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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69화 (170/401)

169화

“하, 합격이요? 이렇게 빨리?”

오토는 제 귀를 의심했다.

합격할 건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빠를 줄이야.

“정말 합격입니까?”

“그렇다.”

“자세히 보신 거 맞습니까?”

“너는 더는 볼 필요가 없다. 의심의 여지 없이 합격이다.”

“가, 감사합니다.”

신기록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셰에라자드에게 청혼했던 남자는 총 169명.

그중 예선을 통과했던 남자는 불과 33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33명도 짧게는 30초에서 길게는 2분까지 셰에라자드의 심사(?)를 받아야 했다.

셰에라자드의 남자 보는 눈은 매우 까다로웠다.

요리 보고.

저리 보고.

고개를 들어도 보고.

내려다보기도 하고.

양옆으로 돌려도 보고.

심지어, 체형과 몸의 비율까지 아주 꼼꼼하게 훑어보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슬쩍 얼굴을 보여 준 것만으로도 당당히 합격도장을 받아낸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셰에라자드가 만나본 남자 가운데 오토가 가장 미남이란 뜻이었다.

‘역시 신기록이로군.’

‘예상했던 결과다.’

‘하긴. 저 정도 미남이면 그럴 만도 하지.’

셰에라자드의 기사들은 결과에 100퍼센트 동의했으며, 또한 수긍했다.

그간 셰에라자드에게 청혼했던 이들과 몰래 들였던 노예들 중에서 오토만큼 잘생긴 미남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아주 잘생긴 남자로구나.”

셰에라자드가 오토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잘생긴 외모로 그간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울렸지?”

그 순간.

오싹!

오토는 셰에라자드의 두 눈에서 시뻘건 살기가 번뜩이는 걸 보고 흠칫 놀랐다.

‘뭔가 x된 거 같은데?’

어째 좀 이상한 곳에서 핀트가 엇나간 게 분명했다.

그저 예선 통과가 쉬울 거라고만 생각했지, 셰에라자드가 더 분노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대답하라.”

셰에라자드가 오토에게 혹독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간 여자를 몇 명이나 만났나. 아니. 몇 명의 여자와 잤나.”

“맹세코 한 번도 그런 적 없습니다.”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다는 건가?”

셰에라자드의 목소리가 사나워짐과 동시에 어둠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네놈 말을 믿지 않는다.”

“저,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수없이 많은 남자들을 만나 보았지만, 네놈처럼 잘생긴 남자는 본 적이 없다. 그런 네가 여자를 접해본 적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따라붙을 텐데?”

“그건 사실이지만….”

“하루하루 여자들을 바꿔 가면서 농락했을 테지.”

“아닙니다!”

“거짓말 마라.”

셰에라자드가 경멸에 찬 눈초리로 오토를 노려보았다.

“남자란 동물은 아주 역겨운 짐승들이지. 아내가 있음에도 매음굴이나 드나드는 쓰레기 같은 족속들이야.”

“…….”

“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울리고, 그들을 상처 입혔을 것이다.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오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셰에라자드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게 뻔했다.

‘왠지 벌집을 들쑤신 느낌인데.’

오토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셰에라자드가 잘생긴 남자들만을 죽이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잘생긴 남자일수록 여자들을 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나… 가산점 붙은 건가?’

오토는 자신의 외모가 셰에라자드를 더 자극한 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대놓고 분노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제 발로 찾아와 준 게 고마울 지경이구나.”

셰에라자드가 해맑게, 활짝 웃었다.

‘허어! 제대로 미친 여자로구먼!’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한지, 지켜보고 있던 카미유와 카이로스마저도 흠칫 놀랐다.

“너는 이 세상에 풀어놓아서는 안 되는 자로구나. 끌고 가라.”

“예, 술탄.”

셰에라자드의 명령에 기사들이 오토를 왕궁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 * *

한편, 오토 일행이 떠난 칼리프 왕궁에는 한바탕 피바람이 휘몰아치기 직전이었다.

압둘 2세는 그 후로도 아들이자 왕세자인 살라딘에게 수 차례 참전을 요구했다.

