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59화 (160/401)

159화

알살람으로 달려간 살라딘은, 즉시 아버지인 술탄 압둘 2세를 만났다.

“그래,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살라딘을 바라보는 압둘 2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사실 압둘 2세는 살라딘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부왕[父王]의 입장에서 살라딘은 꽤 괜찮은 왕세자이긴 했다.

살라딘은 신앙심도 깊고, 사치도 부리지 않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했으며, 또한 검술 실력도 필요 이상으로 뛰어났다.

훗날 성군이 될 자질을 두루 갖춘, 매우 훌륭한 후계자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둘 2세가 살라딘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성격이 유약하기 때문이었다.

“아바마마! 어찌 전쟁을 일으키려 하시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살라딘이 압둘 2세를 향해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어찌 전쟁을 일으키냐니?”

압둘 2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네놈은 이 아비가 전쟁광이라도 된다는 말이더냐?”

“아바마마, 우리 칼리프인들은 무력으로 찍어 누른다고 해서 복속시킬 수 있는 민족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질 않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물러터진!”

압둘 2세의 입에서 버럭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 무역항인 잘랄라바드가 초토화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네놈 목숨마저 위태로웠거늘! 어디 그뿐이더냐? 다시없을 충신인 유수프마저 전사하질 않았더냐!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이 아비더러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니!”

“아바마마!”

“네놈은 이 아비가 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무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도 좋다는 말이냐!”

“그것이 아니옵니다!”

살라딘이 간곡한 어조로 압둘 2세를 설득했다.

“그들이 저지른 행동은 마땅히 벌해야 옳으나, 소자는 무고한 이들까지 희생될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옵니다.”

“무고한 이들이라?”

“아바마마! 민심을 사로잡으셔야 하옵니다! 힘으로 억압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우리 칼리프인들은….”

“닥쳐라!”

“……!”

“그럼 이 아비는 칼리프인이 아니란 말이더냐?”

“그, 그것이 아니오라….”

“네놈은 왕세자로서 우리 왕조의 영원한 번영을 꾀해야 할 의무가 있을 터인데! 어찌 그런 유약한 말로서 이 아비의 의지를 꺾으려 드느냐!”

“소자는 단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우리 칼리프 왕국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까 그것이 우려될 뿐이옵니다!”

압둘 2세의 불호령에도, 살라딘은 굴하지 않았다.

“아바마마, 부디 관련자들만 찾아내 징벌하소서. 전쟁만은 아니 되옵니다.”

“이놈이?”

“정 분이 풀리지 않으시거든 부디 몇 년만 참아 주소서! 왕조의 힘을 더 키워 다른 부족들을 확실히 토벌할 수 있을 때, 그때 군대를 일으키소서! 지금은 참으셔야 할 때이옵니다!”

살리딘의 말은 옳았다.

현재 칼리프 왕국은 술탄 압둘 2세의 왕권이 무소불위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고, 군사력도 물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칼리프인들의 민족성을 떠올려 보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그랬다.

역대 침공해 왔던 강대국들의 군사력과 비교했을 때, 지금 칼리프 왕국이 그들보다 더 강력하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칼리프 왕국의 역사 한정으로는 역대급 군사력을 갖춘 상태이긴 했지만….

“부디 딱 3년만 더 힘을 기르소서. 그래야 피해가 줄어들 것이옵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우리 왕조 역시 쇠락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르옵니다. 소자는 그것이 두렵사옵니다. 부디 소자의 간곡한 청을….”

“닥쳐라 이놈!!!”

“……!”

“썩 물러가라! 이 괘씸한 놈 같으니! 네놈은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것이다!”

“아, 아바마마!”

“네놈은 훗날 이 아비가 물려준 왕조를 경영하게 될 것이다! 부족국가가 아닌 우리 파리르족이 주도하는 통일왕국 칼리프의 술탄으로서!”

압둘 2세가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드러내었다.

“네놈의 그 이상주의는 그때 가서 펼쳐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놈은 이 아비에게 평생 고마워하며 살아가겠지! 통일왕조를 물려준 것을 말이다!”

“아바마마의 뜻은….”

살라딘은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뭣들 하는가! 왕세자를 당장 끌어내라!”

“예! 술탄!”

