살자가 날카로운 쇠붙이를 꺼내던 순간.

피융!

한 마검사가 쏜 화살이 암살자의 머리를 관통했다.

털썩!

추락한 암살자.

“……!”

“……!”

“……!”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슈우우!

천장 위에 달라붙어 있던 암살자들이 일제히 살라딘을 향해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

놀란 살라딘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채앵!

살라딘의 검과 암살자의 무기가 맞부딪혔다.

살라딘은 무력이 뛰어난 타입의 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엄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겸비한 강자.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일격필살을 허락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습격! 습격이다!”

“전하를 호위하라!”

칼리프 왕국의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벌어진 전투.

“죽어라!”

“네놈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암살자들은 동료들이 죽든 말든 오직 살라딘만을 집요하게 노렸다.

퇴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뒤가 없는 공격.

목숨을 주고 목숨을 거두어 가겠다는, 오직 살라딘을 죽이기 위한 동귀어진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런 악독한 암살자들의 공격은, 오토 일행에 의해 철저하게 가로막혔다.

퓩! 퓩! 퓩! 퓩!

마검사들이 발사한 석궁이 암살자들을 원거리에서 공격하고.

“어딜.”

“소용없다.”

오토와 카미유가 가까운 거리에서 살라딘을 호위했다.

“여긴 어찌 오셨습니까?”

“혹시 몰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토는 살라딘을 호위하는 한편 덤벼드는 암살자들을 일격에 해치워 버리는 무위를 선보였다.

“……!”

“……!”

“……!”

암살자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토가 사원 외곽에서부터 은신해 있던 암살자들을 모조리 제거했기에, 암살작전은 완벽한 실패로 끝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이교도 놈들이….”

“분하다….”

살아남은 암살자들은 분노에 찬 탄식을 토해내더니, 갑자기 풀썩 쓰러져 버렸다.

복면을 쓴 입가에 허연 거품이 일어나 있는 걸 보면, 머금고 있던 독약을 깨물어 목숨을 끊은 게 분명했다.

“이스마일족 하사신들까지.”

살라딘은 죽은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스마일족은 칼리프 왕국의 여러 부족들 중 하나로서, 현 왕가에게 가장 큰 반감을 가진 세력.

<하사신>이란 이스마일족에서 전문적으로 양성한 암살자들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곳 칼리프 왕국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왜?

하사신들은 표적을 암살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하사신들은 집요함과 작전수행 능력은 상상 그 이상.

한 하사신이 고위층 표적을 암살하기 위해 그의 사위가 되어 임무를 성공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화는 전설로 남아 있을 정도.

즉, 살라딘은 이번 시찰에서 누리스탄족들이 기획한 테러에 이어 이스마일족 하사신들에게까지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당분간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오토가 살라딘에게 주의를 주었다.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왕가에 반기를 든 부족들이 도처에서 왕세자 저하를 노리고 있으니, 몸가짐을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은인의 조언,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살라딘이 오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은인께서는 저를 두 번 살리셨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별말씀을요.”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전하.”

살라딘이 오토의 손을 꼭 붙잡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곁에서 이 훈훈한 광경을 지켜보던 카미유가 빙그레 미소를 짓던 순간.

“뭐야.”

오토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득달같이 카미유를 추궁했다.

“방금 그 표정 뭔데?”

“예…?”

“그 표정 뭐냐고.”

“무슨 표정 말입니까.”

“내가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웃음을 팔아?”

“제가 언제 웃음을 팔았다ㄱ….”

“두고 봐 아주.”

오토가 으름장을 놓았다.

“머리끄댕이를 싹 쥐뜯어 놓을라니까.”

“…….”

“코앞에서도 이러는데 나 없는 데서는 어떨지 안 봐도 훤하네, 훤해. 흥!”

오토가 씩씩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 아침.

오토 일행은 살라딘 왕세자를 호위하는 칼리프 왕국군과 함께 수도 알살람으로 향했다.

행렬은 매우 길었다.

왕세자를 호위하는 병력들이 기사와 병사들을 합쳐 1,500명.

거기에 더해 이오타 왕국군과 화물까지 더해지니 행렬이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알살람까지 가기 위해서는 <카비르 사막>을 무려 1주일이나 가로질러야 했다는 것.

중간 중간 오아시스를 낀 역참이나 군사기지, 혹은 요새가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쩝.”

낙타를 탄 오토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안 피곤하십니까?”

곁에서 역시 낙타를 탄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부터 투시를 켜고 주변을 경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나 소모도 그만큼 컸다.