그러나 살라딘은 끝끝내 참전을 거부하고, 압둘 2세에게 유화정책을 펼 것을 주장했다.

그들이 모시는 신 아난의 말씀에 따라 평화로운 방식으로 다른 부족들을 대하라는 주장을 끝끝내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압둘 2세의 분노는 최고조에 도달했다.

“네놈이 기어코 이 아비, 아니 술탄의 명을 거역하는구나! 오냐! 내 네놈을 반역죄로 다스려 주마!”

그 순간.

“……!”

“……!”

“……!”

지켜보던 대소신료들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절대 권력의 소유자인 압둘 2세의 입에서 <반역죄>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다.

단순한 분노를 넘어 여차하면 살라딘을 폐위시켜 왕세자의 직위를 박탈하거나, 심하면 처형하겠다는 의도가 깃들어 있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바마마!”

“마지막으로 묻겠다.”

압둘 2세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살라딘을 노려보며 물었다.

“술탄의 명에 따라 군대를 이끌고 반역자들을 처단하겠느냐, 아니면 네놈 역시 반역자가 되겠느냐.”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아바마마, 소자의 말을 믿으셔야 하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성군이 되실 수….”

“여봐라.”

압둘 2세가 근위기사들을 돌아보았다.

“현 시간부로 이놈을 왕세자에서 폐위시키도록 하겠다. 이놈은 반역자에 불과하니, 앞으로 누구든 왕세자의 대우를 해 주는 자가 있다면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알겠느냐.”

“예, 술탄.”

누구도 압둘 2세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

“끌고 가라. 끌고 가서, 매우 쳐라. 수도 알살람의 신민들이 모두 구경케 하라. 감히 과인에게 반기를 드는 놈은 왕세자라 할지라도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어야 한다.”

“예, 술탄.”

근위기사들이 살라딘을 질질 끌고 갔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부디 소자의 이 간절한 청을 한 번만 들어주시옵소서! 아바마마!”

살라딘은 개처럼 끌려가면서도 압둘 2세에게 부르짖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왕세자에서 폐위시키는 초강수를 둔 이상 압둘 2세의 귀에 살라딘의 외침 따위 들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 * *

끌려들어간 오토는, 몇 시간에 걸쳐 이런저런 검사(?)와 몸단장을 받았다.

오토는 술탄인 셰에라자드가 잡아먹을 예정이었으므로, 위생과 청결을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오토도 인격이 있는 인간인데, 가축 취급을 받는 게 달갑지 않은 건 당연했다.

철컹!

오토의 목에 개목걸이가 채워졌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마나의 운용을 방해하는 아티펙트부터 채운 것이다.

그런 뒤 본격적인 신체검사가 시작되었다.

“흠. 건강하군.”

의사가 오토의 입술을 까뒤집어 잇몸 상태를 점검하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뭔 동물이냐.’

의사는 오토를 발가벗기고 온몸 구석구석 작은 점 하나까지 체크했다.

“무좀 없고.”

“성병 징후 없음.”

“비듬도 없고.”

“충치도 없군.”

“왼쪽 엉덩이에 작은 점 하나. 메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 히익?!”

신체검사가 끝나자 증기가 뿌옇게 서린 목욕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 만지지 마! 으악! 만지지 말라고! 어딜 만져!”

오토는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덩치가 산만 한 근육질의 시종들은, 오토를 목욕용 베드 위에 강제로 눕힌 뒤 무자비하게 씻겼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들은 모두 웃통을 훌러덩 벗어 던진 채 하얀색 삼각팬티만 입고 있었다.

그중 대단원을 장식하는 건 다름 아닌…….

“으아아아아악! 따, 따가워! 따갑다고오오오오!”

오토는 네 명의 근육때밀이들에 의해 인정사정없이 때를 밀렸다.

“후웁!”

“아주 국수 면발이 따로 없군!”

“이놈! 도대체 얼마나 때를 밀지 않은 것이냐!”

근육때밀이들은 단 한 조각의 각질 하나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마치 불도저처럼 때타월을 문질러댔다.

“야 이! 그간 오래 여행해서 그래! 한가하게 때나 밀 시간 없었다고!”