대기하고 있던 근위기사들이 살라딘을 붙들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자의 간곡한 청을 한 번만 들어주시옵소서! 아바마마! 아바마마!”

그렇게 살라딘은 근위기사들에 의해 어전에서 끌려나가고 말았다.

“이런 괘씸한 놈 같으니.”

압둘 2세가 분통을 터뜨렸다.

“내 혈육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왕세자의 지위를 박탈해 버렸을 것을!”

이참에 전쟁을 일으켜 왕조에 적대적인 부족들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압둘 2세의 의지는 그만큼 강력했다.

할 수만 있다면 살라딘을 폐위시키고 다른 혈육을 왕세자로 책봉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압둘 2세에게는 직계 혈족이 오직 살라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리 유약해서야. 내 네놈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왕조를 물려주고 말 터이니, 잠자코 기다리도록 하여라. 훗날 이 아비의 원대하고도 큰 뜻을 이해할 날이 올 터이니.”

압둘 2세는 그렇게 혼잣말하고는, 지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지도를 들여다보는 압둘 2세의 시선은 칼리프 왕국 북부의 산악지대에 자리한 <마시아프 성>에 머물러 있었다.

“라시드. 기다려라. 감히 우리 왕조에 반기를 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니.”

압둘 2세는 평생의 숙적 산상노인 라시드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번 치세에는 반드시 마시아프 성을 점령하고, 북부의 산악지대인 알라무트를 점령하리라 다짐하면서….

* * *

알살람에 거의 도착하기 직전.

“얘 왜 이럽니까.”

카미유가 하사신을 가리키며 오토에게 물었다.

하사신은 오토와 함께 말에 타고 있었는데, 하필 앞에 실려 있었다.

“몰라?”

오토가 눈을 끔뻑끔뻑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애 상태 안 좋아?”

“많이 안 좋습니다.”

“얼마나?”

“직접 보십시오.”

오토는 카미유의 말에 앞에 탄 하사신의 안색을 살폈다.

“…….”

하사신은 여전히 입을 꽉 다물고 있었지만, 안색은 굉장히 안 좋았다.

눈 밑에는 진한 다크써클이 드리워져 있었고, 입가는 핏기 없이 푸르스름했으며, 얼굴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눈은 까뒤집어져 있어서, 허연 흰자가 다 드러나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피?”

오토는 하사신의 귀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얘 왜 이래? 독약 뺏은 거 맞아? 독약 깨문 거 아냐?”

바로 그때.

“그, 그만.”

하사신의 입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제 그만. 제발 그만해.”

“으응?”

“그만. 제발, 제발 부탁이다. 그만해에….”

“뭘 그만하라는 거야?”

오토는 하사신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 왜 그래? 우리가 언제 너 고문하기라도 했냐? 뭘 그만하래? 누가 보면 아주 몇 날 며칠 괴롭힌 줄 알겠다? 너?”

“제발, 그만.”

“야, 그래도 우리 정도면 포로 안 괴롭히고 그래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 주는 거야. 너 만약에 다른 놈들한테 잡혔어 봐. 지독한 고문에 고통받는 건 기본이고, 온갖 인격모독에 수치심이 드는 가혹행위도 당했을걸? 너 그럼 진짜 사람이 완전 피폐해져서 결국에는 몸보다 정신이 먼저 맛이 간다고. 그럼 니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게 되는 거야. 그러면 너 나중에 안 죽고 풀려나서도 비참해진다? 동네방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니가 누군지도 모르겠지. 그렇게 동네바보 되는 거야. 동네바보가 되면 또 어떤데? 동네 애들이 따라다니면서 놀리지, 돌 던지지….”

“제바알… 그마아안. 커헉!”

불현듯 경기를 일으킨 하사신이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뭐야? 야! 너 괜찮냐! 야! 죽은 거 아니지?”

“그냥 기절한 것 같습니다.”

카미유가 하사신의 맥을 짚어 보더니 말했다.

“얘 왜 지 혼자 피 토하더니 기절해? 지병이라도 있었나?”

“그걸 몰라서 물어보십니까?”

“으응?”

“됐습니다.”

카미유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하게 됐군.’

카미유는 속으로 하사신에게 사과했다.

‘혹시나 싶어서 해 본 말인데 그게 진짜 될 줄은 몰랐다.’

