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뭐라아아아아?!”
압둘 2세는 아르곤 대제의 부장품 가격을 듣고 그만 기절할 뻔했다.
예상했던 금액보다 몇 배는 비싸서, 아무리 압둘 2세로서도 선뜻 지르기가 힘든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저, 정말로 그 가격을 원하는가?”
오토가 제시한 금액은 한화―화폐가치가 달라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로 따지자면 거의 20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부장품의 숫자가 수천 점이 넘긴 했지만, 취미생활에 선뜻 지를 만한 금액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형님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론 형님께서 그 100배, 아니 1,000배를 지불할 재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선수를 쳤다.
“하지만 형님께선 감히 왕가에 반기를 든 무리들을 응징하시고자 군대를 일으키신 상황인지라, 한 푼이라도 아끼시려는 것이겠죠. 술탄으로서 솔선수범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시는 모습을 보니, 절로 존경심이 듭니다.”
“으음! 우리 동생이 이 형님의 마음을 그리도 잘 헤아려 주다니!”
압둘 2세는 오토가 체면을 세워 주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전통적으로 칼리프 왕국의 술탄들에게는 한 가지 역린[逆鱗]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돈에 관한 자존심이었다.
술탄들은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면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돈 앞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왜?
왕조의 위신과 술탄으로서의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토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압둘 2세의 자존심을 긁는 대신 오히려 성군이라서 절약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포장해 주었던 거였다.
“게다가 잘랄라바드 공격 사건으로 인해 당분간은 무역에 큰 차질이 있으시니, 형님께서도 쉽사리 돈을 쓰실 수 없다는 것은 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 동생이로구먼. 내 마음을 어찌 이리도 잘 알아준단 말인가. 그러니 내 우리 동생에게 ㅎ….”
압둘 2세의 입에서 할인의 ㅎ자가 튀어나오려던 순간.
“저 역시 할인을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할인된 가격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형님께서 저를 어여삐 여겨 주시니 할인을 해 드리는 게 손해가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커다란 이득이 되겠지요. 그만큼 저를 배려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런데도 할인을 해 줄 수가 없단 말인가?”
“형님.”
오토가 정말 진지한,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부장품들은 아르곤 대제의 무덤 안에 있던 것들입니다.”
“그거야 자네도 알고 나도 아는 바가 아니던가.”
“할인을 해 드리면 부정이 타서 영험한 힘이 떨어지게 됩니다.”
“영험한 힘…?”
“아르곤 대제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그야 난세를 평정하고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인물이 아닌가?”
오토는 압둘 2세의 대답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위대하긴 하죠. 위대한 개쌍놈이니까. 헤헤헤.’
물론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스스로 엎어 버릴 순 없으니까!
“무덤 안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이 부장품들을 가진 자에게 영험한 힘이 함께하리라… 라고.”
“……!”
“어쩌면 이 부장품들을 소장하신다면 아르곤 대제의 기운을 받아 칼리프 왕국을 부족국가가 아닌 통일국가로 발전시키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파미르족이 주도하는 통일왕조의 꿈 말입니다.”
오토의 그 말은 압둘 2세의 마음속에 독을 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압둘 2세는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통일왕조를 건설하기 위해 눈이 시뻘게져 있는 상태.
그런 압둘 2세에게 있어 오토가 가져온 아르곤 대제의 부장품들에 얽힌 서사와 상징성이란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
그렇다면…….
“사겠네.”
압둘 2세가 냉큼 오토에게 말했다.
“단 한 푼도 깎지 않겠네.”
“역시 형님이십니다.”
“단 조건이 있네.”
“뭡니까? 그 조건이란 게?”
“그, 그게 말일세.”
압둘 2세가 다소 난처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약간의 수줍음마저 내비치며 말했다.
“혹시.”
“편하게 말씀하시죠, 편하게.”
“할부는 안 되겠나?”
그 순간.
‘절대 안 돼!!!’
오토는 무심결에 소리칠 뻔한 걸 혼신의 입을 다해 다시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더 몰아붙이면 안 된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압둘 2세의 심리적 저항선이자 마지노선이라는 걸.
노련한 너구리를 상대로 이만큼 흥정에 성공했다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당연히 해 드려야죠, 형님.”
오토가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 * *
사실 할부 결제라 해도 오토 입장에선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본래 가치보다 거의 5배를 바가지 씌운 가격이라서, 총 가격 중 20퍼센트만 선금으로 받아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선금으로 50퍼센트. 결제 대금은 마정석 혹은 금으로 받겠습니다.”
“동의하네.”
“나머지 50퍼센트는 매년 10퍼센트씩 5년에 걸쳐 할부로 받겠습니다.”
“그래 주면 더할 나위가 없네.”
“대신 5년 동안 10퍼센트의 이자만 추가로 얹어 주시면 됩니다.”
“할부 결제인데 무이자로 해 줄 순 없는 것이겠지. 적은 금액도 아니니. 내 그리함세.”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형님과 거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영광일세. 아르곤 대제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부장품들이라니. 이 세상에 이만큼 귀한 물건들이 또 어디 있겠나?”
“역시 형님이십니다. 진정한 명품을 알아보시는 뛰어난 안목에, 과감한 결단력, 거기에 더해 나라 재정을 걱정하는 검소함까지. 많이 배웠습니다.”
“껄껄껄껄!”
기분이 좋아진 압둘 2세가 호탕함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곁에서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미유는….
‘5배를 바가지 씌워?!’
카미유는 오토의 지독한 상술에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면 거래가 아니라 명백하게 사기나 다름없었다.