벌컥벌컥!

오토가 괜히 마나포션을 틈틈이 마셔 대는 게 아니었다.

“피곤하지. 으으. 눈 빠지겠네.”

오토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을 비비며 피로를 호소했다.

“좀 쉬시는 게….”

“안 돼.”

“왜 그렇게 불안해하십니까?”

“여긴 사막이잖아. 그래서 더 신경 쓰인다고.”

오토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옷 색깔만 맞춰 입으면 대충 위장해도 모래랑 구분이 안 가잖아. 그리고 모래 속에 숨기라도 하면 더 답이 없고.”

“동의합니다.”

“게다가 행렬이 길어서 습격당하기 딱 좋고. 이동 중 원거리에서 공격받으면 얼마나 피곤해지는데. 만약 우리 화물이 파괴되기라도 하면 손해가 얼마일지 상상이 가?”

그 순간.

‘역시 돈 때문이었군.’

카미유는 오토가 눈에 불―진짜 켰다―을 켜고 주변을 경계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군주인 오토가 솔선수범해 주변을 경계하는 건 매우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행동.

“여기 물수건입니다.”

“땡큐.”

카미유는 그런 오토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해서, 차가운 물수건을 건네주며 기사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같이 차 한 잔 하시지요.”

“그럼 감사하죠.”

행렬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살라딘이 오토에게 차를 권했다.

술이 전면 금지되어 있는 칼리프 왕국에서는 이렇듯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펄럭!

기사들이 오토와 살라딘을 위해 모래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파라솔을 설치하려 했다.

“잠시만요.”

오토가 한 기사가 들고 있던 파라솔을 움켜쥐었다.

“제가 설치하겠습니다.”

“예? 어찌 직접 그늘막을 설치하려 하십니까?”

“그게 편해서요. 제가 앉을 자리인데 직접 고르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기사는 그런 오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국빈이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파라솔을 건네주었다.

“어디에 파라솔을 쳐야 명당에 쳤다고 소문이 나지? 여긴가?”

근처를 둘러보던 오토가 파라솔로 모래바닥을 푹! 찍었다.

“아이고, 너무 깊숙이 찔렀나 보네. 아무리 모래라지만 왜 이렇게 물러? 여긴 아닌 것 같네.”

그렇게 말한 오토가 파라솔을 쑥 빼냈다.

“……!”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파라솔의 뿌리 부분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쉿.’

오토가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란 제스처를 취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가 적당하려나? 으이차!”

오토가 파라솔로 다시 모래바닥을 푹! 내리찍었다.

끄윽!

아주 작지만 분명히 들린 단말마의 비명.

하지만 오토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여기도 좀 터가 안 좋은 것 같네. 어디 좋은 데 없나.”

오토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며 모래 속에 숨은 하사신들의 머리통을 파라솔로 꿰뚫어버렸다.

오싹!

한편, 모래 속에 숨어 있던 하사신들은 오토의 발걸음이 느껴질 때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공포에 떨었다.

하사신답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무만 완수할 수 있다면, 목숨 따위 아까워하지 않는 게 하사신의 기본 소양.

그러나 암살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파라솔에 꿰뚫려 허무한 죽음을 맞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때문에, 모래 속에 숨어 있는 하사신들의 긴장감은 가히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여긴가?”

한 하사신은 바로 뒤에서 오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껏 긴장했다.

‘제, 제발.’

그 결과.

“여긴 별로 같아. 다른데 박아야지.”

발걸음과 목소리가 멀어졌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던 바로 그 순간.

“아니야, 다시 여기가 좋겠어.”

‘헉!’

“막상 박으려니 별로네. 딴 데 박아야지.”

‘휴우!’

“아닌데. 여기가 명당 같은데.”

‘이런 빌어먹을.’

“저기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하사신은 오토가 이랬다저랬다 할 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 강도 높은 하사신 훈련을 받을 때조차 이렇듯 스릴 넘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여기 박을까, 말까.”

‘제발.’

“박아?”

‘아, 안 돼!’

“아니지. 저기가 더 좋아 보이는데. 그냥 저기다가 박아야겠다.”

‘휴우.’

“아냐. 여기가 좋겠어.”

그 순간.

“그냥 죽여 이 개새끼야아아아!”

참다못한 하사신이 모래를 뚫고 튀어나와 오토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내심을 가진 하사신조차 오토의 악의적인 밀당(?) 앞에서는 자제력을 잃고 폭주해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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