오토로 하여금 하사신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말이나 걸어보라고 제안했던 장본인이 카미유였으니, 약간의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낀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저기 알살람이 보입니다!”

어느새 오토 일행은 칼리프 왕국의 수도인 알살람에 도착했다.

저 멀리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문주―대문 역할을 하는 건축물―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뒤로 석조건축물들로 이루어진 대도시 알살람의 풍경이 보였다.

“어휴. 드디어 도착했네.”

바로 그때.

“하렘! 하렘인가! 껄껄껄! 드디어 하렘에 와 보는구먼!”

가마에 처박혀 술이나 퍼마시던 카이로스가 헐레벌떡 달려 나와 하렘을 부르짖었다.

“…괜히 말했나.”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괜한 헛바람을 집어넣은 걸 후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환영행사는 가히 열렬했고, 또한 호화스러웠다.

국빈대접을 한다던 살라딘 왕세자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뿌우우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촤락! 촤라락!

촹! 촤앙!

여러 악기 소리와 함께 수만 명은 될 것 같은 환영인파들이 몰려들어 오토 일행을 둘러쌌다.

사락 사라라라라라라락!

꽃비가 내리고.

파르 파르르르르르르르!

금붙이로 만든 종이가 흩날렸다.

흔들흔들~

수백여 명의 무희들이 몰려들어 아리따운 춤사위를 보여 주었다.

“이게… 칼리프 왕국???”

오토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호화로운 환영행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카미유도 어지간히 놀란 눈치였다.

“그러게. 진짜 대단하긴 하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돈이 얼마야?”

“예…?”

“역시 부자나라라서 그런지 환영행사도 격이 다르네. 꽃값만 해도 얼마야. 이 종이도 진짜 금을 얇게 펴서 만든 거 같은데?”

오토가 흩날리는 황금색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놀라워했다.

“안 됩니다.”

카미유가 오토를 뜯어말렸다.

“갑자기 뭐가 안 된다는 건데?”

“지금 땅에 떨어진 금붙이들 주우시려고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헉! 어떻게 알았어?”

“체통을 지키십시오. 전하께서 돈이 없지, 체면까지 없는 거 아니잖습니까.”

“쳇.”

“제발 참으십시오.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그렇게 열렬한 환영행사에 놀라워하며 왕궁 앞까지 도달한 오토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압둘 2세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술탄이 몸소 마중을 나온 것이다!

오토 일행이 잘랄라바드에서 세운 공이 그만큼 혁혁했다는 증거였다.

“어서 오시오, 과인의 형제들이여.”

압둘 2세가 미소를 지었다.

“과인은 칼리프 왕국의 술탄 압둘 2세라고 하오. 수도 알살람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이오타 왕국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입니다. 칼리프 왕국의 술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호라! 그대가 머나먼 왕국에서 직접 발걸음 했다던 젊은 왕이구려! 껄껄껄!”

압둘 2세가 오토를 반겨 주었다.

“예, 술탄이시여.”

오토는 기꺼이 고개를 숙여 압둘 2세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

‘어이구. 직접 왕궁 입구까지 행차하셨는데, 가려운 데는 긁어 드려야지.’

외국의 젊은 왕이 직접 발걸음을 해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압둘 2세에게 큰 정치적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왜?

알살람의 신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오오!”

“역시 술탄께는 외국의 왕도 고개를 숙이는구나!”

“역시 술탄이시다!”

오토의 예상대로, 먼저 고개를 숙여 보이자 알살람 신민들의 애국심이 고취되었다.

“껄껄껄껄껄!”

압둘 2세도 오토가 먼저 예를 취하자 엄청나게 좋아했다.

이제 갓 전쟁을 일으켜 민심을 휘어잡을 필요가 있던 압둘 2세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대가 잘랄라바드에서 어떠한 활약을 했는지는 과인이 상세히 들어 잘 알고 있소이다! 우리 칼리프 왕국으로서는 큰 은혜를

이에 과인은 그대의 나라인….”

멈칫.

“그러니까 과인은 그대의 나라인… 으음… 그대의 나라인… 나라인….”

대사를 절던 압둘 2세가 곁에 있던 시종의 귓가에 속삭여 물었다.

“나라 이름이 뭐라더냐?”

주르륵.

오토와 카미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