오토는 억울해서 소리를 질러 댔지만, 근육때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건 무슨 발찌냐? 벗겨지지가 않는군.”

근육때밀이가 엘리제가 오토에게 선물(?)했던 <쫓기는 자의 발찌>를 가리키며 물었다.

“부,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겁니다. 늘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몸가짐을 조심하란 의미는 맞지.

도망치면 죽여 버리겠단 거니까.

하하하.

“흠. 특별히 이상 징후는 없군. 굳이 벗길 필요는 없겠어.”

“아, 아무렴요. 그렇고말고요.”

만약 <쫓기는 자의 발찌>를 강제로 벗긴다면?

퍼엉!

오토는 발찌가 폭발하는 상상을 하면서 흠칫! 몸서리쳤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휴우.’

그렇게 3시간이 걸친 신체검사와 목욕이 끝나고.

“…그냥 죽을까.”

수치와 굴욕의 시간을 보낸 오토는,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져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몸단장을 받았다.

시녀들은 최상급 오일로 오토의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 주고, 향긋한 향수를 뿌려 주었으며, 머리도 말려 주었다.

그런 뒤 야시시한 비단 속옷과 가운을 입혔다.

‘이걸 입어야 한다고? 하아. 그냥 알아서 하게 내버려둘 걸 그랬나.’

오토는 살라딘을 도와주고자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했다.

이렇게까지 끔찍한(?) 꼴을 당할 줄이야.

“따라오도록.”

몸단장까지 끝나자 근위기사들이 왕궁 깊숙한 곳에 자리한 <다비하>로 데려갔다.

<다비하>는 오직 셰에라자드와 그 친위세력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진정한 금남[禁男]의 구역이었다.

<다비하>의 호위 병력은 사나운 여기사들, 혹은 여전사들이었다.

당연히 시종들도 없었고, 오직 시녀들만이 있었다.

물론 생물학적 남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있었다.

단지 구울이었을 뿐.

“구왁, 구와아악.”

“그르르르!”

오토가 지나가자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구울 병사들이 으르렁거렸다.

그들 모두 한때 셰에라자드에게 청혼하거나, 혹은 팔려 왔던 미남 노예들이었다.

“들어가라.”

얼굴에 커다란 칼자국이 난 여기사가 오토를 셰에라자드의 침실로 내던졌다.

우당탕!

그렇게 침실 안으로 나가떨어진 오토.

“왔느냐.”

그러자 창가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던 셰에라자드가 고개를 돌렸다.

“헉!”

오토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왜 벌써부터 홀딱 벗고 있어어어어어!’

셰에라자드가 입은 하늘하늘한 가운이 워낙 얇아서, 속살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던 것이다.

* * *

셰에라자드와 침실에서 단둘이 있게 된 오토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착한생각….’

셰에라자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거의 홀딱 벗다시피 한 복장만을 걸친 채 적나라한 자태를 보이는데, 오토도 남자인 이상 순간이나마 야한 생각이 들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 바짝 차리자. 상대는 앙겔레스랑 차원이 다른 괴물이다.’

마녀 앙겔레스는 미남이라면 그저 사족을 못 쓰는 외모지상주의자.

그래서 다루기가 매우 쉬웠다.

하지만 셰에라자드는 앙겔레스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셰에라자드는 분노의 화신이었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오했다.

게다가 무자비하고 잔혹해서, 누구든 단 하룻밤이면 죽여 버리는 사이코패스이기도 했다.

얼굴만 믿고 까불다가는 골로 가기 딱 좋은 상대였던 것이다.

“이리 오너라.”

셰에라자드가 침대에서 오토를 향해 손짓했다.

“자, 잠깐만요! 제가 목이 말라서.”

오토가 유리병에 따라놓은 와인을 한잔 따라 마셨다가, 순간 느껴지는 비릿함에 흠칫 놀랐다.

“윽! 이거 왜 이렇게 비려?”

“그건 널 위한 와인 같은 게 아니니라.”

셰에라자드가 냉랭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건 나를 위한 피이니라.”

“……!”

“남자의 피 말이다.”

셰에라자드가 붉게 물든 혀를 할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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