에고 상단에서 실시한 가치평가에 따르면, 저 유물들의 가치는 오토가 부른 금액의 정확히 5분의 1 정도.
무슨 고대의 마법이라도 걸린 아티펙트들도 아니었고.
“거래가 성사되었으니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뭔가? 그 주의사항이?”
“향후 10년 동안은 이 유물들을 가지고 계신다는 걸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뭐라? 그 비싼 돈을 주고 산 수집품들을 꽁꽁 숨겨 둬야 한다는 말인가?”
압둘 2세의 표정이 다소 사나워졌다.
거금을 썼으면 그만한 만족함을 얻어야 하는 법.
값비싼 사치품은 자기만족이 아닌 과시의 속성을 띠기 마련.
이 유물들을 주변에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압둘 2세로 하여금 돈을 쓴 보람이 없다고 느끼게끔 하는 요소였다.
“형님.”
오토가 압둘 2세를 달랬다.
“이 유물들은 아르곤 대제의 영험한 기운을 품은 일종의 부적 같은 겁니다.”
“으음. 부적이라.”
“이 유물들을 함부로 보여 주시고, 소문을 내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정 탑니다. 아르곤 대제의 기운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 의미였나!”
“큰돈을 쓰셨는데, 효험을 보시려면 통일왕조를 이룩하실 때까지만 꽁꽁 숨겨 두고 혼자만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그 영험한 기운을 형님 혼자만 오롯이 다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동생의 생각입니다.”
“과연 일리가 있도다! 일리가 있어!”
압둘 2세는 또다시 오토의 현란한 말빨에 수긍해 버리고 말았다.
뭐 하나 그럴듯하지 않은 말이 없어서, 넘어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우리 동생의 말을 명심하도록 함세. 이 유물들은 통일왕조의 대업을 이룬 후에 공개하도록 하겠네.”
덕분에 오토는 장물을 판매한 사실이 아르곤 대제의 귀에 들어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거하게 바가지를 씌우는 데 성공한 오토는, 숙소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큰 사기, 아니 거래(?)를 완성시켰기 때문일까?
“후우!”
오토가 좌식 소파―빈백 형태의―에 몸을 묻으며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어떻게 한낱 골동품들을 그 금액에 사게 만드신 겁니까? 압둘 2세가 바보도 아니잖습니까.”
“난 서사(敍事)를 판 거지 골동품을 판 게 아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래 사치품이란 게 그래. 물건의 본질적인 가치보다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의 가치가 더 높은 거라고.”
엘리제만큼이나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는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월급쟁이―공무원―의 입장인지라 더더욱.
“중요한 건 물건에 얽힌 이야기지. 예컨대 상표라던가. 혹은 그 물건을 만들어 낸 곳이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시장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는지. 얼마나 희귀한지.”
“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가 판 골동품들은 사치품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해.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압둘 2세의 야망과 아르곤 대제의 살아생전 서사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그래서 아무 효과도 없는 장식품들을 그 가격에 산 겁니까? 아티펙트도 아닌데?”
“야망이 그만큼 크니까.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고 싶어 하는 거야. 압둘 2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르곤 대제기도 하고.”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압둘 2세는 누가 칼리프 왕국 술탄 아니랄까 봐 사치가 좀 심한 편이긴 해. 정치적 감각은 노련한데, 돈에 관해선 많이 헤프거든.”
“설마.”
카미유가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고 많은 나라 중 굳이 그 개고생을 하면서 이 머나먼 이역만리까지 온 이유.
칼리프 왕국은 그야말로 완벽한 거래 대상이었다.
아르곤 대제에게 들키지도 않고 거래하고, 물건도 비싸게 처분할 수 있으며, 대금을 전략 물자인 마정석으로 받을 수 있는 국가는 칼리프 왕국이 유일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계산하신 겁니까?”
“칼리프 왕국을 추천해 준 건 에고 님 의견이었는데? 내가 그래서 에고 님을 좋아해. 수완이 엄청나거든. 판을 보는 눈도 뛰어나고.”
오토가 에고를 칭찬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건 거짓말이다.’
카미유는 오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에고가 추천해 주었을지언정, 오토가 이 모든 걸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 * *
그날 밤.
오토 일행은 압둘 2세의 초대를 받아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연회장으로 가는 길.
“이 뺀질이 놈아! 하렘에는 언제 가는 것이냐!”
“아! 좀!”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일단 밥부터 먹고 가야지! 밥부터!”
“우선 1차부터 갔다가 2차로 하렘에 간다는 것이냐?”
“…제발 그런 꼰대 같은 말 좀 안 하면 안 되냐. 사람들 오해한다고.”
오토는 하렘 타령이나 하는 카이로스의 모습이 마치 만취해서 넥타이를 머리에 두른 중년의 부장님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토는 굳이 카이로스를 더 타박하지 않았다.
‘흐흐흐. 그래, 어디 두고 보자. 하렘 하렘 노래를 불렀으니까 당연히 데려가 줘야지. 흐흐흐. 너 딱 기다려라.’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또 무슨 음모를 꾸미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그런 오토의 표정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물었다.
“으, 음모라니! 내가 언제!”
“음모를 꾸밀 때마다 그런 표정 지으시잖습니까.”
“골탕은 무슨! 내 표정이 어디가 어때서!”
오토가 딱 잡아떼었다.
‘티 났나? 하여간 눈치만 빨라 가지고. 난 눈치 빠른 놈들이 싫어.’
오토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오셨습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살라딘이 왕세자비와 아직은 어린 왕세손과 함께 서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왕세손은 칼리프 왕국의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왕세자인 살라딘과 왕세자비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설마 왕세자 부부가 연회에 초대받지 못한 건가?’
오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